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월드 스타를 향하여 (3)
은우는 깜짝 놀라 팬케이크 가루를 찾으러 재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딨지? 어딨지? 가만있어봐. 당황하니까 안 보이네.
시간을 늘리는 재능은 없나? 재능을 자유자재로 부리는 방법을 더 연습해야 한다니까.
꼭 필요한 재능이 없으면 불편해지니까.’
은우는 정신없이 재료실을 헤매다가 간신히 팬케이크 가루를 찾아냈다.
‘여깄었네. 찾아서 다행이다. 그 담엔 우유랑 계란.”
은우는 과자 때문에 무거워진 바구니를 바닥에 놓고 우유랑 계란을 찾으러 달렸다.
밖에서 모니터로 바라보는 팬들도 함께 긴장했다.
“어떡해 우리 은우. 과자 보고 좋아하다가 시간 다 썼어.”
“은우야, 힘내. 맛없어도 누나가 맛있다고 해 줄게.”
“은우 보니까 헨젤과 그레텔이 이해가 간다. 진짜 애들은 과자 준다고 하면 나쁜 사람도 따라갈 것만 같아.”
은우는 간신히 냉장고에서 우유와 계란을 찾아냈다.
길동이 말했다.
“이제 남은 시간은 1분, 1분입니다.”
은우는 바구니를 들고 뒤뚱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욕심부리다가 이게 뭐람. 과자는 담지 않았어야 하는데. 인생 3회차에도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난 정말 바보 같아.’
은우는 지쳐서 조리대 앞으로 돌아왔다.
팬들이 은우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은우야, 힘내. 뭐든지 우리가 다 먹어줄게.”
“아무거나 만들어 봐. 과자만 담아줘도 괜찮아.”
은우는 순간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고먑슴니다.”
은우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요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요일 아침마다 아빠랑 만들었던 대로 우유 2컵에 계란 하나를 푼다.
계란은 거품기로 잘 풀어야 해.
그리고 계량컵으로 팬케이크 가루 5컵.’
은우는 레시피를 잘 떠올려가며 반죽을 완성했다.
은우는 침착하게 프라이팬을 인덕션 위에 올리고 작은 숟가락으로 기름을 부었다.
“와, 은우 요리 잘한다. 집중하는 거 봐. 순식간에 분위기를 바꿔놨어.”
“조그만 손으로 야무지기도 하지.”
팬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은우가 프라이팬 위에 반죽을 붓고 노릇노릇하게 팬케이크를 굽고 있었다.
그 사이, 창현의 요리가 완성됐다.
김수원이 말했다.
“정해진 조리 시간은 은우 아버님 15분, 은우는 25분입니다.
방금 은우 아버님이 요리를 완성하셨습니다.
정말 맛있어 보이네요. 은우 아버님, 이 요리의 제목은 뭔가요?”
“이 요리의 제목은 아빠와 함께 춤을 입니다.”
“제목이 재밌네요. 왜 이런 제목을 지었나요?”
“이 요리에는 은우와 저의 추억이 담겨있습니다. 은우가 ‘위대한 목소리’ 촬영을 할 때 제가 은우를 따라갔었어요. 덕분에 매일 함께 밥을 먹었는데 그 시간들이 참 좋았어요.
은우는 젤라또랑 파스타를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제가 오늘 만든 요리는 젤라또 파스타입니다.”
“아, 은우가 좋아하는 두 가지를 함께 섞은 퓨전요리군요. 은우와의 추억이 담긴. 기대가 되네요.”
은우는 김수원의 음성을 들으며 팬케이크를 접시 위에 담고 있었다.
‘자, 이제 두 번째 요리. 모르고 코코아를 못 가져왔으니 우유에다 초코과자를 넣어야겠다. 내가 평소에 먹는 대로.’
은우는 그릇 위에 초코과자를 종류별로 조금씩 쏟았다. 그리고 스키틀즈도 조금 넣었다.
그리고 그 위에 우유를 부었다.
‘와, 저절로 침이 고이는 맛이네. 과자 때문에 아까 재료실에서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그래도 잘 만든 것 같아.’
은우는 초코과자 그릇을 팬케이크 그릇 옆에 나란히 놓은 후 벨을 눌렀다.
“다 해떠여.”
김수원이 은우의 옆자리로 와서 물었다.
“이 요리의 제목은 무엇인가요?”
“이료일 아치미요.”
“아, 일요일 아침. 왜 일요일 아침이죠?”
“이료일 아치메 실 때 며그면 조아요. 마으미 행보케져요.”
“아, 은우는 일요일 아침마다 팬케이크를 먹나요?”
“니예니예니예.”
요즘 들어 은우는 전에 하던 ‘녜에녜에녜에네네네.’ 대신에 ‘니예니예니예’라고 대답을 하고는 했다.
“니예니예니예.”
팬들도 은우의 대답을 따라 했다.
김수원이 웃으며 말했다.
“그 스타에 그 팬들이군요. 자, 그러면 지금부터 평가 시간을 갖겠습니다. 평가는 여기 초청된 팬 20분과 저 김수원이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팬들은 각자의 접시와 수저, 포크를 들고 나와 창현과 은우가 만든 음식을 맛보기 시작했다.
김수원이 말했다.
“각자 음식을 드신 후에, 여기 이름표가 적힌 판 위에 나눠드린 스티커를 한 장씩 붙여주시면 됩니다.”
의디딩은 창현이 만든 ‘아빠와 함께 춤을’을 먼저 맛보았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 젤라또를 파스타와 섞으면 너무 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 우유 배합을 잘했는지 상큼하면서 부드럽다. 정말 잘 만든 요리야. 역시 은우아빠 요리 실력이 대단하다.’
의디딩은 그다음으로 은우가 만든 ‘일요일 아침’을 맛보았다.
‘팬케이크는 평범한 맛이야. 근데 이 초코과자에 스키틀즈 넣은 거 너무 달아. 맙소사. 이걸 어떻게 먹는 거지? 대체. 당장 뱉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은우가 상처받겠지. 최대한 웃어야겠다.’
‘은우체고’는 은우가 만든 ‘일요일 아침’을 맛보았다.
‘달다, 달다, 정말 달다. 와 은우 단 거 정말 좋아하는구나. 역시 아기들은 단 걸 좋아한다고 하더니 은우 입맛도 다르지 않아. 놀라운 단맛이야. 너무 달아서 내 혀를 뽑아 버리고 싶다.’
‘은우포에버’는 은우가 만든 ‘일요일 아침’을 맛보았다.
‘오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단맛이네.’
김수원이 말했다.
“자, 이제 심사 종료의 시간이 다 되어 가니 모두 받은 스티커를 평가판 앞에 붙여주세요. 이제 저도 맛을 보겠습니다.”
김수원은 창현이 만든 ‘아빠와 함께 춤을’을 맛보았다.
‘첫맛은 달고 끝맛은 부드러워. 젤라또의 장점과 파스타의 장점을 모두 살린 요리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 조합을 살려냈다는 건 그만큼 이걸 만든 사람이 요리에 대한 센스가 뛰어나다는 말이지. 다음에 또 먹고 싶은 요리인데.’
김수원은 은우가 만든 ‘일요일 아침’을 맛보았다.
‘웃음밖에 안 나오는 맛이네. 또 먹고 싶지는 않을 거 같아. 그런데 뭐랄까? 되게 묘한 느낌이다. 이 요리엔 아기의 마음이 담겨있어. 마치, 아기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
맛이 없는데 이렇게 사람 기분을 바꿔 놓다니 묘한 요리야.
이 요리를 먹으면 자꾸 은우가 생각나.
생각해 보니까 이렇게 순수하게 만들어진 요리를 먹어본 적이 없구나.
이 요리를 만드는 순간의 은우는 참 행복하고 참 많이 웃고 있었을 거야.’
김수원은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었다.
‘이제 평가의 시간이 되었군. 다시 사회자로 돌아가야지.’
김수원은 재빨리 평가판 위에 스티커를 붙인 뒤 마이크를 잡았다.
“이제 평가 결과를 발표할 시간입니다. 평가판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평가판 결과 은우 아버님 3표, 은우 18표.
은우가 이겼습니다.
자, 시청자 대표분의 심사평 들어보겠습니다.”
돼지엄마가 마이크를 잡았다.
“은우 아버님이 만들어주신 ‘아빠와 함께 춤을’을 정말 훌륭한 요리였습니다. 은우 아버님의 발상도 참신했고 그것을 풀어낸 조리법 역시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은우가 만든 요리가 은우처럼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은우가 만든 요리를 최종선택했습니다.”
김수원이 말했다.
“그 말씀에 저도 동의합니다. 은우가 만든 요리는 정말 은우만이 만들 수 있는 그런 요리였어요. 은우 아버님의 요리는 지금 당장 메뉴판에 메뉴로 올려도 팔릴 만한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두 요리 다 모두 장점이 있었어요.”
창현이 말했다.
“사실 오늘 요리는 서바이벌이긴 했지만, 모두가 함께 즐거워했으면 하는 생각에서 은우 팬분들을 초대한 겁니다. 모두 충분히 즐거우셨죠?”
팬들이 대답했다.
“니예니예니예.”
김수원이 말했다.
“저도 오늘 은우와 은우 팬들을 만나서 매우 즐거웠습니다. 팬 여러분은 나가실 때 은우와 은우 아버님께서 팬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 있다고 하니 하나씩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은우가 팬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있었다.
“횬아, 눈냐, 걈샤함니댜.”
은우눈나는 은우가 준 선물을 보았다.
포장지에는 은우가 그린 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삐뚤빼뚤한 글씨로 ‘재롱이들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너무 귀엽다. 진짜.’
은우눈나는 포장지를 보자마자 웃고 말았다.
포장지를 뜯자, 은우가 만든 쿠키가 나왔다.
‘곰쿠키네. 은우 손으로 만들었나 곰 눈이 짝짝이야. 너무 귀여워.’
쿠키를 뜯자 쿠키 안에서 작은 쪽지가 나왔다.
- 재롱이들에게 행운이 함께 해요.
‘아, 눈물 나. 삐뚤빼뚤한 글씨 좀 봐. 재자는 너무 크고 롱자는 ㄹ을 너무 크게 써서 ㅇ은 쓸 자리가 없어 밑에 작게 숨어있네. 은우 너무 귀여워. 이 작은 쪽지가 뭐라고 눈물이 다 나지?
은우 팬 하길 정말 잘했다.’
은우포에버는 샌드위치의 포장을 뜯고 있었다.
‘은우의 팬이 돼주셔서 감사합니다. 은우와 제가 늘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있어요.’
창현의 손글씨가 담긴 편지.
‘오늘은 정말 우리가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날이었어. 은우 팬이 되길 정말 잘했다.’
***
겨울나라의 음악 감독 존은 겨울나라 2의 OST를 부를 새로운 가수를 고민 중이었다.
겨울나라 1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디즈니의 명성을 한껏 드높여 주었다.
‘영화도 영화였지만, OST가 정말 노른자였지.’
어른들도 알 만큼 큰 흥행을 한 OST는, 영화 음악상 전무후무한 수입을 거두었다.
‘재밌는 건 우리 영화가 가장 크게 히트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거지. 미국이 아니라.’
존은 이 점을 매우 흥미롭게 보았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 일본이나 중국보다도 작지만, 구매력이 큰 나라야. 티켓 파워를 보여주다니.’
존은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영화 기사를 확인하고 새로 나온 영화의 OST를 듣는 것이 일과였다. 그것이 전문가로서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트렌드한 감을 유지하게 해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자, 어디 보자. 이번에 나온 영화 중에서 재밌게 생긴 건 ‘위대한 목소리 더 파리넬리’, ‘애니멀 칩’, ‘라따또이’, ‘따우전드’, 자 무엇부터 들어볼까?’
존은 ‘위대한 목소리 더 파리넬리’의 OST를 클릭했다.
“으먀긔 시는 냐와 햠께.”
첫 구절은 들은 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발음이 이상한데. 발음으로 봐서는 아기 같기도 하고. 목소리도 너무 어려. OST를 부를 만한 나이가 아닌 거 같은데. 대체 누가, 잠깐만. ‘위대한 목소리 : 더 파리넬리’의 음악 감독이 누구지? 누구길래 이런 위험한 선택을.’
존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음악 감독을 찾고 있었다.
“어뗜 운명이 냘 갸로마떠라도 듀려찌 안쵸.”
존은 검색을 하다말고 한동안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발음은 좀 어눌하지만, 목소리가 맑고 깨끗해. 마치 영혼을 흔드는 것 같잖아.’
첫사랑의 여자에게 빠져들듯이, 존은 은우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음악 감독은 에릭이군. 역시 에릭이야. 그럼 그렇지. 그 친구가 보석을 찾아냈군. 숨은 보석이야. 어디서 이런 목소리를 찾아냈을까.’
존은 에릭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문득 자신의 영화의 OST가 떠올랐다.
“가만있어봐. 악보가 어딨지? 악보가?”
존은 컴퓨터 파일에서 악보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기계음으로 어느 정도 만들어 놓은 음악 파일을 틀었다.
‘이번 곡은 4옥타브 이상의 높은음들이 많아. 고음을 잘 내는 가수들을 물망에 올려놓고 있긴 하지만, 이 곡이야말로 저 노래를 부른 사람이 불러야만 해.’
존은 드디어 ‘겨울나라 2’의 OST를 부를 인물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