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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재능흡수-27화 (27/257)

27화. 세상이여, 내가 간다 (1)

창현과 은우는 국립극장에서 음악 감독 이셀린을 만났다.

“저희 작품을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셀린은 은우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공연계가 어려운 것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었지만, 요즘 들어 사정은 더 어려워졌어. 아이돌 출신들의 티켓 파워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지.

은우는 스타성과 음악성을 모두 가지고 있고, 아직 한 번도 뮤지컬 무대에 선 적이 없으니 화제성과 작품성을 모두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이 될 거야.’

누구보다 은우의 캐스팅을 강하게 주장했던 그녀였기에 오늘 은우와의 만남은 ‘별을 노래하는 아기 마법사’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순간이 될 것이었다.

“은우는 지금까지 노래를 어떤 식으로 배워서 불렀나요?”

“은우는 아직 아기라서 악보 보는 법도 몰라요. 제가 노래를 부르면 그걸 2-3번 만에 듣고 외우더라구요. 전국 노래 경연대회 때도 그랬고. 따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어요.”

은우는 생각했다.

‘아빠, 저 사실 악보 볼 줄 알아요. 제가 살던 때와 조금 달라지긴 했는데, 어느 정도는 볼 줄 알아요.

전설의 카스트라토 파리넬리가 악보를 볼 줄 모르겠어요?

다만, 아빠가 제가 악보를 볼 줄 안다는 걸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서.’

이셀린은 창현의 말을 듣고 놀랐다.

“이 어린 아기가 노래를 2-3번 만에 듣고 외운다고요?”

이셀린은 생각했다.

‘너투브 영상으로 봤을 때도 대단했지만, 알면 알수록 은우는 천재가 분명해.’

이셀린은 은우의 노래를 직접 듣고 싶어졌다.

“그럼, 이 자리에서 한 곡만 불러볼 수 있을까요? 제가 은우를 위해 이번 공연 곡 중 하나를 골라 불러볼게요.”

은우는 이셀린을 보자마자 이셀린의 눈빛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전생의 나는 헨델과 같은 유명한 작곡가들을 많이 만났었어. 그들의 눈빛은 모두 이셀린처럼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빛나고 있었어.

이 사람은 예술가야.’

이셀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선율이 극장 안을 채웠다.

“별을 노래하는 나는 사랑의 마법사.

별을 노래하는 나는 음악의 마법사.

별을 노래하는 나는 하늘의 마법사.”

은우는 눈을 감고 극장 안에 퍼지는 노래의 울림을 즐겼다.

‘이 극장은 전국 노래 경연대회 때 섰던 무대보다 나의 전생을 더 떠오르게 하는군.

아직도 기억이 나. 나는 무대에 올라가기 전의 설렘을, 무대 위에서의 흥분을 사랑했었지.

공기 중에 퍼지는 내 목소리가 너무도 자랑스러웠어. 무대 위에서 나는 늘 내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지.’

이셀린의 노래가 끝났을 때 은우가 나지막이 노래를 시작했다.

“벼를 뇨래햐는 냐는 샤랑으 먀법샤.

벼를 뇨래햐는 냐는 음야그 먀법샤.

벼를 뇨래햐는 냐는 햐느르 먀법샤.”

이셀린은 은우의 노래를 들으며 온몸에 돋는 소름을 가눌 수 없었다.

‘내가 은우와 동시대에 살았던 것을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군. 이 정도라면 우리나라가 아니라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거야. 뮤지컬뿐일까. 세계적인 성악가로도 이름을 날릴 수 있을 거야.’

***

이셀린은 은우를 만나고 난 후 은우의 음색에 어울리게 편곡을 하기 위해 작곡가 김명철을 만나 전체적인 곡의 수정을 하고 있었다.

“명철 씨도 들었으면 분명히 놀랐을 거야. 도저히 네 살 아기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니까.”

“하늘이 우리 편인가 봐요. 은우가 우리 뮤지컬을 선택하다니.”

“아기 뮤지컬이 잘만 하면 롱런할 수도 있으니까 잘 살려봐야지. 잠자는 공주를 사랑한 여덟 왕자처럼 십 년 넘게 공연되는 뮤지컬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되도록 열심히 해야죠.”

김명철은 은우의 목소리에 어울리도록 맑고 고운 음들이 더 살아나게 곡을 수정했다.

***

창현은 메일을 열어보고 있었다.

수신인은 창현이었지만, 사실상 은우의 업무용 메일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너투브를 통해서 오는 아기용품 협찬 광고서부터 방송국에서 오는 출연 제의 메일까지 창현의 메일로 전송되고 있었다.

‘언젠가 소속사를 정해야 하긴 할 텐데. 그게 은우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 아직은 판단이 서질 않으니.’

은우를 찾는 곳이 많아질수록 창현의 머릿속도 복잡해져만 갔다. 뛰어난 자식을 둔 부모로서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지원을 해 줄 수 있을지 생각이 많아지고 있었다.

창현은 그중 한 통의 메일에 눈이 갔다.

‘이게 뭐지?’

처음에는 영어로 된 메일이라 스팸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봐도 스팸은 아닌 거 같았다.

다만 창현으로서는 영어 메일을 제대로 해석할 능력이 없었다. 영탁도 마찬가지였고.

[Hi. I'm Eric, a film music director. ~~~]

“뭔 말이지?”

창현은 메일을 번역기에 붙여넣었다.

[나는 영화 음악 감독인 에릭이다. 은우를 파리넬리 영화의 아역으로 캐스팅하고 싶다.]

‘우선 이 메일을 제대로 해석해 줄 사람을 찾아야겠군.’

***

열정 떡볶이는 맛으로 이미 이름난 집이 된 데다, 은우의 인기에 힘입어 4호점까지 분점을 낸 상황이었다.

창현은 1호점에서 가장 오래 일을 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2-4호점도 하루에 두 번씩은 가서 관리를 하고 있었다.

‘종업원과 사장의 마인드는 다를 수밖에 없어.’

창현은 분점이 본점에 비해 맛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을 듣지 않도록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오빠.”

최지은이 학교가 끝나고 열정 떡볶이 본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제 가게에서 은우를 보는 것은 힘들어졌지만, 최지은은 여전히 친구들과 함께 출근 도장을 찍는 충성고객이었다.

“지은아, 혹시 이거 해석할 수 있니?”

창현은 최지은에게 이메일을 보여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부 좀 열심히 할 것 그랬네요. 은우에게 도움이 되게.

근데 설마 은우 외국에서 캐스팅 연락이 온 건 아니겠죠?”

눈치 빠른 최지은은 영어 메일을 해석하지는 못했지만, 대충 어떤 내용의 메일인 것 같다는 추리는 한 모양이었다.

“잠시만요. 전교 1등 친구에게 연락해 볼게요.”

최지은이 빠르게 창현의 메일을 복사하여 자신의 카톡으로 붙여넣었다.

그리고 잠시 후 최지은이 말했다.

“아, 드디어 연락이 왔어요. 너투브에서 은우가 노래하는 걸 듣게 됐는데 은우의 노래 실력에 감탄해서 은우를 파리넬리 아역으로 캐스팅하겠대요.

혹시 몰라 검색을 해봤더니 감독도, 음악 감독도 모두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네요. 여기 친구가 검색한 내용을 붙여줬어요.”

최지은은 자신에게 온 카톡의 내용을 창현에게 보여주었다.

‘외국에서도 은우를 찾아오다니, 어떻게?’

창현은 은우의 능력이 놀랍기만 했다.

창현은 고등학교 시절 음악에 대한 꿈을 키웠었다. 그때 자신이 만났던 사람들 중 대다수는 자신처럼 꿈을 이루지 못하거나, 꿈을 이루더라도 짧은 순간만 대중의 관심을 받다 사라져갔다.

‘은우는 레벨이 다르다. 어쩌면 월드 스타가 될 수 있을지도.’

창현의 머릿속에 마이클잭슨과 비틀즈 같은 월드 스타들이 떠올랐다.

‘이제 한국이 좁다고 느껴질지도 모르겠구나. 우리 아들.’

창현은 더욱더 가게를 열심히 키워서 은우의 미래를 준비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 그런데 이 메일 끝에 중요한 말이 쓰여 있다는데요? 이 에릭이라는 남자가 은우를 만나러 오고 싶다고 해요.”

“어디 사는 사람인데?”

“미국 사람이죠, 오빠. 할리우드는 미국에 있는 거잖아요. 와, 은우 이제 월드 스타다, 월드 스타. 이 소식을 어서 단톡방에 알려야겠어.”

“잠시만, 아직 결정한 거 아니야.”

“뭘 망설이세요. 할리우드라구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배우들이 할리우드에 가고 싶어 할걸요.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우리나라 배우가 누가 있어요? 제 기억으론 없어요.”

최지은이 말이 맞았다. 창현이 생각하기에도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한국인 배우는 없었다.

‘하지만 은우가 영어를 할 수 있을까. 또래보단 말이 빠르고 발음도 좋은 편이긴 하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영어 유치원을 보냈어야 했나. 아니, 지금이라도 찾아볼까.’

창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창현은 파리넬리가 이탈리아 사람이라는 것도 몰랐기 때문에 영어가 필요한 줄로 착각했던 것이다.

“뭘 고민해요. 먹을지 말지 고민될 땐 먹는 거고, 할지 말지 고민될 땐 해보는 거랬어요. 인생 한 번인데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나아요. 그리고 보나 마나 은우는 잘할 거라니까요.”

은우의 열성 1호 팬인 최지은은 신이 나서 들떠 있었다.

“은우가 할리우드로 진출하면 제가 팬클럽 사람들 모아서 지하철 광고라도 한 번 넣을게요. 영화 홍보도 하러 다니고. 아, 일단 답장답장. 한글로 써주시면 영어로 번역해 준다고 하니까, 빨리 답 메일 생각해 보세요.”

“그래, 그럼 니 말대로 좋은 기회니까 출연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그렇게 써보도록 하자.”

창현은 최지은의 성화에 힘입어 결국 영어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매우 긍정적인 내용의 답장을 보냈다.

***

은우 팬카페에서는 난리가 났다.

- 우리 은우, 첫 뮤지컬 출연한대요.

- 뮤지컬이라니. 그럼 무조건 앞자리 끊어서 실물 영접하는 게 최선이겠죠?

- 전 맨 뒷자리라도 좋으니 실물로 보고 싶어요.

- 은우 호적 생길 때 온 가족이 ‘내일도 사랑해’보면서 얼마나 마음 졸였던지. 우리집 막내 같아요. 전 가족이 보러 갑니다.

- 이제 예매 사이트 열리기 1분 전이에요. 여러분 긴장돼요.

- 열리자마자 광란의 클릭질로 표 얻어야죠.

- 아, 어떻게 해요. 카운트다운.

- 10, 9, 8, 7, 6, 5, 4, 3, 2, 1.

- 예매 성공. 부처님, 하느님, 예수님. 감사드려요.

- 악, 이미 매진이네요. 맙소사. 한 시간 전부터 기다렸는데.

- 혹시 취소하시는 분 계시면 저에게 꼭 먼저 알려주세요.

***

첫 공연을 앞두고 극장으로 들어가는 은우를 줄지어 선 팬들이 응원해 주었다.

“은우야, 누나가 표 3장이나 예매했어. 여러 번 보려고.”

“은우야, 형이 열렬히 응원한다.”

국민 아기로 등극한 은우를 보러온 팬들의 연령대도 다양했다. 일반적인 아기 뮤지컬은 가족을 동반한 아기들이 주된 관객층을 이루었지만, 이번 뮤지컬을 보러온 관객의 연령대는 0살부터 50대까지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었다.

“은우가 대단하긴 하네.”

은우의 공연을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 중에는 국내 톱 뮤지컬 여배우인 신수경도 있었다.

‘세기의 천재가 한국에 나타났어. 이 아기는 대한민국을 넘어서 세계를 흔들어 놓을 거야.’

완벽주의자인 이셀린의 칭찬에 신수경이 은우의 첫 공연을 보러 방문한 것이었다,

‘이 정도 티켓 파워라니. 아이돌 부럽지 않은 인기인데.’

신수경은 뮤지컬 배우로 변신한 연예인들을 많이 봐왔다. 그들 중 대부분은 이름값만으로도 관객을 불러올 수는 있었지만, 거기까지인 경우도 많았다. 노래 실력이 모자라거나 연기 실력이 모자랄 경우, 데뷔작이 은퇴작이 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뮤지컬 배우만큼 다재다능해야 하는 직종도 드물지. 그런데 호흡도 그렇고, 발성도 그렇고. 아직 저 어린 아기에게는 무리일 텐데.’

신수경은 은우의 귀여운 외모가 사랑스러워 보이면서도 뮤지컬 무대에 적합할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기 뮤지컬이라 일반 뮤지컬에 비해 공연 시간이 한 시간 정도로 짧았지만, 그래도 아기의 체력에는 무리가 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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