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연말 시상식 (2)
슈퍼보이즈의 리더이자 메인 보컬인 태원이 말했다.
“1, 2절 끝나고 킬링파트 있잖아. 우리 그거 은우 줄까? 우린 평소에 많이 불렀으니. 어때? 태윤아?”
막내이자 서브 댄서인 태윤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래요. 형. 이번에만 양보하죠.”
태윤은 생각했다.
‘그동안은 내가 막내라서 형들이 다 날 예쁘다고 해줬었는데 은우가 오니 마치 막내가 바뀐 기분이네. 아 속상해. 이 상황에서 킬링파트 양보 안 한다고 할 수도 없고. 하지만 연말 시상식 킬링파트라니. 얼마나 많은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인데. 아쉽다.’
이철이 말했다.
“너무 고마워.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텐데. 내가 나중에 밥이라도 살게. 역시 슈퍼보이즈야. 마음 씀씀이가 대범하구나.”
은우는 생각했다.
‘킬링이라니 누군가를 죽인다는 뜻인가? 대체 뭐지? 처음 듣는 단어인데. 왠지 모르게 무서워.’
은우가 걱정하며 이철에게 물었다.
“떤생님, 그룐데 킬링퍄트갸 머예요?”
“그건 가장 인기 있는 파트를 말하는 거야. 모두들 킬링파트를 맡고 싶어 한단다. 그 노래의 하이라이트라고나 할까? 아이돌 그룹 안에서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맡게 되는 그런 파트이지.”
이철이 말을 이었다.
“킬링파트 부분만 한 번 연습해 보자. 우선 안무부터.”
이철이 음악을 틀었다.
“기분이 좋아. 기분이 좋아.
너무 신나는 날.
나이스한 걸
예쁜 걸
도도한 걸
작고 귀여운 걸
소중한 걸”
슈퍼보이즈와 은우의 합동 안무.
신이 난 듯한 걸음걸이와 손으로 어깨, 가슴, 무릎을 터는 동작을 통해 봄날의 행복함을 표현했다.
이어지는 안무는 슈퍼보이즈가 한 줄로 서서 각자의 매력을 표현하는 안무.
리더인 태원은 도도한 표정, 메인 래퍼인 지석은 터프한 표정을 지었다. 메인 댄서 지훈은 티셔츠를 들어 올렸다 내리는 동작으로 복근을 노출했다. 성수는 힘차게 주먹을 들어 올렸다. 막내 태윤은 귀여운 표정으로 볼을 찔렀다.
그때 리더인 태원이 이철에게 외쳤다.
“형, 음악 좀 멈춰줘요. 여기서 안무 좀 바꾸게요.”
이철이 음악을 멈췄다.
태원이 다른 팀원들에게 말했다.
“원래 우리 안무는 이렇게 한 줄로 서서 순서대로 하는 거잖아. 약간 바꿔보는 건 어때?”
“그래, 시상식이니까 똑같이 하는 것보단 바꾸는 게 좋겠다.”
“그럼 두 번째 순서에 은우를 넣고 은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도록 해 보자.”
은우는 생각했다.
‘슈퍼보이즈 형들이 날 정말 배려해 주는구나.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꼭 멋진 무대를 만들어 내야만 해. 형들을 위해서라도.’
지석이 말했다.
“그럼, 두 번째 자리에 은우를 넣고 우리가 하던 안무를 은우한테 줘야 할까? 아니면 은우가 새로운 안무를 춰야 할까?”
태윤은 생각했다.
‘그래도 내 안무가 가장 은우에게 어울리긴 하니까. 은우한테 줘야 할까. 아직 아기인데 내가 양보하는 게 맞겠지? 팀에서 귀여움을 담당하던 나였는데, 은우가 나보다 귀여우니 이번 무대는 씁쓸한걸.’
태윤이 말했다.
“제가 양보할게요. 은우가 볼에 찌르기를 하면 어울릴 것 같아요.”
태원이 맞장구쳤다.
“그래, 좋다. 그 안무가 은우에게 딱 어울릴 거 같아.”
은우가 대답했다.
“갠챠냐요. 생갹햔 게 이떠여.”
이철이 음악을 틀며 말했다.
“그럼 다시 맞춰 보자.”
음악이 흘러나왔다.
“기분이 좋아. 기분이 좋아.
너무 신나는 날.
나이스한 걸
예쁜 걸
도도한 걸
작고 귀여운 걸
소중한 걸”
리더인 태원은 도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서 있던 은우가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가 펼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까꿍.”
그 순간 멤버들은 모두 은우의 귀여움에 얼어붙었다.
지석은 자신의 순서인 것을 깜빡하고 박자를 놓치고 말았다.
태윤은 생각했다.
‘생각지도 못한 동작인데 너무 귀여워.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포즈 같아. 까꿍이라니 너무 창의적이야. 나도 은우가 없는 무대에서 해 볼까. 너무 사랑스럽잖아. 깨물어 주고 싶어.’
음악이 계속 흘러나왔지만, 슈퍼보이즈 중 누구도 춤을 추지 못했다.
이철이 음악을 멈추고 외쳤다.
“은우 동작에 너무 감동했어? 춤을 멈추면 어떻게 해.”
태원이 말했다.
“너무 귀여워서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니까요.”
지석도 동의했다.
“인정. 은우야 넌 진짜 세상에서 젤로 귀여워.”
성수가 말했다.
“우리 마지막에 엔딩포즈로 다 같이 까꿍 한 번 할까? 팬들 반응 좋을 거 같은데.”
태윤도 동의했다.
“좋아요. 연말 시상식을 까꿍 포즈로 빛내봐요.”
***
강라온은 은우에게 스타일리스트 박미선을 소개하는 중이었다.
“은우야, 오늘부터 너의 스타일을 책임져 줄 박미선 스타일리스트야.
일단 이번 연말 시상식 의상부터 정해 보렴.”
은우는 박미선에게 인사했다.
“안녕하떼요. 눈나.”
박미선은 은우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맙소사 내가 은우의 스타일리스트가 되다니 맙소사. 다른 스타일리스트들에게 자랑해야지.’
은우가 말했다.
“왜 자꾸 우서요? 눈나?”
미선은 깜짝 놀랐다.
‘첫 만남에 너무 티 나면 안 되는데. 이제 조금만 웃어야지. 은우가 눈치채면 곤란해.’
미선이 화제를 돌렸다.
“은우야, 연말 시상식 때 어떤 옷 입을까? 레드 카펫에 들어설 때랑 슈퍼보이즈 형들이랑 무대에 설 때 어떤 옷 입고 싶어?”
“레드 카펫 오슨 이미 졍해떠여. 백수희 눈나랑 가치 입기로 해떠요.”
미선은 깜짝 놀랐다.
‘백수희가 그 정도로 은우를 챙기나. 연말 시상식 옷까지 같이 입자고 했단 말이지. 아무리 봐도 사심이 있는 거 같은데 은우에게.’
미선이 말을 이었다.
“은우야, 그러면 슈퍼보이즈 형아들이랑 무대에 설 때는 어떤 옷 입고 싶어?”
은우는 고민했다.
‘사실 그게 가장 큰 고민인데. 뮤지컬 때는 이미 의상이 정해져 있었고, 위대한 목소리 촬영을 할 때도 정해진 옷을 입었는데. 이번엔 뭘 입지? 옷 입는 것도 어렵구나.
슈퍼보이즈 형아들처럼 멋진 옷을 입고 싶은데.’
은우가 대답했다.
“잘 모르게떼요.”
“그러면 누나가 몇 가지 추천해 볼게.”
미선이 태블릿을 가지고 와 스크랩해둔 의상 몇 개를 보여줬다.
“이건 블랙 슬랙스에 셔츠를 입은 사진이야. 가장 무난한 의상이기도 한데, 셔츠를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깔끔하게 보일 수도 있고 화려하게 보일 수도 있고. 요즘은 보이그룹 의상도 점점 화려해지는 추세라서 여성복 의상에서 화려한 셔츠를 가져오기도 하거든. 이거 어때? 이렇게 화려한 셔츠 맘에 들어?”
미선이 보여준 것은 빨간색 셔츠에 녹색과 검은색 페이즐리 무늬가 화려하게 수놓아진 셔츠.
은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럼, 너무 화려한 스타일은 패스하고. 그냥 깔끔한 검은색이나 흰색 셔츠를 입기도 해. 캐주얼하게 티셔츠를 입기도 하고.”
은우는 생각했다.
‘화려한 의상은 파리넬리일 때 많이 입어서 의상은 단순하게 입고 액세서리를 좀 다양하게 해보고 싶은데.’
은우는 슈퍼보이즈의 다양한 액세서리를 기억하고 있어서, 의상보단 액세서리에 신경을 쓰고 싶었다.
“눈나, 반지 갸튼 겨는 엄떠요?”
“아, 액세서리. 액세서도 있지. 요즘 보이그룹도 액세서리가 굉장히 화려해지는 추세라서. 귀걸이도 많이 하고. 근데 우리 은우 귀 뚫었나?”
미선이 은우의 귀를 살펴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미안해. 네 살인 네가 귀를 뚫었을 리가 없지. 원하면 귀에 끼우는 링 같은 게 있는데 그걸 찾아볼까?”
미선이 태블릿을 뒤지더니 은우에게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줬다.
은우는 생각했다.
‘멋있어 보이긴 하는데, 나랑은 안 어울릴 거 같아. 이건 좀 더 커서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슈퍼보이즈 형들처럼 크면 이것저것 다 어울릴 텐데. 난 아직 아기라서 안 어울리는 것들도 있네.’
은우가 대답했다.
“댜른 거요.”
미선이 태블릿을 뒤지다가 다른 사진을 보여줬다.
“요즘은 반지도 많이 하는데 이렇게 단독으로 두꺼운 것도 있지만, 얇은 걸 여러 개 레이어드 하는 게 특징이야. 곡의 느낌에 따라서 바꾸기도 하고. 이번 선곡은 러브러브니까 반지를 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은우는 생각했다.
‘이쁘긴 하지만 반지는 사탕 반지가 최곤데. 언제든 사탕을 먹을 수 있고 말이지. 사탕이 없어서 끌리지 않아.’
은우가 말했다.
“댜른 거요.”
미선은 생각했다.
‘계속 다른 걸 외치는 걸 보면 은우는 자기가 원하는 게 확고하게 정해진 타입인가 보네. 앞으로 의상 준비를 많이 해야겠어. 곡의 컨셉과 은우가 원하는 것의 조화를 맞추려면.’
미선이 태블릿을 뒤져서 다른 사진으로 넘겼다.
“팔찌도 많이 해. 팔찌는 반지보다 디자인이 더 다양해서 가죽끈도 있고, 은이나 금으로 된 것도 있고, 문양을 넣은 팬던트 같은 걸 착용하기도 하고. 아니면 끝만 레이어드해서 느낌을 살리기도 하고.”
은우는 생각했다.
‘파리넬리일 때보다 액세서리가 다양해졌구나. 팔찌도 디자인이 진짜 많네. 그런데 난 아직 이런 팔찌보다 캐릭터 팔찌가 더 예쁜 거 같아. 캐릭터 팔찌 차고 싶은데 누나한테 그런 거 차겠다고 말해도 될까?’
은우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미선이 태블릿 화면을 넘기며 말했다.
“팔찌도 맘에 안 드는구나. 자,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초커야. 보이그룹들도 많이 하는 추세인데, 뭐 팬들 말로는 섹시해 보이는 효과가 있다고 하네. 어때?”
은우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건 뭐지? 목걸이도 아닌 게 심플하면서도 예쁘잖아.’
은우가 외쳤다.
“이걸료 햐께요.”
***
은우는 집으로 돌아와 보리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주고 있었다.
“멍멍!(너 출세했다. 백수희 누나 아빠한테 용돈을 오만 원이나 받고 기분 좋았겠는데. 오늘 그걸로 치킨 좀 쏴. 내가 인터넷에서 봤는데 요새 모모치킨에서 반려동물용 치킨이 새로 나온 거 알아? 사람 치킨 시킬 때 사이드로 시킬 수 있대. 어때? 나도 좀 맛있는 것 좀 먹어보자.)”
“음, 그건 안 대. 이건 소듕한 거랴서 댜른 걸로 사 주께.”
“멍멍!(백수희 누나 아빠가 준 돈이라 이거지. 별수 없지. 내가 생각해도 그건 소중하긴 하겠다. 그럼 우리 저기 있는 돼지 저금통 뜯을까? 거기에 영탁이 삼촌이 동전 모으는 거 내가 봤는데.)”
은우는 한숨을 쉬었다.
“휴우. 그러케 얀 해도 땸툐니 시켜쥬꺼야. 그니꺄 걱정하지 먀. 참, 냐 의샹도 정해떠. 노래 부를 때 이블 거.”
“멍멍(무대 의상? 멋진 걸로 정했어?)”
은우가 스케치북을 들고 와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얀색 셔츠에 까만 뱌지를 입꼬 모게다가 초커를 하기로 해떠. 오때? 멋찌지?”
보리는 생각했다.
‘음, 저 까만 줄은 마치 강아지 산책용 목줄 같은데 멋있다고 해야 하나? 대체 사람들은 왜 저런 걸 목에다 두르는 거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데 자유를 잃고 싶은 걸까? 그치만 사실대로 말했다간 은우가 서운해하겠지.’
보리가 대답했다.
“멍멍(그래, 아주 멋져. 의상 정하느라 수고했어.)”
“근데, 보이야. 내갸 샤탕 반지도 끼고 갸고 시픈데 스탸이리스트 눈나한테는 마를 모태거든. 그래도 갠차늘까?”
“멍멍(사탕 반지라니. 최고야. 뭐든지 먹을 수 있는 게 최고 아니겠어? 그 초커보다도 훨씬 멋지다.)”
“그래. 그렴 해야지. 그리고 이쨔나. 보이야. 내갸 샤실 셔츠에도 굥룡을 그리고 시픈데 갠차늘꺄?”
“멍멍(요새 유행하는 거 그거 완전 핫하잖아. 근데 기왕 그리는 거 공룡 말고 날 그리면 어때? 나도 좀 네 덕에 유명해져 보자.)”
“냐중에 시는 냘 이블 오세 그려볼게.”
은우는 보리와 말을 한 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역시 친구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야. 내 사소한 고민도 잘 들어주는 보리. 혼자서 고민할 때보다 훨씬 좋아. 삼촌한테 보리를 위한 치킨 시켜 달라고 해야지.’
은우는 문을 열고 나가 영탁에게 말했다.
“땸톤, 치킨 머꼬 시퍼여. 시켜주떼요.”
영탁이 은우를 안아서 들어 올리며 말했다.
“우리 은우가 치킨을 먹고 싶어. 그럼 먹어야지. 어디 걸로 주문할까? 요새 랄라치킨에서 나온 간장치킨이 맛있다던데 그거 시켜볼까?”
“안 대요. 땸톤, 모모치킨에서 시켜야 대요. 거기 보이도 머글 슈 인는 치키니 이떠여.”
“보리는 치킨 못 먹는데. 잠깐만 검색해 보자.”
영탁은 휴대폰으로 모모치킨 사이트를 찾아보았다.
“와, 정말이네. 세상 좋아졌다. 반려동물용 치킨이라니. 강아지가 먹을 수 있게 양념을 하지 않았다는데. 매번 보리만 치킨 못 먹는 것도 미안했는데 잘됐다. 그럼 모모치킨에서 시키자.”
영탁이 전화를 걸어 치킨을 주문했다.
“여기 네이빌 아파트 101동 1305호인데요. 크리스피 치킨이랑 양념치킨, 그리고 반려동물용 치킨 하나 주문할게요.”
소리를 들은 보리가 방에서 달려나왔다.
“멍멍(치킨이야? 와 신난다. 고마워. 은우야)”
보리가 은우의 볼을 핥았다.
“헤헤, 가안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