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64화 (64/257)
  • 64화. 위문 공연 (2)

    은우가 주원이에게 가서 말했다.

    “거마어. 주언아. 네 덕부네 공연 잘해떠. 이거 내갸 칭구들 나눠주려고 가져온 건데. 하냐 골라뱌.”

    주원이가 은우에게 말했다.

    “티비 잘 뱌떠. 내가 준 스티커 손등에 하고 이떠서 뱌로 알아바떠. 니갸 하니꺄 더 머찌더라. 와 로봇이 이러케 마나.”

    주원이가 로봇 상자 앞에 앉아서 로봇을 고르기 시작했다.

    은우가 승현이, 민재, 하율이, 현우에게 말했다.

    “마메 드는 거 골랴뱌. 여기 스티커도 이떠.”

    아이들은 신이 나서 스티커와 로봇을 고르기 시작했다.

    “너무 고마워.”

    7살 현우가 은우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현우는 태권도장 유치부에서 가장 나이가 많았다.

    “횬아도 고르세요. 어서. 횬 태건도 잘해서 너무 머디떠요.”

    현우도 신이 나서 스티커와 로봇을 골랐다.

    아이들이 은우에게 말했다.

    “네가 산타 같아.”

    “마자. 마자. 은우가 산타야.”

    ***

    “멍멍(은우야, 이 편지 좀 읽어봐. 내가 먼저 읽어봤는데 이 편지는 네가 꼭 읽어봐야 할 거 같아.)”

    “뮤슨 이리기에 냔리야?”

    “멍멍(네 팬이라는데, 아이가 쓴 편지랑 아빠가 쓴 편지가 함께 있어. 아이가 쓴 건 그림 편지고 아기 아빠가 쓴 편지는 손편지야. 근데 이 아이 아픈 거 같아.)”

    “아프댜고?”

    은우는 배가 고파 잘 아프던 자신의 동생 케미기샤가 떠올랐다.

    “일겨뱌 어셔.”

    “멍멍(안녕하세요. 은우 군. 은우 군과 동갑인 저의 아들 명석이는 생후 7개월에 소아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우리 명석이는 지금까지 병원에서만 살아왔어요. 그 흔한 놀이터도 가 본 적이 없고 어린이집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명석이가 신기하게 티비에서 나오는 은우 군을 볼 때는 웃기 시작했습니다. 명석이는 극장에 갈 수 없지만, 태블릿으로 은우 군이 나오는 위대한 목소리도 보고 드라마도 보았어요. 며칠 전 연기대상 축하공연 때는 명석이가 은우 군이 추는 춤을 따라서 추더라구요. 그날은 오랜만에 명석이도, 저와 제 아내도 웃었습니다.

    명석이의 소원은 은우 군을 실제로 만나보는 것입니다. 은우 군은 바쁘고 스케줄도 많겠지요. 이뤄지기 힘든 소원일 거라고 생각은 합니다. 다만 아빠 된 마음에 명석이의 마음을 은우 군에게 전해 주고 싶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동봉한 그림엽서는 명석이가 그린 것입니다. 명석이는 아직 한글로는 자기 이름밖에 쓸 줄 몰라요. 그래서 은우 군이 보고 싶을 때마다 이렇게 그림엽서를 그리고는 한답니다.)”

    루카스는 편지를 다 읽고 눈가가 촉촉해져 있었다.

    “멍멍(나 강아지가 되더니 감정이 풍부해졌나 봐. 눈물이 나네. 자꾸.)”

    은우도 아픈 친구 걱정에 눈물이 났다.

    “길똥이 횬아에게 말해봐야겓땨.”

    은우는 명석이가 그렸다는 그림엽서를 바라보았다.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 속에는 텔레비전 속에서 웃고 있는 남자아이의 모습이 있었다.

    ‘어깨도 네모났고 얼굴도 네모구나. 마치 네모 나라 같은 그림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밝게 웃는 붉은 입모양만은 행복해 보여.

    이 그림을 그리면서 나를 생각했다는 거지?

    마음이 뭉클하다. 7개월부터 아팠다니 얼마나 힘이 들까?

    명석이에게 가서 내가 친구가 돼 주고 싶어.’

    ***

    ‘입맛도 없는데 배달음식이나 시켜 먹을까?’

    현경은 배달 어플을 켰다.

    ‘배고픈데 떡볶이나 주문해 볼까? 선선 떡볶이 여긴 소스가 너무 달아.

    엽곡 떡볶이. 여긴 너무 맵기만 하고.

    새로운 맛 없나?

    열정 떡볶이 이건 뭐지? 마침 이벤트 행사 중이라서 배달비가 공짜라고?

    여기서 한번 시켜볼까?’

    현경은 열정 떡볶이를 누르다가 휴대폰을 놓칠 뻔했다.

    ‘이건 이창현이잖아. 이창현이 여기 왜 있지?’

    현경은 열정 떡볶이 이벤트 광고에 커다랗게 떠 있는 창현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이창현이 열정 떡볶이 사장이라고? 이게 말이 돼? 좁은 원룸에서 비전도 없이 살던 이창현이?’

    현경은 어이가 없었다.

    ‘가만있어 보자. 요즘은 검색을 하면 다 알 수 있으니까.’

    현경은 초록창을 켜고 검색을 했다.

    - 열정 떡볶이, 이창현.

    그러자 가장 상단에 하나의 기사가 검색되었다. 현경은 링크를 타고 기사를 읽기 시작했다.

    - 열정 떡볶이를 시작으로 열정 체인점을 만들기 시작한 이창현 대표(30세)와의 인터뷰.

    “원룸에서 은우와 함께 6개월을 보냈는데 쌀을 살 돈도 분유 산 돈도 없더라구요.

    쌀 살 돈이 없는 건 괜찮은데 분유 살 돈이 없으면 아기가 배고프잖아요.

    그때부터 친구와 함께 도깨비시장에서 중고물품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저를 눈여겨보신 순대국밥집 주인 할머니께서 저에게 음식 장사 안 해 보겠냐고 하시더라구요.

    곰곰이 생각하다 평소 좋아하던 떡볶이 가게를 시작했습니다.

    늘 이게 마지막이다라는 각오로 살았어요. 실제로 제가 무너지면 도와줄 사람이 없었거든요.

    부모님도 안 계셨고. 무엇보다 저에게는 저만 바라보는 은우가 있었어요.

    은우에게 좋은 아빠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여기까지 뛰어왔습니다.”

    초라했던 출발이지만, 어느새 그는 열정 떡볶이 본점과 분점 1, 2호, 열정 커피숍, 열정 햄버거, 열정 아이스크림까지 거느린 대표가 되었다. 작년에는 연 매출 50억을 달성하였다.

    “숫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음식이 사람들에게 행복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떡볶이나 커피, 햄버거, 아이스크림이 모두 동일합니다. 저희 가게에서 맛있게 드시고 행복한 추억을 만드셨으면 좋겠어요. 가족, 연인, 친구. 저희 가게는 손님들의 행복과 함께 성장한다고 믿습니다.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음식뿐 아니라 다양한 서비스도 제공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이창현 대표는 전국 노래 경연대회에서 그의 아들 이은우 군과 함께 최우수상을 받았을 정도로 뛰어난 노래 실력으로도 유명하다. 그에게 노래와 관련된 질문을 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아쉽기만 하다.

    “한때 가수를 꿈꾸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은우를 보니 알겠더라구요. 노래는 타고나야 하는 재능이라는 거. 저는 음식을 통해 행복을 파는 일에 전념하려고 합니다. 대신 제 아들이 저의 꿈을 이뤄주고 있어서 행복합니다.”

    밝은 웃음을 짓는 이창현 대표. 그의 미래가 앞으로도 밝기를 응원해 본다.

    기사를 다 읽은 뒤 현경은 생각했다.

    ‘연 매출 50억이라고?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 찌질이 이창현이 이렇게 어마어마한 부자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그리고 은우라고? 그 아기, 설마 내가 낳은 그 아기가 은우라는 이름을 갖게 된 건가? 설마 며칠 전에 슈퍼보이즈 공연에서 보았던 그 아기?’

    현경은 다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 전국 노래 경연대회, 이은우

    그러자 은우와 창현이 함께 전국 노래 경연대회에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 떴다.

    ‘맞네. 어제 그 아기가 내가 낳은 그 아기라는 거지? 내 아들이 저렇게 유명한 사람이 됐어. 등잔 밑이 어둡다고 어쩜 이걸 여태까지 몰랐지?’

    현경은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

    강라온은 이철과 함께 은우의 연기대상 축하공연을 모니터하는 중이었다.

    “철아, 어때?”

    “좋은데요. 춤도 좋고. 무엇보다 관객 반응이 좋네요. 역시 연예인은 비주얼인가. 춤도 춤인데. 내가 아무리 춤을 잘 춰도 저 반응은 안 나올 거 같은데.”

    “그치? 관객 반응 무시할 수 없어. 저 까꿍에 쓰러지는 팬들을 봐. 슈퍼보이즈 팬들 사이에서도 은우 이름이 돌고 있는 모양이야. 너무 귀엽다고.”

    “연습할 때 저도 저 까꿍 포즈 봤는데, 저는 저 포즈가 저렇게 인기 있을 줄 상상도 못 했어요. 사실 누가 무대에서 까꿍할 생각을 해요? 부끄럽게.”

    “아기가 아니면, 은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생각이지. 바로 그게 은우의 차별점이라니까. 처음엔 아기가 음반을 내는 것의 불리한 점만 생각했는데 은우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 오히려 어리기 때문에 어필할 수 있는 점이 다른 거 같아. 그리고 아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

    “그쵸. 광고업계에서도 3B라는 속설이 있을 정도라고 하더라구요. 아기(BABY), 미녀(BEAUTY), 동물(BEAST)이 나오면 무조건 흥행을 한다고요. 귀여우니까 다들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 귀엽지. 어른은 절대 그만큼 귀여울 수가 없다고. 그래서 우리 은우가 충분히 데뷔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춤도 어느 정도는 궤도에 올랐어요. 자기 곡 정도는 무리 없이 소화할 거예요. 그리고 은우는 뭔가 타고난 감각 같은 게 있어요. 이번에 까꿍 안무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죠.”

    “그치. 그 감각. 연예인에게는 꼭 필요한 그 감각 말이야. 노래를 부르든, 드라마를 찍든, 예능에 나가든 사실 그 감각이 있어야 하는 거거든. 근데 그 감각은 가르칠 수가 없어.”

    “맞아요. 저도 그 감각만 있었어도 안무가 안 하고 연예인을 했을 텐데.”

    “넌 외모도 좀 모자라잖아.”

    “대표님이 그런 말씀하시면 안 되죠? 대표님도 외모 때문에 처음엔 얼굴 없는 가수셨잖아요.”

    “그래, 우리 둘 다 외모는 말하지 말자. 난 다시 태어나면 은우 얼굴로 태어나고 싶다. 그 얼굴로 하루만 살아봤으면.”

    “저도요.”

    “슬슬 음반 준비를 해야 하니 곡을 골라야겠어. 아는 작곡가들에게 은우에게 어울릴 곡이 있는지 물어봐야겠다.”

    “곡 들어오면 바로 알려주세요. 안무 짜야 하니까.”

    “그래, 그리고 컨셉도 잡아야지. 음반 전체 컨셉도 중요하니까.”

    ***

    “횬아, 져 공연하러 걀 거예요.”

    길동은 명석의 편지를 든 채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분명 은우의 마음은 착하고 예쁜 게 맞긴 한데. 현실적으로 은우가 공연을 하게 되면 그걸 누군가가 찍을 수도 있고, 또 그랬다가 나쁜 평가를 받거나 흑역사로 남게 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은우 모든 스케줄은 강라온 대표님께 보고하기로 돼 있는데 대표님이 된다고 하실까?’

    길동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은우야, 그러니까 형아가 말은 해 보겠는데, 대표님께. 이게 꼭 된다고 약속을 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칭규를 만나려 가는 거라니까요.”

    “그래,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너의 팬인 친구지.”

    길동은 생각했다.

    ‘은우도 은근히 고집이 세다니까. 자기가 하고 싶거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만약 은우가 가서 노래를 부르게 된다면 곡 선정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안무팀이랑 안무도 맞춰야 하나. 병원에 안무팀이 갈 수 있을까. 병원 안에서 공연하려면 어디다 물어봐야 하지.’

    은우가 길동의 휴대폰을 가져가더니 말했다.

    “버스비. 걍랴욘.”

    길동의 휴대폰이 강라온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길동은 깜짝 놀랐다.

    ‘확실히 요즘 애들은 빠르구나. 나도 안 쓰는 음성인식을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걸어버리네.’

    전화기 너머에서 강라온이 대답했다.

    “길동. 무슨 일이야?”

    “져 길똥이 횬야 아닌데요. 누귤까요?”

    수화기 너머에서 강라온이 은우를 알아보고 웃었다.

    “누구지? 누구지? 모르겠네.”

    “공룡변신 로봇임니댜.”

    “아, 은우구나. 은우야, 밥은 먹었어?”

    “대표님. 져 햐고 시픈 거 이떠요.”

    “그래 은우야 하고 싶은 거 말하면 길동이 형아가 다 해 줄 거야.”

    “대표님, 져 칭구 병문얀 갈 거예요. 근데 길똥이 횬야 말로는 물러뱌야 댄대요.”

    길동이 답답해서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은우가 팬레터를 받은 모양인데요. 은우 팬이 은우와 같은 나이인데 암에 걸렸나 봐요. 은우가 그 친구한테 위문 공연을 가고 싶다고 하네요.”

    그 말을 들은 강라온은 생각이 많아졌다.

    ‘은우의 순수한 마음으로는 분명 가고 싶겠지. 그런데 공연으로 간다면 가서 부를 노래도 골라야 할 거고, 병원에서 그런 공연을 허락해줄지도 알 수 없고.

    아무래도 좀 더 생각해 봐야 할 거 같은데.’

    강라온이 대답했다.

    “은우야, 그건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닌 거 같아.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천천히 결정해 보도록 하자.”

    은우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갈 거예요. 칭규는 힘들 때 함께 이떠 쥬는 거라고 해떠요. 슈녀님이요.”

    강라온은 처음 듣는 은우의 울먹이는 목소리에 당황했다.

    “은우야. 그래. 그럼 되도록 갈 수 있도록 방법을 연구해 볼게.”

    은우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대표님, 제가 뮤슨 노래 뷰를지 생각해 보께요. 그리고 제 칭규들 중에 가치 갈 칭구가 인는지 아라보께요.”

    “그래, 은우야. 열심히 생각해 봐.”

    강라온은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

    ‘너무 착하고 너무 예쁜 우리 은우. 니 맘처럼 세상이 다 착하고 곱기만 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현실은 한 달에도 몇백 개의 곡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중에 대중에게 기억되는 곡은 몇 곡 되지 않고.

    이미지 관리 잘못했다가 오랫동안 쌓아놓은 명성이 사라지기도 하고.

    너에게 그 모든 것들을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은우야 나는 니가 걱정돼서 그래.

    우리 은우 가진 재능을 잘 펼칠 수 있도록 내가 잘 도와줘야 하는데 말이야.

    이번에도 아무 일 없도록 내가 잘 준비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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