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31화 (31/257)
  • 31화. 재능을 지휘하다 (1)

    은우는 호텔방에서 아레스의 체력을 실험 중이었다.

    ‘진짜 이 재능 아니었으면 해외 촬영을 어떻게 했을까.

    촬영할 때마다 체력 소모가 커서인지 50씩은 올라가고 있는 것 같아.

    근데 이 재능은 빨리 다 써버리면 아쉬운 재능이라 레벨업하기가 아쉬운 재능인데.

    더 오래 가지고 있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재능을 한 번에 2, 3개씩 가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전쟁의 신 아레스의 체력 레벨 1 – 520 /1000]

    ‘이대로면 아레스의 체력은 약 24일 후면 레벨업을 하는구나. 그때면 아마 ‘위대한 목소리’의 촬영은 끝날 거 같은데. 그럼 다시 아기의 몸으로 돌아가는구나.

    다른 것보다 이 목소리 정말 가지고 싶은데.’

    체력이 늘어나니 울림통이 늘어나서 성량이 평소의 3-4배는 커진 상황이었다.

    ‘재능을 준 건 신의 축복인데, 레벨업을 하고 나면 다시 그 재능을 불러올 수 없는 건 불편한 것 같아.

    게다가 다음에 어떤 재능을 만날지도 알 수가 없고.

    내가 원하는 재능이나 필요한 재능을 불러오는 방법 없을까?

    한 번 불러온 재능도 다시 불러올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

    백수희 누나에게 재능을 빌려주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처럼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재능을 빌려주기도 하고 말이지.’

    은우는 가만히 자신이 썼던 재능들을 생각해보았다.

    ‘가장 처음에 받았던 재능은 부처님의 염화미소였지. 그 재능으로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어. 김미자 할머니, 백수희 누나도 그렇고.

    가만있어 봐. 그때 그 염화미소가 어떤 느낌이었더라.’

    은우는 아레스의 체력을 이용해 정신을 집중했다.

    ‘마음을 평화롭게 하고 온 세상을 위해 기도해야지.’

    [부처님의 염화미소 레벨 1]

    ‘오, 된다. 된다.’

    은우는 재능을 불러올 수 있음에 놀랐다.

    ‘사용했던 재능은 불러올 수 있네. 그런데 체력 소모가 너무 심각하다. 30이나 사용했어. 하루 촬영한 거보다도 더 심하네. 이러다 곧 레벨업하면 안 되는데.’

    은우는 아레스의 체력을 다시 만나지 못할까 봐 조바심이 났다.

    ***

    촬영장에 도착한 은우는 오늘의 촬영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오늘은 알베르토와의 대결장면을 이어서 촬영하겠군. 지난번 촬영 때는 알베르토가 멋진 피아노 연주로 청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 다들 나의 연주를 듣기도 전에 알베르토에게 장미를 주고 싶어 했었으니까.

    오늘 촬영은 노래가 가장 중요하다. 노래를 통해 나의 진정한 가치를 보여줘야만 해.’

    촬영이 다시 시작되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파리넬리에게로 향했다. 파리넬리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노래를 시작했다.

    “거루칸 댱신의 샤랑 아네 나는 싸여 이떠. 태여냘 때부터 냐를 아나주어떤 빋. 그 비츠냐는 몰라떤 거죠.”

    은우는 노래를 부르면서 광장에 서 있는 사람들의 눈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저마다의 고민들이 그들의 눈동자에 서려 있었다.

    ‘엑스트라의 삶은 너무나도 힘들어.’

    ‘왜 내 여자친구는 바람을 피웠을까. 내가 뭘 잘못했지?’

    ‘어제 본 면접시험에 합격했을까.’

    [그리스 음악의 여신 칼리오페의 감동. 레벨 2]

    [올림포스의 천마 페가수스의 시인의 상상력 레벨 2]

    은우는 전생에 이탈리아에서 살았기에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종교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를 불러오기로 했다.

    은우가 생각하는 ‘용서’의 테마는 인류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채 어머니 성모 마리아를 만나는 장면.

    사람들은 은우의 노래 속에서 울면서 웃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보았다.

    아들의 고통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과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진 그 위대한 결정에 대한 자랑스러움.

    ‘노래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성모 마리아가 떠올라. 분명 가사에는 마리아가 등장하지 않는데.’

    ‘너무 따뜻하고 인자한 미소야.’

    ‘제 삶의 고통도 끌어안고 더 이겨내 볼게요.’

    광장에 서 있는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파리넬리의 노래의 아름다움에 취한 눈물 같기도 하고, 커다란 깨달음에 취한 눈물 같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손에 쥐어져 있던 장미가 파리넬리의 앞에 한 송이, 두 송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결국, 알베르토의 앞에는 10송이도 안 되는 장미가 놓였고, 파리넬리의 앞에는 파리넬리의 키를 덮을 만큼 많은 장미가 쌓여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터지는 사람들의 함성.

    “어디 가면 이 아이의 노래를 들을 수 있소?”

    “이 아이의 이름이 파리넬리요?”

    “내 어머니와 함께 파리넬리의 음악을 듣고 싶소. 어떻게 하면 되오? 얼마를 드리면 되오?”

    파리넬리 앞으로 수많은 공연 요청이 쏟아지고 있었다.

    알베르토는 멍한 표정으로 파리넬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내가 들은 건 뭐였을까? 이것이 내가 연주한 노래였단 말인가?’

    알베르토는 파리넬리가 부른 용서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피아노곡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정의 선율을 저 작은 아기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순수하고 맑으며, 잃어버린 꿈을 생각나게 하는 소리군.’

    알베르토는 파리넬리의 역을 맡은 저 작은 동양의 아기가 어쩌면 자신보다도 더 유명한 음악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 8살. 저 아기는 고작 4살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노래를 부를 수 있구나. 게다가 천부적인 곡 해석 능력은 절대 4살 아기라고 볼 수 없었어.’

    알베르토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하던 천재라는 칭호의 의미를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연습하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

    ‘저 아기 때문에 내가 천재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되네. 아마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볼 때 이런 기분이었겠지.’

    살바토레는 흐뭇한 표정으로 파리넬리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린 밑그림에 훌륭하게 채색을 했어. 색감이 너무 뛰어나서 사실 어떤 밑그림을 그렸더라도 성공할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크리스토퍼는 파리넬리의 노래를 들으며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파도를 만났다.

    ‘성당에 마지막으로 간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네. 그래도 세례명도 받고 열심히 다니던 때도 있었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론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군. 오늘 촬영이 끝나고 한번 가봐야겠군.’

    모태신앙을 물려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시울이 촉촉해진 크리스토퍼였다.

    ***

    촬영이 끝난 후 은우는 혼자 호텔방에서 쉬고 있었다.

    ‘아빠가 한국에서 온 전화통화가 길어졌기에 망정이지.’

    창현은 이탈리아에 온 이후에도 사업 구상으로 바빴다.

    ‘아빠가 바쁜 게 나에게는 도움이 돼. 내가 뭘 하는지 꼬치꼬치 캐물으시면 그때부턴 더 복잡해지니까. 그러나저러나 오늘 체력을 얼마나 썼을까.’

    [전쟁의 신 아레스의 체력 레벨 1 – 750 /1000]

    은우는 재능창을 보고 놀랐다.

    ‘200이나 썼구나. 하긴 서로 다른 재능을 2가지나 끌어왔고, 둘 다 레벨 2의 재능이긴 했지. 이대로면 얼마 못 버티겠는데.’

    근심이 깊어지는 은우였다.

    ‘사용했던 재능을 불러올 수 있게 된 건 큰 성과인데.

    아레스의 재능이 사라지고 나면 더 이상 과거의 재능을 불러올 수 없다니.’

    은우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

    피아노와의 대결을 촬영한 이후로, 촬영장 근처에 이탈리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파리넬리 역을 맡은 아기가 노래를 그렇게 잘한대.”

    “그 노래를 한번 들으면 마음속에 있던 근심이 다 사라진다는군.”

    “게다가 외모는 또 어떻고? 아기천사처럼 생겼다던데.”

    예상치 못한 인기에 놀란 것은 크리스토퍼였다.

    “인지도가 없던 배우가 촬영장에서 팬을 몰고 다니다니.”

    은우는 유럽에서는 알려진 적이 없는 신인이었다.

    “은우의 목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반할 수밖에 없어. 나도 그랬으니까.”

    에릭이 크리스토퍼의 말을 거들었다.

    은우가 촬영장에 등장하자, 사람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은우의 이름을 외치기 시작했다.

    “은우.”

    “동양에서 온 천사.”

    “세기의 신동.”

    찬사와 함께 은우의 앞에는 각양각색의 음식과 선물이 놓이기 시작했다.

    마음이 따뜻하고 정 많은 이탈리아 사람들. 그들은 유럽인들 가운데 가장 한국인과 성격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민족이었다.

    손수 만든 크루아상을 들고 온 할머니가 은우에게 크루아상을 내밀었다.

    은우는 크루아상의 향긋한 냄새에 정신을 잃었다.

    “그라치에.(감사합니다.)”

    은우는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크루아상을 먹기 시작했다.

    달콤하면서도 쫄깃하고, 바삭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

    [그리스의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생동감 레벨 1]

    은우가 크루아상을 먹는 것을 보는 사람들의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 크루아상 먹고 싶다.’

    ‘왜 저렇게 맛있게 먹는 거야.’

    ‘귀여운 아기가 맛있게 먹기도 하다니.’

    사람들은 모두 은우가 먹는 크루아상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디떠요. 할머니.”

    은우는 달려가서 할머니를 꼭 안아주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친한 사람들끼리 포옹을 해주는 것이 문화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고마워서. 이게 얼마만의 포옹인지. 우리 아들이 죽고 나선 쭉 외로웠다우.”

    할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올해 65세의 코르시니 할머니에게는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할머니에게 손주 같은 은우의 포옹은 큰 의미로 다가왔다.

    은우는 그런 할머니가 안쓰러워 한 번 더 안아주었다.

    “너무 이뻐.”

    할머니는 은우를 안고 울고 웃었다.

    ***

    오늘의 촬영장면은 알베르토와의 대결 이후, 파리넬리를 찾아온 새로운 도전자에 대한 내용이었다.

    “살바토레. 내가 자네의 아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하지.”

    “뭐, 자네라면 설사 진다고 해도 명예가 땅에 떨어지진 않겠지. 이탈리아 안에서 바이올린으로 자네를 이길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말이야.”

    안드레아 역을 맡은 미국인 글랜은 현존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중 가장 파가니니와 유사하다는 평을 받는 바이올리니스트였다. 파가니니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연주실력이 뛰어났던 세기의 피아니스트였다.

    크리스토퍼가 글랜을 캐스팅한 것 역시 그러한 이유였다.

    “글랜, 안드레아는 자신감에 가득 찬 사람이야.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고, 실패에 대한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는 그런 사람. 그렇기 때문에 독선적이지만 때론 해맑기도 한 사람.”

    글랜은 크리스토퍼의 말을 떠올리며, 바이올린을 잡고 술집 안에 만들어져 있는 간이무대로 올라섰다.

    “여기 올라오기 전, 저는 파리넬리에 대한 말들을 들었습니다. 하나같이 놀라운 찬사들뿐이더군요. 하지만 저는 파리넬리가 두렵지 않습니다. 오늘 저의 바이올린이 뛰어넘고자 하는 것은 파리넬리가 아니라, 저의 바이올린 그 자체이니까요.”

    안드레아는 보란 듯이 바이올린의 4개의 줄 중 G선을 제외한 3개를 뜯어버렸다.

    “맙소사.”

    “뭐 하는 거야. 악기의 줄을 뜯다니.”

    “제정신이야?”

    “저러면 연주할 수 있는 음이 없어지잖아.”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안드레아를 비난했다.

    “저는 제가 가진 이 G선 하나로 파리넬리를 이길 겁니다.”

    안드레아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비장함에 관객들의 술렁거림이 누그러들었다.

    “흥미진진한데.”

    “그래도 난 파리넬리를 믿어. 지난번 알베르토를 이겼을 때처럼 감동적인 노래를 선사할 거야.”

    “어른이 아기를 상대로 뭐 하는 거야. 대체.”

    “하지만 만약 안드레아가 G선 하나만으로 연주를 한다면, 그것 역시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파리넬리가 안드레아의 도전에 응했다.

    파리넬리는 작은 손에 치즈를 든 채로 일어나 말했다.

    “도저네 응하게또. 냐도 정정당당하지 모탼 거슬 시려하기 때뮤네. 안드레아갸 원하는 조껸하나를 뱌댜드리게쏘.”

    은우는 최대한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으나, 보는 사람들은 비장한 대사와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말투 때문에 탄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너무 귀엽잖아, 저 말투. 저렇게 귀여운 이탈리아어 들어본 적 있어?”

    “아니, 나는 이탈리아어가 저렇게 사랑스러운 언어인 줄 몰랐어. 그동안 프랑스어가 사랑스럽다고 생각해서 프랑스 여자를 만나고 싶어 했는데, 그게 아니었군.”

    “아니, 프랑스 여자라고?”

    의도치 않게 커플의 싸움까지 이끌어내게 된 은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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