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위문 공연 (6)
은우는 준비한 선물을 들고 명석이의 곁에 서 있었다.
“명서갸 이거.”
명석이는 은우가 건네준 그림 편지를 받았다.
종이에는 강아지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걍아지네. 이거 보이야?”
“응.”
“너투브에서 봐떤 거 기억냔다. 보이 참 이쁘지?”
“마쟈. 이뻐. 나중에 보려 와. 우리 지베.”
“진쨔?”
“진쨔.”
명석이와 은우는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명석이는 한동안 은우가 그려준 그림엽서를 바라보았다.
“이건 머야?”
“보이 발자국. 보이가 여기 오고 시퍼핸는데. 걍아지는 여기 몬 온대.”
“아꺕댜. 봐뜨면 조아쓸 텐데.”
“그니꺈.”
명석이는 보이의 발자국을 한참 동안 만지작거렸다.
은우가 작은 유리병 하나를 내려놓았다.
“명서갸 이거또.”
“이건 머야?”
“하걀. 이거 바드면 소언이 이러진다고 슈녀님이 그래떠.”
“그래?”
명석이는 은우가 준 유리병 안에 담긴 작은 학 알들을 바라보았다.
“거마여. 난 아퍄서 늘 병언에만 이떠는데 오늘 챰 행보케떠. 칭구 1호도 생기고.”
“칭구 1호?”
“여기 인는 칭구들은 아파서 퇴언을 하거나 그러면 다시 보기도 힘들고 병언에 인는 동안만 함께 인는 경우가 마느니꺄.”
은우는 명석이의 표정이 쓸쓸해지는 것을 보았다.
“그래, 우리 칭구 1호야.”
은우가 명석이의 손을 잡았다.
그때 명석이 아빠의 휴대폰이 울렸다.
명석이 아빠가 명석이 엄마에게 말했다.
“금방 나갔다. 올게.”
“대리 들어온 거예요?”
명석이 아빠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병실을 빠져나갔다.
순간 창현은 가슴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픈 아기를 두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겠지. 나도 예전에 은우를 맡길 곳이 없어서 중고장사부터 시작했었는데. 그 마음 알 것 같아.
아픈 자식을 두고 부모 맘은 찢어지지.’
[희망의 신 루딘의 긍정의 선택 레벨 2 – 0/10000]
은우는 자신의 손을 잡는 명석이의 머리 위에 숫자 5가 뜨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자신과 명석이를 보고 있던 창현의 머리 위에 숫자 100이 뜨는 것을 보았다.
‘어, 숫자가 너무 큰데.’
창현을 보며 머리를 갸우뚱하는 은우였다.
***
창현은 한국대 병원 원무과로 갔다.
“101병동 1116호실 정명석 환자 병원비가 얼마인지 알 수 있을까요?”
“네, 오늘까지 총 457만 8천 원이네요.”
창현이 카드를 건넸다.
“일시불로 해드릴까요?”
“네.”
창현이 원무과 직원에게 물었다.
“소아암 병동 환자들 병원비는 보통 얼마나 나와요?”
“환자마다 상황이 다르니 보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금액이 없죠. 그치만 소아암 환자들의 경우는 병원을 지속적으로 다니기 때문에 진료비가 큰 부담이라고 듣기는 했어요.”
창현은 생각했다.
‘명석이네뿐만 아니라 아픈 아기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거나 대출을 받은 집들이 많을 거야. 아기는 아기대로 아프고 돈 걱정은 끝날 일이 없고. 나도 예전에 고지서랑 독촉장이 가득 쌓였던 그런 날이 있었지.
영탁이 말고는 도와달라고 할 사람도 없었고.’
창현이 말을 이었다.
“그렇겠네요. 혹시 다른 소아암 환자들에게도 치료비를 지원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저희 병원에서도 치료비 기부를 받고 있어요. 정기 후원도 가능하고 일시 후원도 가능합니다. 후원하시면 저희 병원 홈페이지에 이름도 넣어드리고 있어요.”
창현은 고민했다.
‘도와주고 싶은 거지 굳이 이름을 밝히고 싶진 않은데. 그치만 은우 이름으로 한다면 해도 좋을 것 같아. 은우가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어 했으니까. 그리고 만약에 나에게 주어지는 복이 있다면 그 복은 다 은우에게 주고 싶으니까.’
창현이 말했다.
“기부자 이름은 이은우로 할게요. 서류 작성할 수 있을까요?”
“네, 잠시만 기다리시면 찾아드리겠습니다.”
원무과 직원이 창현에게 서류를 건넸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여기 체크 표시된 부분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창현이 서류를 작성하면서 말했다.
“일시 후원과 정기 후원을 함께 하고 싶어서 그러는데 서류를 한 장만 더 주시겠어요?”
원무과 직원이 서류를 한 장 더 건넸다.
“감사합니다.”
창현은 총 두 장의 서류를 작성하고 원무과를 빠져나왔다.
원무과 직원은 창현의 서류를 받은 뒤 놀랐다.
‘일시 후원 오천만 원에 정기 후원 백만 원. 저렇게 큰 금액을 한 번에 후원하다니 평범한 사람은 아니야.’
***
“댜 머겨떠요.”
명석이 엄마는 명석이의 식판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은우가 다녀간 뒤 명석이가 밥을 다 먹기 시작했어. 전엔 입맛 없다고 주삿바늘 아프다고 절반도 안 먹었었는데. 매일이 요즘만 같으면 정말 살 것 같아.’
명석이가 명석이 엄마에게 말했다.
“엄먀, 우유도 주떼요.”
“많이 먹어. 우리 아들.”
명석이 엄마는 명석이에게 빨대 꽂은 우유를 건네주면서 명석이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그래, 명석아. 그렇게 잘 먹고 많이 웃으면 병도 이겨낼 수 있어. 퇴원해서도 우리 잘 해 보자. 다신 입원 안 하게.’
그때 병실로 명석이 아빠가 달려 들어왔다.
“여, 여보.”
“무슨 일 있어요?”
명석이 엄마는 명석이 아빠가 갑자기 달려서 병실로 들어오자 당황했다.
“은우가 명석이 병원비를 결제했어.”
“그 큰돈을요? 몇십만 원도 아니고. 지난번에 걱정돼서 물어보니 사백만 원이 넘는 큰 금액이었는데.”
“그러니까 돈 알아보려고 친척들이며 전에 다니던 회사 동료들까지 다 전화해도 아무도 안 빌려준다고 한 금액이었는데.”
“정말 고맙네요. 은우가 정말 우리에겐 은인이에요.”
“공연도 와 주고, 병원비도 내주고. 그냥 우린 팬일 뿐이었는데.”
듣고 있던 명석이가 말을 보탰다.
“칭구 1호요. 은우는 내 칭구 1호예요.”
명석이 아빠가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른 눈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래, 진짜 친구다. 어른들 친구 같은 친구 아니고 진짜 친구. 아플 때 같이 울고 기쁠 때 같이 웃는 진짜 친구.”
“난 당신이 대리운전 안 해도 되니 마음이 좀 편해요. 이번에 또 병원비 내려고 대출받았으면 그거 갚으려고 새벽마다 대리운전 나가야 했을 텐데. 그걸 보는 내 맘이 얼마나 불안했다고요.”
“그래, 이제 우리도 좀 더 안정적으로 살아보자. 이렇게 매일매일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불안하게 살지 말고.”
***
은우는 길동과 함께 차를 타고 있었다.
차에는 늘푸른 태권도의 친구들 승현이, 민재, 하율이가 함께 차를 타고 있었다.
승현이가 형들에게 말했다.
“횬아들, 유리 다 갸치 가니까 신나.”
민재가 말했다.
“지난 변 병언도 너무 재미떠더. 공룡변신 로봇 광고 신냐.”
하율이가 맞장구쳤다.
“다 은우 덕분이라니까.”
은우가 말했다.
“이따가 우리 다가치 변신하게 해준다고 그래쓰니까 재미께 놀쟈.”
길동은 생각했다.
‘은우 친구들도 엑스트라로 함께 촬영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하셔서 다행이긴 한데, 아기들이 잘 적응할지 걱정이네. 은우는 여러 번 촬영을 해봤지만 다른 아기들은 촬영이 처음이고. 그리고 하율이는 너무 어린데 잘할 수 있으려나.’
어느덧 차가 촬영장에 도착하였다.
김상현 PD는 외주로 받는 광고를 주로 찍는 PD였다.
‘아기들 광고라니 정말 싫어. 애들은 시끄럽고 또 잘 흘리고 손도 많이 가고. 공실업에서 광고 단가를 세게 부르지 않았으면 안 했을 텐데. 이 광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통 아기 물건 광고와 다르게 단가를 배로 불렀단 말이지.
근데 한 명 빼고는 광고도 찍어본 적 없고 연기도 해 본 적 없다는데 대체 어떻게 하지?
내가 연기지도를 해야 하나. 변신하는 로봇 연기를 대체 어떻게 하냔 말이야.
애들은 왜 유치하게 그런 걸 보나 몰라.
대체 지구를 침범하는 사일런스 박사 같은 악당이 어디에 있냐고?
이해할 수 없는 뇌 구조야.
짜증 내지 말고 오늘 하루 종일 표정 관리 잘해야 할 텐데.’
길동이 차에서 아기들을 하나씩 안아서 내려주었다.
“자, 승현이 왕자님, 하율이 왕자님, 민재 왕자님, 은우 왕자님.”
길동이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안자 아기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헤헤헤헤. 가안지러요.”
김상현은 겉으로 웃으면서 생각했다.
‘왕자는 무슨. 역시나 상상했던 것만큼이나 시끄럽군.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은데 쟤들이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자기 이름도 못 쓸 거 같은데.’
아기들은 준비된 옷을 보면서 신나있었다.
“와야, 이거 뱌. 공룡 오시야.”
“우리 진쨔 공룡이 대는 거야?”
“응, 유리 오늘 변신할 뚜 이때.”
스타일리스트가 아기들에게 와서 말했다.
“이제 차례대로 옷을 입혀 줄게요. 각자 준비된 마스크도 있으니 옷도 입고 마스크도 써야 해요.”
“네에!”
우렁찬 대답 소리에 스타일리스트가 웃었다.
은우는 육식 공룡 티라노사우루스로 민재는 초식 공룡 트리케라톱스로 하율이는 나는 공룡 프테라노돈으로 승현이는 물속에 사는 공룡 플레시오사우루스로 변신했다.
은우가 칼을 뽑으며 외쳤다.
“냐는 티아노 샤우르스댜.”
이어서 민재가 세 개의 뿔을 뽐내며 발로 바닥을 쿵쿵 치며 외쳤다.
“냐는 트리케라톱스.”
하율이가 날개를 펼치며 말했다.
“냐는 햐늘의 왕쟈 프테라노돈이다.”
승현이가 몸을 요리조리 비비 꼬며 헤엄치는 흉내를 냈다.
“냐는 물속의 왕쟈 플레시오사우루스.”
아이들이 다 함께 손을 모으며 외쳤다.
“우리는 공룡변신 로봇!”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김상현 PD는 할 말을 잃었다.
‘이게 광고가 광고가 아니고 그냥 아기들 노는 거 찍으면 그게 광고겠는데. 진짜 지구라도 구할 듯한데 표정들이. 한 명 빼고는 연기 경험이 없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원래 친한 사이라 그런지 의외로 분위기가 잘 사네. 나중에 CG 작업 조금만 해서 세트를 조금 더 실감 나게 꾸미면 되겠네.’
스타일리스트도 아기들을 보며 웃고 있었다.
‘평소엔 여자 아기들만 귀엽다고 생각했었는데 남자 아기들도 너무 귀엽다. 대체 저 만화 내용이 뭐지? 나도 심심할 때 한번 찾아서 볼까?’
이어지는 촬영은 은우가 공룡 변신 로봇을 들고 춤추며 노래하는 장면.
공룡 옷을 입은 민재, 하율이, 승현이가 옆에서 함께 춤을 추기로 했다.
은우가 노래를 시작했다.
“유리는 공룡 변신 로봇.
햐늘가 땅을 지켜 지구를 지켜
우리는 할 뚜 이떠.
잘할 뚜 이떠.
피웅피웅피웅.
슉슉슉슉”
은우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김상현 PD는 머리가 갸우뚱했다.
‘원래 부르기로 돼 있던 건 공룡 변신 로봇 주제곡인데 저건 그 노래가 아니잖아. 근데 저 노래도 괜찮네. 혹시 모르니 버전을 두 개로 따 볼까? 저건 즉석에서 지은 노래인가? 신이 나네. 뭐지? 저 유치한 가사에 어깨가 들썩이는 건.’
김상현 PD는 자신도 모르게 발로 은우가 부르는 노래에 리듬을 맞추고 있었다.
은우는 노래하면서 춤을 추고 있었다.
“피웅피웅피웅
슉슉슉슉.”
옆에 서 있던 민재, 하율이, 승현이가 은우의 등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 저건 기차놀이잖아. 나도 어렸을 때 많이 했었는데 기억난다.’
김상현 PD는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매일 딱지치기하고, 나무 주워다가 산에서 칼싸움하고, 물고기 잡고 그랬던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지. 그립다 그때가. 그때 그 친구들, 코찔찔이 형섭이, 배꼽때 지훈이는 어디서 뭐 하고 있으려나.’
은우가 노래를 계속했다.
“공룡은 우리의 칭구.
육식 공룡, 초식 공룡, 하느리 공룡, 물 쏘그 공룡.
샤는 고슨 달랴도 모두가 칭구.”
민재, 하율이, 승현이가 은우의 옆에서 손을 잡고 빙빙 돌고 있었다.
‘저건 강강술래잖아. 유치하지만 나도 했었다. 예전에. 자꾸 아기들을 보니 내 친구들이 보고 싶네.’
김상현 PD는 광고 촬영이 끝나면 오랜만에 잊고 있던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