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음반 준비 (4)
할리우드의 대저택에서 조니의 생일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리디아.”
“벤, 여기 내 친구 폴이야.”
리디아가 폴을 소개하면서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벤은 그 신호가 폴이 아카데미 회원임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알아차렸다.
“반갑습니다. 폴.”
“반가워요. 벤, 이번에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셨던데.”
벤은 생각했다.
‘일부러 화제를 돌리지 않아도 그쪽으로 이야기를 꺼내줘서 고맙군.’
벤이 말했다.
“제 배우 인생에서 첫 번째로 있는 일이라 많이 설렙니다. 해저 아일랜드는 촬영의 대부분이 물속에서 이루어져서 찍을 때 고생을 많이 하기도 했고요. 물속에 너무 오래 있어서 몸이 붓기도 했어요.”
“명장면이 그냥 탄생한 게 아니군요. 역시 멋진 장면 뒤에는 늘 배우의 고통이 따르죠.”
“그런데 혹시 그 소문 들으셨어요?”
“어떤?”
“저 말고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이은우라는 배우는 한국 측의 로비 덕분에 후보에 오른 거라더군요. 한국 소속사에서도 그 아기가 수상하게 하려고 영화계 관계자들에게 로비를 하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폴이 아리송하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저도 위대한 목소리 영화를 보았는데 은우가 정말 연기를 잘했어요. 그 목소리는 정말 잊을 수가 없더군요.”
리디아가 말을 보탰다.
“연기를 잘하긴 했지만 그게 첫 작품이라고 하더라구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 중에 첫 작품으로 후보에 오른 배우가 제가 알기론 없는 걸요.”
폴이 뭔가 납득이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죠. 남우조연상 후보들도 다들 쟁쟁해서 대부분 연기를 오래 한 베테랑인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
벤이 말을 이었다.
“저만 해도 긴 무명시절을 10년이나 겪었던 사람입니다. 알아본 바로는 은우가 곧 음반 발매를 앞두고 있다나 봐요. 그래서 그 소속사에서 은우를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만들려고 지금도 열심히 로비 중이라고 하더라구요.”
폴이 경악을 금치 못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의 엔터 산업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들었어요. 얼마 전 탑보이즈가 빌보드 차트 1위를 한 것도 그렇고. 전 작년 아카데미에서 감독상을 받은 박만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해서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은우도 연기를 너무 잘해서 은우를 뽑을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순간, 벤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흔들리고 있어. 은우가 남우조연상을 타는 것을 막아야 해. 고작 네 살짜리 동양인에게 남우조연상을 뺏길 순 없지.’
벤이 말을 이었다.
“은우가 남우조연상을 받으면 그것보다 좋은 홍보가 있을 순 없겠죠.”
리디아도 분한 듯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카데미를 이용하다니.”
폴이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은우 군을 뽑긴 힘들겠군요.”
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한국의 신문들은 연일 은우 특집 기사를 쏟아내고 있었다.
- 이은우, 아카데미 최연소 남우조연상 수상으로 새역사를 쓸 것인가.
- 이은우, 등장부터 남달랐던 국민 아기.
- 이은우, 신곡 준비 중으로 알려져. 노래와 연기 두 가지가 모두 가능한 만능 엔터테이너의 탄생.
- 이은우, 겨울나라 2 OST에 이어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까지 손만 대면 열리는 히트 제조기.
청와대 민정수석 손경찬은 은우의 기사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작년 박만대 감독도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이후에 대통령과 함께 식사를 했었지. 올해 경제 성장률도 마이너스고 다들 힘이 드니 희망적인 이슈가 필요해.
남우조연상이 아카데미 빅5에 드는 큰 상은 아니지만, 은우라는 아기는 귀엽고 인생도 드라마틱하니 좋은 이슈거리가 될 거야.
미혼부의 아기로 태어나 슈퍼스타가 되다니.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서 희망을 얻지.
게다가 어쩜 이렇게 귀엽게 생겼담?’
손경찬은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연 씨,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로 오른 이은우 소속사 알아내서 연결해 봐요.”
비서가 잠시 후 손경찬의 집무실 전화로 강라온을 연결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청와대 민정수석 손경찬이라고 합니다.”
강라온은 생각했다.
‘청와대에서까지 연락을 주다니. 은우의 인지도가 점점 더 높아지는 것 같네. 이번 남우조연상 정말 수상하면 좋겠다.’
강라온이 목소리를 다듬고 대답했다.
“네, HO 엔터테인먼트 대표 강라온입니다.”
“은우와 관련한 기사들을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은우의 수상이 결정되면 청와대 만찬에 은우를 공식초청하려고 합니다만 소속사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청와대 만찬인데 당연히 가야죠. 다만 저희는 아직 수상 여부가 결정된 것이 아니라서.”
“제가 국내외 분위기를 파악 중인데 그레고리가 아니면 은우가 수상할 것 같다고 여론들이 그렇더군요. 미국에 파견된 대사를 통해서 입수한 정보이니 어느 정도 공신력이 있다고 볼 수 있구요.”
“저희도 그렇게만 된다면야 더 바랄 게 없죠.”
“네, 그럼 좋은 소식 들고 뵈었으면 좋겠네요.”
손경찬이 전화를 끊었다.
강라온은 생각했다.
‘확률은 절반. 하지만 그레고리 역시 만만치 않다고 들었어. 게다가 그레고리 역시 아역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지. 은우만큼이나 화제성도 풍부하고.
남우조연상을 타게 된다면야 바랄 게 없지만, 아카데미상이라는 게 워낙 예측하기가 힘들어서. 회원들의 투표로 이루어지니까.
아카데미상은 하늘에 달린 일이니 난 은우 음반 준비나 열심히 해야지.’
***
은우는 윤기세가 작곡한 멜로디를 반복해서 듣고 있는 중이었다.
‘도입부가 너무 아름답고 산뜻해.
중간 부분은 따사롭고
후렴 부분은 반복되면서 자꾸만 듣고 싶어져.
정미나 누나랑 강라온 대표님이 그랬어.
이 곡은 나를 떠오르게 한다고.’
은우는 고민했다.
‘4살에 음반을 내는 아기 가수는 나 하나뿐일 거야.
사람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귀여워였지.
내 이름이 귀여워인가 하고 착각할 정도였으니.
은우가 키즈폰의 녹음 기능을 켜고 가사를 말하기 시작했다.
“거리를 냐셔면 날 보는 시션들.
누냐, 횬아, 할뷰지, 할모니
내갸 그러케 기여운 가여.
내갸 지나갈 때먀댜 냘 향한 시션들.
멀리셔도 냐를 쫓는 시션들.
내갸 그러케 기여운 가여.”
은우의 노래를 듣던 보리가 일어나서 리듬에 맞춰 꼬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멍멍(곡 너무 좋다. 저절로 춤추고 싶어지는 음악인데. 후렴구가 중독성이 장난 아냐. 너 나갈 때 그 음악 좀 나 틀어주고 나가라.)”
은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다행이다. 이거 내 노래거든.”
“멍멍(드디어 데뷔하는구나. 노래도 좋고 우리 은우 또 일등 하겠네. 가사도 너무 좋아. 곡이랑 찰떡이야. 근데 제목이 뭐야?)”
“제목은 비미리야.”
보리가 고개를 꺄우뚱하며 대답했다.
“멍멍(또 비밀이야 놀이에 빠지셨군. 요새 저 놀이를 너무 좋아한다니까. 사소한 것도 다 비밀로 하면 재밌니? 언제 이 시기가 지나가려나. 난 껌이나 먹으련다. 노래는 틀어주고 가.)”
길동이 은우를 데리러 집으로 왔다.
은우는 보리를 위해 태블릿으로 노래를 틀어놓은 뒤 집을 나섰다.
길동이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오늘도 스키틀즈 신맛 먹을래?”
“네에.”
“왜 오늘은 네에 네에 네에 네에 안 해?”
“아, 그게 재미엄떠져서 새로운 거 생각 중이에요.”
“아, 그래. 재미없어졌구나. 은우 매일 어떤 장난칠까 궁리하지?”
은우가 개구쟁이처럼 웃으며 대답했다.
“어떠케 아랴떠여. 횬아?”
은우가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며 말했다.
“횬아, 이 샤턍 머겨 볼래여? 내가 머겨 줄게요.”
은우가 사탕 껍질을 까서 사탕에 팝핑 가루를 잔뜩 묻힌 채 길동의 입에 넣어주었다.
길동은 사탕을 먹자마자 깜짝 놀랐다.
‘입에서 전쟁이 난 거 같은 이 기분은 뭐지?
은우가 또 장난쳤구나. 이런.
아 뱉고 싶다. 이게 뭐야.’
길동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은우가 숨이 넘어가게 깔깔 웃었다.
“하하하하, 횬아.
하하하하, 횬아.”
길동이 사탕을 뱉으며 말했다.
“이거 맛없거든. 은우야.”
은우가 주머니에서 팝핑 사탕을 하나 더 꺼내며 말했다.
“재미짜나요. 내가 젤로 좋아하는 건데.”
길동은 생각했다.
‘저 사탕, 인터넷으로 또 한 상자 시켜놔야겠네.’
은우는 사탕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입에서 톡톡 튀는 게 언제 먹어도 재밌다니까.
톡톡톡톡. 내 입엔 전기가 살고 있어요.’
차는 어느덧 HO 엔터테인먼트 앞에 도착했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월드 스타님.”
길동이 은우를 내려주며 말했다.
은우가 작은 주먹을 꼭 쥐고 대답했다.
“파이팅!”
은우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강라온의 사무실로 올라갔다.
사무실에는 강라온과 윤기세, 정미나가 은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우가 배꼽 인사를 했다.
“안녕하떼요.”
강라온이 웃으며 인사했다.
“은우 왔어? 오늘도 귀엽네.”
윤기세도 시크한 표정으로 라떼를 마시며 인사했다.
“은우 안녕.”
정미나가 은우에게 달려가며 말했다.
“은우야, 우리 귀요미. 보고 싶었어.”
은우가 씨익 웃더니 가방에서 사탕을 꺼내며 말했다.
“사턍 드실래요?”
강라온이 웃으며 대답했다.
“은우가 웃는 거 보면 저 사탕은 일반 사탕이 아니야. 내가 많이 당해봐서 아는데 은우가 장난꾸러기라 분명 이상한 맛이 나는 사탕을 주겠지. 지난번에 스키틀즈 신맛 먹고 나서 죽을 뻔했다니까. 얼마나 시던지. 대체 그걸 왜 돈 주고 먹는 거야. 금방 뱉었는데도 입 안에 신맛이 남아서.”
윤기세가 말했다.
“은우야, 난 몸매 관리해야 해서 사탕 안 먹어. 라떼에도 설탕은 안 넣거든.”
은우는 생각했다.
‘설탕이 얼마나 맛있는데. 작곡가 형아 재미가 없으시네.’
정미나는 생각했다.
‘나도 안 받으면 은우가 무안해하겠지? 나라도 받아야겠다.’
정미나가 대답했다.
“은우야. 누나 줘. 누난 먹을래.”
은우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눈나, 내가 껍질 버껴 줄게요.”
“아고 친절해라 우리 은우.”
은우는 껍질을 벗긴 다음 사탕에 팝핑 가루를 잔뜩 묻혀서 정미나에게 건넸다.
강라온이 말했다.
“미나 씨가 아직 은우를 몰라서 그러는데 은우가 뭔가 먹을 걸 준다고 하면 조심해야 한다니까?”
정미나는 생각했다.
‘고작 네 살짜리가 어떤 장난을 치겠어? 쳐 봤자지.’
정미나가 사탕을 물었다.
입 안에서 사탕이 톡톡톡 튀기 시작했다.
‘입 안에서 별이 왔다 갔다 하네. 근데 이 느낌 너무 싫다. 혀가 아픈 느낌이야. 뱉고 싶어.’
정미나는 화장실로 달려가서 입을 헹구었다.
‘입을 헹구었는데도 톡톡톡 하는 느낌은 계속 남아있네. 너무 싫다. 껌이라도 씹어야 하나.’
정미나가 갑자기 사무실을 나가자 은우는 놀랐다.
‘장난이었는데 사탕이 많이 맛이 없었나. 정미나 누나가 안 돌아오면 어떻게 하지? 다음엔 장난을 치면 안 되겠다. 누나가 기분이 많이 나빴나 봐.’
은우는 안절부절못하고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강라온과 윤기세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사무실에는 침묵만이 맴돌았다.
정미나가 핼쑥해진 표정으로 강라온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은우가 정미나의 다리를 안으며 말했다.
“눈나, 미안해여. 걱정해떠여.”
정미나는 생각했다.
‘화장실에 갔을 때 기분이 나빠졌었는데 은우가 이렇게 미안하다고 하니 화를 낼 수가 없네. 은우는 아직 어려서 장난을 친 걸 텐데 내가 너무 예민했나? 은우 표정을 보니 걱정을 많이 한 거 같아.’
정미나가 웃으며 대답했다.
“은우야, 누나가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갔던 거야. 은우가 장난쳐서 그런 게 아니야.”
“진짜요?”
은우가 안심이라는 표정으로 정미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응, 진짜지?”
“다행이다. 이제 장난 안 칠게요. 미안해요. 눈나.”
강라온이 모두에게 말했다.
“이제 자리에 앉아서 일 좀 하자고. 기세 씨 작곡 더 된 거 있어?”
윤기세가 대답했다.
“이번 주는 한 곡도 작곡을 못 했어요. 지난번 미나 씨가 준 가사가 아름답긴 한데 거기 어울리는 멜로디가 떠오르지 않더라구요. 다음 주엔 다른 곡을 들고 올게요.”
정미나가 노트를 꺼내며 말했다.
“기세 씨 멜로디에 어울리는 가사를 써 보긴 했는데 한번 들어보시겠어요?”
정미나가 기세의 멜로디에 가사를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
“밤이 되면 보물 상자가 열려
너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들려
내 안에 너라는 별이 뜬다.
어둠이 와도 난 두렵지 않아.
너와의 추억이 나를 비출 테니.
내 안에 너라는 별이 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