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30화 (30/257)
  • 30화. 세상이여, 내가 간다 (4)

    첫 번째 촬영장면은 그의 아버지 살바토레가 파리넬리의 재능을 깨닫는 장면.

    은우는 살바토레 분장을 한 배우를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아버지.’

    살바토레 역을 맡은 배우는 전생의 아버지보다 잘생기고 키가 컸지만, 다시는 만나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아버지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셔서 제가 얼마나 보고 싶어 했는지 몰라요.’

    살바토레는 36세란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그리고 연달아 닥친 집안의 경제적 위기.

    그런 위기가 파리넬리를 카스트라토의 삶으로 이끌었다.

    ‘아버지.’

    은우는 자꾸만 목이 메여왔다.

    감독인 크리스토퍼가 은우와 살바토레 역을 맡은 배우에게 필요한 사항을 주문했다.

    “자, 이번 장면은 살바토레가 아들 파리넬리의 천재성을 깨닫는 장면이야. 매우 중요한 장면이니까. 잘 살려야 해.”

    작곡가이자 성당의 지휘자였던 살바토레는 며칠 동안 풀리지 않는 악상에 도돌이표를 찍고 있었다.

    ‘아, 이렇게 해도 이상하고, 저렇게 해도 이상하고.’

    살바토레는 자신이 작곡한 악보를 북북 찢었다.

    ‘신의 용서를 표현해야 하는데. 자꾸만 알고 있는 멜로디만 떠오를 뿐이야.’

    살바토레는 자신의 재능에 절망하다가 잠이 들었다.

    어린 파리넬리는 살바토레가 치던 피아노 멜로디를 기억해냈다.

    “음음음음음음.”

    허밍으로 낮게 곡을 따라부르다 자연스럽게 그다음 음계도 연결을 시켰다.

    “음음음음음음 음음음음음.”

    파리넬리는 아버지가 작곡한 음악이 마음에 들었다.

    ‘따뜻함이 느껴지는 음악이야. 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해가 뜨는 것을 보는 것처럼 희망을 안고 살아가면 좋겠어.’

    잠에서 깬 살바토레는 어린 아들이 흥얼거리는 선율을 들으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음음음음음 음음음음음.”

    놀랍게도 아들의 입에서 자신이 며칠 동안 막혀서 완성하지 못했던 곡이 완성되어 있었다.

    “연필, 연필!”

    살바토레는 아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를 받아적었다. 받아 적은 악보를 가지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건반 위에서 살바토레의 손가락이 춤을 추었다.

    “음음음음음 음음음음음.”

    살바토레는 연주를 하면서 생각했다.

    ‘피아노 선율보다 더 아름다워. 어떤 악기가 저 아이의 목소리를 이길 수 있을까.’

    ***

    살바토레의 이름으로 발표된 ‘용서’는 살바토레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바꾸어 놓았다.

    - 살바토레, 흔한 멜로디에 흔한 전개라는 오명을 드디어 벗다.

    - 한 번 들으면 누구나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곡.

    - 이 곡을 듣는 순간, 누구나 신을 만날 수 있다.

    - 신의 용서란 보이지 않기에 우리에게 와닿지 않는 단어이다. 하지만 이 곡을 듣고 나면 그것이 어떤 것인지 또렷이 알 수 있다.

    - 마음속에서 해가 뜨는 것 같은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곡.

    곡에 대한 칭송이 높아질수록 살바토레는 자신의 아들의 뛰어난 재능을 자랑하고 싶어졌다.

    피아노의 선율을 누를 만큼 아름다운 목소리를 타고난 아들.

    ‘하지만 정식 무대에 서기에 다들 너무 어리다고만 생각할 테지.’

    살바토레는 원래 연주곡으로 작곡되었던 ‘용서’를 오페라로 편곡하였다.

    ‘이 곡으로 파리넬리는 데뷔를 하게 될 거야.

    온 세상이 나의 뛰어난 아들의 목소리에 반하게 될 거야.’

    [전쟁의 신 아레스의 체력 레벨 1 – 5 /1000]

    “거루캰 신, 댱시늬 큰 샤랑을 느껴.”

    파리넬리는 노래를 부르며 아레스가 준 재능에 감사를 표했다.

    ‘가사가 있는 곡을 부르니 확실히 달라진 게 느껴져. 아직 아기의 몸이라 울림통이 작아 소리를 깊게 낼 수는 없지만, 숨이 더 길어진 것 같아.’

    크리스토퍼는 은우의 연기를 보면서 깜짝 놀랐다.

    ‘진짜 천재를 보고 있는 것 같군.’

    크리스토퍼는 영화가 대박 날 것이라고 말했던 에릭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깨달았다.

    ‘진짜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바라보는 눈빛이야. 긴 이탈리아어 대사를 하면서도 한 번도 감정선을 놓치지 않았어. 저 작은 아기가. 게다가 목소리는 이제껏 들었던 어떤 가수의 목소리보다도 아름답군.’

    은우의 목소리에 홀린 또 다른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음 장면 촬영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알베르토였다.

    ‘마음속을 꿰뚫어 보는 듯한 저 맑고 깨끗한 목소리는 뭐지?’

    알베르토는 대본을 외우다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여자의 목소리인가? 그러기엔 너무 앳된 목소리인데. 아기 같기도 하고. 하지만 아기라면 저 정도로 정확한 음정을 낼 수가 있을까.’

    알베르토는 홀리듯 대본을 내려놓고 나갔다.

    촬영이 끝난 후, 한 아기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기 사쟈야 배고퍄. 뚜르르르.

    은우에게 쩰리를 뚜르르.

    구해져. 뚜르르르.”

    은우는 요거트 과자의 빈 통을 흔들며 귀엽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알베르토는 생각했다.

    ‘완벽한 목소리로. 저런 엉망진창인 가사를 부르다니. 그런데 배가 고픈가?’

    알베르토는 곰곰이 생각했다.

    ‘난 아기를 키워본 적이 없는데. 근처에 마트라도 데려가서 과자를 사줘야 하나. 아기는 뭘 좋아하지?

    그래, 젤라또. 젤라또라면 좋아할 거야.’

    알베르토는 은우를 데리고 까를루초 할아버지의 젤라또 가게에 갔다.

    “어떤 맛을 먹을래?”

    은우는 다양한 맛의 아이스크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지? 이것은? 혁명인가?’

    은우는 한참 색색깔의 아이스크림 통을 바라보았다.

    ‘이것도 맛있어 보이고, 이것도 맛있어 보이고, 또 이것도.’

    한참을 고민하던 은우가 말했다.

    “골랴 주떼요.”

    결국, 은우는 젤라또 컵을 3개나 들고 나왔다.

    “아기 샤쟈야. 고먀어. 뚜르르르.

    마시쪄. 뚜르르르.

    배뷰른 아기 사자.”

    알베르토는 은우의 보며 웃음을 지었다.

    ‘음악천재도 아기는 아기구나.’

    ***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살바토레가 광장에 나서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용서 들어봤어? 그 곡 좋던데.”

    “나도 살바토레를 다시 봤어. 저렇게 좋은 곡을 만들어낼 줄 누가 알았겠나.”

    살바토레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달라진 위상을 실감했다.

    “자, 여러분. 오늘의 제가 작곡한 ‘용서’라는 곡을 가지고 경연을 해보려고 합니다. 이쪽은 저명한 피아니스트 ‘알베트로’, 이쪽은 저의 아들 ‘파리넬리’입니다.”

    알베르토를 알아본 사람들이 다시 한 번 술렁이기 시작했다.

    “알베르토다. 헨델이 극찬했다는 그 알베르토 말이야.”

    “알베르토의 연주를 이런 광장에서 들을 수 있다니. 세상에.”

    사실, 살바토레는 알베르토를 불러오기 위해 자신의 한 달 월급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한 상태였다.

    ‘파리넬리가 유명해지기만 한다면, 이 정도 돈은 투자에 지나지 않을 거야.’

    살바토레는 자신의 선택과 아들의 재능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목소리와 악기의 대결을 지켜봐 주십시오. 두 가지 중 자신의 마음을 움직인 쪽에 여기 있는 이 장미를 놓아주시면 됩니다.”

    살바토레는 사람들에게 붉은 장미를 나누어 주었다.

    “재밌겠는데. 하지만 보나 마나 피아노가 이길 거라고. 피아노의 맑고 영롱한 소리를 사람이 어떻게 이겨.”

    “난 사람의 목소리가 이길 거라고 생각해. 사람의 목소리만큼 감정을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는 건 없지. 하지만 저 꼬맹이는 뭐지? 다 큰 가수를 데려와도 모자랄 판에. 꼬맹이라고? 저 꼬맹이가 사람의 목소리를 대표한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

    “난 둘 다 좋아하는데. 덕분에 공짜로 재밌는 구경하게 생겼구만. 잘 보이는 곳에 앉아야지.”

    광장은 장미를 든 구경꾼들로 가득 찼다.

    “여보슈. 대체 그 꼬맹이의 노래 실력을 우리더러 어떻게 믿으란 말이오? 대체 누가 그 애를 피아노와 대적할 인간 대표로 삼았냔 말이오.”

    살바토레는 예상했다는 듯이 자신 있게 방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물론, 그 판단은 제가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파리넬리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작곡가입니다. 그 판단에는 저의 작곡가로서의 명예가 담겨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하나 더 제안을 하려고 합니다. 만약 오늘의 경연 이후에 파리넬리보다 ‘용서’를 더 잘 부르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저는 그분께 저의 집을 드리겠습니다.”

    살바토레의 품 안에서 집문서가 나왔다.

    “물론 이 집문서가 진짜인지 궁금해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제가 이분을 모셔왔습니다.”

    행정관이 문서철을 들고 살바토레의 옆에 서 있었다.

    “이 집문서가 진짜라는 것은 저희 청에서 증명합니다.”

    사람들은 행정관의 말에 웅성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누구든 저 꼬맹이를 이기면 살바토레의 집문서를 가질 수 있대. 자네 한 번 해볼 텐가?”

    “나는 음치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성당에서 노래 잘하는 사람이 누가 있지? 아 맞다. 베르나르도?”

    “그래, 베르나르도가 우리 중 노래를 잘해. 아마 저 꼬맹이랑은 상대가 안 될 거야. 어서 지원해 보게. 베르나르도.”

    베르나르도뿐만 아니라 노래에 자신이 있다는 사람 대여섯 명이 나와, 알베르토의 뒤에 줄을 섰다.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 하지만 파리넬리의 노래를 듣는 순간, 저들의 생각은 바뀌게 될 거야. 그리고 오늘의 내기가 파리넬리의 이름을 더 빠르게 전 유럽에 퍼트리겠지.’

    살바토레는 빙긋 웃음을 지었다.

    ‘언제나 주인공은 맨 마지막에 나타나는 법이니까.’

    살바토레는 알베르토를 한껏 부풀려 소개했다.

    “헨델이 칭찬한 이 시대 최고의 피아니스트 알베트로입니다. 그의 레가토(음과 음을 매끄럽게 잇는 연주기법)는 교황님마저도 반하셨다고 합니다. 교황님께서 로마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말한 피아니스트 알베르토!”

    “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광장에 울려 퍼졌다.

    알베르토는 대본에 쓰여진 대로 오만한 표정으로 걸어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알베르토는 크리스토퍼의 말을 떠올렸다.

    ‘알베르토란 인물은 이기적이고 괴팍하고 변덕 심한 캐릭터야. 하지만 그런 여러 가지 성격적 결점을 모두 다 사라지게 만들 정도로 대단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도 해. 그리고 파리넬리를 만나기 전에는 자기보다 더 뛰어난 천재는 지구상에 없다고 생각했던 인물이기도 하고.’

    알베르토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자신이 작곡한 곡 ‘용서’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알베르토.

    그는 8살에 최연소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하였고, 20살 때는 쇼핑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였다.

    그가 ‘위대한 목소리’라는 영화에 출연하게 된 이유는 자신이 작곡한 ‘용서’라는 곡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알베르토는 훌륭한 피아니스트였지만, 작곡가로서의 능력 역시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쇼팽을 연주할 것을 부탁했지, 알베르토가 작곡한 곡을 연주해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작곡을 하면서 세웠던 많은 밤들.

    알베르토는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했다. 하지만 아무리 피아니스트로서의 명성이 높아져도 작곡에 대한 열망을 놓을 수는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알베르토는 어느 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쳤다. 감은 눈 사이로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알베르토가 울고 있어.”

    “나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아.”

    “피아노 소리가 이렇게 슬픈 줄 오늘 처음 알았군.”

    알베르토의 눈물은 사람들의 감정을 증폭시켰다.

    알베르토의 연주가 끝났을 때 광장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브라보!”

    “알베르토가 최고다!”

    “휘이이익”

    손으로 휘파람을 만들어 부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막 장미를 던지려고 하자, 살바토레가 사람들을 막아섰다.

    “알베르토의 연주가 여러분을 감동시켰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파리넬리의 노래가 끝난 다음에 장미를 던지셔도 늦지 않을 겁니다.”

    “들을 필요도 없어.”

    “우린 알베르토의 연주가 좋다고.”

    그때 몇몇 사람들이 살바토레의 생각에 동의했다.

    “맞아. 그래도 일단 들어보고 정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들어. 만약 저 꼬맹이가 노래를 잘 부르더라도 그땐 던질 장미가 없을 테니까.”

    “그래, 그건 공평하지 못해. 알베트로의 연주가 훌륭하긴 했지만, 난 저 아이의 노래를 들어보겠어.”

    분위기는 순식간에 살바토레의 편으로 돌아섰다. 살바토레는 모든 것이 자신의 의도대로 된 것이 흐뭇한 듯 옅게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이제 파리넬리의 차례입니다. 파리넬리는 이제 막 4살이 되었고 아직까지 아무런 음악교육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저 어깨너머로 작곡을 하고 피아노를 치는 아버지를 본 것이 전부이죠.”

    사람들의 시선이 파리넬리에게로 향했다.

    “아이고 예뻐라. 세상에 저 커다란 눈 좀 봐.”

    “노래는 잘할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크면 여자 꽤나 울리겠어.”

    “전 이탈리아를 통틀어 가장 예쁜 아기일 거야.”

    사람들은 파리넬리의 노래보다는 귀여운 외모에 열광했다. 그리고 그것은 은우의 외모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살바토레는 그것을 즐겼다.

    ‘지금은 예쁜 아기일 뿐이지만 파리넬리의 노래를 듣고 나면 그땐 얼굴까지 예쁜 아기가 되겠지. 사람들의 마음이란 변덕이 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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