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49화 (49/257)
  • 49화. 할리우드로 가는 길 (3)

    은우는 노래를 마친 뒤 길동에게 말했다.

    “햄버거 머그려 갸요. 햄버거!”

    은우는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래, 미국에 온 김에 햄버거랑 스테이크는 실컷 먹고 가야지. 인생은 고기에서 고기 아니겠어. 은우가 뭘 좀 아는군.’

    길동은 린다의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었다.

    “주변에 맛있는 햄버거집 있나요? 은우가 햄버거 먹고 싶다는데 추천 좀 해 주세요.”

    린다는 길동의 전화를 받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일이라서 관광은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오신 김에 드시고 싶은 건 다 드시고 가는 게 좋겠네요. 현지인 맛집 위주로 추천 드릴까요? 아니면 한국인이 좋아하는 맛집 위주로 추천 드릴까요?”

    “한국인이 좋아하는 맛집이요.”

    길동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

    ‘난 토종입맛이라 괜히 외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 먹었다간 느글거릴지도 몰라.’

    린다는 빙긋 웃더니 차를 돌렸다.

    “그럼, 사아크 버거로 가시죠.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버거집이에요.”

    사아크 버거에 도착하자, 한국인들도 눈에 띄었다.

    “사실 LA는 미국 내에서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중 하나예요. 전 교포 3세구요. 부모님이 집에서는 꼭 한국말을 쓰게 했기 때문에 한국말과 영어가 모두 유창한 편이에요. 은우가 나오는 드라마랑 영화 다 봤어요. 그래서 제가 통역도 맡겠다고 했고요.”

    “자원하시다니 상상도 못 했어요.”

    “전문적인 통역가가 아니라서요. 전 디즈니 드라마국에서 일하거든요.”

    “디즈니에도 드라마가 있어요?”

    “그럼요, 세계로 방영이 돼요. 아기가 있는 집에선 모를 수가 없는데. 아직 미혼이신가 봐요.”

    린다가 엷게 웃었다.

    “아, 사실은 모태솔.....로.”

    길동은 생각했다.

    ‘쓸데없는 말을 해버렸네. 빨리 말을 돌려야지. 교포니까 저 단어의 뜻은 모르기를. 제발.’

    린다가 물었다.

    “모태... 그 단어는 처음 듣는 건데 무슨 뜻인가요?”

    “태어날 때부터 아주아주 멋지다라는 말이에요. 모태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다 라는 뜻이거든요. 한자말로.”

    “근데 솔로는 영어 아닌가요? 영어 같은데.”

    “아니요. 인터넷 용어예요. 하하하. 은우를 위해 돈도 받지 않고 통역을 해주시는데 햄버거는 제가 사겠습니다.”

    길동이 위기를 모면하여 한숨 돌리는 동안, 린다는 햄버거를 주문해서 가지고 왔다.

    “와와와와아.”

    린다가 들고 온 햄버거를 보고 은우가 손뼉을 쳤다.

    “아, 잠시만요.”

    길동이 가방에서 고프로를 꺼냈다.

    린다의 눈이 커졌다.

    “혹시 예능 촬영 같은 건가요?”

    “아니에요. 제가 개인용으로 일단 촬영해보는 건데. 아직 용도는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유용하게 쓸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오, 좋은 생각이네요. 좋은 매니저를 만났구나. 은우.”

    “감사함다. 헤헤, 이제 머글까요?”

    은우는 배가 고팠는지 햄버거를 손에 쥐고 자기 입보다 큰 햄버거를 앙 물었다.

    입이 작아서 입 옆에 소스가 다 묻었다. 그런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햄버거를 베어 물었다.

    린다는 생각했다.

    ‘맛있게도 먹네. 먹성도 참 좋다. 녀석. 키 좀 크겠어.’

    은우가 햄버거를 다 먹고 나자 은우의 얼굴은 소스로 초토화돼 있었다.

    “햐냐 뎌 머글래요.”

    볼록 나온 배로 은우가 하나 더를 외쳤다.

    “괜찮겠어? 배탈 나는 거 아닐까? 이거 다 먹고 아이스크림도 먹을 건데 조금 참았다 아이스크림 먹어.”

    “햐냐 뎌, 햐냐 뎌.”

    은우는 머리 위로 뻗은 검지손가락을 움직이며 계속 외쳤다.

    결국, 린다가 햄버거를 하나 더 사 왔다.

    “걈샤햠니다.”

    다시 시작된 먹방.

    은우는 작은 입이 터질 듯 햄버거를 베어 물었다.

    ‘와 맛있겠다. 나도 더 먹고 싶다.’

    길동은 이미 2개의 햄버거를 먹었지만, 은우가 먹는 것을 보니 햄버거 10개도 더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도 하나 더.”

    어느덧 고프로는 린다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둘 다 정말 대단해.”

    우걱우걱 기계처럼 묵직하게 햄버거를 먹고 있는 백킬로그램의 거구. 김길동.

    오물오물 작은 입을 빠르게 움직이며 다람쥐처럼 오물대는 작은 체구의 은우.

    ‘두 사람이 한 화면 안에 잡히니 정반대잖아. 근데 너무 재미있어. 이거 썩히기 아까운 영상이다.’

    은우가 드디어 항복을 외쳤다.

    “배 터죠.”

    햄버거 3개에 결국 멈춘 은우.

    그 옆에서 아직 멈추지 못한 푸드파이터 김길동.

    그의 외로운 전투가 계속되고.

    눈을 크게 뜨고 길동을 응원한다.

    “횬아, 쟐햔다.”

    길동은 이제 슬슬 배가 불러오던 찰나, 은우의 응원을 받고 스파트를 냈다.

    ‘이제 그만 먹으려고 했는데, 내가 많이 먹으니 은우가 신나나 보네.’

    길동은 햄버거 2개를 더 먹었다.

    “한 번에 햄버거 10개 먹는 사람 처음 봤어요. 이 매장 직원도 놀랐을 거예요.”

    길동이 정신을 차려보니 매장 안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 원더풀!”

    “어메이징!”

    “왓 어 서프라이즈!”

    그때 지점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세 사람 근처로 오더니 린다에게 영어로 뭐라고 한참을 이야기했다.

    길동은 고민했다.

    ‘너무 무식해 보이게 많이 먹었나. 외국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은 왜 저렇게 많이 먹냐고 흉보는 거 아니야? 정신 좀 차릴걸. 전에 운동할 때 먹던 습관이 있어서 생각 없이 먹으면 너무 많이 먹게 된다니까.’

    린다가 웃으며 말했다.

    “인증샷을 남기고 싶다고 하는군요. 만약 인증샷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면 오늘 먹은 비용은 모두 공짜로 해주겠대요.”

    길동은 한참을 고민했다.

    ‘돈을 안 내도 된다는 게 매력적인 제안 같긴 한데. 하지만 모델료로 생각하면 너무 싼 거 아니야? 아무리 내가 일반인이지만. 참, 그리고 보니 혹시 은우 사진도 함께 쓰고 싶어 하는 걸까?’

    길동이 린다에게 물었다.

    “은우랑 함께요, 아니면 제 사진만요?”

    린다가 지점장에게 이야기해 보더니 대답했다.

    “아기가 귀여워서 함께 있는 게 훨씬 홍보 효과가 좋아 보인다고 하네요.”

    “그럼 안 돼요. 저는 모르지만, 우리 은우는 슈퍼스타라서 몸값이 비싸다고 해주세요.”

    지점장은 린다와 한참 이야기하더니 돌아갔다.

    “은우처럼 이쁜 아기는 처음 본다고 하네요. 확실히 어딜 가든 눈에 띄는 외모기는 한가 봐요.

    혹시 이 영상 괜찮으면 제가 편집해 드릴까요? 재밌을 것 같아서요.”

    ***

    태현은 길동과 은우가 미국으로 떠난 후 은우 앞으로 들어온 컨택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건 드라마 대본.

    이건 뮤지컬 대본.

    이건 영화 대본.

    이건 예능 대본.

    종류별로 쏟아지니 고르기만 하면 되긴 되겠군.

    그런데 은우의 특기는 노래인데 노래 관련 방송이 없다는 게 아쉬운데.’

    태현은 다시 메일을 확인해 보았지만 모두 노래와 관련된 제안은 없었다.

    ‘이번 겨울나라 OST가 흥행하면 좀 다른 반응이 나오려나.

    하긴, 우리나라에서 아기가 부른 노래를 생각해 보니 크리스마스 캐럴집 같은 거밖에 기억이 안 나는군.

    아기 가수가 쉽진 않긴 하지.

    그런데 대표님은 대체 어떻게 은우를 세계적인 스타로 키우시겠다는 건지.

    재능이 대단하긴 한데, 아직 어려. 일본에서 성공했던 여자 솔로 가수인 지아가 만 13살 데뷔 아니었던가.

    그럼 아직 은우는 만으로 치면 9년이나 남았다는 건데.

    그 시기를 전부 연기로만 버틸 수도 없고.’

    태현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강라온이 태현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직 저녁 안 먹었지? 밥 먹으러 가자.”

    “구내식당이요?”

    “아니, 오랜만에 삼겹살에 소주.”

    ***

    강라온은 삼겹살을 먹으며 태현에게 은우에 대해 얘기 중이었다.

    “나도 알아. 재능은 있지만 쉽지 않은 길이라는 거. 정말 이건 내 인생에서도 모험인 게 틀림없어.”

    “배우로서는 의문이 안 들어요. 다양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고 할리우드는 우리보다 더 다양한 작품들이 있을 테니까.”

    “그치. 근데 난 은우를 가수로 키울 거고.”

    “OST나 시즌 송 같은 것을 부르는 건 지금도 충분히 가능하긴 해요.”

    “알아. 그렇게 천천히 인지도를 쌓다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아이돌로 데뷔시키는 게 안정적일 순 있겠지.”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가능한 길인 거 같아요.”

    “그치. 나도 모르는 건 아니야. 나도 그만두려고 했는데 은우가 내 꿈에 나오더라고. 내 꿈속에서 은우가 1등을 했다. 뭐, 꿈은 꿈일 수도 있지. 하지만 난 그게 내 마음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일단 되든 안 되든 부딪혀 보기로 했어. 태현아, 내가 어떤 놈인 거 같냐?”

    “네?”

    태현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워 다시 강라온을 바라보았다.

    “내 눈치 보지 말고 편하게 말해. 지금은 대표랑 직원 그런 거 아니니까. 니가 날 10년 넘게 봐 왔잖아. 그런 네가 보기엔 내가 어떤 사람 같냐고.”

    “무모하리만큼 열정적이고, 무식하리만큼 열심히 하고. 음악밖에 모르는 그런 사람요.”

    강라온이 감동한 듯 태현을 바라보았다.

    “그치? 나 헛살진 않았네. 그래. 그게 나야. 은우 귀국하면 춤 연습 시작할 거야.”

    태현이 한 방 맞은 듯 강라온을 바라보았다.

    “언제쯤 데뷔시키실 건지?”

    “춤을 가르쳐봐야 알긴 하겠지만, 늦어도 내년쯤엔 데뷔시켜야지.”

    태현은 생각했다.

    ‘대표님이 이렇게 생각했다는 건 은우를 위해 자신의 열정을 쏟아부을 거란 뜻이다. 그래. 누구든 처음 시도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곳에 길이 생기는 거겠지.’

    태현이 술잔에 소주를 따라 강라온에게 건배를 청하며 외쳤다.

    “월드 스타를 위하여!”

    ***

    은우는 녹음실에 와 있었다.

    녹음실에는 음악감독인 존과 작사가인 하워드, 통역을 도와줄 린다가 있었다.

    존이 말했다.

    “처음엔 편하게 한 번 불러보고, 그 뒤에 이야기를 해 봅시다.”

    은우가 노래를 시작했다.

    “두 유 여너 메이크 어 뜨노우볼? 두 유 여너 메이크 어 윈드?”

    하워드는 처음 듣는 은우의 목소리에 놀라 생각했다.

    ‘저처럼 순수하고 신비로운 음색을 지닌 가수를 본 적이 있던가.

    시작부터 시선을 잡아끄는군.

    음색만으로 시선을 압도해.

    역시 존이야.

    어디서 보석을 캐왔군.’

    존은 계속해서 입술을 뜯는 하워드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집중할 때마다 나타나는 하워드의 오랜 버릇. 이 경우엔 둘 중 하나지. 아주 좋거나, 아주 나쁘거나. 물론 지금은 전자일 거고. 다 듣고 나서 감상평이 궁금한데.

    발음 몇 군데랑 전체적인 곡의 흐름만 맞추면 금방 끝날 거야.’

    어느덧 노래는 중반을 향해가고 있었다.

    은우는 가사의 뜻을 음미하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집중하고 있었다.

    ‘유년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면서 힘을 얻는 노래야. 그래서 결국은 미래로 나아갈 힘을 얻는 거지.

    이 부분은 클라이막스. 새가 되어 날아가는 상상을 해야 해.

    날개를 펴라.’

    은우의 입에서 아름다운 고음이 흘러나왔다.

    “플라이 투 더 뉴 월드(새로운 세상을 향해 날아)

    아아아아아아~~”

    하워드는 입술을 너무 뜯어서 피가 날 지경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고음이야.

    게다가 음의 색깔을 변주하고 있어.

    가사를 자신이 원하는 빛깔로 끌어들이고 있다는 거야.

    저 어린 아기가 곡을 해석하고 있다는 것인가.

    외국어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존은 어느새 노래에 심취하여 눈을 감고 몸을 흔들고 있었다.

    ‘내가 작곡한 곡이지만 정말 아름답구나.

    사실 곡에도 운명이란 게 있지.

    열심히 작곡했지만 어떤 곡은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기도 하고, 또 어떤 곡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의외의 순간에 의외의 가수나 영화를 만나서 흥행을 하기도 하고.

    이 곡에 날개를 달아준 것 은우 너의 목소리구나.’

    노래가 끝나고 녹음실에는 한동안 적막만이 감돌았다.

    은우는 긴장했다.

    ‘곡을 과도하게 해석한 건가.

    발음이 나빴던 걸까.

    백만 번도 더 외웠는데.’

    그때 밖에 서 있던 하워드가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

    존도 이어서 박수를 쳤다.

    “짝짝짝.”

    린다도 박수를 쳤다.

    존이 입을 열었다.

    “정말 훌륭했어. 오랜만에 느낀 감동이었어.”

    “발음을 고쳐야 할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이 감동을 해치고 싶진 않으니 조금 쉬었다 하지.”

    은우는 생각지 못한 반응에 마음을 놓았다.

    존과 하워드가 커피를 마시러 나간 사이, 린다가 은우에게 말했다.

    “은우야, 내가 새로운 제안을 하나 할까 하는데. 디즈니에서 기획하고 있는 드라마가 있어. 제목은 ‘우리는 댄스 아이들’이고 오디션에 참가하게 되는 아이들이 주인공이야. 디즈니 채널을 타고 전 세계로 방영되는 거란다.

    오디션 영상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는 노래를 잘하는 아이를 찾고 있어. 그리고 마침 너에게 어울리는 역도 있어. 너에게 정말 좋은 기회가 될 거야. 함께 하지 않을래?”

    은우는 린다의 예상치 못한 제안에 고민하고 있었다.

    ‘너무 빨리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네. 디즈니 드라마면 목소리만 나가는 게 아니라 얼굴도 함께 나가게 될 테니 인지도도 쌓을 수 있고 분명 좋은 기회야.

    근데 생각해 보니 요샌 바빠서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들이 들어와 있는지 도통 보질 못했네.

    전에 아빠가 관리할 땐 보리랑 함께 차기작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그랬었는데.

    더 좋은 제안이 들어온 건 없을까.’

    은우가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자, 린다가 말을 이었다.

    “니가 맡게 될 역이 이 드라마의 주연이야. 물론 미국에 오랜 기간 있어야 하는 게 부담일 순 있지만, 너의 노래 실력을 확실하게 세계의 팬들에게 알릴 수 있어.

    물론 은우는 이제 매니저도 있고 소속사도 있으니까 우리도 그분들과 논의를 할 거야.”

    “걈샤함니다.”

    린다에게는 생각을 밝히지 않았지만, 은우의 가슴은 뛰고 있었다.

    ‘전생엔 유럽 최고의 가수였다면, 이번 생엔 세계 최고의 가수가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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