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내가 하면 뜬다 (1)
“은우야, 머리 너무 귀엽다.”
[그리스의 건축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황금비율 레벨 1 – 644/1000]
은우가 촬영장에 도착하자, 은우의 바뀐 헤어스타일을 알아본 정후석이 인사를 건넸다.
정후석은 자신도 모르게 은우가 너무 귀여워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고 말았다.
은우는 정후석의 머리 위에 뜬 숫자를 보았다.
‘38, 영탁이 삼촌이나 아빠보다도 훨씬 강력하네. 내가 그렇게 귀엽나. 후훗.
그저께 어린이집에 갔을 때도, 어제 시장에 갔을 때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지금껏 만난 사람 중엔 가장 호응이 좋아.’
백수희가 은우의 머리를 알아보고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오다가 놀랐다.
“아악! 은우야.”
백수희는 생각했다.
‘정후석, 선배님이 은우 머리를 만지고 있네. 선배님 결벽증 때문에 다른 배우와 스킨십 절대 없는 걸로 유명한데. 대본에 없으면 털끝 하나 안 건드리시는데.
덕분에 요즘은 매너 좋다고 칭찬도 많이 받으시지만.’
백수희는 정후석의 사진 밑에 달린 매너손 칭찬 댓글들이 떠올랐다.
- 역시 중후한 정후석 배우님, 사진마다 매너손 돋보이십니다.
- 미투 훨씬 이전부터 늘 젠틀하셨던 정후석 선배님, 배우들 안에서도 늘 칭찬이 자자하십니다.
‘그러던 분이 정말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백수희가 말했다.
“선배님 은우 머리 쓰다듬으신 거예요?”
“너무 귀여워서 그만. 이 머리 말야. 예전에 유행하던 머리라고. 60년대에서 70년대에 말이지.”
“60년대요?”
백수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때 미용실이 어딨어? 다들 집에서 자르니까 말이지. 냉면 사발 같은 거 애 머리에 뒤집어씌워 놓고 자르고 그랬다니까. 듣기로는 6.25 때부터 유행한 머리래. 6.25때 사진 보니까 진짜 애들이 다 이 머리하고 있더라고. ”
“말도 안 돼요. 아무리 그래도 냉면 사발을 뒤집어씌우고 잘랐다고요?”
“나도 우리 어머니가 그렇게 해서 잘라줬다니까. 그러다가 망치면 지금 은우처럼 앞머리가 짧아지기도 하고. 우리 누나는 엄마가 너무 짧게 잘랐다고 맘에 안 든다고 울기도 하고.”
“근데 선배님이 그런 얘기 하시니 상상이 잘 안 가는데요. 선배님은 태어나실 때도 중후하게 태어나셨을 거 같아요. 양복 입고.”
카메라 감독 역시 은우의 바뀐 헤어스타일에 감탄하고 있었다.
‘딱 봐도 집에서 자르다가 망친 머리 같은데. 너무 귀엽잖아. 머리는 너무 웃긴데, 그래서 더 귀여워. 대체 뭐지? 카메라로 잡았는데도 그 귀여움과 순수함이 느껴져. 저 머리를 저렇게 소화할 수 있는 아기는 전국에 아니, 전 세계에 은우 한 명뿐이지 않을까.’
은우는 바뀐 재능창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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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는 사람마다 귀엽다를 연발해서 다행이긴 한데, 이 재능이 없었으면 어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네.’
오늘의 촬영 분량은 백수희가 은우에게 옷을 만들어 주는 장면.
디자이너가 꿈이었던 극 중 이채아가 아들 준호를 키우기 위해 접어두었던 꿈을 다시 시작해보려고 하는 장면이다.
카메라는 열심히 미싱을 돌리는 백수희를 잡았다.
“다 됐다. 이제 입어볼까?”
백수희는 방금 만든 옷을 은우에게 입혀준다. 방긋 웃으며 은우가 옷을 입는다.
백수희가 만든 옷은 트렌치코트처럼 생긴 점퍼.
점퍼보다는 멋스럽고, 트렌치코트보다는 편안하다.
“와, 우리 준호. 멋지다.”
백수희와 은우는 방 안에 비치된 전신거울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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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관련한 모든 것이 황금비율로 보이게 된다.]
백수희는 은우가 입은 옷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 아까 소품 담당이 가져온 옷은 평범한 옷이었는데. 흔하디흔한 협찬 의상.
그런데 은우가 입으니 달라 보인다. 색감도 디자인도 고급스러워 보여.
움직이기 편하게 밴드처리도 잘 돼 있고. 아기의 몸에 맞춘 것처럼 보이네.
이 브랜드 어디야? 나중에 하나 사서 은우에게 선물할까?’
갑자기 브랜드까지 찾아보고 싶은 백수희였다.
은우는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었다.
“엄마. 짱이에요!”
은우가 백수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진짜 엄마가 만들어 준 옷을 입은 것 같잖아. 은우. 아 뭉클해.’
자신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백수희.
PD는 백수희의 눈물을 보며 놀랐다.
‘아니, 백수희가 우네? 대본에도 없는 씬인데 진짜 몰입했나 봐.’
이번 드라마에서는 작가가 쓰지 않은 부분들이 백수희와 은우의 케미 때문에 터져 나오곤 했다. 특히 두 사람의 감정선은 작가가 만들어낸 이상이었다.
두 사람 다 극 중 인물 준호와 이채아가 된 듯. 현실 모자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모니터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PD였다.
‘고작 참 옷 만들어 주는 장면인데 나까지 눈물이 나네.’
***
‘내일도 사랑해’는 시청률 20프로를 찍으며 시청률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드라마 홈페이지에는 연일 시청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 악역이 없이도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니.
- 힐링 드라마예요. 지친 일상에 위로를 줘요.
- 은우 보는 재미에 삽니다. 여러분 재방 삼방 사방 계속 돌려보세요.
- 우리 애 생일날 케이크 대신 꿀떡 맞춰 보냈어요. 그런데 떡집 사장님이 싱글벙글하시더라구요. 물어보니 요샌 아기들이 다 생일 때 케이크 대신 꿀떡을 맞춰서, 특수 아닌 특수가 생기셨다고. 은우 업고 다니고 싶으시대요.
- 세상에, 은우가 식문화에도 기여할 줄이야. 역시 우리의 것이 좋은 것이여!
- 저 은우 머리했다가 망했어요. 아무래도 이대로는 출근 못 할 것 같아서 가발 샀어요.
- 세상에 어떻게 은우는 이 머리가 예쁠 수 있어?
- 망했다는 후기 때문에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드라마에서 은우 볼 때마다 너무 이뻐서 결국 했는데 저도 망했어요. 군대 가야 할 거 같은 분위기예요. 어쩌죠?
어른들의 후기는 다 같이 망했다는 이야기.
- 은우가 너무 이뻐서 우리 애기도 저렇게 제가 집에서 잘라줬는데, 확실히 은우처럼은 안 되는데 그래도 애기라 그런지 귀엽기는 하네요.
- 저는 미용실에 가서 잘라줬는데, 우리 아기는 코도 낮고 눈도 작고 얼굴도 동글동글하고 예쁜 얼굴 아닌데 그래도 어른만큼 망하지는 않는 거 같아요. 이 스타일 아기들은 괜찮네요. 저희 집에선 어제부터 우리 아기를 리틀 은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기들 추천이요.
아기들 후기는 괜찮다는 후기가 많아서 길거리엔 은우와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한 아기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또, 은우 덕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는 회사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은우의 의상 협찬을 했던 유아복 브랜드 베베드림이었다.
베베드림의 마케팅팀은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번에 우리 회사의 아동복 매출이 2달 전보다 300프로 신장했습니다.”
“300프로 대단하군요. 광고 모델이 누구였나요?”
“광고도 광고지만, 매출이 올랐던 제품은 모두 ‘내일도 사랑해’에 협찬으로 들어갔던 의상이었습니다.”
“그렇군요. 협찬으로 들어갔던 의상의 공통점은 있나요?”
“없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냥 스타 마케팅이 먹힌 거 같습니다.”
“그 옷을 입었던 아기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있나요?”
“이은우. 3세. 이번 드라마가 첫 번째 촬영한 드라마이고, 전에 방송 출연 경험은 ‘전국 노래 경연대회’가 전부인 신인입니다.”
“신인이면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았겠군요.”
“네, 사실 드라마 안에 PPL로 들어가면서 광고료를 지급하긴 했지만, 매출 신장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군요.”
“음, 그렇다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은우에게 더 파격적인 대우를 해줘 봅시다. 매출이 더 올라가는지 살펴볼 수 있게요.”
“어떤 대우요?”
“신인이면 전속 스타일리스트가 없겠군요. 대부분 그렇던데.”
“아마 그럴 것 같은데. 확인해 보겠습니다.”
“없으면 우리 회사의 수석 스타일리스트를 보내봅시다. 매출이 더 오를지도 모르지? 효과를 극대화시켜 보죠.”
***
은우가 촬영장에 도착하자 처음 보는 여자가 은우를 맞이했다.
“안녕, 니가 은우구나. 난 오늘부터 이 드라마가 끝날 동안 은우의 스타일을 담당할 주드 김이야. 어머, 티비에서 봤던 것만큼이나 비율이 좋구나. 그래서였어. 어쩐지. 그 옷이 그렇게까지 멋져 보일 리가 없는데 말이지.”
정식 스타일리스트가 생긴 은우는 매우 신이 났다.
‘그동안 백수희 누나의 스타일리스트가 챙겨주시거나 드라마 담당 스타일리스트님이 가끔 살펴봐 주시는 정도였는데.
아빠가 봐줄 때가 가장 많았고.
나도 이제 스타가 된 건가.’
은우가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했다.
“걈샤함니댜.”
“감사는요. 우리가 더 감사하죠. 은우 덕분에 회사 매출이 마구마구 뛰고 있어요. 사장님이 직접 지시하셔서 제가 스타일리스트로 오게 된 거니까요. 비용도 회사에서 모두 지불하시기로 하셨어요. 사실 뭐 이렇게까지 파격적인 경우는 드물지만, 은우가 워낙 대단하니까요.”
오늘의 촬영장면은 이채아가 만든 트렌치코트가 엄마들의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어서 이채아가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장면.
쇼핑몰에 올릴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준호와 함께 예쁜 커피숍에 와 있다.
휴일인 커피숍을 이채아가 빌려서 촬영하는 상황.
백수희가 은우에게 청으로 된 멜빵 바지를 입혔다.
은우는 멜빵 바지를 입는 순간 술의 신 디오니소스를 보았다.
디오니소스는 와인병을 든 채 삐뚤빼뚤 걸으면서 말했다.
“내가 가진 술의 권능으로 너를 축복하노니
너는 나의 권능을 이어받아
모든 것에 생동감을 부여할 수 있다.”
[그리스의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생동감 레벨 1 - 0/1000
세상의 모든 것에 생동감을 부여할 수 있다.
사용하는 사람의 숙련도에 따라서 레벨이 올라갈 수 있다.]
은우는 디오니소스가 준 새로운 재능을 어디다 써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적절한 순간에 나를 돋보이게 써야 할 텐데.’
백수희가 바지를 올려주며 말했다.
“다 됐어요. 우리 아들.”
은우가 옷을 입고 마음에 든다는 듯 싱긋 웃었다.
“자, 준호야. 오늘은 준호가 멋진 화가가 된 거야. 이게 이젤이라는 건데. 자, 붓을 잡고 그림을 그려볼까? 준호는 무얼 그리고 싶어요?”
“엄마요.”
은우가 붓을 잡고 삐뚤빼뚤 엄마를 그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듯 이내 백수희를 바라본다.
“이상해요. 엄마능 이쁜데 내가 그린 엄마능 안 이뻐요. 미아내요.”
“아니야. 이쁜걸. 엄마가 준호도 그려줄게.”
백수희가 은우가 그린 엄마 얼굴 옆에 은우를 그려준다.
“와, 엄마. 마버비예요. 준호랑 똑가타요. 엄마 화가가타요.”
“준호가 그려준 엄마도 엄마랑 똑같은걸. 준호 대단해.”
은우가 백수희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때 백수희가 은우의 코에 물감을 묻혔다.
“아악, 엄마.”
은우도 백수희의 볼에 물감을 묻혔다.
“준호 더 예뻐져라.”
백수희도 은우의 볼에 물감을 묻혔다.
[그리스의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생동감 레벨 1 - 180 /1000]
장면을 촬영하던 카메라 감독은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장면에 넋을 놓았다.
‘티카타카 빼고는 별게 없는 것 같은 사소한 장면이야. 사건이랄 게 있을까? 이 장면에. 그런데 마치 두 사람의 생동감이 카메라 밖으로 뚫고 나오는 것 같잖아.
매일 영상을 찍으니 지겹고 머리가 멍할 때도 많았는데, 이 드라마엔 뭐랄까 말로 할 수 없는 특별한 게 있어.
은우와 백수희의 감정선은 아무리 봐도 연기가 아닌 것 같아.
자꾸만 몰입하게 돼.
찍다 보면 나도 모르게 이게 작가가 꾸며낸 이야기라는 걸 잊게 된다니까.
내가 촬영했는데도 집에 가서 재방, 삼방을 찾아서 보고 있으니.’
오늘 처음 촬영을 보게 된 주드 김은 은우의 장면을 보면서 놀랐다.
‘첨엔 비율 때문에 놀랐는데, 아기면서 아기답지 않은 비율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상한 건 비율이 좋은데 귀엽다는 거였어. 보통 아기들은 비율이 성인과 달라서 귀여움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비율이 좋은데도 귀여우니까.
이게 진짜 말이 돼? 이런 생각뿐이었는데.
촬영하는 건 보다 보니 놀라운 건 외모뿐만이 아니네.
보고 있으면 묘하게 은우의 감정에 빠져들게 돼.
은우에 시선에서 백수희를 보게 되니 예쁘지만 차갑고, 깍쟁이 같고, 도도해 보이던 백수희마저도 예뻐 보이게 만든다니까.
자꾸만 백수희가 준호 엄마로 보여.
늘 내 편이 돼 줄 것 같고 정겹고 그런 엄마로.
대단한 배우다. 저 은우라는 아기는.
상대역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까지 바꾸어 놓을 수 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