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재능을 지휘하다 (3)
은우는 아침에 일어나 노래 연습을 하고 있었다.
“기여운 뚜르르르르 배뷰른 뚜르르르
햄보캰 뚜르르르 아기 샤쟈.”
창현이 말했다.
“은우야. 그 노래 원래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니지 않아? 음이 완전 다른데.”
은우는 아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했다.
‘마음으로는 말이 구구절절 나오는데, 말로는 참 어렵다니까. 언제쯤 나의 사고를 뒷받침할 수 있는 언어 사용이 되려나.’
은우는 한참을 고민하다 말했다.
“은우갸 만드러떠. 노래를 그러케 뷰르려고.”
창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은우가 노래 연습하고 싶어서 일부러 음을 바꿨구나. 그러니까 가수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목 풀듯이.
그래서 저렇게 음이 막 높고 낮고 이상했었구나. 음정 연습을 해야 해서.”
은우는 깜짝 놀랐다.
‘대체 아빠는 내 말을 어떻게 저렇게 찰떡같이 알아들었을까? 아기 말 통역사라도 되려나?’
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러케 연습.”
은우는 마음을 놓았다.
‘암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돼서 좋구나. 이제 슬슬 아레스의 체력과 이별할 준비를 해야 하니까.’
창현은 은우가 누가 가르치지 않았는데도 노래 연습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대체 어디서 배운 거지? 너투브에서 알았나? 아이돌 연습생도 아니고. 4살짜리가 아침 7시에 일어나 음정 연습을 한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이 믿을까?’
***
오늘은 은우의 파리넬리 촬영 마지막 날.
이후의 촬영은 은우보다 나이가 많은 10대 연기자가 하기로 돼 있었다.
은우는 오늘의 촬영 장비인 비눗방울을 발견하고 신이 나서 만지고 있었다.
“와, 왕비누바우리다.”
그때 비눗방울에서 새로운 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우는 너무나도 눈이 부셔 신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은우는 생각했다.
‘드디어 레벨업이구나. 이제 더 이상 아레스의 체력을 쓸 수 없겠네. 내가 과거에 사용했던 재능을 불러오는 일도 힘들어지겠군.’
매의 얼굴에 사람의 몸을 한 이집트의 신 ‘라’가 입을 열었다.
“신들의 가호를 받는 아이야.
내가 너를 축복하노니, 너는 나의 권능을 이어받아
빛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을 것이다.”
[이집트 태양신 라의 빛 레벨 1–0/ 1000
당신은 당신의 감정을 빛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은우는 태양신 라가 준 재능이 궁금했다.
은우가 커다란 비눗방울 스틱으로 비눗방울을 만들었다.
“와, 이쁘다.”
은우는 비눗방울을 잡으려고 껑충껑충 뛰었다.
“아, 신난다.”
은우가 신이 나자 은우가 만든 비눗방울이 분홍색으로 바꾸었다.
‘오, 이 재능 재밌겠는데.’
오늘의 촬영장면은 파리넬리가 친구인 카를로와 함께 음악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
“카를로, 가치 가자. 나 이거 이따.”
“와, 비눗바울 디따 크다.”
“응, 머찌지? 가치 해보까?”
파리넬리가 비눗방울을 만들었다.
“와와!”
카를로가 신이 나서 웃으면서 비눗방울을 잡아서 터트렸다.
파리넬리는 카를로의 웃음소리가 바람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집트 태양신 라의 빛 레벨 1- 15/1000]
그러자, 비눗방울이 파란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비누바우리 파라케 변해떠. 너뮤 이쁘다.”
카를로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퍄란 새근 파.
노랸 새근 레.”
파리넬리가 이어서 노래를 불렀다.
“보랴색은 라.
쵸록색은 솔.
모든 새게는 노래갸 이떠요.”
카를로가 다시 노래를 받았다.
“우리 하께 노래해요.
아름댜운 냘드릉.”
파리넬리가 이어받아 부르는 노래.
“냐뮤니픈 솔솔솔.
뱌댜능 파파파.
해뱌랴기능 레레레레.”
파리넬리가 부르는 노래의 음계에 맞추어 비눗방울의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다.
카를로는 생각했다.
‘놀이동산에 온 것 같아. 색색의 비눗방울이라니 너무 신난다.’
카를로와 파리넬리는 색색의 비눗방울을 터트리며 웃었다.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촬영장에 서 있던 사람들도 아름다운 비눗방울의 빛깔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탈리아의 태양이 아름답다는 얘기를 듣긴 들었는데, 비눗방울마저도 달라 보이게 만들다니.’
‘은우가 노래를 잘하긴 하는구나. 노래 때문에 비눗방울마저 달라 보이다니.’
‘신의 축복인 걸까. 마치 이곳이 천국처럼 느껴져.’
몇몇 사람들은 입을 틀어막은 채, 조용히 은우와 카를로의 노래를 감상했다.
두 아이가 뛰어노는 장면은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너무도 아름다웠다.
‘도레미송’이 끝나고, 두 아이는 공원에 접어들어 새로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파리넬리의 시작.
“노래의 시느 어느 고세나 이쬬. 울고 인는 새들의 노래 쏘게도.”
은우는 동물의 신 판이 준 동물과의 의사소통 능력을 부르고 싶었다.
‘이 장면에서 의사소통 재능을 사용해서 새가 날아오고 함께 춤을 추면 멋질 텐데.
한 번 시도해 볼까? 안 되면 어떻게 하지?’
은우는 정신을 집중하고 판의 재능을 불러왔다.
[올림포스의 동물의 신 판의 동물과의 의사소통능력 레벨 1]
파리넬리의 노래를 알아들은 새들이 파리넬리 근처의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짹짹짹짹.”
“짹짹짹짹.”
서로 다른 종류의 새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화음.
“아릉댜게 피어인는 꼬들 쏘게도.”
파리넬리가 노래를 부르자 꽃들이 노래를 알아들었다는 듯이, 꽃잎을 흔들기 시작했다.
나무들도 나뭇가지를 잔잔하게 움직였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고 있나.’
‘요정의 가루가 흩날리는 것 같잖아.’
‘역시 은우구나.’
‘파리넬리가 살아온다고 해도 이보다 더 잘 부를 수는 없을 거야.’
은우의 마지막 촬영을 구경하러 온 팬들은 은우가 부르는 노래를 넋을 잃고 듣고 있었다. 은우는 생각했다.
‘된다. 된다. 하나의 재능이지만 불러올 수 있어. 하지만 점점 노래에 힘이 빠지고 있어서 더 이상은 무리야.’
결국, 은우는 판의 재능을 포기하기로 했다.
은우가 집중력을 놓자마자 새들은 숲속으로 사라져갔다.
‘아쉽지만 노래를 망칠 수는 없으니까.’
은우의 팬들은 새들이 날아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많은 새들이 신호라도 받은 듯이 숲으로 돌아가고 있어. 너무 아름답다.’
다행히 팬들은 그 모습마저도 아름답게 생각하고 있었다.
카를로가 이어서 노래를 불렀다.
“으마기 이떠서 우리 해보케.
냐의 해보글 뎌 챠란하게 빈냐게 햐는 으먁.”
파리넬리의 클라이막스.
“으먀그 시는 냐와 함께.
어떠 운명이 냘 갸로먀떠라도 듀렵찌 안죠.”
[이집트 태양신 라의 빛 레벨 1 – 238/1000]
은우는 노래를 부르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파리넬리일 때보다 더 커진 기분이야. 노래를 부를 때의 행복함.’
은우는 자신을 보기 위해 매일 촬영장에 나와 기다리는 이탈리아 사람들과 자신을 믿고 캐스팅하기 위해 미국에서부터 달려왔던 에릭을 보았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을 사랑해주는 창현도.
‘나는 내 행복을 노래할 거야.’
은우의 주변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찬란한 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빛이 주변 사람들에게 물들기 시작했다.
‘뭐지? 이 따뜻하고 편안한 기분은.’
‘너무 기분 좋아. 마치 엄마 뱃속에 다시 들어온 것 같아.’
‘나른하고 졸린 것 같은 기분인데 자기는 싫어. 이런 게 행복인 건가.’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이야. 너무 신나!’
은우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뜬 숫자를 보았다.
‘15, 22, 27. 모두 따뜻하고 평화로운 빛 안에 있어.’
[이집트 태양신 라의 빛 레벨 1 – 821 /1000]
***
촬영을 마친 뒤 은우와 창현은 카를루초 할아버지의 젤라또 가게에 가 있었다.
“하부지.”
은우가 카를루초 할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아이스크림 줄까?”
카를루초 할아버지는 매일 아이스크림을 사러 오는 은우를 기억하고 서비스를 주곤 했다.
“오느리 마지마기예요.”
은우는 카를루초 할아버지의 다리에 매달려 볼을 부볐다.
“보고 싶을 거야.”
카를루초 할아버지가 은우를 들어올려 안아주었다.
“악, 하부지 따가워요.”
은우는 카를루초 할아버지의 긴 수염 때문에 볼이 따가웠다.
까를루초 할아버지가 은우에게 말했다.
“면도를 할 걸 그랬구나. 네가 따갑지 않게.”
은우가 까를루초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하부지. 갠찮아요. 이거 서무리예요.”
은우가 주머니에서 선물을 꺼냈다.
카를루초 할아버지는 은우는 내려놓고 은우가 준 선물을 보았다.
작은 엽서에는 크레파스로 자신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삐뚤빼뚤 그려진 수염과 경계선을 벗어난 크레파스.
카를루초 할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그림을 보며 미소 지었다.
“너무 잘 그렸구나.”
카를루초 할아버지는 은우의 그림을 아이스크림 가게의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았다.
“고맙다. 내 평생 가장 큰 선물이구나. 니가 어디에 가든 행복을 빈단다.”
“하부지, 또 뵤러 오께요.”
은우가 울기 시작했다.
창현은 갑자기 우는 은우가 당황스러웠다.
“은우야, 왜 울어?”
“하부지랑 헤어지기 시려서요. 하부지 보교 시플 거니꺄.”
창현이 은우를 달랬다.
“또 보러 오자. 은우야. 네가 울면 할아버지가 슬프잖아.”
카를루초 할아버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슈크림 챠챠.”
은우의 눈물이 멈추었다.
곧이어 들어온 손님들도 까를루초 할아버지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아슈크림 챠챠.”
모두들 젤라또를 먹으며 노래를 불렀다.
“아슈크림 챠챠.”
은우가 눈물을 멈추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카를루초 할아버지가 박수를 쳤다.
“아슈크림 챠챠.”
창현도 은우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슈크림 챠챠.”
모두들 젤라또를 먹으며 노래를 불렀다.
“아슈크림 챠챠.”
“하부지, 아슈크림 주세요.”
까를루초 할아버지가 은우에게 젤라또를 주었다.
은우가 젤라또를 받으며 방긋 웃었다.
“하부지, 아슈크림. 체고.”
창현은 떠나기 전에 카를루초 할아버지에게 중요한 말을 꺼냈다.
“카를루초 할아버지,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어서 제가 할아버지의 아이스크림을 한국으로 가져가서 팔고 싶은데요.”
“내 젤라또는 세계 최고의 맛이지. 하지만 만드는 방법은 비밀이야.”
“방법은 가르쳐 주시지 않아도 돼요. 할아버지가 만드시면, 제가 팔기만 하겠습니다.”
창현은 카를루초 할아버지의 젤라또가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창현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탁아, 열정 떡볶이 매출은 어땠어?”
“매출은 본점과 분점 두 곳 모두 상승 중이야. 이번에 내놓은 신메뉴 시래기 떡볶이가 반응이 괜찮아.”
“다행이네. 열정 커피숍은?”
“다행히 잘 자리 잡고 있어. 커피 맛이 나쁘지 않은가 봐. 위대한 목소리 촬영 때문에 은우가 국내에 없다는 걸 안 국내 팬들이 코스처럼 들리기도 하고. 커피숍 안에 은우 사진을 인테리어로 장식했더니 팬들이 은우 사진 보는 재미로 자주 들리기도 해.”
“영탁아 이번에 내가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수입하려고 하는데 크로아상이랑 함께 말이지. 은우를 따라 이탈리아에 갔더니 맛있는 것들이 정말 많더라고. 그리고 이번에 은우가 아슈크림 챠챠 댄스라고 춤을 추었는데 그게 영화 홍보에도 활용될 모양이야.”
“잘됐다. 그럼 인기를 끌 수 있겠네. 난 어릴 때부터 아이스크림 가게 꼭 해보고 싶었는데. 왜 그런 거 있잖아. 매일매일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행복해질 것 같은.”
“나도 그런 생각 했었어. 그 41 아이스크림 가게를 보면서 말이지. 그 41 아이스크림 맛있는데. 비싸서 먹을 수 있는 날은 거의 없었지만.”
“생각만 해도 신난다. 아이스크림 가게 인테리어는 내가 할게. 크로아상도 맛보고 싶다. 이탈리아 크로아상은 정말 맛있을 거 같아.”
“크로아상을 바탕으로 해서 여러 가지 다른 버전의 크로아상을 만드는 일도 가능할 것 같아. 속에 버터를 넣거나 블루베리 등 다양한 잼을 넣거나 하는 버전으로 말이야.”
“그것도 좋은데.”
“크로아상은 열정 커피숍에 케이크 빼곤 다양한 메뉴가 없는 거 같아서 우선은 커피숍 사이드 메뉴로 넣을 거야. 아이스크림 가게 인테리어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