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춤생춤사 (2)
은우는 아침에 일어나 하는 단련 시간을 더 늘렸다.
“태건! 태건!”
찌르기는 더 절도 있고 힘차졌고, 발차기는 더욱 높이 올라가게 되었다.
‘확실히 체력이 늘긴 늘었어. 레벨 1이긴 하지만 아레스의 체력은 이제 30분 이상 지속할 수 있으니까.
이제 과거에 내가 만났던 재능은 모두 불러올 수 있어. 문젠 필요한 재능을 불러오는 건데. 이게 아직 쉽지가 않아.’
은우는 블루벨벳의 ‘노란맛’ 영상을 클릭했다.
[그리스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투시력 레벨 1. - 980/1000]
‘보이지가 않아. 그러니까 이 재능은 춤을 추는 데 쓸 수는 없는 거야.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거지.
다음 재능을 빨리 만나야 할 것 같아서 미술 시간에 많이 써서 숫자를 거의 채워놓긴 했는데.’
은우는 미술 시간마다 큰 활약을 했다.
덕분에 장미나 선생님은 은우를 미술 영재로 키우고 싶어 하는 터였다.
‘죄송해요. 선생님. 미술도 잘하는 건 좋지만, 미술만 잘할 수는 없어서요. 제 꿈은 화가가 아니라 월드 스타거든요.’
은우는 거울 앞에 서서 블루벨벳의 춤을 따라 해봤다.
‘동작은 거의 다 외웠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아. 아레스의 체력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거 같아. 오히려 아레스의 체력 때문에 동작에 힘이 너무 들어가서 우스워 보여.’
은우는 고민했다.
‘춤의 신은 누굴까? 아직 만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생각해 보니 지난번에 헤파이스토스의 투시력을 불러낼 때는 헤파이스토스의 모습을 떠올렸더니 정말로 헤파이스토스가 모습을 드러냈었지?
그렇다면 지금까지 만난 신 중에서 재능을 줄 만한 신을 불러볼까?
술의 신 디오니소스?’
은우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불러보기로 했다.
술에 취한 채 비틀비틀 걸어오는 빨간 코의 디오니소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딸꾹, 나를 왜 불렀어? 딸꾹.
오늘 아침까지 술을 마셨더니 술이 안 깨네. 이거 몸이 영 무거운데.
해장술을 해야 할려나.”
은우는 디오니소스에게 재능을 청하기로 했다.
“하비하비, 추믈 그러케 추고 시퍼요. 잘 추게 도아주떼요.”
“잘 찾아왔구만. 춤 하면 나지? 춤신춤왕.
모두들 술을 마시면 못 추던 춤도 잘 추게 된다니까.”
[그리스의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흥 레벨 1 – 0/1000]
‘이제 됐다.’
은우는 만족한 표정으로 연습실에 갈 시간만을 기다렸다.
***
길동은 은우를 차에 태웠다.
“자, 여기 은우가 좋아하는 젤라또 아이스크림. 많이 먹고 힘내요.”
“횬아, 걈샤햠니다.”
하루 사이에 표정이 밝아진 은우를 보니 만감이 교차하는 길동이었다.
‘어제는 죽을상이더니 하루 지났다고 다시 표정이 밝아졌네. 덩달아 내 기분도 좋아지고. 애 키우는 게 이런 건가. 내 애도 아닌데 점점 내 애 같은 기분이 들어. ‘남자친구’는 다 커서 그런지, 이렇지 않았었는데.’
은우는 생각했다.
‘오늘은 디오니소스의 재능을 준비해 뒀으니 어제완 달리 춤을 잘 출 거야. 선생님도 나를 다시 볼 거라고!’
기대에 차서 어서 빨리 연습실로 가고 싶은 은우였다.
이철은 노래를 틀어놓고 은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서대로라면 오늘은 어제보다 더 복잡한 스텝을 가르쳐야 하는데.
만약 스텝이 약한 거라면 웨이브나 다른 걸 가르쳐 볼 수도 있지.
혹시 모르니까 일단 조금씩 다 가르쳐 봐야겠다.
잘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니.
있다 강라온 대표님도 오신다고 하셨고.
그런데 은우는 연습 좀 했으려나?’
연습실의 문이 열리고 은우가 들어왔다.
“떤생님, 안녕햐떼요.”
이철은 은우를 보는 순간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어제는 어깨가 축 처져서 집에 가더니 오늘은 방긋방긋 웃네.
잘생기고 귀여우니 보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는구나.
그래, 대표님 말대로 춤만 되면 월드 스타 감인데 이대로는 아깝지. 더 해 보자.’
이철은 은우에게 말했다.
“어제 한 동작은 연습 많이 했어? 다시 같이 해 볼까?”
은우는 밝게 웃었다.
“네에.”
은우는 생각했다.
‘이제 재능이 있으니 두려울 게 없지.’
이철이 음악을 틀었다.
“어제 한 거 다시 해 보자. 자 빨리 걷기.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이번엔 손도 같이.”
[그리스의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흥 레벨 1 – 0/1000]
은우가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오, 이상하다. 동작이 갑자기 막 흘러가네. 물 흐르듯. 머리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움직여. 이게 뭐지?’
이철은 깜짝 놀랐다.
‘가르쳐 준 스텝이 아니라 다른 스텝을 밟고 있네. 오, 이거 뭔가 새로운데? 순서는 마구잡이로 엉켜있는데 느낌 있어. 이거 뭐지?’
이철이 물었다.
“어제 연습한 건 이게 아닌데. 어디선가 보고 연습해 온 거니?”
“음... 모미 움지겨떠요.”
이철은 생각했다.
‘갑자기 움직였다? 설마 이 아이가 음악을 느끼고 흥을 느끼는 뭐 그런 타입의 춤꾼인가.’
이철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순서는 잘 따라가지 못하지만, 흐름은 좋은 그런 스타일.’
이철이 신이 나서 외쳤다.
“음, 스텝은 그만하고 오늘은 웨이브를 해 볼게. 그러면 자, 나를 잘 봐.”
이철이 유연하게 웨이브를 탔다.
“다리를 45도 벌린 상태에서 앞가슴을 내밀면서 웨이브.”
상체에서부터 하체로 내려오는 웨이브 동작에 은우는 넋을 놓았다.
‘멋지다. 세상에 이렇게 멋있는 게 있었다니. 발레나 왈츠와는 다른 매력이 있잖아.
나는 춤을 잘 추고 말 거야.’
은우는 의지에 불탔다.
이철이 은우에게 말했다.
“해 봐.”
[그리스의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흥 레벨 1 – 35/1000]
‘몸이 막 리듬을 타듯 스스로 움직여. 그런데 선생님이 춘 것과는 다른데. 이게 맞게 하는 거 맞나.’
이철은 은우의 춤을 보며 생각했다.
‘느낌 있어. 아주. 그런데 가르쳐준 동작대로 추지 않고 있어. 왜 그럴까? 이렇게 되면 군무라든지, 백댄서들하고 동작을 맞춘다든지 그럴 때 반드시 문제가 생기고 말 거야.
왜 그러지?’
이철은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아주 잘했어. 어제 연습을 많이 하고 왔나 보다. 어제보다 많이 늘었어.
그런데 말이야. 왜 동작을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하지 않니?”
은우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디오니소스는 춤을 제멋대로 추는걸요. 제가 하는 게 아니라 재능을 빌려온 거라서 어쩔 수가 없다구요. 다른 재능을 빌려와야 하나?’
은우가 고민하고 있을 때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강라온이었다.
“연습은 잘되고 있어?”
은우는 긴장했다.
‘내 능력을 높이 사준 대표님을 실망시켜서는 안 돼. 그치만 아직 춤은 완벽하지 않은데 지금 오시다니. 아, 디오니소스는 춤신춤왕이 아니었어.’
은우는 속으로 슬퍼하고 있었다.
이철이 웃으며 말했다.
“연습을 많이 했는지 어제보다 늘었어요. 자, 이제 다른 동작을 해 보자.
가슴을 앞으로 쭈욱 밀어면서 S자를 만들고 등을 구부리면서 C자를 만들어.
빠르게 추면 이렇게, 이렇게.”
이철의 춤이 빨라졌다.
은우가 웃었다.
“떤생님, 지러이가타요. 꾸울렁, 꾸울렁.”
강라온도 웃었다.
“그러고 보니, 너 진짜 지러이가타. 꾸울렁, 꾸울렁.”
“대표님까지 웃으시면 어떻게 해요?”
“아, 미안해. 은우 말투가 너무 귀여워서 따라 해본 거야. 지렁이 같다니 그런 참신한 생각을.”
“그러면 이 지렁이가 더 빠르게 나갑니다.”
이철이 빠른 동작으로 웨이브를 반복해서 탔다.
“헤헤헤헤헤헤.”
은우가 숨넘어갈 듯 웃었다.
이철은 생각했다.
‘아기들은 정말 힐링을 주는구나. 연습하면서 이렇게 웃어본 지가 언제인지.’
은우의 해맑은 모습에 이철은 감동했다.
“자, 이제 그만 웃고 춤을 춰보자고.”
이철이 은우의 손을 잡고 끌었다.
“네, 땜님.”
은우가 음악에 맞춰 웨이브를 추었다.
꾸울렁꾸울렁.
강라온은 은우를 유심히 보았다.
‘아기라 그런지 매우 유연하네. 저 짧은 몸이 완벽한 S자와 C자를 그려내고 있어.
그런데 이철이 춘 것과 다르게 추고 있잖아.’
이철이 은우에게 말했다.
“자, 수고했어. 오늘 연습할 춤을 내일 다시 해 보는 거야.
그런데 은우야. 니가 추고 싶은 대로 추지 말고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춰야 해. 알았지?”
은우는 금세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떤생님.”
은우가 연습실의 문을 닫고 나갔다.
강라온이 이철에게 말했다.
“몸치는 아닌데. 어디가 몸치라는 거야?”
“하루 사이에 늘었더라고요. 분명 어제까진 몸치였는데 말이죠.”
“하루 사이에 늘었다는 게 말이 돼?”
“모르겠어요. 대표님이 말씀하신 대로 천재 일지도요. 그런데 늘긴 늘었는데 뭔가 좀 이상해요. 동작을...”
“동작을 자기 멋대로 변형해서 추고 있지. 근데 그게 뭔가 느낌 있어 보이긴 하고.”
이철이 커다래진 눈으로 강라온을 바라보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어쩌면 잘 다듬으면 대단한 춤꾼이 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런 느낌을 갖는다는 게 춤꾼으로서 쉬운 일은 아니니까. 하지만.”
“하지만 군무에서는 치명타일 수도 있겠지. 독무나 배틀에서는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맞아요. 최대한 더 다듬어 봐야죠. 아직 시작한 지 이틀밖에 안 됐으니 말이에요.”
***
은우가 집에 도착했을 때 창현과 영탁은 한창 이사 갈 집 이야기 중이었다.
“댜녀와뜸니다. 아빠, 삼촌.”
은우는 창현과 영탁에게 차례대로 뽀뽀를 했다.
그리고 발라당 하는 보리의 배를 찬찬히 만져주었다.
“오늘은 연습이 잘됐어? 은우야.”
“개차나써요. 그래도 더 해야 해요.”
“이사 갈 집 보러 갈 건데 같이 가지 않을래? 네 방 가구도 사야 하고. 어떻게 꾸밀지 생각도 해야 하는데.”
“나중에요.”
은우는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보리가 살랑살랑 은우의 방으로 꼬리를 흔들며 따라갈 뿐이었다.
창현과 영탁은 서로 바라보며 멍한 표정이었다.
“은우 저렇게 열심히 하는 거 처음 봐.”
“그래, 이제 겨우 4살인데 말이지. 저렇게 진지하다니.”
“방은 우리끼리 알아서 꾸며야 하나?”
“이사 간다고 들뜬 건 우리뿐이었나 봐.”
“은우는 방보다는 춤 연습이 우선인 것 같아.”
“저렇게 열심히 연습하다니. 은우는 뭐가 되도 될 놈이야.”
은우는 방에 들어와 양발로 눈을 가리고 있었다.
보리가 들어와서 말했다.
“멍멍!(요가하는 거야? 대체 그건 무슨 자세야.)”
“왜 안대는 지 모르게떠.”
“멍멍!(요새 춤 배운다더니 춤이 잘 안 돼?)”
“응. 어떠 재능이 피료한지 모르게떠.”
“멍멍!(춤은 동작이니까 동작을 외우려면 암기력이 좋아야 하는 거 아닐까?)”
보리의 말을 들은 은우의 눈동자가 커졌다.
은우는 정신을 집중하고 암기력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암기력은 머리가 좋아야 할 테니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좋겠어.
은우는 아테나의 생김새를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어깨에 올빼미가 앉아있고,
올리브가 열린 관을 머리에 쓰고 있고,
말투가 도도한.’
그때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신들의 가호를 받는 아이야,
내가 이미 너에게 축복을 주었는데 어쩐 일로 날 불렀지?”
은우는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추믈 잘 추고 시퍼요. 도아쥬떼요.”
아테나가 말했다.
“왜? 그래야 하지? 화술로는 모자랐나? 내 화술도 굉장히 고귀한 재능인데? 왜?”
은우는 생각했다.
‘역시 지혜의 여신이라 그런지 쉽지 않은 상대군. 그렇지만 칭찬에 약한 것 같으니 그 점을 이용할 수밖에.’
은우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케 잘하고 시픈데 잘 앙대요. 하비가 도아졌는데 안 대써요. 이샹하게 대써요.”
아테나는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디오스소스. 또 술에 취해서는 잘못된 재능을 빌려준 거 아니야? 하여간, 신이지만 같은 신이라고 말하기가 민망하다니깐.
내가 도와주지.
이거면 몸치라도 춤을 못 출 수가 없을 거야.”
[그리스 지혜의 여신 암기력 레벨 1 – 0/1000]
“걈샤함니다.”
은우는 신이 났다.
‘드디어 원하는 재능을 넣었다. 이제 시험해 보는 일만 남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