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할리우드로 가는 길 (4)
“야, 너 이 영상 봤어?”
“응 이거 보면 햄버거 먹고 싶어지지 않냐?”
“사아크 버거라는데 아직 한국에 안 들어왔대. 미국까지 가야 하나?”
“이거 먹으러 어떻게 미국까지 가냐. 와,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다. 비행깃값이 얼만데.”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근데 이 덩치 큰 사람 진짜 잘 먹는다. 먹방너투버 같아.”
“저 사람은 은우 매니저래.”
“은우?”
“왜 있잖아. ‘내일도 사랑해’ 드라마에도 나오고 ‘위대한 목소리’ 영화에도 나와서 요새 가장 핫한 아기.”
“아, 걔 완전 잘생겼더라. 무슨 애기가 그렇게 잘생겼어?”
창현은 지나가는 학생들이 하는 소리를 귀를 쫑긋하며 듣고 있었다.
‘사아크 버거 영상의 인기가 생각보다 너무 높아져 버렸어. 빨리 현지 회사와 계약을 맺어서 수입 판매권을 얻어야만 해.’
창현은 은우와 함께 미국에 가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매니저가 가더라도 나도 함께 갔었어야 하는 건가. 요즘은 음식 장사도 트렌드다 보니 다양한 문화를 접할수록 좋은 것 같아.
은우와 함께 갔었다면 벌써 계약을 따냈을 텐데.’
창현은 어서 빨리 ‘사아크 버거’의 독점 계약권을 따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길동은 강라온과 통화 중이었다.
“길동, 너 한국에서 스타 됐어.”
“제가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형님.”
“은우랑 같이 햄버거 먹은 영상이 한국에서 유명해져서 그게 움짤로 사방을 돌아다니고 있어.”
“아니, 은우라면 몰라도 제가 마구잡이로 흡입하는 게 뭐가 보기 좋다고 다들 돌려가면서 본대요. 그걸.”
길동은 생각지도 못했던 반응에 놀랐다.
‘학창 시절에도 고깃집에 가기만 하면 사람들이 놀라곤 했었지. 뷔페집에 가서 너무 많이 먹어서 쫓겨난 적도 있었으니까.’
전화기 너머로 강라온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뭐, 스타도 유명하고 매니저도 유명한 것도 나쁘지 않지. 근데 녹음은 어떻게 돼가?”
“잘 진행돼서 오늘 한 번만 더 진행하면 끝날 것 같습니다. 은우 실력 아시지 않습니까. 형님.”
“처음에는 걸그룹 매니저 안 시켜줬다고 울고불고하더니 이젠 자기 연예인이다, 이거지?”
“과거는 잊어주십시오. 형님. 저는 은우를 위해서 뼈를 묻기로 했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너만 믿는다. 들어오면 은우는 바로 댄스 교육 들어갈 거니까 귀국 후에도 컨디션에 무리 없도록 잘 관리 해주고.”
“댄스 교육이요?”
“음반 내야지. 노래도 잘하지만, 노래만 하는 건 월드 스타로서의 입지가 좁아지니까.”
“아, 참 형님. 디즈니 쪽에서 은우를 드라마에 캐스팅하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원래는 귀국하고 말씀드릴까 했는데. 형님이 방금 음반 얘기를 하셔서. 그럼 드라마는 거절하는 게 좋을까요?”
“야, 너 그렇게 중요한 얘기를 왜 귀국하고서 해. 듣자마자 바로바로 알려야지. 그렇게 좋은 기회를 듣자마자 차 버릴 순 없잖아.”
강라온은 생각했다.
‘은우를 월드 스타로 키우기 위해선 미국 시장에서의 인기가 꼭 필요해.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스타를 가깝게 여기고 좋아하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야.
디즈니 채널을 타고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전 세계로 뻗어 나간다면 나쁠 것 없지.
음반 준비와 병행하는 일이 문제일 거 같은데.
아무래도 은우를 중심으로 사단 하나를 꾸려줘야겠어.’
전화기 너머에서 길동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일단은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는 아무런 확답도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형님 제가 기사에서 보니까 ‘위대한 목소리’가 드디어 700만을 돌파했다는데 맞습니까?”
“그래, 어제 700만 명 돌파했어. 개봉한 지 3달이 지났는데 말이지. 영화관계자들이 하나같이 이례적이라고 평하고 있지. 보통 영화라는 게 개봉하고 나서 3주간 관객이 가장 많이 드는데 역주행을 하고 있으니까.
이번에 니가 올린 은우가 아침에 공원에서 목 풀기 노래하는 영상이 너투브에서 조회 수가 폭발하면서 그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
“제가 그 영상을 찍기를 잘했군요. 정말.”
길동은 뿌듯해하고 있었다.
“그래, 참 잘했다. 은우랑 관련한 영상은 되도록 많이 찍어놓도록 해. 내가 은우와 관련해서 생각하고 있는 마케팅 방법 중 하나가 너투브를 활용하는 거거든.”
“네, 알겠습니다. 형님. 열심히 찍겠습니다.”
길동이 전화를 끊었다.
“횬아, 햄버겨 며그러갸요.”
“매일 햄버거만 먹으면 지겹지 않아? 오늘은 린다 누나가 스테이크집에 데려가 준다고 했는데.”
“스테이크요? 오와.”
길동은 차를 몰고 린다가 알려준 스테이크집에 도착했다.
“이건 뭐지?”
길동이 숙성실 앞에서 발길을 멈췄다.
“와, 교기 진쨔 크댜.”
은우는 숙성실에 걸려있는 커다란 고기들을 보고 놀랐다.
길동이 말했다.
“이 정도로 많은 고기들을 숙성하고 있다면 분명히 맛집일 거야. 이 많은 고기를 다 소비하고 있다는 건 손님이 많다는 증거일 테니까.”
은우는 길동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스테이크는 피렌체의 티본 스테이크가 제일 맛있기로 유명한데, 미국식 스테이크는 어떤 맛일까. 그러고 보니 이번 생에서는 한 번도 스테이크를 먹어본 적이 없네. 파리넬리일 때 내가 파스타만큼이나 좋아했던 음식인데.’
길동이 은우의 손을 잡고 레스토랑의 문을 열었다.
“길동 씨, 은우야. 여기.”
린다가 미리 좌석에 앉아 손을 흔들었다.
“기대가 되네요.”
길동이 입맛을 다시며 자리에 앉았다.
린다가 말했다.
“미국에서 가족들끼리 많이 오는 대중적인 식당이에요. 값은 싸지만, 맛은 좋죠. 이 레스토랑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고기를 숙성해요. 밖에서 보셨겠지만, 숙성실만 해도 꽤 크죠.”
“그걸 보고 이미 기대치가 높아졌어요. 저도. 은우도.”
“뺠리 며꼬 시펴요.”
“메뉴는 뭐로 하시겠어요?”
“린다 씨가 추천해 주세요. 처음 오는 곳이라. 저는 평범한 한국 사람 입맛이니까요.”
“그럼 제가 주문하도록 하죠.”
린다가 웨이터를 불렀다.
“프라임 스테이크 미디움 레어 28 oz(제일 큰 사이즈). 립 스테이크 미디움 레어 28 oz(제일 큰 사이즈). 사이드로는 해시 포테이토요.”
웨이터가 식전 빵을 가져다주었다.
커다란 버터와 스테이크 소스가 앞에 놓였다.
은우가 빵을 집으려고 하자 린다가 말했다.
“빵은 조금만 먹으렴. 은우야 이 집은 스테이크가 맛있으니까.”
드디어 스테이크가 나왔다.
은우는 눈앞에 놓인 스테이크의 어마어마한 크기에 놀랐다.
‘티본 스테이크와는 확실히 다르구나. 스테이크 자체가 두껍고 매우 커. 그냥 고기 뭉텅이 같은데. 길동이 형아 얼굴보다도 훨씬 더 크잖아. 이렇게 두꺼운데 속이 익긴 익었을까.’
길동은 스테이크를 보더니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기가 참 제 스타일이네요. 맘에 든다. 너란 고기.”
린다가 웃으며 말했다.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고기는 크면 클수록 식감도 좋고 육즙이 살아있죠. 참, 오늘도 고프로 가져오셨어요?”
“그럼요.”
길동이 가방에서 고프로를 꺼내 린다에게 주었다.
“그럼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두 분은 열심히 드시기만 하면 돼요.”
길동이 커다란 스테이크를 삼등분하였다. 잘린 스테이크 사이로 핑크빛 육즙이 흘러나왔다.
“와아, 예술이네요.”
길동은 삼등분한 고기를 다시 열 조각으로 나누었다.
은우는 생각했다.
‘저렇게 잘라도 내 손바닥만 하네. 정말 크다.’
길동이 은우의 입에 고기를 넣어주며 말했다.
“자, 우리 은우부터.”
은우가 스테이크를 먹었다.
‘이 부드러운 육즙. 쫄깃쫄깃한 식감. 이거 정말 맛있는데. 지난번 먹었던 햄버거는 생각도 안 날 정도로 맛있어.’
은우는 신이 나서 손으로 고기를 집었다.
은우는 정신없이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정말 맛있나 봐요. 은우가 손으로 먹은 적은 없었거든요. 아직까지.”
린다가 옆에 있는 립스테이크를 자르며 말했다.
“이것도 맛보게 빨리 잘라줘야겠어요.”
린다가 립스테이크를 잘라 은우에게 주었다.
“쟐 먹게뜸니댜.”
은우가 립스테이크를 손으로 잡고 먹기 시작했다.
린다는 생각했다.
‘저 작은 입으로 야무지게 립을 들고 뜯는 거 봐. 스테이크 별로 안 좋아하던 나도 스테이크를 맛보고 싶어지네. 나도 어서 맛을 봐야겠다.’
은우가 갑자기 립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했다.
길동이 말했다.
“은우야, 갑자기 먹다 말고 춤??”
은우는 계속 춤을 추며 노래하기 시작했다.
“마딘는 꼬기 꼬기.
기뷴이 우율할 땐 꼬기꼬기.
꼬기는 두꺼여야 마디떠요.
꼬기만 며그면 시니 냐요.
꼬기만 이뜨면 시니 냐요.
인생은 꼬기꼬기.
우리 모두 꼬기꼬기.”
은우는 꼬기꼬기에 맞춰서 갈비뼈를 튕기는 동작을 했다.
그러자 춤을 추는 은우를 눈여겨보고 있던 레스토랑 안의 사람들이 은우의 동작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은우가 부르는 노래를 어떻게 익혔는지 ‘꼬기꼬기’ 부분에서는 다 같이 ‘꼬기꼬기’를 외쳤다.
와인을 한 잔 든 할아버지가 은우와 함께 꼬기꼬기를 외쳤다.
맥주를 들고 야구 프로를 보던 백인 아저씨가 은우와 함께 꼬기꼬기를 외쳤다.
중학생 자녀와 함께 스테이크를 먹던 흑인 아주머니가 은우와 함께 꼬기꼬기를 외쳤다.
린다는 생각했다.
‘은우는 정말 묘한 재주가 있어. 어디서든 노래를 부르구나. 이 아이의 삶 전체가 노래고 음악이야. 그리고 은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 신기하게도 다른 사람들도 함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 그곳이 어디라도 말이야.’
***
“수고하셨습니다.”
존이 ‘겨울나라 2’의 OST 녹음이 성공적으로 끝났음을 알렸다.
“걈샤함니다.”
“은우가 너무 잘해줘서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 또 인연을 이어갔으면 좋겠어.”
존은 앞으로도 은우와 많은 음악 작업을 지속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은우야, 너는 음악계의 샛별이 될 거야. 내가 음악감독으로 있으면서 정말 많은 가수들을 만났지만, 너처럼 아름다운 음색을 지닌 사람은 없었어. 네 재능을 썩히는 건 인류를 위해서도 손해야. 그러니까 꼭 열심히 해서 앞으로도 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노력하렴.”
린다가 은우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보고 싶을 거야. 그새 정들었는데.”
린다는 은우의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을 못 본다는 것이 너무나도 슬프게 느껴졌다.
“놀러 갈게. 한국에. 그리고 꼭 우리의 다음 제안도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어.”
은우는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죤, 린댜. 햔규게 뇰려와요. 우리 계속 연략해요.”
***
강라온은 이철에게 전화했다.
“철아, 나다. 잘 지내지? 요새 바빠?”
“에이 요. 대표님. 저야 늘 안무 짜면서 보내죠. 아시면서.”
“그치, 넌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안무가이자 춤꾼이니까. 내가 세상을 흔들 가수 한 명을 키워보려고 하는데 니가 가르쳐 볼래?”
“얼마나 주실 건데요?”
“너 돈 많이 벌었잖아.”
“에이, 대표님만 할까요?”
“돈 말고 설렘을 줄게. 돈만 보고 이 일 어떻게 하냐? 니가 만든 안무를 사람들이 따라 할 때 희열 느끼지 않아? 이 아기가 잘되면 이제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람들이 니 안무를 따라 할 거야.”
“월드 스타군요. 지난번 레이니처럼요.”
“그래. 전 세계를 무대로 뛰어야지.”
이철은 생각했다.
‘대표님 말이 맞아. 만드는 안무마다 성공하긴 했지만, 이제 뭔가 반복되는 이 루틴이 지겹게 느껴지기도 했어.
설렘과 활기가 필요해.
그런데 방금 아기라고 하셨나?’
이철이 대답했다.
“저도 대표님과 함께하도록 하죠. 그런데 방금 아기라고 하셨어요? 제가 잘못 들은 건가요?”
“아, 내가 키우려는 그 아기가 지금 4살이거든.”
“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