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연말 시상식 (6)
노래는 어느덧 킬링파트로 접어들었다.
“기분이 좋아. 기분이 좋아.
너무 신나는 날.
나이스한 걸
예쁜 걸
도도한 걸
작고 귀여운 걸
소중한 걸”
슈퍼 보이즈와 은우의 합동 안무.
신이 난 듯한 걸음걸이와 손으로 어깨, 가슴, 무릎을 터는 동작을 통해 봄날의 행복함을 표현했다.
한 줄로 선 슈퍼보이즈와 은우가 야심 차게 웃고 있었다.
무대 아래의 슈퍼 보이즈 팬들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와, 킬링파트 안무다. 개별 안무 동작 너무 기대돼.”
리더인 태원이 도도한 표정을 짓자, 두 번째로 서 있던 은우가 양손으로 눈을 가렸다가 여는 까꿍 포즈를 했다.
순간, 무대 아래 슈퍼보이즈 팬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저거 뭐지? 되게 귀엽다.”
“막내 태윤이의 볼 찌르기 포즈에 필적할 만한데.”
“와, 잔망미 쩔어.”
“손등 위 스티커에다 초크한 것도 그렇고 저 은우라는 아기. 정말 귀엽다.”
“우리 슈퍼보이즈가 될성부른 떡잎을 알아본 거겠지. 근데 저 아기 노래도 잘하는 거 같아.”
“춤도 생각보다 잘 춰서 놀랐어. 저렇게 작은데 동작을 완벽하게 하더라고. 쟤 그 놀라운 사람 찾는 ‘스털킹’이란 프로 나가야 할 거 같지 않아?”
“그러니까 ‘세상에 그런 일이’에도 나가야 할 것 같아.”
메인 래퍼인 지석은 터프한 표정을 지었다. 메인 댄서 지훈은 티셔츠를 들어 올렸다 내리는 동작으로 복근을 노출했다. 성수는 힘차게 주먹을 들어 올렸다. 막내 태윤은 귀여운 표정으로 볼을 찔렀다.
마지막 엔딩 포즈.
슈퍼보이즈와 은우는 다 함께 까꿍을 했다.
슈퍼 보이즈의 팬들이 열광했다.
“악, 미쳤어. 너무 귀여워. 방금 단체로 까꿍한 거 봤어?”
“안무 너무 창의적이야. 대체 누가 짠 거지?”
“나 오늘 설레서 밤잠 못 자겠다.”
“난 집에 가서 저 까꿍 영상 무한 반복할 테야.”
은우의 팬들 역시 카페에서 난리가 났다.
- 방청권 너무 얻기가 힘들어서 눈앞에서 못 본 게 너무 슬프네요.
- 그러니까요. 슈퍼보이즈 팬들 저렇게 소리 지르는데 우리 은우 외로웠으면 어떻게 해요.
- 아래에서 혼자 은우 파이팅 이렇게 소리치는 여자분은 은우 팬이신가요?
- 아, 저분. 새로 온 은우 스타일리스트라고 하시네요.
- 눈물 나게 고맙네요. 우리가 저기서 저렇게 외쳤어야 하는데.
- 근데 여러분. 은우 사탕 반지 보셨어요? 넘 귀엽죠?
- 손등에 스티커는요. 춤출 때 입었던 셔츠 보셨어요? 그 셔츠에 그려진 공룡 변신 로봇 은우가 그린 거래요.
- 정말요? 우리 은우 미술 천재네요.
- 그렇지 않아도 은우가 유명했었어요. 미술 천재로. 슬라임으로 바닥 풍선 만드는 영상도 그렇고요.
- 은우가 직접 그림 그린 셔츠 사고 싶네요. 그거 얼마에 살 수 있을까요?
- 저도 사고 싶습니다. 저 미국에 살지만 사고 싶어요.
- 와, 은우 팬이 미국에도 있군요. 세계로 뻗어 나가는 은우.
- 모르셨어요? 은우 팬은 유럽에도 있고 미국에도 있고 동남아에도 있습니다.
***
공룡 변신 로봇을 만드는 공실업의 컨텐츠 기획 부장 함익태는 평화로운 주말을 보내고 있었다.
TV에서는 늘 보던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중학생인 딸이 방에서 나오면서 외쳤다.
“아빠, 저 연기대상 봐야 해요.”
“연기대상은 무슨 아빠 뉴스 봐야 해. 니 방에서 휴대폰으로 봐.”
“아빠, 오늘 슈퍼보이즈 오빠들 나온단 말이에요.”
함익태는 얼굴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슈퍼보이즈는 얼어 죽을. 걔네가 니 학비를 보태줬니? 공부를 도와주니? 그런 연예인은 공부 못하는 애들이나 좋아하는 거라고. 아빠 학교 다닐 때 얼마나 어렵게 공부했는지 말해 줬지?”
딸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아요. 아빠. 그 소리 만 번도 넘게 들었어요. 그치만 아빠 오늘 한 번만. 축하 공연만 보고 바로 티비 끌게요. 딱 10분이면 돼요. 10분.”
함익태는 10분이라는 말에 딸에게 리모컨을 넘겨주었다.
“아빠 고맙습니다.”
딸은 재빨리 채널을 돌렸다.
“슈퍼보이즈다.”
티비 속에서는 아이돌 그룹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아이돌 그룹 속에 작은 꼬마 남자아이가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뭐지 저 아이는? 저렇게 어린아이가 노래도 하고 춤도 추네. 네 살이나 다섯 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작은 아이인데.’
함익태는 처음에는 어린아이의 무대라는 것에 관심이 생겨 열심히 티비를 보기 시작했다.
‘근데 저 아이 셔츠에 그려진 로봇. 우리 회사에서 만든 공룡 변신 로봇이잖아. 저 아기 어떻게 저 옷을 입고 있는 거지? 우리 회사에선 어린이용 티셔츠까지만 판매하지. 저런 셔츠에 캐릭터를 새긴 적이 없는데. 저거 동대문에서 돌아다니는 짜가 아냐?’
순간 함익태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저작권 관련해서 소송을 걸어야 하나. 대체 저 아이의 소속사는 어디지? 어린아이지만 연기대상 축하 공연이라는 큰 무대에 선 거 보면 그래도 인지도가 있는 아이일 텐데.’
함익태는 딸에게 물었다.
“저 어린 꼬마 아이는 뭐냐?”
“아, 저 아기요. 은우라고 요새 유명한 아기예요.”
“은우?”
“네, 쟤 되게 유명해요. ‘내일도 사랑해’라는 드라마에 백수희랑 출연해서 오늘 아역상도 받고 베스트 커플상도 받았어요. HO 엔터테인먼트 소속이에요. 내년에는 음반도 낼지 모른대요.”
“HO 엔터테인먼트라는 곳은 큰 회사냐?”
“그럼요. 캣걸스랑 레이니 등 유명한 가수도 많고, 적지만 배우도 있고. 백수희도 거기 소속이에요. 우리나라 3대 기획사 중 한 곳이에요.”
함익태는 생각했다.
‘우리나라 3대 기획사 중 한 곳이라면 돈이 없는 곳도 아닐 텐데. 그런 곳에서 저작권 문제가 불거지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고 있을 텐데. 저런 짜가 셔츠를 입히다니.
아무래도 다른 직원에게 물어봐야겠어.’
함익태는 캐톡을 켜고 컨텐츠 기획 부서의 가장 젊은 직원에게 연락을 했다.
- 휴일이라 미안한데, 급한 일이라 확인하고 싶은 게 있는데 알아봐 줄 수 있나?
신입 직원 마상수는 여자친구와 함께 연기대상을 보는 중이었다.
“짜증 나. 휴일에 캐톡이라니. 진짜 싫다 부장.”
여자친구가 맞장구쳤다.
“그니까. 휴일에도 월급 주냐고. 월급 나오는 날에만 연락을 해야지.”
“내 말이. 워커홀릭 부장은 머릿속에 온통 일뿐이어서 다른 사람도 그런 줄 안다니까.”
“돈 때문에 사나. 행복하려고 살지. 부인이 진짜 싫어하겠다.”
“그렇지 않아도 딸이랑 부인이 자기 싫어한다고 매일 넋두리해.”
“불쌍하다.”
“그건 그렇고. 아 짜증 나. 아예 확인을 안 했어야 했는데 확인을 하고 말았어.”
“별수 없다. 자기야. 답해 줘.”
마상수가 함익태의 캐톡에 대답했다.
- 네, 부장님 어떤 일이신가요?
- 지금 연기대상 돌려보면 축하 공연 나오는데 슈퍼보이즈.
- 네, 저도 마침 그 프로 보고 있었습니다.
- 잘 됐군. 그럼 거기 은우라는 아이가 춤추고 있는 거 보이나?
- 네, 은우 저도 알고 있습니다. 팬이에요.
- 은우가 입고 있는 옷 우리 회사 공룡 변신 로봇이 그려진 옷 맞나?
- 네, 맞습니다. 저도 보자마자 반가워하는 중이었어요. 아마 내일 기사에도 이슈화되고 판매량도 오르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 그렇겠지. 당연히. 그건 그런데. 저 옷 우리 회사에서 제휴를 맺은 ‘아기 옷 이야기’에서 만든 옷이 맞는지 확인 좀 부탁하네. 아무래도 캐릭터만 가져다 베낀 거 같은데, 그렇다면 저작권 침해로 소송을 해야 할 사항이니까 말이네.
마상수는 순간 기분이 나빴다.
“와, 우리 부장 미쳤다.”
마상수의 여자친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왜? 왜?”
“아니, 은우가 입은 옷이 저작권 침해라면서 소송을 걸겠다잖아.”
“은우한테. 은우 고작 네 살인데?”
“그러니까. 회사에 미쳐서 피도 눈물도 없는 거야.”
마상수의 여자친구가 티브이 화면을 유심히 보더니 말했다.
“근데 저거 기성품이 아닌 거 같은데. 왜냐면 스타일리스트들이 프린트하거나 뭐 그런 식으로 재가공해서 입는 옷도 워낙 많아서. 스타일리스트가 편집한 옷 같은데.”
“스타일리스트 편집이라. 그럼 그것도 저작권법에 걸리는 거 아니야? 머리가 복잡해진다.”
“잠시만. 나 은우 팬카페 가입돼 있어. 거기 들어가서 알아볼게.”
“와, 자기 은우 팬카페 회원이었어?”
“응, 그때 내일도 사랑해 때문에 미혼부가 이슈화되면서 가입했었어. 위대한 목소리 영화도 인상 깊고 해서 그 뒤로도 활동을 했었는데, 잠시만.”
마상수는 여자친구가 휴대폰으로 팬카페에 접속하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만약 은우가 저작권법을 위반했다면 우리 회사가 은우에게 소송을 건다는 건데. 그게 회사 입장에서 저작권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일 수도 있긴 하지만.
아이를 상대로 저런 소송을 한다는 걸 사람들이 좋게 생각할까.
게다가 은우가 저 옷을 입은 거 보면 은우는 우리 캐릭터를 정말 좋아한다는 건데.
속상하다.’
마상수의 여자친구가 외쳤다.
“자기야. 저거 은우가 그린 거라는데? 팬들 말로는?”
“은우가 그렸다고? 자기야. 은우 몇 살이지?”
“네 살.”
“네 살인데 저걸, 저 어려운 걸 그렸다고? 저렇게 똑같이?”
마상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만약 저게 진짜 은우가 그린 거면 마케팅에 이용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은우가 손등에도 우리 회사 풍선껌 스티커를 붙이고 나왔고.
이거야 말도 대박 찬스인데.’
마상수는 함익태에게 캐톡을 보냈다.
- 부장님, 셔츠의 공룡 변신 로봇은 은우가 직접 그린 거라고 하네요.
- 그렸다고 저걸?
- 팬카페 사람들이 확대해 본 결과 물감이 아니라 마커펜 같다고 하더라구요.
- 직접 그리면 저작권법에서 벗어날 수 있나?
- 그건 회사 법무팀에 문의해 봐야 할 사항 같습니다. 그런데 부장님 오늘 은우가 손등에 우리 회사 풍선껌 스티커를 붙이고 나온 것도 그렇고. 저 셔츠도 그렇고. 소송보다는 마케팅에 활용하는 게 더 좋은 효과를 가져올 것 같은데요.
함익태는 부하 직원의 말이 기분 나빴다.
‘캐릭터 저작권이 얼마나 중요한 건데. 한 번 내버려두기 시작하면 중국 업체 등 여기저기서 가짜가 판치기 시작할 거라고.
얼마나 힘들여 개발한 캐릭터인데.’
공룡 변신 로봇은 공실업에서 5년간의 연구 기간을 거쳐 사활을 걸고 만들어낸 캐릭터였다.
마상수의 캐톡이 이어졌다.
- 저희 회사의 주 소비자는 아이들입니다. 어른이나 기업을 상대로 하는 소송이 아닌 아이를 상대로 하는 소송은 우리 회사의 소비자들에게 우리 회사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 확률이 더 큽니다. 또, 은우가 저렇게 우리 회사의 로봇을 스티커와 셔츠에 함께 하고 나온 걸 보면 공룡 변신 로봇의 팬일 확률이 커요. 은우가 그림도 매우 잘 그리는 거 같은데, 이번 기회에 은우를 우리 공룡 변신 로봇의 모델로 기용하면 어떨까 싶은데요.
함익태는 마상수의 글을 읽고 생각했다.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요즘은 기업에 대한 이미지가 중요한 시대이지. 보니까 저 은우라는 아기 팬덤도 상당한 것 같고. 잠깐만 딸에게 물어봐야겠다.’
함익태가 딸에게 물었다.
“은우라는 아기. 인기가 어느 정도니?”
“슈퍼보이즈 정도는 아니지만, 인기 꽤 많아요. 위대한 목소리 영화도 관객이 많이 들었고. 800만인가? 900만인가? 정확히는 모르지만,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아슈크림 챠챠랑 꽃게춤이랑 유행시킨 춤도 몇 개 있구요.
이번에 슈퍼보이즈랑 같이 무대에 선 건 HO 엔터테인먼트에서 내년에 단독 음반을 내기 전에 팬들에게 눈도장 찍기 위한 거라고 그러던데요.”
“저렇게 어린 아기가 음반을 낸다고?”
“어리긴 하지만 노래도 잘하고. 아빠도 방금 봤지만 춤도 아이돌 못지않게 추잖아요. 그리고 저렇게 댄스곡 부르면서 음정이랑 호흡이 안정적인 거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사람들 말로는 천재래요.”
“천재? 하긴, 저 그림 솜씨도 그렇고 예사로운 아이는 아니지.”
함익태는 새로운 공룡 변신 로봇에 대한 기획안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
현경은 과자를 먹으면서 연기대상 시상식을 보고 있었다.
“슈퍼 보이즈네. 러브 러브 좋은데.”
현경은 시계를 보았다.
‘10시면 자기가 온다고 했으니까. 아직 시간 여유가 있구나.’
티비 속에서는 슈퍼보이즈와 은우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 기분이 좋아.
너무 신나는 날.
나이스한 걸
예쁜 걸
도도한 걸
작고 귀여운 걸
소중한 걸”
현경은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은우의 까꿍 포즈에 깜짝 놀랐다.
“아, 귀여워. 저 아기 정말 귀엽네. 쟨 누구지? 대체? 검색해 볼까?”
현경은 ‘연기대상 축하공연 슈퍼보이즈’를 검색창에 쳤다.
‘은우라는 아기구나. 정말 귀엽고 노래도 잘한다. 저 아기 엄마는 좋겠네. 저 아기 보나마나 돈도 잘 벌겠지?
나는 복도 없지. 다른 친구들은 못생겼어도 돈 많은 남자를 잘만 만나던데. 난 왜 늘 택배기사밖에 못 만날까?
수희는 또 중고차 딜러를 만나서 명품가방도 많이 사는 거 같던데.
수희한테 남자친구 소개시켜 달라고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