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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재능흡수-59화 (59/257)

59화. 연말 시상식 (3)

길동이 은우를 태우고 태권도장으로 가고 있었다.

“은우야, 태권도 재밌어?”

“니에. 니에. 니에. 니에. 니에.”

“은우야, 형아가 태권도 공인 3단인 거 알아?”

“횬아, 머쪄요.”

은우가 운전을 하는 길동을 존경 어린 눈빛으로 보았다.

‘형아는 못 하는 운동이 없구나. 정말 대단해. 나도 형아처럼 공인 3단까지 해야지.’

길동은 은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은우가 운동을 못 할 리가 없어. 공부도 잘하고, 연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잘하는 것투성이인데. 게다가 이 김길동이 매니저인 이상, 은우가 운동을 못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길동은 은우를 만나기 전 포장한 음식들을 떠올렸다.

‘있다가 은우 태권도장 사범님께 갖다 드려야지. 은우가 빨리 하얀 띠를 벗어나도록 말이야.’

은우는 생각했다.

‘그동안 아프기도 했고, 연말 시상식 연습 때문에 태권도장에 가지 못했는데 잘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네. 친구들은 잘 있으려나.’

길동이 차 문을 열며 말했다.

“태권도장이다.”

은우가 친구들을 만나러 도장에 들어간 동안 길동은 태권도장 사범 진우에게 쇼핑백을 건네며 말했다.

“사범님, 은우 잘 좀 부탁드립니다. 은우가 요 며칠 아프고 스케줄이 많아서 태권도장에 못 왔지만, 운동을 참 좋아합니다.”

길동이 준 쇼핑백을 받으며 진우가 대답했다.

“은우 참 똘똘하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제가 그런 부분은 충분히 신경 쓰고 있으니까요. 괜찮은데 이런 걸 뭐 또.”

길동은 쇼핑백을 보면서 넘어가는 침을 삼키고 있었다.

‘저 집 치즈 돈까스 정말 맛있는 건데 세 개쯤 더 포장할걸. 아까 하나 먹었는데도 또 먹고 싶네. 지금 먹고 싶을 걸 생각해서 포장을 따로 더 해두었어야 하는 건데. 그래도 은우를 위해서 참아야지.’

길동이 진우에게 말했다.

“정말로 유명한 집 치즈 돈까스입니다. 대기표 받는 집이에요. 제가 특별히 사범님을 위해서 포장했습니다.”

“제가 치즈 돈까스 좋아하는 걸 어찌 아시고?”

진우가 쇼핑백을 보더니 말했다.

“아니, 여긴 그 유명한 105 돈까스?”

“사범님도 여길 아시나요?”

“알다마다요. 저도 여기 너무 좋아해요. 그렇지 않아도 먹고 싶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사범은 쇼핑백을 소중하게 안고 태권도장으로 들어갔다.

은우는 태권도장으로 들어갔다.

주원이가 아이들 사이에 둘러싸여 무언가를 자랑하고 있었다.

‘저게 뭐지?’

은우는 아이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주원이가 말했다.

“이거 뱌라. 내갸 일 년 똥얀 모은 거야. 머찌지?”

“와아~~”

아이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풍선껌 스티커였다.

“이거 뱌. 퍄량펭긴도 이꼬, 자동챠 특굥대됴 이꼬, 그리고 쨔쟌 굥룡 변신 로뵤트.”

“우와아~~”

“냐도 햔 변만 부텨보쟈.”

“냐도.”

아이들은 스티커를 붙여보고 싶다고 아우성이었다.

“안 대. 이겨 내갸 일 년 똥얀 모야따니꺄. 그리고 이겨 모으느랴고 우리 야뺘랑 엄먀랑 다 같이 꺼믈 매일 샸다니까. 이겨 내 뵤뮤리야.”

주원이는 스티커를 자신의 보물 상자 속에 고이 넣었다.

그때 은우가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와야, 진쨔 머찌댜.”

주원이의 시선이 은우와 부딪쳤다.

주원이가 은우에게 말했다.

“너 오랜먀네 와네. 무뜬 일 이떠뎌?”

은우는 고민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시상식 연습 때문이었다고 말하자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 것 같고. 아팠다고 해야겠다.’

은우가 주원에게 말했다.

“조금 아파떠.”

주원이 보물 상자의 뚜껑을 열며 말했다.

“아퍘구냐. 여기서 갸지고 시픈 거 하나 가져.”

“진쨔. 그래도 대?”

“걱정해뗘. 내갸 특별히 쥬는 거야.”

은우는 주원의 보물 상자에서 공룡 변신 로봇 스티커를 꺼냈다.

“와야, 조케다.”

“부러어.”

아이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

은우는 보리와 함께 연말 시상식을 준비 중이었다.

“멍멍(니가 연말 시상식 무대에 선다니 내 기분이 이상하다.)”

“왜 녀도 뗠려?”

“멍멍(대견하기도 하고, 뭉클하기도 하고, 장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아 이 기분 너는 몰라. 너희 아빠는 나를 이해할 수 있으시려나?)”

“야뺘도 그련 기뷰닐꺄?”

“멍멍(응, 아마 그러실 거야. 내일이면 니가 무대에 선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다 떨린다).”

“격졍하디먀. 쟈할게.”

은우는 시상식 때 입을 하얀색 셔츠를 꺼내 책상 위에 폈다.

“멍멍(뭐 하려고?)”

“그림 그릴 거야. 굥룡 변신 로봇. 셔츠 꾸미려고.”

“멍멍(그래, 멋지겠다. 근데 셔츠 위에 그림 그리는 건 어렵지 않을까?)”

“걱쩡하디 먀. 투시력보다 더 냐은 재능을 차즐 거니꺄.”

“멍멍(왜? 헤파이스토스 재능 멋지던데. 그것보다 나은 재능이 있어?)”

“지냔버네 그림책에서 더 머찐 걸 봐써. 기달료 뱌.”

은우는 책꽂이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꺼내 읽기 시작했다.

“제유스에게는 아홉 명의 땨리 이써씀니댜. 그 땰드른 묘듀 이쁘고 아름댜워뜸니댜. 그드른 묘듀 예술적 재능이 뛰여냐뜸니댜.

첫째 땰 칼리오페는 노래를 너무 쟐해서 먀는 샤럄드레게 걈동을 주어뜸니댜. 여덜 번째 땰 에우테르페는 그림 솜씨갸 매우 뛰어냗뜸니댜.

어느 날 에우테르페는 바위 위에 곤충을 그려뜸니댜. 지나갸던 새 한 먀리갸 곤충을 잡야머그려고 하댜가 부리를 바위에 부디치고 말얃뜸니댜.

“아이고 내 부리.”

지나가던 새갸 바위에 다가갸 그리믈 자세히 살펴보앋뜸니댜.

“대체 누갸 이러케 똑가치 그린 거야. 다른 새드레게 알려줘야겓땨. 다들 부리를 댜치고 말 거야.””

은우는 책을 덮으며 말했다.

“어때? 멋찌지 아냐?”

“멍멍(그래, 대단한데. 새가 바위에 부딪힐 정도의 그림 실력이라니 기대하겠어. 근데 부를 수 있는 거야?)”

“지냔번 이후료 먀니 나아져떠. 쟘깐먄.”

은우는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아홉 명의 뮤즈. 기다란 금발 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피부에서 빛이 나는 에우테르페. 그림을 누구보다 잘 그리고 그림을 누구보다 사랑했던 여신.

제가 당신의 재능을 빌려 세상에 아름다운 그림을 널리 전하고 싶습니다.’

이윽고 붓과 팔레트를 들고 있는, 머리에는 베레모를 쓴 에우테르페가 눈앞에 나타났다.

“나를 부른 인간은 없었는데 넌 대체 누구지?”

“져는 은우임니댜. 재능을 빌리고 시퍼서요.”

“아, 그 대한민국에 산다는 아기? 그렇지 않아도 칼리오페 언니에게서 네 말을 들었어. 언닌 네 전생이 파리넬리라는 걸 알아봤다더군. 그래서 너에게 재능을 빌려준 걸 매우 뿌듯해하더라. 네가 언니 대신 인간들에게 음악의 아름다움을 알려줄 거라고.

그리고 대신 자긴 이제 재미없는 여신 노릇 그만하고 휴가나 갈 거라고 얼마나 뻐기던지.

나도 너한테 재능을 빌려주고 휴가나 가야겠다. 자, 좋은 일에만 쓰렴. 혹시 나쁜 일에 쓰면 내가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니. 하긴, 넌 머리부터 발끝까지 착해 보이긴 한다만.”

“걈샤함니댜.”

은우가 두 손을 모은 채 배꼽 인사를 했다.

“이제 돼따.”

은우는 천 냥 하우스에서 산 염색용 마커펜을 들고 태블릿을 펼쳤다.

“공룡 변신 로봇.”

태블릿으로 검색한 공룡 변신 로봇의 사진을 옆에 둔 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스 그림의 여신 에우테르페의 모방 0/1000

당신은 당신이 본 사물을 똑같이 그릴 수 있다.]

보리는 은우의 마커펜이 지나가는 자리를 감탄을 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멍멍(거의 붙여넣기 수준인데. 정말 똑같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사진을 붙인 줄 알겠다. 투시력보다 더 대단한 재능이네.)”

“거뱌. 샤랴믄 역시 채글 일거야 햔다니꺄.”

***

“드디어 오늘이구나.”

길동은 휴대폰 알람을 끄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깔끔하게. 혹시라도 카메라에 잡힐지도 모르니까 오늘은.’

길동은 신경 써서 검은색 슈트를 입었다.

길동은 운전대에 앉으며 기도드렸다.

‘오늘 제발 운수대통해서 은우가 실수 없이 첫 무대 잘 마무리하도록 해 주세요.’

길동은 약국에 들러 우황청심환을 사고 빵집에 들러 빵과 우유를 산 뒤 은우의 집 앞에 도착했다.

“횬아, 조은 아치미예요.”

은우가 정장을 입은 모습으로 나타났다.

길동은 은우의 색다른 모습에 놀랐다.

‘매일 보던 은우가 맞나. 늘 애기인 줄만 알았는데 정장을 입으니 뭔가 의젓하잖아. 그러면서도 귀엽고. 다채로운 매력이 있네. 우리 은우.’

길동이 은우를 안아서 들어 올리며 말했다.

“꼬마 신사네. 우리 은우. 너무 멋있어서 팬들이 좋아하겠다.”

은우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백슈히 눈냐 야뺘갸 만드러 줘떠요. 멋찌죠?”

길동은 생각했다.

‘백수희 씨 아버님이? 이번에 동반 입장도 백수희 배우랑 함께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백수희 씨가 우리 은우를 정말 각별하게 생각하나 보다.’

길동이 은우를 차에 태우고 물었다.

“안 떨려? 은우야?”

“갠챠냐요. 잘할 슈 이떠여.”

“형아가 우황청심환 사 가지고 왔는데 줄까? 긴장하지 말라고 먹는 약인데.”

“갼챠냐요. 횬야. 걈샤함니댜.”

“그럼, 쵸코 도넛이랑 우유 줄까? 밥 먹었어?”

은우는 생각했다.

‘아빠가 아침밥은 줬는데. 그래도 초코 도넛이라면 거절할 수 없지. 암.’

은우가 대답했다.

“초코 도넏 주떼여.”

은우는 천천히 도넛 위에 얹은 초코부터 떼어먹기 시작했다.

‘그래, 이 맛이야. 아침에 먹어도, 잠들기 전에 먹어도 맛있는 이 맛.’

도넛을 다 먹고 은우는 주머니에서 풍선껌을 꺼냈다.

‘오늘부터 나도 모아야지. 많이 먹으면 스티커가 늘어나겠군. 가방 안에 풍선껌을 가득 가지고 왔으니 있다가 내일도 사랑해 팀들에게도 나눠 드려야지.’

은우는 풍선껌 포장을 뜯어 입에 넣었다.

‘달콤한 복숭아향.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구나. 정말 좋은 세상이야. 맛있는 게 너무 많아. 참, 길동이 형도 줘야지.’

은우은 풍선껌 포장을 뜯은 뒤, 길동의 입에 풍선껌을 넣어주면서 말했다.

“횬아, 머겨요.”

길동은 뭔지도 모른 채 은우가 주는 것을 받아서 먹었다.

‘와, 풍선껌 진짜 오랜만이네. 나도 어릴 적엔 많이 씹었었는데. 근데 뭔가 뭉클하다. 저 작은 손으로 나를 생각해서 풍선껌도 먹여주다니. 은우야, 내가 이래서 너를 이뻐할 수밖에 없구나.’

은우는 풍선껌 포장에 붙어있는 스티커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벌써 새로운 스티커가 2장이나 생겼네. 와, 정말 조으다. 참참, 공연 시작하기 전에 주원이가 준 공룡 변신 스티커를 붙여야지.’

은우는 조심조심 공룡 변신 스티커를 손등 위에 붙이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한 군데도 떨어지지 않게 잘 붙여야 하는데 아, 도와주세요.’

은우는 긴장된 마음으로 스티커를 떼었다.

다행히 스티커는 떨어진 곳 없이 완벽하게 손등 위에 붙어있었다.

‘히히, 잘 됐다. 있다가 무대 위에서 멋있게 보여야지.’

길동이 차를 멈추고 은우를 차에서 내려주었다.

“도착했습니다. 오늘의 스타님.”

“걈샤함니댜.”

은우가 차에서 내리자 여기저기서 카메라의 셔터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게 연말 시상식이라는 거구나. 공항 갈 때보다 더 대단한데.’

먼저 도착한 백수희가 은우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은우야.”

빨간색 튜브톱 드레스를 입은 백수희가 은우에게 달려왔다.

“눈냐.”

은우가 백수희의 손을 잡았다.

-찰칵찰칵.

백수희는 은우를 보며 입을 틀어막았다.

‘아기가 정장 입은 건 처음 보는데 너무 귀엽다. 마네킹이 입고 있는 걸 볼 때랑 너무 다르네. 귀여우면서도 젠틀한 거 같기도 하고. 귀여우면서도 멋있고. 와,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냥 너무 멋져. 지금 집에서 이 장면을 보고 계시는 아빠도 같은 기분이실 거야.’

백수희가 은우의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양복이 정말로 잘 어울리십니다. 오늘의 스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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