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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재능흡수-82화 (82/257)

82화. 생일잔치 (3)

백인수는 아까부터 양복점 앞을 서성이는 한 노신사가 신경이 쓰였다.

‘양복점 손님이면 들어와서 물어보면 될 텐데. 왜 자꾸 남의 가게 앞을 서성거리지? 설마 파파라치인가? 오늘은 수희가 온다는 연락은 없었는데. 설마 은우 때문에 왔나?

하지만 파파라치라고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은 것 같아. 머리가 희끗희끗한 게 내 또래처럼 보이는데.’

백인수는 결국 참다못해 가게 문을 열고 나갔다.

“혹시 무슨 볼일이 있으신가요? 아까부터 계속 이 앞을 서성거리셔서.”

“죄송합니다. 쇼윈도에 붙어있는 이 그림이 너무 좋아서요. 그림이 너무 따뜻하네요. 너무 생생하기도 하고요. 그림을 그린 사람이 그림의 주인공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 감정이 너무 생생하게 그림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까지 느껴져요. 감동적인 그림입니다. 혹시 이 그림을 팔 생각 없으신가요?”

백인수는 아까까지의 불쾌함도 잊은 채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우리 은우가 나를 매우 좋아하는 마음이 그림에 담겨있다 이거지? 허허. 이 사람 참 그림 잘 보네. 나도 이 그림을 처음 본 순간 느꼈지만, 이 그림은 보통 그림이 아니야.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그림이 흔한 줄 아나?

우리 은우는 보통 천재가 아니라서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는데, 날 닮아서 그림까지 잘 그리네. 근데 은우를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아는 아기라고 하기도 그렇고. 손자 같은 아기니까 손자라고 해야겠다.’

백인수는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제 손자가 저를 그려준 거라서요. 아무리 많이 주신다고 해도 팔 생각이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림에 대한 칭찬은 정말로 감사합니다. 제 손자에게 꼭 전해 주겠습니다.”

노신사는 다급한 듯 말을 이었다.

“그럼 혹시 손자분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백인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은우는 소속사도 있고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오른 상태라 최대한 신중해야 해.’

백인수가 대답했다.

“제 딸과 의논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죄송합니다.”

노신사가 명함을 꺼내며 말했다.

“흉흉한 세상이니 이해합니다. 혹시 나중에 생각이 바뀌시면 여기로 연락 한 번 주세요. 재능이 아까워서 그럽니다. 우리나라 미술계를 밝힐 아이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백인수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했다.

‘미술계라니? 저 사람은 지나가다가 그림이 맘에 들어서 서성이던 게 아니라 그림을 직업적으로 보는 사람이란 말인가.’

백인수는 노신사가 주고 간 명함을 보았다.

- 미술 평론가 겸 학익미술관 관장 엄태훈.

***

김마리아 수녀님이 혜린이, 연아, 시우, 지호, 준수에게 말했다.

“오늘이 은우 생일인데 은우에게 비밀로 하고 생일 선물 준비할까?”

연아가 신이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비밀 조아요.”

아기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입 앞에 검지손가락을 댄 채 서로 큭큭대며 웃었다.

김마리아 수녀님은 생각했다.

‘다들 비밀이라고만 하면 재밌어한다니까. 마법의 단어야. 뭐가 그리 재밌는 건지.’

김마리아 수녀님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은우에게 어떤 선물을 줄까요? 좋은 생각이 있는 사람?”

아기들은 하나같이 오른쪽 팔에 힘을 가득 주고 손을 높이 높이 들었다.

“시우부터?”

시우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과쟈요.”

옆에서 지호가 말을 보탰다.

“은우는 스키틀즈 신맛 죠야해요.”

김마리아 수녀님이 연아에게 물었다.

“연아는?”

“쟝난걈요. 져는 곰인형 바꼬 시퍼요.”

혜린이가 연아에게 말했다.

“네 선물 말고 은우 선물 말하라니까. 수녀님, 은우가 상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니꺄 우리도 샹을 주면 조을 거 가타요.”

김마리아 수녀님은 혜린이의 말에 무릎을 쳤다.

‘은우는 지난번 공실업 광고 때문에 장난감도 많이 받아서 어떤 선물을 해줘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좋은 생각이네. 이번 은우 생일은 아기들과 함께 작은 시상식으로 꾸미면 되겠다.’

김마리아 수녀님이 만들기용 책상에 아기들을 앉혀 놓고 말했다.

“수녀님이랑 같이 은우 왕관이랑 트럼프, 그리고 목걸이를 만들어 볼까? 은우 나중에 진짜로 상 받으라고?”

“조아요!”

아기들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연아는 시우와 함께 수녀님이 알려준 대로 색종이를 이어서 알록달록한 색종이 목걸이를 만들었다.

지호는 준수와 함께 키친타올 심지에 색지를 붙여서 요술봉을 만들고 있었다.

혜린이는 금색 종이를 접어 은우의 왕관을 만들고 있었다.

‘녀석들 조그마한 손으로 열심히도 하네.

저게 다 은우를 위한 마음이겠지. 어려서부터 함께 지내서인지 아기들 사이가 참 돈독해.

어린이집이라고 하지만 처지가 거의 비슷하니 평생 친구로 이 힘든 세상 잘 이겨내면 좋을 텐데.’

수녀님은 아기들의 선물 준비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수녀님 다 만들어떠요.”

아기들이 자랑스럽게 완성품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지호가 말했다.

“수녀님, 지베서 아빠 생일 파티할 때 풍선 뷰러떤는데 풍선도 부까요?”

연아도 맞장구쳤다.

“풍선 조아요. 풍선 이뻐요.”

김마리아 수녀님이 풍선을 꺼내왔다.

“와아, 풍셔니다.”

“와아, 풍션 만탸.”

아기들은 신이 나서 팔짝팔짝 뛰었다.

“자 같이 불어볼까?”

수녀님과 아기들이 풍선을 들고 불기 시작했다.

시우가 연아를 보고 웃었다.

“녀 보리 너무 우껴. 보리 뺭뺭햐댜.”

준수는 지호를 보며 웃었다.

“풍션 불다갸 뱡구 소리 나뗘. 헤헤헤헤헤.”

지호가 울상이 되었다.

“냐 방규 안 해떠. 안 해떠.”

***

은우는 창현이 준비한 과자 선물과 풍선을 들고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창현이 말했다.

“아빠가 과자랑 떡 포장해 놨으니까 친구들한테 생일 축하해줘서 고마워. 이렇게 인사하고 하나씩 줘.”

“네에.”

은우는 하늘에 떠 있는 풍선이 너무 신기해서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창현의 차가 멀리서 보이자 김마리아 수녀님이 아기들에게 말했다.

“은우가 오고 있어. 각자 준비.”

아기들이 웃음을 터트리며 외쳤다.

“쥰비.”

김마리아 수녀님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창현과 은우를 맞이하러 나갔다.

창현이 차에서 포장된 과자와 떡이 든 상자를 내리면서 말했다.

“오늘 은우 생일이어서요. 친구들이랑 같이 맛있게 먹으라고 준비했어요.”

김마리아 수녀님이 인자하게 웃으며 말했다.

“생일 축하한다. 은우야.”

창현은 은우에게 말했다.

“친구들이랑 잘 놀아. 은우야.”

창현의 차가 어린이집 마당을 빠져나갔다.

김마리아 수녀님은 과자와 떡이 든 상자를 들고 은우와 함께 어린이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아기들은 교실 곳곳에 숨을 죽이고 숨어 있었다.

은우가 가까이 오자 아기들이 뛰어나오며 외쳤다.

“은우야, 생일 추카해.”

은우가 깜짝 놀라서 하마터면 풍선을 놓칠 뻔했다.

“깜따기야.”

혜린이가 왕관을 들고 말했다.

“우리 어리니집 칭규드른 은우가 연기를 너뮤너뮤 잘해서 체고라고 생각햠니댜. 은우는 왕관을 바드세요. 연기 왕자님.”

혜린이가 은우의 머리 위에 왕관을 씌워 주었다.

시우가 은우에게 요술봉을 주었다.

“이건 상입니댜.”

연아가 은우에게 색종이 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더 큰 샹을 바드세요. 연기 왕자님.”

은우는 친구들이 만들어준 왕관을 쓰고 목걸이를 두르고 요술봉을 들고서 생각했다.

‘묘하게 눈물이 나는 순간이네. 고마워. 얘들아. 너희들의 우정이 내겐 참 큰 선물 같아.’

아기들은 은우의 곁에 서서 박수를 쳤다.

“와아, 연기 왕자니미댜.”

은우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행복한 축하를 받았다.

은우가 친구들에게 생일 답례품으로 과자를 나누어 주었다.

“츄카해 줘서 거마어.”

아기들은 과자 봉투를 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마디께따. 젤리도 이떠.”

“초코볼도 이떠.”

“이거 탁탁탁탁 하는 샤탕이다. 재민는 거.”

시우가 은우의 풍선을 보며 말했다.

“져 풍션 저거 재미떠. 내갸 티비에서 반는데.”

시우가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풍션 먕갸져도 갠차나?”

은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냐 재미는 거 조아하자나.”

시우가 은우를 보면서 장난꾸러기 웃음을 지었다.

“그치. 우린 쟝난꾸러기지.”

시우가 풍선 입구의 테이프를 떼고 바람을 마셨다.

“야, 내 목소리 뱌라.”

“시유 목소리 이땅해. 시유 아퍄?”

아기들은 모두 시우의 목소리가 변한 것을 보고 놀랐다.

“갸갸메린갸? 응? 그 파랸 난쟁이?”

“아냐아냐. 굥룡이야.”

아기들은 이야기하다가 서로 바람을 마셔보겠다고 난리가 났다.

“냐도.”

“냐도.”

시우가 풍선을 혜린이에게 넘겼다.

혜린이가 말했다.

“냐는 공듀야. 악악 목쇼리갸 목쇼리갸. 하녀야.”

연아도 바람을 마셨다.

“은우야 생일 추캬해. 헤헤헤헤헤헤헤헤헤헤.”

지호도 바람을 마셨다.

“공룡 변신 로봇 합체에. 로보시 합체 못하게따. 하하하하하.”

준수도 바람을 마셨다.

“겹쟁이 토마토. 토마토.

나는야 주사갸 무서어.

나는야 수영이 무서어.

하하하하하하하하.

하냐도 안 무셔어.

모또리갸 우껴서 안 무셔어.

하하하하하하하하.”

아기들은 모두 헬륨가스에 취한 목소리 때문에 서로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마리아 수녀님은 미소 지었다.

‘풍선 하나로도 즐거운 우리 아기들. 오래오래 행복하자.’

***

아카데미 집행 위원회에서는 소문의 진상에 대해 토론 중이었다.

위원인 스테파니가 말했다.

“역추적한 결과 소문의 시작이 영화배우 조니의 생일 파티였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위원장인 노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조니는 할리우드에서 중견급 배우인데 그런 소문을 방치하는 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다는 겁니까?”

위원인 세라가 말했다.

“조니는 단순한 장소제공자인 것 같아요. 생일 파티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다는 것을 파티가 다 끝나고 알았다고 하더라구요. 조니의 파티는 초대장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는 곳이어서 초대된 명단은 손쉽게 구할 수 있었어요.”

위원장인 노아가 대답했다.

“불행 중 다행이군요.”

위원인 세라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명단 중에 남우조연상 후보자가 있었어요.”

순간 회의장엔 찬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이 흘렀다.

세라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폴이요. 해저 아일랜드의 폴이 조니의 생일잔치에 참석했습니다.”

위원인 스티븐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폴이군요. 더 찾아볼 것도 없이 범인은 폴입니다. 자기가 상을 받고 싶어서 아카데미의 명예에 흠집을 낸 거예요. 그럴듯한 사실로 말이죠. 사람들은 그냥 흥밋거리로 생각했겠죠.”

위원장인 노아가 스티븐을 말리며 말했다.

“스티븐의 감정은 나도 이해합니다. 나도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에요. 하지만 심증만으로는 안됩니다. 물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폴은 처벌을 면치 못할 겁니다. 그리고 영화인으로서 세계 영화인들의 축제에 찬물을 끼얹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겁니다.”

위원인 세라가 말했다.

“조니로부터 CCTV 녹화본 테이프를 받아 폴과 대화한 사람들의 명단을 모두 뽑아놨어요. 그 사람들에게 폴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알아보면 될 것 같아요.”

위원장인 노아가 말했다.

“진상을 밝힐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위원인 세라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엔 폴과의 삼자대면이 불가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위원장인 노아가 말했다.

“세계인이 우리 영화제를 신뢰해야만 하니까요. 조사결과는 투명하게 공유될 겁니다. 우린 이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야만 해요.”

***

은우의 키즈폰이 울렸다.

은우는 백수희의 이름이 뜬 것을 보고 방긋 웃었다.

“눈나.”

“은우야 생일 선물은 많이 받았어?”

은우는 목에 걸린 색종이 목걸이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니에 니에 니에 니에.”

“눈나도 은우 생일 선물 준비했는데 하뷰지랑 같이 저녁 먹을까?”

“니에 니에 니에 니에.”

은우는 신이 났다.

‘할아버지랑 백수희 누나도 내 생일 선물을 준비했다니 최고의 생일인데. 아빠가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만들어주신 생일떡이랑 어린이집 생일 선물만 해도 너무 행복한데 선물이 또 남아있다니 행복하다.

내일은 태권도장 친구들에게 생일 답례 선물 나눠주고 팬들이랑 생일잔치를 또 하기로 했는데.

다섯 살 생일은 최고야.

역시 다시 태어나길 정말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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