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위문 공연 (3)
은우는 오랜만에 어린이집에 갔다.
“내갸 병언에 병뮨얀 걀 건데 갸치 갈 따람?”
혜린이, 연아, 시우, 준수, 지호가 모두 손을 들었다.
“오, 댜 가치 갸네. 신난댜. 유리 무슨 노래 뷰를까?”
연아가 말했다.
“겹쟁이 토먀토”
준호도 의견을 내놓았다.
“로봇 특굥때.”
혜린이도 목소리를 높였다.
“겨울나랴 2”
은우가 혜린이에게 말했다.
“혜리니 눈나, 노래 제목 좀 져겨줘.”
혜린이가 공책을 꺼내서 삐뚤빼뚤한 글씨로 노래 제목을 적기 시작했다.
지호가 외쳤다.
“우리 션물도 가져가까?”
아이들이 다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쟈 션뮬.”
김마리아 수녀님이 아이들을 보면서 말했다.
“기특한 생각이구나. 그림도 그리고 학도 접으면 어떨까 싶은데. 학을 접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이 있단다. 학은 어려우니까 수녀님이 접고, 너희는 조금 더 쉬운 학알을 접으면 좋을 거 같은데. 명석이가 힘을 낼 수 있도록 말이야.”
김마리아 수녀님이 색종이를 가지고 와서 아이들에게 학알을 접는 법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작은 손으로 종이접기를 따라 했다.
“너무 힘드려.”
준수가 종이접기가 힘든지 몸을 비비 꼬았다.
“내갸 도아주께.”
가장 큰 혜린이가 준수의 종이접기를 도와주었다.
은우도 준수를 응원했다.
“이거 다 져브면 소언이 이루어진대. 아픈 칭규 도아주자.”
준수가 다시 힘을 내서 종이를 접기 시작했다.
김마리아 수녀님이 은우가 만든 학알을 보며 칭찬했다.
“은우가 만든 건 모양이 참 예쁘구나. 은우는 손재주가 좋단 말이야.”
은우는 쑥스러워 하며 생각했다.
‘운동을 했더니 손에 힘이 생겼는지 다른 것들도 잘 되고 있어요. 춤을 배워서 재능을 안 써도 동작 같은 게 기억이 잘 나요.’
은우는 자신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을 느꼈다.
김마리아 수녀님은 학알을 접는 아이들의 옆에서 학을 접으며 말씀하셨다.
“옛날에 수녀님이 어릴 때 천 마리의 학을 접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이 있었단다. 그래서 수녀님은 천 마리의 학을 접었어.”
듣고 있던 연아가 물었다.
“소언이 이러져떼여?”
“소원대로 수녀가 되었지. 그 뒤로도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수만 마리의 학을 접었단다. 살다 보면 누구나 혼자 힘으로는 이루기 힘든 소원이 있으니까 말이야.”
수녀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이들이 다 함께 소리를 질렀다.
“우아. 소언이 이루어져떼. 열씨미 졉쟈.”
아이들은 힘을 내서 학알을 접기 시작했다.
은우는 학알을 접으며 생각했다.
‘명석이의 소원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명석이도 어린이집도 다니고 유치원도 다니면 좋을 텐데.’
***
창현은 강라온 대표와 전화 통화 중이었다.
“은우가 그런 말을 할 줄을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가끔은 저도 놀랄 정도로 자기주장이 강해요.”
“아닙니다. 은우의 순수한 마음은 이해하고 또 그 마음이 참 예쁘지만, 은우가 가수가 되면 그게 공식적인 일정이 될 수도 있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고려해야 하는 거죠.”
“괜찮으시다면 회사를 끼지 않고 저랑 은우가 방문을 하는 건 어떨까 싶은데요. 그렇지 않아도 김마리아 수녀님이 전화를 주셨더라구요. 은우가 어린이집 친구들에게 명석이 이야기를 했나 봐요. 그래서 수녀님도 함께 가 보고 싶으시다고 하더라구요. 명석이를 위해서 기도도 해주고 싶다고 하시고요.”
“아, 그 생각은 미처 못했네요. 수녀님과 친구들이 함께 가는 거라면 공식적인 일정보다 은우가 아버님과 친구들과 함께 방문하는 게 더 좋겠네요. 혹시 간식이나 필요하신 물품이 있으면 돕겠습니다.”
창현이 전화를 끊고 은우에게 말해 주었다.
“은우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빠가 강라온 대표님께 말해서 명석이 병문안은 김마리아 수녀님과 아빠가 함께 가기로 했어. 그러니까 친구들과 같이 편하게 연습하렴.”
은우가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
“아빠 체고.”
은우는 보리에게 가서 말했다.
“보이, 녀도 가치 노래 연습할래?”
“멍멍(나는 가고 싶지만, 거긴 입원 병동이라 아마 강아지가 들어갈 수 없을 거야. 대신 내 마음을 전해 주렴).”
보리가 자신의 집 근처로 가더니 인형을 물고 와서 내려놓았다.
“이게 머야?”
“멍멍(내 애착 인형 문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난감인데. 그 어린 아기가 매일 주사를 맞으니 얼마나 아프겠어. 너투브 찾아봤는데, 보니까 항암치료 아프더라. 마음이 짠했어. 개껌이랑 간식도 주고 싶지만 아마 그건 명석이가 못 먹을 거 같고. 장난감은 명석이도 좋아하지 않을까?)”
은우는 보리의 애착 인형을 보더니 마음이 짠해졌다.
‘보리가 갈 수 없으니 내가 보리의 마음을 전해줘야만 할 것 같아.’
은우는 그리기 책상에 앉아 보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은우는 잠시 고민했다.
‘재능을 불러올까? 그러면 눈앞의 보리가 정말 똑같이 그려질 거 같은데. 아냐, 그러면 보리의 순수한 마음이 덜 전해질 거 같아. 그냥 내 솜씨대로 그려야겠다.’
은우는 크레파스로 삐뚤빼뚤 보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동그란 눈, 동그란 코, 쫑긋 솟은 귀. 빨간 혓바닥. 웃는 입매. 도톰한 왕발. 풍성한 꼬리.’
은우가 크레파스를 내려놓으며 외쳤다.
“안셩!”
보리가 은우가 그린 그림을 보았다.
“멍멍(이게 나야? 뭔가 나랑 닮은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오묘하다. 근데 내가 이렇게 뚱뚱해?)”
은우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다시 살펴보았다.
“녀량 똑갸튼데.”
“멍멍(아닌 거 같지만 내 손으로 그릴 수 없으니 그냥 이걸로 하자. 여기 내 발바닥 찍고 싶은데 물감 좀 가져다줄래?)”
은우가 아기용 물감을 가져왔다.
보리가 자신의 앞발을 물감에 찍어서 은우가 그린 그림 옆에 찍었다.
“멍멍(아쉽다. 그 많은 위로의 말을 발 도장 하나에 담아야 한다니. 잠깐만.)”
보리는 무언가 생각이 난 듯 발바닥에 물감을 더 찍더니 발 도장을 더 찍었다.
보리가 만들어낸 모양에 은우가 감탄하며 말했다.
“와, 하트네.”
보리가 뿌듯해하며 말했다.
“멍멍(이걸로 내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아까보단 나은 거 같아.)”
“근데 보이야. 야픈 아기한테 진짜 필요햔 재능이 이쓸까?”
“멍멍(재능??)”
“냔 재능을 불러올 쑤 이쓰니꺄. 필요한 게 이쓰면 해 볼꺄 시퍼셔.”
“멍멍(좋은 생각이다. 뭐가 필요할까? 생각을 해 보자.)”
보리는 방안을 돌아다니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은우도 턱을 괸 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파드와였을 때를 생각해 보면 그때 매일 배가 고팠을 때 그 배고픔을 이겨낼 수 있게 해 주었던 것은 마음속으로 부르던 노래였어. 너무 배가 고파 소리 내어 노래를 부를 순 없었지만,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멜로디들이 나에게 희망을 주었었지.
맞다. 그래. 희망 그거야!’
은우가 소리쳤다.
“히먕. 명서기에게 피료한 거슨 히먕이야.”
보리가 맞장구쳤다.
“멍멍(그래, 희망)”
은우가 동화책을 꺼내 희망의 신을 찾기 시작했다.
“보이야, 너도 히먕의 시늘 차자봐.”
10분 뒤, 은우가 말했다.
“아무리 차자도 업떠.”
“멍멍(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와 희망의 신은 없나 보다.)”
“이쓸 거야. 꼭 피료한 게 히먕인데 업쓸리갸 엄떠.”
“멍멍(아, 그렇지. 아테나한테 물어봐. 아테나는 지혜의 여신이니까 세상 모든 걸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은우가 보리를 안아서 입을 맞추었다.
“이보이. 똑또기.”
은우는 정신을 집중하고 지혜의 신 아테나를 떠올렸다.
이윽고 머리에 쓴 관에서 올리브를 따 먹으며 아테나가 나타났다.
“웬일이지? 은우야? 또 무슨 볼일이 있나? 내가 너에게 화술도 주고 암기력도 주었는데 말이야.”
“궁금한 게 생겨셔요. 혹씨 히먕의 시늘 아세요?”
“희망의 신이라? 그건 왜?”
“칭규 때무네 꼭 차자야 하는데 아무리 채글 차자도 안 나와서요. 아테나 여신님은 세상에서 갸장 똑똑하시니까 알고 이쓸 거 갸탸서요.”
아테나는 거만하면서도 흡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모르는 게 어딨겠어? 난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여신이니까. 희망의 신 루딘은 절망의 신 루나와 샴쌍둥이지. 둘은 늘 등을 맞붙인 채 서로의 존재를 증오해. 어딜 가든 함께여야만 하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루딘과 루나의 얼굴을 헷갈리곤 했지. 아마 기록이 없는 이유는 그걸 거야.”
“히먕의 신과 절먕의 신이 쌍둥이라구요?”
“그래. 신들의 세계에서 드문 쌍둥이지. 그것도 등이 맞붙어서 화장실도 함께 가야만 하는 샴쌍둥이. 게다가 루딘과 루나는 지독하게 못생긴 외모로도 유명해. 그 둘은 태어났을 때부터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거든. 그래서 외모 콤플렉스가 상당하지.”
“슬펐겠떠요.”
“그치만 루딘과 루나 앞에선 외모 얘기는 되도록 하지 말렴. 그럼 아마 다신 그들을 만날 수 없을 테니까. 난 바빠서 이만 간다. 친구 챙기는 순진한 꼬마야.”
은우는 아테나가 사라지자 희망의 신 루딘을 부르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노인의 얼굴을 한, 절망의 신과 등이 붙어 있는 쌍둥이인 희망의 신 루딘이여.
제 앞에 나타나 주세요.’
이윽고 주름진 얼굴의 루딘이 은우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아이여, 왜 나를 불렀나?”
은우는 루딘의 쉰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목소리도 할아버지 같잖아.’
곧이어 루딘의 등 뒤에서 루나가 대답했다.
“인간의 아이여, 루딘이 아니라 나를 찾은 것은 아니고? 깔깔깔깔.”
루나가 사악하게 웃었다.
은우는 루나의 아름답고 간드러지는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루딘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 정도로 쉬어 있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인데 루나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잘 들리잖아. 너무 매혹적인 목소리야. 내가 예상했던 희망의 모습과 절망의 모습이 정반대인걸.’
은우는 마음을 가다듬고 말했다.
“내 칭규가 먀니 아파서 히먕의 시느 재능이 피료해. 그래서 나에게 재능을 빌려줄 슈 인나 하고. 꼭 조은 이레먄 쓸께.”
루딘이 대답했다.
“왜 인간들은 모든 걸 손쉽게 얻으려 하지? 내가 없어도 희망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지쳤다. 인간들이 나를 탓하는 것에. 어쩌면 인간들이 원하는 건 내가 아니라 내 동생 루나일지도.”
“아니야. 우리에겐 피료햔 건 히먕이야. 인간은 시니 아니랴서 쉽게 졀먕하는 거 뿌니야. 내 칭구한텐 히먕이 피료해. 고쟉 네 사린데 계속 주샤만 맏꼬 병언 바끌 나가본 적또 엄꼬.”
은우는 명석이를 걱정하며 눈물을 흘렸다.
루딘은 은우의 눈물에 마음이 약해졌다.
“너는 정말 너의 친구를 걱정하는 것 같구나. 아기의 아픔이란 모든 사람들의 동정을 받을 만하지. 내 특별히 너에게 나의 재능을 빌려주겠다.
다시 인간을 믿지 않으려 했는데 이번이 마지막이겠군.”
[희망의 신 루딘의 긍정의 선택 레벨 1 0/1000
당신의 노래를 들은 사람은 주어진 상황에서 긍정을 선택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은우가 희망의 신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거마어. 실망시키지 아늘게.”
***
현경은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겨울나라 2의 노래를 내 아들이 불렀다는 거지? 디즈니면 세계적으로 수출되는 영화인데 돈이 얼마나 들어오려나. 아들이 OST를 불렀으니 엄마가 영화를 봐야지.’
현경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위의 건물에서 오만 원짜리 지폐가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다.
‘저게 뭐지? 진짜 돈인가?’
현경은 자신의 눈앞에 떨어진 돈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것은 틀림없는 오만 원짜리 지폐였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횡단보도 앞 고층 빌딩의 옥상에서 누군가 돈을 던지고 있었다.
현경은 떨어진 돈을 줍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게 얼마야? 빨리 주워야겠다.’
돈에 정신이 팔린 현경은 자신의 앞으로 덤프트럭이 오는 것도 살피지 못했다.
- 끼이이익.
차의 급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현경은 차에 부딪혀 도로 위로 쓰러졌다.
현경의 옆에는 현경이 미처 줍지 못한 오만 원짜리 지폐가 놓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