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재능을 찾아서 (3)
강라온은 창현의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부탁이 있어서 전화 드렸어요.”
강라온은 순간 긴장했다.
‘부탁이라. 아침부터 무슨 일일까? 은우에게 뭐 부당한 대우라도 했던가 내가?’
강라온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네, 말씀해 보세요. 은우 아버님.”
“어젯밤 은우가 열이 많이 나서 병원에 갔거든요. 아무래도 요 며칠 춤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 거 같아요. 의사 선생님께서 며칠은 쉬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며칠 연습을 쉬었으면 해서요.”
“네, 알겠습니다. 은우 잘 돌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강라온은 전화를 끊고 생각이 많아졌다.
‘이제 고작 4살. 연습량을 맞춰줘야 해. 잘못하면 몸살이 나거나 할 수 있어. 우리 회사는 기존에 중고등학생 연습생들만 데리고 있었기 때문에 은우 연령대에 대해서는 정보가 전혀 없어.
그나저나 많이 아픈가. 큰일이네. 연말 시상식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아픈 아기를 연습시킬 수도 없고.’
강라온은 비서에게 전화해 말했다.
“철이 좀 오라고 해.”
이철은 강라온 대표의 사무실로 올라가면서 생각했다.
‘은우는 어제 집에 잘 갔으려나. 오늘이라도 설득을 해서 안무의 방향을 바꿔야 하나. 사실 팬들은 은우가 어리니까 귀여운 춤을 춰도 다들 열광할 텐데.’
이철이 문을 열고 강라온 대표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은우 아프댄다.”
이철이 놀라서 되물었다.
“네에?”
“아직 아기잖아. 몸에 무리가 온 거지. 암튼 이제 우리도 은우를 위해 공부를 해야 할 거 같아. 4살 아이의 신체 발달 상태라든지. 그런 걸 좀 알아둘 필요가 있을 거 같아. 중고등학생과는 차이가 있는데, 우리가 그걸 감안하지 못한 거 같아.
이거 가져가서 읽어라.”
이철은 강라온의 책상 위에 놓은 아기 심리 백과, 아기 발달의 모든 것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어젠 은우가 하도 하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물론 은우가 아프니 제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지만.”
“저 책 가져가서 읽고 다음부턴 은우가 하겠다고 고집 피워도 아프지 않게 컨디션 조절 좀 시켜. 2주 후가 연말 시상식인데 그전까지 컨디션 회복 못 해서 공연 못 하면 큰일이야.”
이철은 생각했다.
‘어린이집 교사도 아니고 이런 책까지 읽어야 한다니. 난 아직 결혼도 못 했는데.
그나저나 은우는 미련하게 아플 때까지 참고 연습을 하다니. 참 대단해. 고작 4살짜리가.
일단은 쉬게 하고 은우가 쉬는 동안 난 어떻게 안무를 짤지 고민해 봐야겠네.’
***
은우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보리가 은우의 발치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서 말했다.
“멍멍(많이 아파? 그러기에 연습을 적당히 하지 그랬어? 넌 아기라고. 잊었어? 물론 나도 내가 강아지라는 걸 자꾸 잊곤 하지만.)”
“연먈 시샹시기 얼먀 안 냐먀서 그래떠. 츄미 쟐 안 춰져셔. 근데 야직 츄미 완벼카지 아는데 어떠카지?”
“멍멍(아프면서도 무대 걱정이라니. 넌 정말 무대 체질이구나. 대단하다. 그치만 아픈 게 다 나아야지. 잊지 마. 아기일 때는 열을 조심해야 한다고. 잘못하면 너 이번 생이 끝나고 다음 생을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넌 너무 겁이 없어. 신의 재능을 받았다고 해서 신이 널 불사신으로 만들어 준 것은 아니야?)”
“아랴떠. 죠심햐께.”
그때 은우의 방문이 열리고 창현이 말했다.
“은우야, 친구들이 병문안 왔어.”
“네, 칭규드리요?”
열린 방문으로 혜린, 연아, 시우, 준호, 준수가 쪼르르 들어왔다.
“은우야 먀니 아퍼?”
혜린이가 은우에게 달려와 안겼다.
혜린이가 지나치게 은우를 세게 안는 바람에 은우는 아팠다.
“혜리니 눈냐, 무겨어.”
“미야내. 내갸 이거 가져와떠.”
혜린이가 가방에서 도시락통을 꺼냈다.
“이거, 엄먀갸 만드려줘써. 모메 좋댜고 은우 머그래. 전복쥬기래.”
“거마어. 엄먀한테도 거먑다고 해.”
준호가 가방에서 장난감을 꺼냈다.
“냐도 이거 가져와떠. 심심햘 때 갸지고 노랴. 내갸 젤 조아하는 장냔감이야.”
준수도 가방을 열었다.
“냐도냐도. 이번에 생일션뮬로 뱌는 건데. 은우 갸지고 노랴.”
준수의 장난감을 보고 준호와 시우가 소리쳤다.
“와아, 굥룡변신쟝냔가미댜.”
“저거 냐두 가꼬 시폈는데. 은우 조케따.”
시우가 준수에게 말했다.
“준뚜야. 냐듀 빌려주랴. 은우 끝냐고 나면.”
“안대. 은우는 아펴셔 빌려쥬는 거야. 아뮤도 안 빌려져.”
준수는 시무룩해진 얼굴로 말했다.
“뷰럽따. 은우. 냐도 아프교 십땨.”
연아도 가방에서 카드를 꺼냈다.
“아프지 먀. 션뮤리야.”
은우를 연아가 준 카드를 펼쳐 보았다.
카드에는 연아가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이 있었다.
‘한쪽에는 침대에 누워서 주사를 맞고 있는 내가 있네. 이게 아픈 나라고 연아가 그린 건가 보다. 한쪽에는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는 내가 있고.
연아는 아직 글씨를 쓸 줄 모르니까 그림을 그렸나 보다.
빨리 나으란 뜻이겠지.’
은우가 카드를 접으며 말했다.
“거먀어. 칭규들아. 히미 냔다. 뺠리 냐을게.”
혜린, 연아, 시우, 준호, 준수가 주먹을 꼭 쥐고 외쳤다.
“힘. 힘.”
은우도 주먹을 머리 위로 들며 외쳤다.
“힘.”
***
3일 뒤 은우는 몸이 어느 정도 나은 것을 느꼈다.
‘이제 열도 나지 않고, 연습을 해도 될 것 같은데.
물론 오늘부터 다시 연습하러 간다고 하면 아빠가 걱정하겠지.
뮤직비디오라도 다시 보면서 감을 살려야겠어.’
은우는 슈퍼 보이즈의 ‘러브러브’ 뮤직 비디오를 보며 생각했었다.
‘춤만 봐도 알 수 있어. 얼마나 연습했는지. 저 자연스러운 한 동작을 위해 수만 번을 연습했겠지. 요즘 아이돌들은 정말 많은 준비를 하고 나오는 것 같아.
18세기에 카스트라토를 양성하던 유럽의 시스템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체계적이야.’
은우는 HO 엔터에서 연습하며 많은 연습생들을 보았다. 그들 중에는 연습만 하다 사라지는 사람도 있었고 데뷔를 하고 몇 장의 앨범도 냈으나 인기가 없어서 사라지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에게도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 이 기회를 더 잘 살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돼.’
결심을 다지는 은우였다.
‘재능이 잘 결합 되는지 확인해 봐야겠어. 이틀 동안 목 풀기도 못 하고 태권도도 못 한 채 잠만 잤더니 체력이 떨어진 기분이야. 재능창을 전처럼 잘 불러올 수 있을까.’
은우는 슈퍼보이즈의 ’러브러브‘ 음악을 틀었다.
“넌 항상 사랑스러워.
넌 너무 아름다워.
5월의 햇살보다도 더 빛나는”
은우는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며 재능을 불러왔다.
[아테나의 재능]
[디오니소스의 재능]
‘여전히 안 되잖아. 왜 안 되지? 아, 이건 노력으로도 안 되는 건가?’
은우가 절망하고 있을 때, 보리가 외쳤다.
“멍멍!(왜 안 써도 되는 재능을 쓰느라 그 고생이야. 니 춤 나도 외우겠다. 집에서 춘 것만 해도 몇 번인데. 대체 왜 할 수 있는 걸 굳이 재능을 쓰느라 그 난리인지. 넌 이미 그 동작을 외우고 있잖아. 둘 다 쓰려고 하지 말고 디오니소스의 재능만 써.)”
은우는 놀랐다.
‘역시 보리가 전생에 유명한 수학자였다더니. 나와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 같아. 보리 이쁜 것.’
은우가 보리를 안고 뽀뽀하며 외쳤다.
“슈햐근 위대애.”
보리는 생각했다.
‘대체 거기서 왜 수학이 나오는 거야. 은우 너도 참 그 간단한걸. 사람들은 가끔 너무 복잡하게만 생각한다니까. 답은 의외로 쉬운 곳에 있는데. 관찰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지.’
은우는 몇만 번이나 연습하며 추었던 동작을 다시 했다.
[디오니소스의 흥]
‘오, 된다. 돼. 역시.’
은우가 원했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첫사랑 여자와 데이트를 앞둔 10대 소년이 거울 앞에 서서 머리를 빗는 듯한 그런 동작.
설렘과 신남을 동시에 표현하는 그런 동작.
‘완성이야. 이걸 위해서 내가 지난 이 주간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던가.
무대에서 그룹 형들보다 못한다고 할까 봐 얼마나 걱정했던지.
몸이 아파서 날렸던 시간도 있지만, 이 정도면 괜찮을 거야.
그래도 아직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있어.’
***
이철은 연습실에서 은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팠다고 하니 미안하네. 오늘은 꼭 너무 오래 연습하지 않도록 잘 살펴봐야지. 아기니까 컨디션도 잘 살펴보고. 물도 자주 주고. 간식도 먹여야 하고.
오늘은 체온계도 샀는데. 혹시 모르니 수업 중간에 힘들어 보이면 한 번씩 체온이라도 재야 하나.’
은우가 힘차게 배꼽 인사를 했다.
“안녕하떼여. 떤생님.”
“그래, 연습 많이 했어?”
“네, 떤생님. 어제뵤댜 죠아져떠요.”
이철이 슈퍼보이즈의 ‘러브러브’를 틀었다.
익숙한 음악 아래 은우가 백만 번도 더 연습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미 백만 번도 더 연습했던 그 동작이야. 이젠 자신 있어.’
[디오니소스의 흥]
이철은 놀랐다.
‘어제까지만 해도 어색하던 부분들이 있어서 걱정을 했었는데 신기하네.
어떤 동작은 너무 겉멋이 들어있어서 보기 불편했고, 어떤 동작은 너무 외운 것 같은 기계적인 반복의 느낌을 주어서 혼냈는데. 오늘 멋지게 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됐어. 신기하다. 어떻게 한 거지?
아플 때까지 열심히 연습하더니. 은우 근성이 충분해.
저 정도면 뭘 해도 성공하지.’
은우의 춤이 끝나자 이철이 박수를 쳤다.
“됐다. 은우야. 정말 잘했어.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어.”
은우는 신이 나서 말했다.
“떤생님, 져 댜른 노래됴 연습한 거 이떠여. 보여 드릴꺄요?”
은우가 노래를 틀었다.
이철은 놀랐다.
‘이건 본투 와일드의 ‘여름을 불러’잖아. 남성미가 물씬 넘치는 그룹인데 이걸 할 수 있을까?’
“여름이 왔어. 난 너와 함께 바다로 가. 풍덩. 모든 걸 던져.”
은우가 리듬에 맞춰 멜빵바지를 올렸다 내리는 춤을 추었다.
[디오니소스의 흥]
이철은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느낌을 살리기가 어려운 춤인데. 저걸 저렇게 살려내다니. 게다가 본투 와일드와는 다른 느낌이 있어. 본투 와일드가 껄렁껄렁한 듯한 느낌을 살려냈다면, 은우는 흥이 나지만 껄렁껄렁한 느낌은 없어. 좀 더 단정하지만, 더 리드미컬하다.
이 정도라면 리믹스곡을 만들어서 댄스 퍼레이드 같은 것도 가능할 것 같은데.
연말 시상식 무대가 정말 기대되는걸.’
은우는 춤 연습을 마치고 이철과 함께 연습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어머, 은우야.”
마침 HO 엔터테인먼트에 들렸던 백수희가 은우에게 말을 걸었다.
“은우야, 너 연말 시상식 때 어떤 옷 입을 거야? 눈나가 들었는데 은우랑 누나랑 동반 입장한대.”
“모르게떠요.”
은우는 생각했다.
‘옷은 주는 대로 입으면 되는 거 아닌가. 파리넬리일 때도 의상은 늘 의상담당자가 정해서 주곤 했는걸.
그 정도 큰 시상식이면 옷 주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백수희가 말을 이었다.
“은우야, 패셔니스타는 그러면 안 돼요. 팬들에게 어떤 의상을 보여주고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를 고민해야 하는 것도 스타의 임무란다.”
“음. 어려어요.”
은우는 생각했다.
‘옷은 그냥 아빠가 주면 입거나, 아님 좋아하는 캐릭터 위주로 입었었는데. 파란펭귄이나 아이론맨. 요즘은 공룡변신로봇이 인기고. 새로 공룡변신로봇 티셔츠를 사려고 했는데.’
은우가 물었다.
“시샹시게셔는 멀 이버요?”
“드레스나 턱시도 같은 걸 입어. 은우 턱시도 잘 어울리겠다. 눈나랑 같이 옷 보러 갈까?”
은우는 고민이 되었다.
‘이제 연습이 끝나서 집에 가려고 했는데 가는 길에 길동이 형아랑 아이스크림 집이나 스테이크 집에 좀 들리고 말이지.’
은우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백수희가 말했다.
“음, 눈나가 맛있는 스테이크도 사주고 아이스크림도 사주고, 그리고 은우 좋아하는 장난감도 사줄게.”
은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니에. 니에. 니에. 니에. 니에.”
은우는 백수희의 손을 잡고 말했다.
“어셔 갸요. 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