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연말 시상식 (5)
검은색 슈트의 여자 시상자가 다음 코너 수상자를 발표하고 있었다.
“이번 코너는 베스트 극본상입니다.
후보작은 ‘로봇 아이’의 김수경 작가, ‘그놈이 간다’의 백후락 작가, ‘그해 가을’의 이경미 작가, ‘내일도 사랑해’의 정우리 작가입니다.
수상작은 ‘내일도 사랑해’의 정우리 작가.”
이름이 호명되자 당황하는 정우리에게 ‘내일도 사랑해’ 팀들이 꽃다발을 전해주었다.
은우도 정우리의 손을 꼬옥 잡아주었다.
정우리가 무대로 올라갔다.
여자 시상자가 말했다.
“수상소감 부탁드립니다.”
정우리가 입을 열었다.
“우선.”
눈물이 흘러나와 말을 하기 힘든 정우리가 한참을 울먹이다 다시 말을 이었다.
“저는 작년까지만 해도 예능 작가였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제 꿈은 드라마 작가였습니다. 이룰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꿈을 이루게 해 준 은우에게 감사합니다. 이 드라마는 사실 은우를 보고 처음 떠올린 이야기였습니다.
극 중 상황이 미혼모로 바뀌긴 했지만요. 제가 본 은우는 누구보다도 예쁘고 빛이 나는 소중한 아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은우 아버님을 통해 그런 은우가 호적이 없어서 어린이집도 가지 못하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은우 말고도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수많은 미혼부, 미혼모 가정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제가 쓴 이 드라마가 작게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앞으로도 재미뿐 아니라 여러분에게 감동과 위로를 함께 드릴 수 있는 그런 글을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우리는 수상소감을 말하며 너무 많이 울어서 두 눈이 퉁퉁 부을 정도였다.
무대 아래서 은우가 정우리를 향해 외쳤다.
“우지 먀요. 눈나.”
은우는 정우리가 울자 함께 울먹이고 있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차오른 은우를 보자 정우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안 울게. 누나. 누나 지금 행복해서 우는 거야. 너무 행복해서.”
웃는 정우리를 보면서 은우가 말했다.
“울다가 웃으면은 엉덩이에. 엉덩이에.”
[그리스의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유머 레벨 1]
무대 아래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웃었다.
여자 시상자가 말했다.
“오늘 은우 군의 활약이 대단하네요. 웃겼다가 울렸다가. 오늘 무대를 들었다 놨다 하는 은우 군입니다.”
카메라는 다시 한 번 은우를 비추었다.
카메라에 비친 은우는 백인수가 만든 검은색 턱시도를 입고 손에는 공룡 변신 로봇의 스티커를 붙인 채 한쪽 눈을 찡그리며 양손으로 브이를 그리고 있었다.
남자 시상자가 다음 코너를 소개했다.
“다음은 베스트 커플상입니다. 베스트 커플상은 지난 한 달 동안 시청자들의 투표 결과를 반영하여 선정되었습니다.
우선 후보입니다. ‘판사 김유겸’의 정하나, 박겸 커플, ‘지칠 때까지 달린다’의 이소미, 손유 커플, ‘내일도 사랑해’의 백수희, 이은우 커플.
수상자는 ‘내일도 사랑해’의 백수희, 이은우 커플.”
백수희가 은우의 손을 잡고 무대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내일도 사랑해 팀에서 백수희와 은우에게 꽃다발을 주었다.
여자 시상자가 말을 이었다.
“백수희, 이은우 커플은 수상자 중 유일하게 남녀커플이 아니라 엄마와 아기 커플이었는데요. 엄마와 아기 사이의 사랑을 가장 잘 담아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인데요. 신은 세상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하잖아요. 백수희 씨가 이번 이채아 캐릭터를 통해 어머니의 사랑을 제대로 보여주었죠.”
남자 시상자도 말을 보탰다.
“이은우 군의 실감 나는 연기 역시 화제가 됐습니다. 특히 이은우 군은 이 드라마를 찍으면서 호적을 얻게 되었죠. 그 재판이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면서 국민 아기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모든 시청자들이 모여 은우 군의 판결을 지켜보았습니다.
수상소감 부탁드리겠습니다.”
백수희가 마이크를 잡았다.
“제가 처음 시도하는 엄마 역할이다 보니 고민도 많고 망설임도 많았는데요. 은우가 연기를 잘 해주어서 어렵지 않게 연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기를 키우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가 돼 봐야 부모의 심정을 안다고 하는데 저의 어머니, 아버지가 어떤 마음이셨을지 돌아보는 기회도 된 것 같아요.
대한민국의 모든 한부모 가정들 응원합니다.”
은우가 마이크를 받았다.
“상 듀 개 바다따야. 걈샤함니댜. 샤량해요. 여러분.”
은우가 머리 위로 크게 하트를 만들었다.
여자 시상자가 웃으며 말했다.
“인상적인 수상소감이네요. 은우 군 정말 오늘 너무 귀여워요.”
남자 시상자가 맞장구쳤다.
“많은 말이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짧으면서도 임팩트 있는 수상소감이네요. 오늘 은우 군의 날인데요.”
여자 시상자가 말을 이었다.
“그러게요. 참 대단한 네 살입니다. 저는 네 살 때 뭐 했을까요? 문득 은우 군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드네요.”
남자 시상자가 말을 받았다.
“베스트 커플상을 마지막으로 저희 연기대상 1부를 마칩니다.
2부에선 도입부 축하 무대에 슈퍼보이즈와 은우 군이 합동 무대를 펼친다고 하니 큰 기대 부탁드립니다.”
여자 시상자가 말을 이었다.
“또 2부에선 연기대상 대상과 최우수 연기상 등의 중요한 시상이 남아있는 만큼 채널 고정 부탁드립니다.”
***
1부 시상식이 끝나고 은우는 의상을 갈아입고 있었다.
스타일리스트 미선은 은우가 그림을 그린 셔츠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은우야, 그러니까 이게 하아.”
미선은 생각했다.
‘손등 위에 스티커는 이미 방송을 타 버렸고, 한 장뿐인 셔츠에는 공룡 변신 로봇이 그려져 있고. 하아, 이러다가 팬들이 코디가 안티냐고 하는 거 아닐까? 오늘은 그러고도 남을 만한데.
아마 팬들이 댓글에 우리 은우 잘생긴 얼굴 코디가 다 망쳐놨다고 하겠지. 은우랑 함께 하는 첫 번째 무대인데 암담하다.’
미선은 머리가 아파 왔다.
‘그런데 그림은 참 잘 그렸단 말야? 아무리 봐도 똑같단 말이지.’
미선은 태블릿을 가져다가 공룡 변신 로봇 캐릭터를 검색해 보았다.
‘진짜 똑같네. 이거. 어떻게 그린 거지? 대체?’
미선은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이거 니가 그린 거야?”
은우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니에 니에 니에 니에 니에.”
미선이 놀라서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똑같이 그렸어? 이게 가능해?”
은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눈나도 원하능게 이쓰면 내갸 그려주께요. 근데 눈나 공룡 변신 로봇 정말 머디쬬? 이거 내갸 입꼬 나갸면 슈퍼 보이즈 횬아들보다도 더 머시껟죠?”
미선은 은우의 해맑은 눈동자를 보자 마음이 흔들렸다.
‘저 해맑은 눈동자를 어떻게 외면하지? 은우에게 사실 어른들은 공룡 변신 로봇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설명하지? 은우가 밤을 새워 그린 것 같은 저 그림을 어떻게 모른 척하지? 게다가 패션으론 별로지만, 저 그림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잘 그렸어. 저 그림이 은우가 그린 게 맞다면 은우는 그림 천재야. 아마 미술가들이 은우를 탐낼 거야. 내가 안티라는 말을 듣더라도 은우의 재능을 뽐낼 수 있는 기회인지도 몰라.’
미선은 마음을 굳혔다.
“은우야, 그림 정말 잘 그렸어. 아마 은우가 공룡 변신 로봇 셔츠를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전부 은우를 슈퍼보이즈 형아들보다 멋있다고 생각할 거야.”
은우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쳐? 그쳐?”
미선이 은우의 목에 초커를 걸어주며 말했다.
“그러엄. 오늘은 은우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야.”
은우가 손등 위의 공룡 변신 로봇 스티커를 보며 외쳤다.
“나갼댜. 공룡 변신 로봇 짜쟌!”
은우가 변신하는 로봇처럼 주먹을 쥐고 하늘 높이 찔렀다.
미선은 은우를 보며 생각했다.
‘우리 은우, 아직 로봇의 시기에 사는구나. 저 나이의 남자 아기들은 다 그렇다던데 역시. 은우야, 예쁜 꿈 꾸면서 자라. 누나는 안티라는 욕을 먹어도 네가 행복하면 괜찮아.’
슈퍼보이즈가 대기실로 들어왔다. 리더인 태원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은우야, 휴우. 늦었지? 오늘 옆 방송국 가요대상 시상식도 있어서 시간이 좀 빠듯했어. 미안해.”
서브 보컬 성수가 은우의 옷차림을 보며 말했다.
“와아, 우리 은우 너무 멋지다. 오늘 입은 옷.”
막내 태윤도 맞장구쳤다.
“우리도 공룡 변신 로봇 입고 올 걸 그랬는데.”
은우가 쑥스러운 듯 웃으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태윤의 손에 꼭 쥐여주었다.
태윤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뭐야? 공룡 변신 로봇 풍선껌이잖아.”
메인 래퍼 지석이 말했다.
“아우, 너무 귀여워. 은우야.”
메인 댄서 지훈이 은우의 손등에 있는 공룡 변신 스티커를 보았다.
“이거 너무 귀엽다. 은우도 붙였는데 우리도 다 같이 붙여볼까?”
슈퍼보이즈 전원이 외쳤다.
“좋아.”
은우는 생각했다.
‘역시 형아들이야. 멋짐이 뭔지 알고 있어. 참참, 내가 챙겨온 사탕 반지도 있었는데.’
은우는 슈퍼보이즈가 손등에 공룡 변신 로봇 스티커를 붙이는 것을 보며 주머니에서 노란색 사탕 반지를 꺼내 손가락에 끼었다.
***
“연기대상 그 화려한 무대의 2막을 열어줄 주인공은 슈퍼보이즈와 은우 군입니다.
슈퍼보이즈의 러브러브를 듣겠습니다.”
미리 방청석에 들어와 있던 슈퍼보이즈의 팬클럽이 소리를 질렀다.
“슈퍼보이즈!”
은우는 그들의 소리에 깜짝 놀랐다.
‘역시 슈퍼보이즈 형들이야. 대단하네. 나도 언젠가 저런 팬들의 응원을 들으며 무대 위에 서고 싶다. 이번 무대부터 잘 마쳐야겠지.’
무대 아래서는 길동이 은우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하느님, 우리 은우 오늘 첫 번째 무대 꼭 무사히 마치고 좋은 평가받을 수 있게 해주세요. 이번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쳐야 내년에 앨범 준비도 시작할 수 있단 말이에요.
진짜로 부탁드립니다. 하느님. 제가 우리 은우 이번 무대 성공적으로 마치면 밥 5공기 먹던 거 4공기로 줄여볼게요. 하느님. 저의 간절한 기도 꼭 들어주세요.’
미선은 마음을 졸이며 은우를 지켜보고 있었다.
‘은우야, 의상에 대한 평가는 상관없어. 누난 욕먹어도 괜찮아. 우리 은우 이번 무대 꼭 잘 해 보자. 누나가 슈퍼보이즈 팬들보다 더 큰 목소리로 우리 은우 응원할게.’
미선이 소리쳤다.
“이은우 파이팅! 우리 은우 최고다!”
이윽고 러브러브가 흘러나왔다.
“넌 항상 사랑스러워.
넌 너무 아름다워.
5월의 햇살보다도 더 빛나는”
1절은 슈퍼 보이즈의 무대.
2절의 시작과 함께 은우가 무대에 등장했다.
카메라맨은 은우를 잡다가 당황했다.
‘셔츠에 화려한 저 공룡은 뭐지? 손등에 스티커는 아까 봤었지만 이젠 반지도 끼고 있네. 저 노란색 반지는 뭐지? 패션 정말 독특하네.’
은우는 방긋방긋 웃으며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넌 향샹 샤량스러어.
넌 녀뮤 아름다어.
오워레 해쌸보댜도 더 빈냐는”
[디오니소스의 흥 레벨 1]
은우의 귀여운 춤동작에 스타들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정후석이 옆자리에 앉아있는 백수희에게 말했다.
“은우는 언제 또 춤 연습을 한 거야? 잘 춘다. 물론 우리 은우는 못 하는 게 없겠지만.”
백수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같은 소속사잖아요. 선배님. 아마 내년쯤엔 은우 음반도 낼걸요.”
“그래? 하긴 지금 노래도 꽤 잘하네. 저렇게 춤을 추는데 음정도 안 흔들리고.”
“네, 그리고 호흡도 안정적이죠. 저렇게 노래하면서 춤추는 거 쉬운 일 아니거든요. 노래만 잘 부르기는 쉽지만 춤추면 바로 흐트러지죠.”
정우리가 동의했다.
“그럼요. 우리 은우는 아이돌들한테도 안 밀릴 실력이에요. 슈퍼보이즈가 부른 1절보다 더 좋지 않아요? 저는 은우가 부르는 2절이 훨씬 더 좋은데요.”
PD도 맞장구쳤다.
“가사의 의미가 더 잘 살아나는 거 같아요. 은우의 순수하고 귀여운 목소리 때문에요. 그런데 저 작은 몸으로 춤추는 것 좀 봐. 인형 같다.”
백수희가 말했다.
“은우 아버님께 들었는데 은우가 춤 연습하다가 응급실에 실려 갔대요. 지금 저렇게 웃으면서 춤추고 있지만, 저 뒤에 엄청난 노력이 숨어있는 거예요.”
정우리가 깜짝 놀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은우가요? 많이 아팠대요? 세상에. 은우야. 아프면 어떡해. 누나 속상하다.”
정우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정후석이 말했다.
“아픈 건 안쓰럽지만, 알잖아 다들. 연예계라는 게 화려하게 보여도 얼마나 많은 연예인들이 이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지. 여기서 최고가 되려면 그 정도 근성은 있어야지. 암.
은우는 크게 될 놈이야. 뭘 해도 될 놈이지. 근데 은우가 끼고 있는 저 반지 말야. 대체 뭐야?”
“반지요?”
내일도 사랑해 팀은 은우를 자세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정우리가 말했다.
“저거 사탕 반지 같은데요. 왜 있잖아요. 어렸을 때 문방구에서 팔던 거. 끼고 다니다가 먹다가 했던 거요. 저거 진짜 오랜만에 보네요.”
백수희도 맞장구쳤다.
“맞다. 그거네요. 갑자기 사탕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