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월드스타를 향하여 (4)
은우는 천사들의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미술 수업 중이었다.
은우의 개인 수업을 맡아주는 장미나 선생님이 김 마리아 수녀님의 부탁으로 오늘은 천사들의 집 친구들의 수업도 맡아주게 된 것이었다.
장미나 선생님이 등장하자, 천사들의 집 친구들이 들썩였다.
준수와 시우는 장미나 선생님을 보면서 배시시 웃었다.
“떤땡님, 이뻐요.”
장미나 선생님은 준수와 시우를 보면서 방긋 웃어주었다.
“준수랑 시우는 미술 좋아해요? 오늘은 색종이 접기 할 건데 종이접기 좋아해요?”
준수가 말했다.
“조아하는데 어려어요.”
장미나 선생님이 대답했다.
“선생님이랑 같이하면 안 어려울 거예요. 같이 해볼까요?”
장미나 선생님은 은우, 혜린, 연아, 준수, 시우, 지호에게 색종이 접기를 설명하고 있었다.
“자, 경찰차 접기를 해볼 거예요. 먼저 여기 한쪽 면이 파란색이고 다른 쪽이 하얀 면인 색종이를 집어요. 우리가 만들 경찰차는 파란색 경찰차거든요. 그래서 파란색 면이 바깥쪽으로 가게 접어야 해요. 자 여기 선생님이 먼저 접은 완성본을 가져왔어요.”
장미나 선생님이 경찰차 견본을 들자 아이들이 함성을 질렀다.
“와아, 머씨쪄요.”
“견차차 가지고 시퍼요.”
은우는 장미나 선생님이 만든 경찰차를 유심히 보았다.
[그리스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투시력 레벨 1. - 80 /1000]
은우가 눈앞에 선생님이 경찰차를 접는 과정이 떠올랐다.
‘아, 네모로 접었다가 마름모가 되게 해서 4분의 일 지점을 다시 접는 거구나.’
은우는 경찰차 접기의 순서를 고스란히 기억할 수 있었다.
장미나 선생님이 다시 아이들에게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자, 먼저 이렇게 종이를 반으로 접고, 반으로 접은 곳에서 다시 반으로 접어주세요.”
“네에.”
큰 소리로 대답하는 아이들.
장미나 선생님은 아이들이 예뻐서 방긋 웃었다.
“다음에는 접은 종이를 이렇게 수직이 되게 방향을 바꿔서 놓고, 정사각형 모양이 되게 반대로 접어주세요.”
“네.”
혜린이와 연아는 잘 따라 하는데, 준수, 시우, 지호는 정신이 없는 표정이다.
“어려어요. 선생님.”
“자, 그럼 천천히 같이 해볼게요.”
장미나 선생님은 준수, 시우, 지호의 종이접기를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래도 준수가 가장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가장 빠르구나. 그러고 보니 은우는 뭐 하고 있지?’
장미나 선생님은 은우를 찾다가 은우의 종이접기를 보고 놀랐다.
‘가르쳐 준 적도 없는데 다음 과정까지 접었네. 또래 아이들은 눈앞에서 보여주고 따라 하는 것도 어려워하는데?’
장미나는 놀라서 은우에게 물었다.
“은우야, 혹시 경찰차 종이접기, 선생님이랑 하기 전에 너투브나 책 같은 데서 본 적 있니?”
“아니여. 이게 처으미에요.”
“처음인데 이렇게 잘했다고?”
장미나는 은우가 접은 경찰차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아이답지 않게 각을 딱딱 맞게 접었네. 순서가 뒤엉켰다면 접은 모양이 달라졌어야 하는데 그것도 아니고. 뭘까? 이 아이.
종이접기는 이해력, 사고력, 공간 지각력이 발달하기 때문에 많이 시키는데. 혹시 이 세 가지가 또래보다 발달한 영재가 아닐까?’
장미나의 머릿속에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까 요새 바닥 풍선 만들기가 유행이라고 하던데. 그걸 다음 시간에 시켜볼까? 그건 보통 초등학생이나 돼야 할 수 있으니 알 수 있을 거야. 근데 갑자기 바닥 풍선 만들기가 왜 유행하기 시작한 거지? 사실 그건 슬라임이 유행하고 나서부터 같이 유행하기 시작했지만, 5-6년 전부터 있던 건데.’
장미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질게요. 화장실 다녀오세요.”
“네, 떤생님.”
“와, 자유다.”
준수, 시우, 지호는 지겨웠었는지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장미나는 휴대폰을 꺼내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 바닥 풍선 만들기.
검색을 하자마자 너투브에는 관련 영상들이 떴다.
장미나는 그중에 조회 수가 가장 많은, 가장 위에 있는 영상을 클릭했다.
‘역시 은우구나. 바닥 풍선 만들기가 다시 유행한 것도.
눈썰미가 보통이 아니야. 초등학생이 몇 번 하는 걸 보더니 그대로 따라 하네.
어쩌면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 다른 지능도 높을지도 몰라.
수업 끝나고 수녀님께 말씀드려야 할까? 아니면 은우아빠?’
***
존은 회의에 들어가서 ‘더 위대한 목소리 파리넬리’의 OST를 틀었다.
“으마긔 시는 냐와 함께.
어떤 운명이 냘 갸로마떠라도 듀렵찌 안쵸.”
사라가 말했다.
“오, 좋은데요. 노래도 좋은데, 이 목소리가 맑고 곱고. 특히, 고음이 아름답네요.”
엠마도 동의했다.
“맞아요. 우리 OST에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목소리예요.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그런 설렘을 담은 목소리.”
하지만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헨리는 반대했다.
“노래는 잘하네요. 그런데 이탈리아어 발음이 좀 혀가 짧은 거 같기도 하고. 아기라면 모를까? 이렇게 가사를 부른다는 게……”
존이 말을 받았다.
“그래, 맞아.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네 살이야.”
회의에 앉아 있던 모두가 놀랐다. 사라는 들고 있던 펜을 떨어뜨렸다.
헨리가 큰 목소리로 물었다.
“네 살이라고요? 네 살짜리가 우리 OST를 부른다고요?”
존이 대답했다.
“하지만 노래를 잘하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하네만.”
헨리가 말했다.
“노래를 잘하지만, 우리 가사도 이렇게 혀가 짧게 전달될 거예요. 가사 전달이 얼마나 중요한데.”
존이 물었다.
“가사 전달은 중요하지. 하지만 우리 겨울나라 2의 주인공인 루시가 몇 살이지?”
헨리가 대답했다.
“그야... 네 살이죠.”
존이 대답했다.
“훌륭하군. 이보다 더 어울린 순 없지.”
엠마가 동의했다.
“맞아요. 발음이 조금 혀가 짧은 듯하긴 하지만, 대신 순수한 느낌이 더 잘 살아나는 것 같아요. 음색도 성인 가수들보다 훨씬 맑고 깨끗하고요.”
사라도 말을 이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우리 가사의 느낌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저 가수분은 이탈리아 사람인가요? 네 살이면 다른 외국어를 습득하기가 어려울 텐데.”
존이 대답했다.
“네 살. 이은우.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인. 아까 ‘위대한 목소리 : 더 파리넬리’의 음악 감독 에릭과 통화했는데, 이탈리아어를 너무 잘해서 놀랐다더군. 은우아빠 말로는 한국 땅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고 했다는 거야. 에릭 말로는 언어 천재 같다는데. 우리가 캐스팅 의사만 확실하다면 연결시켜 주겠다고 했어.”
헨리가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동양인이잖아요. 뛰어난 백인계 가수들을 내버려 두고 왜 그 작은 동양의 아이에게.
팝가수 셀린디옹부터 팝페라 가수인 사라 브라이트만까지 우리 OST를 부르고 싶어 한다구요.
1편이 너무 성공해서 우리가 연락하기만 하면 받아줄 텐데.
그 유명한 기성 가수들을 전부 다 버리고 그 작은 동양인 아기에게 우리의 미래를 걸자구요?”
존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바로 그 작은 동양의 나라가 ‘겨울나라 1’을 가장 많이 관람한 나라네. 미국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극장에 와서 우리 영화를 봤어.
OST 판매량도 가장 많았고, 디즈니의 상품 판매량 역시 어마어마하다네.
그리고 나는 내가 음악 감독으로 살아온 20년의 세월을 걸고 은우가 셀린 디옹이나 사라 브라이트만보다 못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하네.
우리 영화를 위한 최고의 선택이 될 거야.
자네, 아직도 나를 믿고 신뢰하나?”
헨리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
창현은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또 외국에서 온 컨택 메일인가?’
[Hi. I'm John, a film music director of Disney. ~~~]
‘디즈니라니? 그 유명한 디즈니?’
메일에서 눈에 띈 것은 디즈니라는 단어.
특히 작년에 ‘겨울나라 1’의 인기는 전 국민이 모두 알 정도였다.
‘진짜 한동안 그 노래가 나오지 않는 곳이 없었는데. 특히 아기들 있는 곳에선.’
창현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번역기에 메일을 붙여넣어 보았다.
[나는 디즈니의 영화 음악 감독인 존이다.
우리는 ‘겨울나라 2’의 OST를 부를 사람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나는 얼마 전 ‘위대한 목소리 : 더 파리넬리’의 노래를 듣고 은우가 OST를 부를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겨울나라 2’라고? 은우가 디즈니 OST를? 이건 어쩌면 ‘위대한 목소리’ 영화보다 더 큰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창현은 강라온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대표님, 은우에게 새로운 컨택 메일이 온 것 같은데요. ”
***
바쁜 스케줄 사이에 잡은 연락이라, 강라온은 자세한 내용을 듣지 못한 터였다.
창현이 말을 이었다.
“네, ‘겨울나라 2’의 OST를 불러 달라는 메일을 받았어요. 물론 자세히 해석해본 것은 아니고 번역기를 돌려서 읽은 것이지만.”
“실례가 안 된다면 잠시만 볼 수 있을까요?”
“네, 여기.”
창현이 메일 화면을 연 스마트폰을 강라온에게 넘겼다.
강라온은 이미 ‘캣걸스’의 미국 진출 때 함께 미국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어 영어를 매우 잘했다.
“[나는 얼마 전 ‘위대한 목소리 : 더 파리넬리’의 노래를 듣고 은우가 OST를 부를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은우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우리 노래를 더 아름답게 표현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은우가 영어로 된 가사를 어느 정도까지 소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앞서 ‘위대한 목소리’의 음악 감독 ‘존’과의 통화를 통해 은우가 이탈리아어를 누구보다 훌륭하게 소화한 것을 알고 있다. 때문에 우리와의 작업도 충분히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메일을 해석해서 읽으면서 강라온은 생각했다.
‘디즈니 OST라니? 그것도 디즈니에서 먼저 손을 내밀다니? 한국의 어떤 가수가 고작 4살이라는 나이에 이런 필모그래피를 갖는단 말인가? 역시 내가 사람을 제대로 봤지. 은우는 스타로 만들어질 아이가 아니라 스타로 태어난 아이야.
누구라도 은우의 재능을 알아볼 수밖에 없지.’
강라온이 창현에게 물었다.
“은우가 영어를 말할 수 있나요?”
“영어를 가르친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위대한 목소리’ 때도 이탈리아어를 가르친 적이 없는데, 이탈리아에 가자마자 이탈리아어를 알아 듣더라구요. 호텔리어 할아버지한테도 저 대신 감사 인사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창현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우리 은우가 못하는 게 뭐가 있겠어? 은우는 분명 언어 천재일 거야.’
창현의 말을 듣는 은우의 안색이 나빠졌다.
‘아빠 제가 이탈리아 말을 잘한 건 제가 전생에 이탈리아 사람이었기 때문이에요. 아직 제가 기억하는 전생 속에 미국 사람은 없다구요.
저 기대를 꺾어버릴 수도 없고, 전생을 말해줄 수도 없고 어떻게 하지?’
강라온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가르친 적 없는 나라의 말을 했다고요?”
강라온은 생각이 많아졌다.
‘나 나름대로는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지식을 쌓아왔다고 자부하는 편이지만, 저렇게 어린 아기가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경우는 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은우는 어쩌면 희대의 천재인 건가?
멘사 테스트를 해 보자고 해야 하려나.’
강라온이 말했다.
“일단 저희가 디즈니 측과 연락해서 일정을 조율하고, 계약 관련 사항도 진행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영화 촬영보다는 쉬울 거예요. 가사만 자연스럽게 외워서 부르면 될 테니까. 저희가 따로 영어 선생님을 붙여드리죠. 혹시라도 모를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니까요.
그리고 해외 촬영을 함께할 매니저도 필요하겠네요. 제가 괜찮은 사람이 있는지 빠르게 물색해서 붙여드리도록 하죠.”
강라온은 연예계에서 완벽주의자이자 노력파로 유명했다.
‘캣걸스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미국에 진출할 가수가 나오겠군. 지난번에 매니저를 붙여줄걸. 이렇게 빨리 다음 계약이 생길 줄은 몰랐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