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위문 공연 (4)
창현과 은우는 이태석 신부님의 차를 타고 김마리아 수녀님과 어린이집 친구들과 함께 명석이의 병원으로 가는 중이었다.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사거리 고층 빌딩에서 조울증에 걸린 한 남성이 1000만 원을 뿌렸습니다. 시민들은 하늘에서 떨어진 오만 원짜리 지폐를 보고 줍기 시작했는데요. 이 소동으로 근처의 교통이 10분간 마비됐고, 김모 양(30세, 무직)이 차에 치여 중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백모 씨(45세, 사거리에서 슈퍼 운영) :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더라니까요. 사람들이 놀라서 떨어진 돈을 정신없이 주웠어요. 나도 몇 개 주웠는데. 잃어버린 사람 생각해서 돌려줬지만.
이렇게 하늘에서 떨어진 돈이라고 해도 주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래의 소유주에게 돌려줘야 하는데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주운 사람을 전부 찾을 수는 없습니다.
하늘에서 던져진 1000만 원 중 수거된 돈은 300만 원 정도에 불과했는데요. 지폐를 던진 남성은 후회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하늘에서 지폐를 던진 정모 씨(52세, 사업) : 사업도 안 되고 힘들고 절망적인 기분에 갑자기 울컥해서요. 지금은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창현이 말했다.
“하늘에서 갑자기 돈이 떨어지다니 저런 일도 있네요. 근데 다친 사람은 불쌍하네요.”
김마리아 수녀님이 말했다.
“남의 돈 욕심 내면 안 되는 게 세상 이치긴 하니까. 그래도 불쌍한 건 맞아요. 기도해야겠네요.”
이태석 신부님도 동의했다.
“우린 세상의 이치를 모두 알 수 없죠. 다만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뿐. 기도해야겠어요.”
차는 어느덧 명석이가 입원해 있는 한국대 병원에 도착했다.
김마리아 수녀가 이태석 신부에게 말했다.
“늘푸른 태권도에서도 오기로 했으니까 여기서 잠시 기다렸다가 만나서 가요.”
“수녀님이 창현이와 함께 아기들 데리고 여기서 내려서 계시면 제가 주차하고 올게요.”
은우와 어린이집 친구들은 처음 보는 대학병원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병언 디따 크다. 챠도 만코.”
“긍데 나 병언 시러하는데 주사 만는 걷또 무섭꼬.”
“오느른 주샤 안 마즈니꺄 갠차늘 거야. 오느른 노래 부르러 온 거니꺄.”
“그치? 갠찬게찌? 긍데 병언에 있는 칭구들은 주샤 매일 마자서 무섭게따. 그치?”
“응. 그러니까 우리갸 노래도 쟐 부르고 춤도 쟐 추쟈. 칭구들 힘내라고.”
“그래.”
그때 한 대의 구급차가 아이들 사이를 뚫고 들어왔다.
“와아, 구급차댜. 폴리 폴리.”
아이들은 티비에서 보았던 로봇의 이름을 불렀다.
“김현경 씨, 김현경 씨 보호자 연락됐나요?”
“아직. 연락이 안 되고 있습니다.”
“큰일이네. 사고가 너무 커서 오래 못 버틸 거 같은데. 머리 쪽 출혈과 대퇴부 쪽 골절이 심각해. 빨리 수술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창현은 구급대원들이 하는 말에 귀가 쫑긋해서 자신도 모르게 구급차 가까이 갔다.
‘김현경이라고. 설마……’
창현은 구급차용 간이침대에 누워있는 현경의 얼굴을 보았다.
현경은 수혈용 혈액을 단 채 누워있었다.
현경의 얼굴은 피투성이였고 머리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현경아, 현경아. 니가 여기에 왜?”
창현이 현경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고 김마리아 수녀님이 말했다.
“은우 엄마?”
순간, 은우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엄마라고? 나를 한 번도 안아주지 않았던? 기억 속에도 없는 엄마라고?’
은우는 간이침대 근처로 가 누워있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하얗고 창백한 핏기 없는 얼굴에 어지러이 피가 묻어있었다.
‘내 엄마. 나랑 닮았나?’
은우는 자신도 모르게 현경의 얼굴을 뜯어보기 시작했다.
그때 구급대원이 말했다.
“김현경 씨 보호자 연락됐습니다. 여기로 온다고 하니 빨리 응급실로 옮겨 달라고 하네요.”
구급대원이 현경이 누워있는 간이침대를 밀고 응급실로 사라져갔다.
창현은 멍하니 서 있었다.
김마리아 수녀님이 창현을 위로했다.
“가 보고 싶으면 한번 가 봐. 내가 은우랑 아기들 데리고 있을게. 지금 안 가면 후회할지도 모르잖아.”
창현은 머뭇거리고 있었다.
‘한때는 사랑했고 한때는 원망도 했던 사람. 그래도 잘 살기를 바랐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김마리아 수녀님이 창현의 등을 떠밀었다.
“보고 와. 안 그러면 나중에 실감이 안 날 수도 있어서 그래.”
창현이 응급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우는 마음이 복잡했다.
‘나를 버린 엄마가 병원에 실려 오다니. 저렇게 피투성이가 된 걸 보면 많이 아픈 모양인데. 그런데 이상하지? 생각보다 많이 슬프지가 않아.
엄마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었는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걸까.
하지만 아빠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파.
아빠도 마음이 이상한가 봐. 우리 아빠 많이 힘들면 안 되는데.’
은우는 고민을 하다가 문득 시간의 신이 생각났다.
‘맞다.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있었지. 어서 빨리 시간의 신을 불러내야만 해.’
은우는 수녀님께 말했다.
“수녀님. 화쟝실 다녀올게요.”
김마리아 수녀님이 당황하며 말했다.
“은우야. 내가 같이 가기가 조금 힘든데 다른 아이들도 있어서. 조금만 기다렸다가 신부님이나 아빠가 온 다음에 가면 안 될까?”
은우는 생각했다.
‘수녀님, 죄송해요. 전 사실 지금 화장실에 가고 싶은 게 아니라 응급실에 가 보고 싶어요. 아빠가 어떤지 궁금해서요. 수녀님이 계시면 제가 편하게 생각을 할 수가 없거든요.’
은우는 다리를 비비 꼬며 볼일이 급한 것 같은 행동을 했다.
“갠차나요. 수녀님. 저 혼쟈 다녀올 슈 이떠요. 빨리 다녀오께요.”
“그래, 은우야. 그럼 빨리 다녀오렴. 은우는 똘똘하니까 금방 다녀올 수 있지?”
“네에.”
은우는 정신의 집중하고 아테나를 불렀다.
“웬일이지? 인간? 얼마 전에 내가 희망의 신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나?”
“그퍈 이리 이떠서 그래요. 시간의 신을 불러야만 해서요.”
“시간의 신? 넌 마치 내가 니가 원하면 뭐든지 알려주는 그런 상대라고 생각하나? 난 신이라고. 얼마나 바쁜지 알아?”
“미안해요. 그치만 샤랴미 주거가고 이떠서요. 제 엄마요.”
“인간, 너는 항상 내 동정심을 자극하는군. 어린 꼬마가 너무 사연이 많아. 하지만 말야. 내가 언제까지 동정심 때문에 니 말을 들어줄 거라고 착각하진 마. 이번이 마지막이야.
자, 내가 주는 힌트를 잘 생각해 봐. 시간은 절대적이기도 하고 상대적이기도 하다.
이게 내가 주는 힌트야. 인간들은 다 알려주면 노력을 하지 않으니까.”
아테나가 사라졌다.
은우는 다급하게 아테나를 불렀다.
“져기요. 져기요.”
은우는 울상이 된 채 생각했다.
‘시간은 절대적이며 상대적이다. 동화책에서 보았던 크로노스의 모습은 낫을 들고 있는 무서운 모습이었지. 희망의 신이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던 것처럼 시간의 신의 모습 역시 내가 생각하고 있던 그 모습이 아닐지도 몰라.’
은우가 눈을 감고 다시 시간의 신을 불러냈다.
‘시간은 어느 곳에나 평등하게 흐른다. 하지만 시간은 또 동시에 대상마다 다르기도 하다. 시간은 형체가 없지만, 인간을 지배하고 지구를 지배한다. 따라서 시간의 신은 모든 것이면서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은우가 불러낸 시간의 신은 형체가 없었다.
허공 속에서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를 불러내다니 놀랍군. 인간이여.
나를 불러낸 인간은 몇백 년 동안 없었는데. 그대는 깨달은 자인가?”
은우가 대답했다.
“인생이 3변 째라 죠금 뉸치갸 뺠랴지 거 뿌니예요. 당시늬 재능이 피료해요.”
크로노스가 대답했다.
“그대는 나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했는가? 신화 속에서 나는 자식을 잡아먹은 괴물로 나온다. 나는 가족에게도 인정사정이 없었지. 그런데도 내가 두렵지 않은가?”
은우는 생각했다.
‘확실히 다른 신들과 다르긴 하군. 다른 신들의 감정은 쉽게 알 수 있었는데 크로노스의 감정은 도무지 알 수가 없네. 하지만 난 지금 너무 급해.’
은우가 대답했다.
“그거슨 비유랴고 생갹케요. 모든 신햐는 비유갸 드러있으니까요. 시간은 무자비햐기도 햐죠. 야기가 햘미, 햘비가 되게 하니꺄요.”
크로노스가 웃었다.
“영리한 자군. 내 재능이 필요하다고? 그대는 시간을 움직이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가?
내 재능은 다른 신들의 재능과 다르다.
세상에 시간을 움직이는 자가 여러 명이 된다면 그 결과는 예측할 수가 없지.
내 재능을 가지려면 너는 너의 시간을 주어야만 한다.
어떤가? 너는 그래도 나의 재능을 가지고 싶은가?”
은우가 되물었다.
“져의 절므미요?”
“그래, 니가 1시간을 돌리고 싶다면 니 인생의 1시간을 주어야만 한다.”
은우는 크로노스의 말이 흥미로웠다.
‘확실히 다른 신들과 다르군. 다른 신들은 나에게 축복으로 그들의 재능을 빌려주었는데 크로노스는 아니야. 하긴,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좀 더 들어보고 싶군. 크로노스의 말을.”
은우가 크로노스에게 대답했다.
“냐쁜 계약근 아니네요.”
크로노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재밌군. 인간이여. 나는 시간의 신이야. 예쁘다고 으스대는 아프로디테나 술에 취해서 제대로 걸음도 못 걷는 디오니소스와는 차원이 다르지. 나는 지구 최강의 신이며, 우주 최강의 신이다. 니가 내 재능을 쓰고 싶다면 너는 내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야만 한다.”
크로노스의 말을 듣는 은우의 눈동자가 커졌다.
“계약서?”
“그렇다. 설마 내가 다른 신들처럼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나는 너의 인생의 모든 시간 중에서 내가 원하는 시간을 골라서 가져갈 것이다. 어쩌면 니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추억을 내가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거지. 이래도 나의 재능을 원하는가?”
은우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크로노스가 웃었다.
“아마 지금쯤 손익 계산을 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인간이란 그런 존재니까. 천천히 맘껏 계산하시게. 이제 언제든 날 불러낼 수 있을 테니. 계약은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 그럼 난 이만.”
은우는 크로노스를 보낸 뒤에 생각했다.
‘엄마가 언제 사고를 당했는지 알 수가 없어. 적게는 2시간 길게는 4시간을 돌려야 할지도 모르지. 시간의 신은 내 인생에서 그만큼의 시간을 가져가겠다고 했어. 그러면 내 인생에서 어떤 추억이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는 건데.’
은우는 자신의 추억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동묘 시장에서 옷을 팔 때 자신을 보러 와 주었던 누나들과 형아들.
그리고 아빠와 함께했던 전국 노래 경연대회.
내일도 사랑해에서 호적을 얻을 때 응원해 주었던 사람들.
소중한 어린이집 친구들과 태권도장 친구들.
나를 많이 사랑해 주는 길동이 형아와 백수희 누나.
그리고 늘 나를 응원해 주고 나를 사랑해 주는 나의 팬들.
내가 만든 이상한 초콜릿과 스키틀즈, 과자를 넣은 음식도 맛있다고 해 주었었지.
위대한 목소리 영화를 찍으며 만났던 이탈리아 사람들.
보고 싶은 까를루초 할아버지.
겨울나라 2 ost를 녹음할 때 만났던 린다 김과 존.
그때 먹었던 맛있는 음식들과 즐거웠던 기억들.
내 목소리가 무대에 거리에 울려 퍼질 때 느꼈던 그 두근거림.
그 아름다운 순간들.’
짧은 순간 은우는 자신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미안해요. 엄마. 난 당신을 위해 포기할 수 있는 추억이 없어요.
엄마가 내 옆에서 미운 추억이라도 만들어주었으면 달랐을지도 몰라요.
그치만 난 지금 엄마를 보는 게 길거리의 모르는 여자를 보는 것과 다를 게 없거든요.
다만 내가 망설였던 건 아빠 때문에요. 아빠가 엄마를 보면서 슬퍼하는 것 같아서요.
그치만 아빠의 슬픔은 지나갈 테니.
엄마 때문에 내 추억을 포기할 순 없어요.’
은우는 응급실로 향하려던 발걸음을 돌려 다시 수녀님과 친구들에게로 돌아갔다.
***
창현은 응급실에서 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간호사가 창현에게 물었다.
“보호자신가요?”
“아닙니다. 저는 그냥. 아는 사람이었어요. 과거에.”
“환자가 현재 출혈이 너무 많아서 위급한 상황이에요.”
창현은 현경의 몸에 연결된 의료용 혈액을 바라보았다.
현경의 몸에는 여러 가지 줄들이 연결돼 있었다.
간호사가 의사를 다급하게 불렀다.
“선생님, 심박수가 떨어지고 있어요.”
의사가 달려와서 현경의 몸에 전기 충격기를 가져다 댔다.
전기 충격기의 충격과 함께 현경의 몸이 흔들렸다.
“선생님, 계속 떨어집니다.”
다른 응급실의 의사가 소리를 듣고 달려왔다.
두 명의 의사가 현경의 몸에 전기 충격기를 대고 있었다.
전기 충격과 함께 흔들리는 현경의 몸.
- 삐이이이익.
현경의 심장의 멈추었다.
그때 현경의 남편 황인기가 도착했다.
“제가 김현경 보호자입니다만.”
“죄송합니다.”
“네에.”
“여보. 여보.”
황인기가 현경의 시체 위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창현은 말없이 응급실을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