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위문 공연 (1)
스타일리스트 미선은 뉴스를 보면서 어안이 벙벙했다.
“패션이 돋보인 슈퍼보이즈와 은우 군의 연기대상 축하공연.
연기대상 축하공연에서 슈퍼보이즈와 이은우 군이 함께 러브러브를 불렀습니다. 이날 은우 군의 패션은 시청자들의 뉴트로 감성을 자극했습니다.
은우 군이 손등에 붙이고 나온 공룡변신 로봇 스티커와 사탕 반지는 어른 시청자들에게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김모 씨(직장인, 42세) : 은우를 보니까 제 어린 시절이 떠오르더라구요. 제가 사탕 반지를 참 좋아했었거든요. 그 반지가 있으면 하루가 행복했었다니까요.
이모 씨(대학원생, 30세) : 어렸을 때 스티커를 필통에다 붙이고 공책에도 붙이고 제가 좋아하는 곳에는 다 붙였다니까요. 좋아하는 스티커가 하나 나오면 얼마나 행복하던지. 제가 그 방송 본 다음 날 바로 풍선껌도 샀다니까요. 스티커 붙이려고요.
정모 씨(학교 앞 문구점 운영, 58세) : 어젠가부터 갑자기 어른들이 와서 사탕 반지를 찾더라고. 그 반지는 초등학교 애들이나 하는 건데 말이야. 티비에서 봤다나? 정장 입은 아저씨가 오더니 사탕 반지를 10개나 사 가기도 했다니까. 그래서 내가 아들 줄 거유? 하고 물었더니 아무 말도 안 하고 빙그레 웃기만 하더라고.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 대체.
“대형마트에서도 사탕 반지를 입점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 황모 씨(대형마트 영업팀, 37세) : 저희 마트에서는 소비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식품코너에 뉴트로 코너를 신설하여 사탕 반지를 입점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풍선껌의 위치도 계산대 옆으로 옮겨 판매 증가를 촉진할 계획입니다.
“가장 신이 난 것은 공룡변신 로봇의 제작사인 공실업. 은우가 손등에 붙였던 스티커도, 노래하면서 입었던 셔츠에 그려져 있던 그림도 모두 공실업의 공룡변신 로봇입니다.”
- 함모 씨(공실업 컨텐츠 기획 부장, 49세) : 공룡변신 로봇이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희 공룡변신 로봇이 국내의 소비자들을 넘어서서 해외에 있는 소비자들에게도 다양한 루트를 통해 소개될 수 있도록 이번 기회를 빌려 노력할 계획입니다.
미선은 이 모든 사태가 놀라웠다.
‘코디가 안티냐? 라는 말도 들을 각오를 한 거였는데. 갑자기 유행이 돼버렸잖아. 사탕 반지랑 풍선껌 스티커가. 와, 은우 대단하네.’
그때 미선의 휴대폰이 울렸다. 방송을 본 다른 스타일리스트 친구들이 캐톡으로 연락을 해온 것이었다.
- 은우 너무 귀엽더라. 나 그날 축하공연 보면서 울었잖아. 초커 진짜 귀엽더라. 초커가 그렇게 귀여울 수 있다니. 처음 알았어.
- 은우 스타일리스트 됐다며? 좋겠다. 귀여운 은우를 매일 보고. 은우는 팬티만 입고 있어도 귀여울걸. 아무거나 입혀도 되니 얼마나 좋아?
- 난 스타일리스트 되고 나서 한 번도 신문에 실린 적 없었는데 넌 한 번 만에 바로 실리는구나. 부럽다.
미선은 친구들의 캐톡을 받으며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그러게. 평생 쓸 운을 다 당겨쓴 거 같기도 해. 내가 은우 스타일리스트가 되다니. 그리고 은우가 했던 코디. 내가 어떤 옷을 골랐더라도 아마 그 옷보다 잘 어울릴 순 없었을 거야.’
미선은 그날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는 확실을 가졌다.
‘앞으로도 은우가 입고 싶다고 하는 옷이 있으면 그 옷을 입게 해 줄 거야.’
***
공실업의 컨텐츠 기획부장 함익태는 부장 회의에 참가해 있었다.
함익태가 말했다.
“이번 분기 우리 회사의 매출은 지난 분기보다 5프로 상승하였습니다. 매출 1위는 공룡변신 로봇 시리즈이고 매출 2위는 루루네 시리즈입니다.
공룡변신 로봇 시리즈의 매출을 보시면 성장세이긴 하지만 작년도 그래프에 비해서는 완만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회사에서 현재 만들고 있는 곤충로봇 시리즈가 있긴 하지만, 시리즈가 완성되어 궤도에 오르기까진 공룡변신 로봇 시리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에 저희 컨텐츠 기획 부서는 새로운 cf 모델의 기용을 통해 돌파구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재무팀 부장이 말했다.
“어떤 모델을 쓸진 모르겠지만,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완구는 모델 채용의 효과가 미미한 분야 중의 하나가 아니던가요?”
함익태가 모니터에 영상을 하나 띄웠다.
“연기대상 시상식과 축하공연을 편집한 영상입니다. 화면에 등장한 이은우 군은 이번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아역상을 수상하였으며 위대한 목소리 영화에도 출연하였고, 겨울나라 2의 OST까지 부른 월드 스타입니다.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손등의 스티커와 러브러브를 부를 때 입었던 셔츠 위의 공룡변신 로봇을 통해 은우 군이 저희 공룡변신 로봇의 팬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은우 군이 손등에 붙이고 나온 스티커 덕분에 풍선껌 매출이 방송 이후 15프로 증가했습니다.
나눠 드린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재밌는 것은 20-40대 구매층이 급격하게 상승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놀라운 현상이죠.
저희 컨텐츠 기획팀은 은우 군을 새로운 모델로 기용하여 우리 공룡변신 로봇의 구매층의 다각화와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을 꾀하자고 건의하는 바입니다.”
법무팀 부장이 말했다.
“그런데 저 은우라는 아기가 입었다는 옷, 우리 회사의 제품 맞나요? 저작권법 위반 아닌가요?”
함익태가 웃으며 말했다.
“네, 저도 그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기와 그 부모들이 주 구매층인 우리 회사가 저작권법 위반으로 은우 군에게 소송을 해서 얻는 이익보다는 모델로 기용해서 얻는 효과가 훨씬 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법무팀 부장이 씁쓸하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영업 1팀 부장이 말했다.
“뭐 말씀하신 것에는 일정 부분 동의를 합니다만, 20-40대의 구매층이 늘어난 것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닐까 하는데요.”
재무팀 부장도 맞장구쳤다.
“세계 시장 공략도 지나치게 과장이 된 거 아닙니까? 우리나라에서나 은우가 세계적인 스타지. 외국인들이 저 아기를 알기나 하겠어요?”
그때 사장이 말했다.
“영업 1팀 부장님과 재무팀 부장님의 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엔 전엔 20-40대의 구매층이 생겨나는 것 자체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어요. 특히 40대 구매층은 원 플러스 원 이벤트라도 하면 모를까, 좀처럼 구매를 하지 않는 콘크리트 층이죠. 실용적인 나이이니까요. 저는 그들을 움직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룡변신 로봇의 경우, 우리 공실업이 만들어낸 캐릭터 중 가장 크게 성공을 했지만 이미 내수시장이 포화상태라는 의견은 동의하는 바입니다. 세계 시장 공략은 꼭 필요한 선택지예요. 성공할지 여부는 알 수 없죠. 하지만 우리 회사는 늘 미래를 보고 투자해 왔습니다. 5년 전 공룡변신 로봇 캐릭터를 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죠.
저는 은우 군의 모델 기용을 찬성하는 바입니다.”
***
길동은 함익태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이은우 군 매니저 김길동 씨 휴대폰인가요? 저는 공실업의 컨텐츠 기획부장 함익태라고 합니다. 은우 군을 저희 회사의 모델로 기용하고 싶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공실업요? 그 공룡변신 로봇의?”
길동은 함익태의 전화를 받고 매우 기뻤다.
‘은우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인데 너무 좋아하겠다, 은우가. 나도 은우 덕분에 차에서 하도 봐서 이제 외울 것만 같아. 그 만화.
변신 모여라! 이얏! 합체.
우리는 공룡변신 로봇.
인류를 구하기 위해 백악기로부터 왔다.’
함익태가 말을 이었다.
“콘티를 보내드릴 테니 보시고 결정하셔도 좋습니다만. 저희 회사에서는 은우 군을 꼭 모델로 기용하고 싶습니다. 참, 이와는 별개로 이번에 저희 사장님이 은우 군 덕분에 회사 매출이 늘었다면서 은우에게 공룡변신 로봇 풍선껌 스티커 500장과 공룡변신 로봇 100개, 루루 시리즈 50개를 감사의 마음을 담아 드리려고 합니다.”
“네에?”
길동은 너무나도 기뻤다.
‘은우가 스티커 모은다고 해서 매일 스티커 때문에 풍선껌을 샀었는데 이제 안 사도 되겠네. 이제 풍선껌의 복숭아향을 맡기만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는데. 너무 좋다.’
길동이 큰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잘 쓰겠습니다. 사장님께 꼭 감사드린다는 말씀 전해 주세요.”
길동은 어서 은우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며칠 후 은우의 집으로 택배가 도착했다.
“택배 아저씨, 걈샤함니댜.”
은우는 집 앞에 가득 쌓인 택배 상자에 너무나도 신이 났다.
길동이 택배 상자를 보며 말했다.
“너무 많으니 회사에 가져다 둬야 하려나. 저걸 집에 전부 보관할 수 있으려나?”
은우가 길동의 바지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횬아. 할 먀리 이떠요.”
요즘 들어 은우는 귓속말하는 것에 재미를 들려서 꼭 비밀이야기라며 길동의 귀에 대고 이야기하는 버릇이 생겼다.
길동이 고개를 숙여 은우의 키에 맞추자 은우가 길동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횬아, 쟝난걈 칭구드레게 나너주교 시퍼요. 어린이집 칭구드리랑 태건도 칭구드리랑요.”
길동은 순간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난 저 나이 때 안 그랬던 거 같은데. 좋아하는 고기가 나오면 욕심에 잔뜩 먹고 배탈 났다고 엄마가 그러셨지. 다 먹지도 못하면서 음식 숨겨놨다 상해서 엄마한테 맞기도 하고. 은우는 왜 이렇게 착하지?’
길동이 은우를 껴안으며 말했다.
“은우, 우리 천사.”
은우가 말했다.
“횬아, 숨 마켜요. 샬샬. 아 샬샬.”
길동이 은우를 놓으며 말했다.
“미안해. 형아가 가끔 힘 조절을 못 하나 봐.”
“갠차나요. 횬아. 우리 태건도장부텨 가요.”
길동은 장난감을 잔뜩 싣고 은우를 태우고 태권도장으로 향했다.
태권도장에 도착하자 사범이 은우를 보고 말했다.
“은우야. 연말 시상식 공연 잘 봤어. 너무 멋지던데.”
사범이 은우의 까꿍 포즈를 흉내 내었다.
순간, 길동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 터지고 말았다.
“풉.”
순간, 길동은 어색해진 분위기를 눈치챘다.
‘앗, 사범님은 은우를 생각해서 한 포즈일 텐데 내가 실수를 했나. 이 위기를 어떻게 모면하지.’
길동이 갑자기 등을 긁기 시작했다.
“아, 어디 모기가 있나. 갑자기 가렵네.”
“은우가 해야 귀여운데 덩치 큰 제가 까꿍 포즈를 해서 당황스러웠죠? 죄송해요. 매니저님.”
“아닙니다. 저야 감사하죠. 제가 해도 이상할 걸요. 그럼, 공평하게 저도 한 번 하겠습니다. 까꿍.”
길동이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가 열면서 방긋 웃는 까꿍 포즈를 했다.
“푸하하하하하.”
사범이 길동을 보고 마구 웃기 시작했다.
“아, 이런 느낌이었군요. 너무 웃기네요. 밖에 나가선 하면 안 되겠네요.”
“푸하하하하하하. 같이 웃으니 좋네요, 사범님.”
“그런데 매니저님 그건 다 뭔가요?”
“아, 이거 은우가 공룡변신 로봇 회사에서 cf 모델로 기용되면서 받은 선물이에요. 은우가 친구들 선물로 주고 싶다고 해서 가져왔어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겠네요. 그렇지 않아도 매일 공룡변신 로봇 놀이만 하는데 말이에요.”
“그쵸, 그 만화 저도 보는데, 정말 재밌긴 해요. 이젠 너무 많이 봐서 외울 것 같지만.”
“저도 태권도장 애들 때문에 멘트는 전부 외워요. 근데 그 회사 참 생각 잘했네요. 은우처럼 좋은 모델이 어디에 있겠어요? 은우가 평소에도 공룡변신 로봇 팬이기도 하고 말이에요.”
“그쵸. 은우가 광고 찍으면서 많이 신나 할 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기대 중이에요. 촬영 날을.”
“참, 상자가 많아 보이는데 제가 도와드릴게요. 함께 옮깁시다.”
사범님과 길동이 장난감 상자를 옮기는 동안 은우는 친구들을 만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