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연말 시상식 (4)
두 사람은 함께 레드카펫을 걷기 시작했다.
-찰칵찰칵
은우는 레드카펫을 걸으며 생각했다.
‘한 작품에 출연했을 뿐인데 레드카펫을 밟게 되다니. 나는 정말 운이 좋아. 하지만 여기까지 온 게 팬들의 사랑 덕분이라는 것을 알고 더 열심히 해야 해.
그리고 나를 아껴준 모든 사람들, 백수희 누나랑 길동이 형이랑 강라온 대표님이랑 이철 선생님이랑 전부 다 잊어서는 안 돼.’
은우와 백수희는 어느덧 포토존에 도착했다.
기자가 외쳤다.
“포즈 부탁드려요.”
백수희가 은우를 안았다. 은우는 백수희의 뺨에 자신의 뺨을 붙이고 백수희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은우는 세상 어떤 아기보다도 밝게 웃었다.
백수희도 밝게 웃었다.
기자는 생각했다.
‘평범한 엄마와 아기의 사진 같아. 저렇게 눈부신 미모의 백수희가 평범한 엄마들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웃고 있어. 두 사람의 행복한 감정이 포토존 전체를 감싸는 기분이야.’
다른 기자가 외쳤다.
“다음 포즈 부탁드려요.”
백수희는 은우를 안은 채로 은우와 시선을 맞춘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은우는 크게 웃어서 코에 주름이 잡혔다.
‘백수희 누나, 너무 좋아요. 진짜 우리 엄마 같아요.’
은우가 백수희의 뺨을 어루만졌다.
기자는 생각했다.
‘베스트 포즈상은 이 커플이군. 세상에 어떤 남녀 간의 사랑이 엄마와 아기의 사랑을 뛰어넘겠어. 로미오와 줄리엣이 와도 두 사람을 이기긴 힘들 거 같은데.
그런데 잠깐만 뭐지? 백수희의 뺨을 어루만지는 은우의 손등에 그려진 저 무늬는 대체?’
기자는 카메라의 줌 기능으로 은우의 손등을 확대했다.
‘스티커잖아. 저거 애기들이 먹는 과자나 껌 같은 데 들어있는 그거 같던데, 우리 조카 보니까. 맙소사 시상식에 스티커를 붙이고 온 거야?’
기자는 깜짝 놀라 카메라를 들고 있던 손을 놓칠 뻔했다.
‘그런데 너무 귀엽잖아. 심장 떨어질 뻔.’
***
정후석이 은우를 안고 볼을 부비며 말했다.
“우리 은우 안 본 사이에 많이 컸구나. 보고 싶었어.”
은우가 정후석의 품에 안겨 대답했다.
“져도요.”
정후석이 말을 이었다.
“안 본 사이에 나보다 더 유명한 스타가 되었더구나. 우리 은우. 위대한 목소리에서의 연기 인상 깊었다. 겨울나라 2 OST도 너무 좋구 말이야.”
정우리 작가도 달려와 은우를 아는 체했다.
“은우야, 양복 너무 멋지다. 네 덕분에 드라마 작가도 되고. 오늘 누나도 각본상 후보에 올랐어. 우리 은우는 꼭 받을 거 같은데. 누나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
은우가 정우리 작가의 손에 풍선껌을 쥐여주면서 말했다.
“거쩡하지 마라요. 눈나. 꼭 뱌들 거예요.”
정우리 작가가 손을 펼쳐보며 말했다.
“이게... 뭐야?”
정우리는 한참 손안에 든 물체를 살펴보았다.
‘껌이잖아. 풍선껌이네. 진짜 오랜만이다. 풍선껌. 그런데 이거 스티커가 들어있는 풍선껌이네. 파란 펭귄이잖아. 아, 귀여워. 덕분에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아.’
정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고마워. 은우야. 잘 먹을게. 누나 오늘 꼭 상 받을 수 있을 거 같아.”
***
하얀색 드레스를 입은 긴 머리의 여자 시상자와 베이지색 슈트를 입은 남자 시상자가 무대 위에 나타났다.
여자 시상자가 말했다.
“이번 상은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했던 아역상입니다.
우선 수상 후보를 보시겠습니다.
성형미녀의 오아연 양.
오아연 양은 성형미녀에서 주인공 이연주의 아역을 맡아 똑소리 나는 연기를 펼쳐 주었습니다.”
화면 가득 나타난 성형미녀의 한 장면.
8살, 125센티 사십 킬로의 오아연이 단식원에서 러닝머신을 뛰고 있다.
“살 뺄 거야. 살 뺄 거라고.”
오아연의 얼굴 위로 맺혀 있는 땀방울.
영상 위로 여자 시상자가 말을 이었다.
“오아연 양은 이 드라마를 위해 15킬로를 찌운 것으로도 유명한데요. 그만큼 실감 나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시청자들로부터 단식 소녀 등으로 불리며 다이어트 신드롬을 자아낸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남자 시상자가 맞장구쳤다.
“저도 저 장면 인상 깊게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남자 시상자가 두 번째 후보를 소개했다.
“두 번째 후보는 조선 아기 명탐정의 주연을 맡았던 권도윤 군입니다.
권도윤 군은 조선 아기 명탐정의 시청률을 견인한 일등 공신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긴 대사도 무리 없이 외워서 담당 스태프들 사이에서는 암기 천재로 통한다고 하네요.”
화면에는 조선 시대의 관아가 나타난다.
두루마기에 갓을 쓴 6살, 권도윤의 모습이 나타난다.
100센티의 작은 도윤의 손에는 돋보기가 들려져 있다.
돋보기로 범인의 족적을 쫓는 도윤.
그때 도윤이 외친다.
“범이는 키갸 백칠십오 센티. 몸뮤게는 육십 킬료 졍됴되는 성인 냠쟈요.”
여자 시상자가 말을 보탰다.
“저기서 명대사가 탄생했죠. 범이는~ 저도 저 대사 참 많이 따라 했었어요. 범이는~ 모창해 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네요. 범이는~”
남자 시상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범이는~ 저도 참 많이 따라 했는데 안 되더라구요. 다음은 마지막 세 번째 후보입니다.
내일도 사랑해의 이은우 군.
이은우 군은 내일도 사랑해에서 김준호 역할을 맡아 실감 나는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여자 시상자가 말을 이었다.
“미혼모의 아기 역을 맡아 매일 저녁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눈물을 함께 선사했는데요.
실제로도 미혼부의 아기여서 더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드라마 방영 시기와 은우 군의 재판 시기가 맞물려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저도 그때 국민청원 참여했어요. 은우 군.”
남자 시상자도 말을 보탰다.
“은우 군은 이 작품으로 시청률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요. 은우 군이 나올 때마다 순간 시청률이 매화 3프로 이상 상승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부럽습니다. 은우 군. 저도 순간 시청률을 저만큼 상승시켜본 적이 없는데요.”
화면에 나타난 것은 김밥을 말고 있는 백수희의 모습.
옆에 있던 은우는 백수희가 김밥을 완성하자 밝게 웃으며 외친다.
“엄마 체고.”
여자 시상자가 말을 이었다.
“은우야, 눈나한테도 체고라고 한 번만 해주겠니?”
남자 시상자가 웃으며 말을 보탰다.
“제가 대신 해드릴게요. 눈나 체고.”
여자 시상자가 손사래를 쳤다.
“그 느낌이 안 살잖아요. 그 귀엽고 순수한 느낌이.”
남자 시상자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그건 은우만이 할 수 있는 것 같네요. 국민 유행어였죠. ‘체고’를 만들어낸 은우 군. 은우야, 횬아한테도 체고 한 번만 해주겠니?”
여자 시상자가 말했다.
“이쯤하고 수상자를 발표해야 할 것 같네요.”
남자 시상자가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너무 신이 나서 그만. 긴장하며 기다리고 있는 수상자들에게 결과를 알려드려야죠. 수상자는.”
여자 시상자가 말했다.
“수상자는.”
남자 시상자가 뜸을 들이며 말했다.
“누가 될까요?”
여자 시상자가 말했다.
“제가 작년에 여우 조연상 받았을 때 이거 너무 싫었었는데. 떨려서요. 그런데 시상자들은 또 이런 멘트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무대 아래 ‘내일도 사랑해’ 팀 테이블에 앉아있는 은우는 떨리는 마음을 안고 결과를 지켜보고 있었다.
‘누가 될까? 나도 인기가 많았지만, 다른 두 후보 역시 연기력이 만만치 않아. 올해는 아역배우들이 빛난 한 해였군.’
무대 뒤의 길동은 마음을 졸이며 우황청심환을 들이켜고 있었다.
‘내가 전국체전 나갈 때도 이렇게 안 떨었는데 오늘은 왜 이렇게 떨리지? 만약 은우가 안 되면 기운 빠진 우리 은우 얼굴을 어떻게 보나?
하느님, 제가 며칠 전에 쓰레기 몰래 버린 거 죄송합니다. 그리고 보니 제가 두 달 전에 무단횡단도 했네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착하게 살게요. 그러니까 이번에 은우 상 꼭 받게 해주셔야 합니다.
만약 우리 은우 상 안 주시면 저 나쁜 짓만 하고 살 거예요.’
여자 시상자가 말했다.
“수상자는 내일도 사랑해의 이은우 군.”
남자 시상자가 외쳤다.
“축하합니다. 은우 군.”
내일도 사랑해 팀이 은우에게 꽃다발을 건네며 말했다.
“은우야, 축하해.”
“우리 은우가 될 줄 알았어.”
“그럼, 우리 은우가 안 되면 누가 되겠어?”
“은우야 넌 우리 팀의 자랑이야.”
은우는 꽃다발은 안은 채 무대 위로 올라갔다.
‘전국 노래 경연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받는 상이구나. 그런데 확실히 바라보는 사람들의 숫자가 달라서 그런지 훨씬 긴장된다.’
은우가 무대 위에 올라갔다.
다른 팀에서도 은우를 위해 무대로 꽃다발을 들고 왔다.
무대 위에는 은우가 들지 못한 꽃다발들이 놓이기 시작했다.
‘아기니까 꽃다발을 받아도 많이 들 수가 없어서 아쉽다. 그래도 감사 인사는 드려야지.’
은우는 꽃다발을 주는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감샤함니댜.”
여자 시상자가 말했다.
“소감 듣기 전에 국민 유행어였던 체고 한 번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은우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눈나 체고, 횬야 체고.”
남자 시상자가 말했다.
“역시 은우에게 들으니 다르네요. 저게 원조인가 봅니다.”
여자 시상자가 말을 이었다.
“맞아요. 아까 하신 거랑 너무 달라요. 그런데 저도 내일도 사랑해 너무 재밌게 봐서, 은우 군 혹시 꿀떡춤도 부탁해도 될까요?”
남자 시상자도 맞장구쳤다.
“맞다. 꿀떡춤도 인기였죠? 저도 그 춤을 볼 때마다 왜 그렇게 꿀떡이 먹고 싶던지. 평소엔 좋아하지도 않던 꿀떡인데 말이에요.”
은우가 빙긋 웃더니 꿀떡을 주고받듯이 밀고 당기는 꿀떡춤을 추었다.
“쑤쑤 너머가능 꿍떡(술술 넘어가는 꿀떡)
꾸처엄 다라서 꿍떡(꿀처럼 달아서 꿀떡)”
[그리스의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유머 레벨 1]
여자 시상자와 남자 시상자가 함께 노래를 따라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꾸울떡, 꾸울떡.”
‘내일도 사랑해’ 팀을 시작으로 ‘성형미녀’와 ‘조선아기명탐정’ 등 다른 테이블에서도 은우의 꿀떡춤을 함께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남자 시상자가 말했다.
“춤으로 하나가 된 순간이었네요. 이 춤 추니까 또 꿀떡 먹고 싶습니다. 지금 테이블마다 음료와 초콜릿 등이 놓여있는데 내년에는 초콜릿 대신 꿀떡 준비하라고 해야겠어요.”
여자 시상자도 맞장구쳤다.
“좋은 생각이네요. 저도 꿀떡이 먹고 싶습니다. 그러면 은우의 수상소감을 들어볼까요?”
카메라가 은우를 향했다.
길동은 무대 뒤에서 긴장한 채 은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은우의 역사적인 연기대상 아역상 수상소감이구나. 잘하겠지. 너무 뿌듯해. 은우야, 정말 네 매니저가 된 게 내 인생 최고의 축복 같아. 그런데 손등에 저건 뭐지? 대체?
맙소사, 은우가 아까 나에게 줬던 풍선껌 스티커잖아.
저걸 언제 붙인 거지? 아, 저거 지워야 하는데.’
은우가 수상소감을 말했다.
“져와 하께 내일됴 샤량해에서 연기해 쥰 백슈희 눈냐, 정휴석 선배님, 정우리 작갸 눈나, 김진효 피디님, 스태프 여러뷴, 걈샤함니댜.
져를 응언해 쥰 팬 여러뷴, 걈샤함니댜.
더 열씨미 하께요. 제 패리나는 게 뷰끄럽지 안또록 열씨미 하께요.
연아, 시후, 준슈, 혜리니 어린이집 친규들 고먀어요.
늘퓨른 태건도 친규들 고먀어요. 주언아, 나 오늘 스티커 뷰여뗘. 너무 머띠뎌. 고마어.”
은우가 스티커가 붙어있는 손등을 뒤집어서 보이며 말했다.
무대 아래 사람들이 살며시 미소를 띠었다.
‘스티커라니 너무 귀엽다. 나도 저런 스티커를 붙였던 때가 있었는데.’
‘다시 붙여볼까? 추억의 스티커.’
‘생각해 보면 지금은 많은 걸 가졌는데도 스티커 하나에 행복해했던 어린 시절만큼 행복하지가 않은 것 같아.’
‘공룡 변신 스티커잖아. 너무 순수해. 역시 은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