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80화 (80/257)

80화. 생일잔치 (1)

정미나의 노래가 끝나자 윤기세가 박수를 쳤다.

“미나 씨 이렇게 노래를 잘하시는 줄 몰랐네요. 굉장한 미성이시네요. 제가 작곡한 댄스곡이 발라드곡으로 바뀐 느낌이었어요.

가사 좋네요. 특히 마지막 부분 내 안에 너라는 별이 뜬다. 굉장히 감성적이에요.”

강라온이 말했다.

“마지막 가사는 참 좋아. 근데 가사 느낌이 댄스곡보다 발라드에 적합한 가사 같기도 해서.”

정미나가 강라온의 표정을 살피더니 대답했다.

“다음 주에 몇 개 더 해 볼게요.”

그때 은우가 오른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져도 작샤 해떠요.”

강라온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은우야, 손드는 거 어디서 배웠어? 너무 귀엽다.”

“어린이집에서 교통안전 교육 바다떠요. 신호등 건널 때 위험하니까 꼭 이렇게 들라고 해떠요.”

정미나와 윤기세가 큭큭 거리며 웃었다.

그때 이철이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해요. 차가 너무 막혀서.”

이철이 자리에 앉았다.

은우가 물었다.

“이제 트르까요? 선생님 좀 갠차냐요?”

이철이 물을 마시며 말했다.

“달려왔더니 숨이 좀 차서. 어서 틀어봐 은우야.”

은우가 키즈폰의 녹음 파일을 재생했다.

“거리를 냐셔면 날 보는 시션들.

누냐, 횬아, 할뷰지, 할모니

내갸 그러케 기여운 가여.

내갸 지나갈 때먀댜 냘 향한 시션들.

멀리셔도 냐를 쫓는 시션들.

내갸 그러케 기여운 가여.”

윤기세는 은우의 노래를 들으며 웃고 있었다.

‘가사가 곡의 분위기를 잘 담았네. 가사가 어쩜 딱 은우잖아.’

정미나는 생각했다.

‘내가 쓴 가사보다 은우가 쓴 가사가 이 노래랑 더 잘 어울리는데? 게다가 은우가 직접 써서 그런지 은우의 마음도 잘 나타났고. 은우야, 니 재능 진짜 부럽다. 작사가 10년 만에 이런 좌절은 처음이야.’

강라온은 생각했다.

‘자신과 곡을 일치시키고 있어. 이 노래는 세상의 어떤 가수도 부를 수가 없어. 은우만이 부를 수 있는 곡이지. 게다가 자존감을 중시하는 요즘 트렌드와도 잘 맞는 가사 같아. 은우의 타이틀곡은 이게 될 거야.’

노래는 어느덧 후렴구로 접어들었다.

“난 너무 기여워. 난 너무 사랑스러어.

여러분도 너무 기여어. 여러분도 너무 사랑스러어.

우린 모두 소중해.”

이철은 생각했다.

‘후렴구에서 묘하게 의미를 확대시켰네. 관객들도 노래를 좋아할 수밖에 없겠어.’

강라온이 웃음 지었다.

‘후렴구까지 완벽해. 역시 이거다.’

재생 파일이 끝났을 때 모두가 은우를 향해 박수를 치고 있었다.

강라온이 은우에게 물었다.

“이 곡 제목은 뭐니?”

은우가 볼에 손가락을 찌르며 말했다.

“난 너무 기여어.”

강라온이 대답했다.

“그래, 은우는 귀엽지. 곡 제목은 뭐야?”

은우가 다시 한 번 볼에 손가락을 찌르며 말했다.

“난 너무 기여어.”

윤기세가 막 웃었다.

“최고의 제목이네. 제목이 딱 너다. 너.”

***

백인수는 양복점에 붙여진 자신의 초상화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은우 고 녀석. 솜씨가 보통이 아니란 말이지.

양복점에 오는 사람마다 저 그림을 그린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었어.

은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은우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도 받을 거고 음반 준비도 하고 있어서 차마 말하진 못했지만.’

백인수는 백수희가 데뷔한 이후 연예인들이 대중의 가십거리로 사라져가는 많은 사건들을 보았다.

‘되도록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은우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치만 은우 그림 실력은 정말 썩히기에 아까워.

가수가 아니었다면 나중에 유명한 화가가 될 수도 있을 텐데.’

백인수는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이 자꾸만 은우에게 겹쳐 보이는 것을 느꼈다.

‘수희도 그랬지만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 게다가 은우에게 난 아무것도 아니니까.’

백인수는 스크랩북을 꺼내 오늘 자 신문에서 은우 기사를 잘라서 스크랩하고 있었다.

양복점에는 백수희의 기사를 스크랩한 스크랩북이 50여 권이나 있었다.

백인수는 새로운 스크랩북을 사서 은우의 기사를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은우는 재주도 많지. 기사 좀 봐라. 다 은우 칭찬뿐이네.

은우는 참 복이 많은 아이야. 이렇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백인수는 은우 생각을 하면 저절로 콧노래가 났다.

백인수는 은우가 준 그림을 바탕으로 도식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재어둔 은우 치수를 가지고 계산을 해서 이렇게.’

백인수의 손 아래서 은우의 옷이 그려지고 있었다.

‘로코코 양식을 재현하면서도 현대에 맞게.

지나친 화려함보다는 단순함을 적절하게 섞어서 은우가 돋보여야만 해.’

대통령도 극찬했던 백인수의 솜씨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이렇게 신나는 작업. 우리 은우가 이 옷을 입고 전 세계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거란 말이지.

수희 말로는 세계적인 명품 회사 발렌시아가, 알마니, 구찌에서 은우에게 시상식 협찬을 해 주겠다고 했다던데. 그 모든 제의를 거절하고 내가 만든 옷을 입는 거니까 제일 멋진 옷을 만들어야만 해.’

백인수는 인생의 역작을 완성하겠다는 결의로 가득 차 있었다.

그때 백인수 가게의 문이 열렸다.

빼꼼, 고개를 내민 것은 은우였다.

“하뷰지. 저 놀러와떠요.”

“은우 왔구나. 어쩐 일로 왔어. 우리 월드 스타가.”

백인수가 은우를 안아주었다.

“회의가 일찍 끝나떠 놀러와떠요. 하뷰지도 보고십꼬 해떠요.”

백인수는 은우의 보고 싶었다는 말에 마음이 뭉클했다.

‘할아버지도 은우가 보고 싶었단다. 은우 같은 손자가 있으면 좋으련만. 이쁜 은우를 매일 보면 좋겠는데.’

백인수는 은우가 초등학생이 된 모습을 상상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 앞에서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모습을.

‘은우는 초등학생이 돼도 이쁘고 똑똑할 거야.

은우를 만나고 나서 손자, 손녀 있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운지.

우리 수희는 만나는 남자도 없는 거 같고. 나는 언제쯤 은우처럼 이쁜 손자를 안아볼지.’

은우가 백인수가 그리고 있던 도식화에 관심을 보였다.

“와, 하뷰지. 이거 하뷰지가 그려떠요.”

“이건 옷을 만들기 전에 그리는 도식화라는 건데 옷 설계도 같은 거란다. 옷을 만들기 전에 그려보는 거야. 이걸 그려보면 어딜 수정해야 할지 알 수 있어.”

“옫 만드는 거또 어려뀨냐.”

“은우는 그림 그리는 거 보니까 이것도 잘할 것 같은데.”

백인수가 은우를 보며 웃었다.

은우는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에우테르페의 재능을 모르시니까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다.

할아버지 그건 제가 원래부터 잘하는 게 아니라고요.

제가 가진 진짜 재능은 노래뿐이고 나머진 신들이 빌려준 거예요.’

백인수는 생각했다.

‘지난번 그림 솜씨도 그렇고 은우 재능을 썩히긴 아까워. 은우에게 내가 예전에 그렸던 그림을 보여줘 볼까?’

백인수가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잠깐만.”

백인수는 창고로 가서 자신의 스케치북을 가져왔다.

“오래돼서 먼지가 좀 묻었는데 이게 할아버지가 고등학교 시절에 그리던 그림이란다.”

“고등학교요?”

은우는 백인수의 고등학생 시절을 상상했다.

‘안경을 쓴 호리호리한 모범생. 할아버지는 아마 그때도 지금처럼 멋쟁이셨겠지? 머리는 검었을 거고. 주름도 사라진다면?’

은우가 백인수에게 말했다.

“할아버지, 스케치북이랑 크레파스 이떠요?”

“크레파스는 없는데. 찾아보면 색연필은 있을지 모르겠다만.”

백인수가 가게 안에서 물건을 찾으러 다니더니 은우 앞에 스케치북과 4B연필 한 자루를 내려놓았다.

“색연필은 몇 자루 있는데 색깔이 빨간색, 검은색 같은 것뿐이더구나. 아무리 찾아봐도 아기들이 쓰는 것 같은 색연필은 없어서.”

“갠차나요.”

은우는 스케치북 앞에서 에우테르페의 재능을 불렀다.

[그리스 그림의 여신 에우테르페의 모방 – 123/1000]

은우는 생각했다.

‘에우테르페의 재능은 똑같이 그리는 것만 가능하지.

내가 상상한 것을 그리는 것은 불가능했어.

그래서 지난번에 옷 그림을 그리는 건 실패했지.

재능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력을 그림으로 그리고 싶은 건데.

아, 맞다. 상상력. 내가 가진 재능 중에 상상력이 있었지?’

은우는 페가수스의 재능을 불러왔다.

[올림포스의 천마 페가수스의 시인의 상상력]

[그리스 그림의 여신 에우테르페의 모방 – 123/1000]

은우는 정신을 집중하고 자신이 떠올린 백인수의 고등학생 시절을 그리기 시작했다.

백인수는 은우의 그림을 보며 놀라는 중이었다.

‘검고 윤기 있는 머리카락, 안경 사이로 가늘게 웃고 있는 눈.

통통했던 볼살. 맞아. 저 땐 몸은 말랐어도 얼굴은 통통했었어.

교복도 오랜만이다. 그땐 교복이 얼마나 싫었던지.

패션에 관심이 많던 나에게 매일 똑같은 옷을 입으라는 건 정말 고문 같았어.

그래서 교복이라도 좀 멋있게 입어보려고 시도하던 것이 양복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였지.’

백인수는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은우 정말 그림 잘 그리는구나. 내 고등학교 시절이 생생하게 떠올랐어.’

은우가 그림을 다 그린 뒤에 백인수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하뷰지, 하뷰지 고등학교 때량 비슷해요?”

“응. 너무 잘 그려서. 할아버지 가보로 간직해야겠다.”

백인수가 은우가 그린 그림을 양복점 유리창에 붙여놓았다.

“은우가 그려준 할아버지의 고등학교 시절. 할아버지도 젊어진 기분인데.”

백인수가 고등학교 시절의 스케치북을 은우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정물화라는 건데 그림 그릴 때 다들 많이 하는 거야.”

“와, 이건 사과네요. 비치 여기서 요러케 드러오나 뱌요.”

“맞아. 정물화에서는 빛이 중요한데 그것 때문에 정물화를 배우는 거거든. 빛과 그림자. 그게 멋진 정물화를 만드는 거지.”

은우는 생각했다.

‘태양의 신, 라의 재능을 가져오면 정물화도 더 멋지게 그릴 수 있을까?

그림에 쓸 수 있는 재능이 너무 많을 거 같아.’

백인수가 은우에게 말했다.

“할아버지가 은우 그려줄까? 그림 그만둔 지 30년도 넘었는데 은우를 보니까 그림을 다시 그려보고 싶은걸.”

“네, 하뷰지. 그래주떼요.”

“어떤 포즈로 그려줄까?”

“요러케요.”

은우가 백인수의 목에 팔을 감고 안겼다.

백인수는 은우의 말랑말랑한 볼의 감촉을 느끼며 생각했다.

‘어떤 그림이든 은우가 주인공인 그림엔 행복이 넘쳐날 거 같구나.

은우 덕분에 할아버지는 잊고 있었던 꿈을 다시 찾은 것만 같아.

은우야, 너는 사람들에게 행복과 꿈을 전해주는 그런 아기구나.

너를 만난 게 내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이란다.’

***

은우의 생일 디데이 일주일 전 재롱이들의 회장 최지은은 지하철 광고를 보러 압구정역에 도착했다.

‘압구정역에 총 7개의 광고를 걸었지.

은우 생일을 맞이해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올랐는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은우를 기죽일 순 없지.

그나저나 다음 달에는 알바를 몇 개를 더 잡아야 하려나.

아 돈이 없다.’

대학생이 된 최지은은 은우 팬클럽 회장을 맡으면서 과도한 지출에 시달려 아르바이트를 2개나 하고 있었다.

‘패스트푸드 점 아르바이트, 주말엔 짧게 술집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는데 맥주 유리잔은 왜 이렇게 무거운지 손목이 다 시큰거릴 것만 같아.

그치만 우리 은우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는다는데 힘을 내야지. 암.’

최지은은 결의를 다지며 9번 출구 근처로 갔다.

환하게 손하트를 날리고 있는 은우의 사진 위로 ‘은우야 사랑해. 태어나줘서 고마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은 네 거야.’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 은우, 참 언제 봐도 표정이 사랑스러워. 은우는 꼭 세계적인 스타가 될 거야.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참 정확하거든. 걸그룹들도 내가 다 뜰 거라고 생각하면 떴으니까. 물론 은우처럼 덕질을 하진 않았지만 말이야.’

최지은은 6번 출구 앞 두 번째 광고를 보았다.

까꿍포즈를 유행시켰던 연기대상 축하공연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 은우야, 까꿍. 뭘 해도 귀여운 우리 은우. 날개 어딨니?

최지은은 두 번째 광고를 보면서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돈 쓴 보람. 알바에 시달려도 우리 은우만 보면 눈나는 할 수 있다. 아자!’

최지은은 스마트폰의 사진을 꺼내서 은우와 찍은 사진을 보았다.

그곳에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은우의 모습에서부터 떡볶이집에서 뻥튀기를 쥐고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의 사진도 있었다.

전국 노래 경연대회에서 티라노사우루스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 사진.

내일도 사랑해에 출연해 김밥을 말고 있는 사진.

위대한 목소리에서 비눗방울을 불고 있는 사진.

라방에서 과자를 챙기느라 요리 재료를 고르지 못할 뻔했던 사진.

샤아크 버거에서 햄버거를 입에 가득 채운 채 오물거리고 있는 사진.

연기대상 축하공연에서 슈퍼 보이즈 사이에 끼어서 해맑게 사탕 반지를 빨며 웃고 있는 사진.

최지은의 사진첩 속에서 은우의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었다.

최지은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해서 눈물이 차올랐다.

‘은우야, 난 네 팬이기도 하지만 네 누나 같기도 하고 네 가족 같기도 해. 내가 슬펐던 날도 넌 내 곁에 있었고 내가 기뻤던 날도 넌 내 곁에 있었어.

티비에서 보기만 하는 다른 스타들과는 달라.

은우를 처음 보았던 순간부터 난 다 기억하고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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