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세상의 모든 은우를 위해 (4)
‘내일도 사랑해’ 팀 역시 난리가 났다.
“PD님 지난 화 방송 다시 보기 조회 수가 평소보다 5배나 늘어났어요.”
“시청자 게시판도 접속자 수가 늘어나서 서버가 다운됐어요.”
김진호 PD는 스테프들에게 물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아, 그게 은우 재판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가 봐요.”
“네, 지금 실검 순위에 사랑이법이 떴어요. 은우 이름이 뜨진 않았지만, 아마도 은우 때문에 이슈가 되고 있는 듯해요.”
“우리 드라마 이름도 실검 순위에 있어요. 이해되시죠? 서버 다운되는 거?”
“시청률 오르고 국장님께 칭찬 좀 듣겠어요, PD님.”
김진호 PD가 걱정 어린 말투로 답했다.
“그래, 좋아하시겠지. 근데 걱정된다, 은우. 어떻게 되려나. 은우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조연출이 분위기를 돌렸다.
“걱정만 하지 말고. 서명하셨어요?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던데. 서명합시다. 서명.”
“그래요. 어서 서명해요. 그리고 우리가 드라마 더 재밌게 만들어서 은우 유명해지게 해 주면 되죠.”
“맞아요. 판사가 적용할 수밖에 없도록 우리가 만들어봐요.”
***
은우의 연기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은우에게 매료되었다.
- 아기가 연기를 너무 잘해. 보는 동안 눈물이 나서 어찌나 혼났던지. 아무것도 모르는지 너무 해맑고 그래서 가슴이 더 아프고 아아, 은우야.
- 보통은 드라마를 보고 나서 뒤돌아서면 다 잊혀지던데 이 드라마는 다른 일할 때도 자꾸만 기억이 나네. 다음 주말 9시까지 어떻게 기다려. 은우 보고 싶다!
- bbs는 ‘내일도 사랑해’를 특별제작하여 주 7일 방송하라! 방송하라!
- 국민청원 서명했습니다. 모두들 은우를 위해 국민청원에 참여해 주세요.
- 국민 아기 은우!! 이런 은우가 아직 우리나라 국민이 아니라니 말이 됩니까?
청원은 어느새 청원인 1만 명을 달성하였고, 은우의 극성팬들은 은우의 판결을 담당하게 된 판사의 이름을 알아내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
이형석 판사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건에 머리가 복잡했다.
메일통을 확인하니 어떻게 알아냈는지 은우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메일을 보내놓은 것이다.
- 판사님, 제발 우리 은우 호적 가지게 해 주세요!
- 은우를 사랑이법 적용 대상자가 되게 해 주세요!
시작이 전부 은우로 되어 있는 메일함에 정신이 아찔할 지경이었다.
‘호적 심사가 이렇게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다니.
이건 정말 작은 재판인데.
평상시에 나는 법적인 안정성을 고려하여 판결을 했었지.
감정적으로 예외를 넓게 인정해주기 시작하면 법체계가 흔들린다고 생각하니까.
같은 사건을 전에 판결했을 때는 엄격하게 법을 적용해서 사랑이법을 적용하지 않았었어.
그런데 이번 사건은 너무 복잡해지고 말았어.’
이형석 판사는 동료 판사와 함께 커피를 한잔하고 있었다.
“형석아 진짜 머리 아프겠다.”
“맞아. 내 재판이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았던 적이 없었는데.”
“그렇다고 법적인 신념을 저버리는 건 판사답지 못한 일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 아기 말야. 사실 나는 전에는 내 재판 대상자인 아기들에 대해서 깊게 알았던 적은 없었어. 그런데 이번에 은우라는 아기는 유명한 아기다 보니 여러 가지 영상이며 기사가 있더라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보고 읽게 되니 마음이 복잡하네.”
“나도 봤어. 예쁘고 귀엽더라.”
“그래, 사랑스러운 아기였어.”
“그래서 사랑이법 적용시키게?”
“그럴 순 없지, 내 사적 감정이 재판에 들어가선 안 되니까. 아빠를 만나보고 결정해야지.”
“정말 고민되겠다.”
***
창현과 은우는 ‘내일도 사랑해’ 촬영장에 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떻게 알았는지 은우의 팬들이 은우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내일도 사랑해, 우리도 은우를 사랑해.
- 우리 은우, 사랑이법 적용을 기원합니다.
- 은우야, 호적 그까짓 거 얼마면 돼?
은우의 팬들은 각자 적은 문구를 들고 은우를 응원하고 있었다.
“이것 좀 먹어봐요.”
은우를 위해 미역국을 끓여온 50대의 주부.
“은우야, 이거 은우가 좋아할까 해서.”
예쁜 장난감을 잔뜩 사 온 20대의 누나.
“은우야, 드라마 보면서 자꾸 눈물이 나서. 내가 원래 진짜 안 울거든. 오늘 회사 연차 내고 나왔어.”
양복을 입고 서 있는 30대의 형도 있었다.
촬영장에 도착한 백수희는 팬들에게 둘러싸인 은우를 보고 깜짝 놀랐다.
나름 정상의 인기를 누려왔다고 자부하는 백수희도 저런 열렬한 팬들의 지지는 받아본 적이 없었다.
백수희를 발견한 은우의 팬 중 한 명이 백수희에게 다가왔다.
“은우 엄마. 고마워요. 은우에게 너무 잘 대해줘서. 이거 챙겨 먹어요.”
은우의 팬이 백수희에게 내민 것은 종합 비타민.
“감사합니다.”
백수희는 대한민국 탑급 배우인 자신이 은우의 인기에 묻어가게 된 것 같은 이 상황을 뭐라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기분이 묘했다.
‘일단 받기는 했는데.
난 아직 미스인데 자꾸만 시청자들이 나를 은우 엄마로 기억한단 말이지.
‘내일도 사랑해’ 홈페이지에서도 은우 엄마라고 지칭하는 댓글들이 늘어나고.
은우가 국민 아기가 돼서 그러나.
어느 순간 은우의 인지도가 나를 추월한 것 같아.’
***
은우가 오늘 찍을 장면은 은우가 아파서 엄마인 백수희가 은우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내용.
정우리 작가는 이제 촬영장에 나오지 않아도 되었지만, 은우를 보기 위해 촬영장에 나왔다.
은우의 판결을 앞두고 은우를 응원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저렇게 예쁜 아기가 나쁜 엄마를 만나 고생이 많구나.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기사를 통해 정확한 상황을 알고 보니 은우가 더 짠하게 느껴져.
그런데도 저렇게 밝고 해맑다니.’
PD 역시 정우리 작가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자꾸만 은우를 볼 때마다 은우의 상황이 그려져. 태어나자마자 엄마에게 버려지고 그래도 착한 아빠가 은우를 지켜줘서 저렇게 예쁘게 자랐구나.
은우가 호적이 생겨야 학교도 다니고, 여러 가지 지원을 받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텐데.
자꾸만 마음이 조마조마해.’
촬영이 시작되었다.
극 중에서 밤부터 조금 아팠던 은우는 새벽이 되어 열이 마구 오르고 있었다.
은우는 연기를 하며 생각했다.
‘이번 생에서는 아직 심하게 아픈 적이 없었지만, 전생의 파드와일 때는 잘 먹지 못해 자주 아팠지.
전전생에 파리넬리일 때는 거세(카스트라토들은 호르몬으로 인해 변성기가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사춘기가 오기 전에 거세를 하는 관습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아이들이 죽었다)의 부작용으로 평생 아편이 없으면 살 수 없었고.’
은우는 두 번의 전생의 기억하며 아픈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열이 오르고 얼굴이 창백해지고 이마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은우를 보는 백수희의 입술이 타들어 갔다.
“준호야. 준호야. 괜찮아?”
백수희가 체온계를 꺼내서 은우의 열을 재주다가 안 되겠다는 듯이 은우를 들쳐업었다.
그리고 거리로 뛰어나가 택시를 잡았다.
“택시.”
택시 안에서도 백수희는 은우가 소중한 듯 꼭 안고 있었다.
“아프면 안 돼. 준호야.”
은우는 아프면서도 엄마라는 존재가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다.
창현과 영탁이 늘 은우를 걱정해 주었지만, 엄마가 주는 느낌은 또 다른 것 같았다.
“엄마.”
은우는 백수희가 너무도 좋았다.
카메라 감독은 은우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저렇게 예쁜 아기에게 엄마가 없다니.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가.
저 아기가 무슨 죄가 있다고.
대체 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은우에게 호적을 줄 수가 없단 말인가.’
PD도 은우의 연기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안쓰러워서 못 보겠다. 우리 은우 꼭 행복해져야 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있다면 뭐라도 해 줄게.’
정우리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백수희 씨처럼 따뜻한 엄마가 은우를 안아줘야 하는데.
은우는 그럴 권리가 있어.
왜 우리나라는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을 축복해주지 못하는 거지?’
백수희는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을 울었다.
늘 차갑다고 생각했던 자신이었는데 이상하게 이번 작품은 감정이입이 너무 심해져서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은우가 백수희의 품에 안겨 백수희를 위로해주고 있었다.
“괘차나.”
은우가 작은 손으로 백수희를 토닥였다.
***
촬영분이 방송이 되자, 사람들은 아픈 은우를 보며 쩔쩔매었다. 그 안타까움이 은우에 대한 응원을 더 커지게 했다.
“법적으로는 미혼모보다 미혼부가 더 어려운 거 같아. 아기 아빠는 얼마나 막막했을까. 저런 사람을 응원해 줘야지.”
“아, 눈물 나서 못 보겠어. 아기가 연기를 너무 잘한다.”
“백수희 씨 연기도 수준급이야. 눈물의 여왕 같아.”
“아기 아프면 부모는 가슴이 찢어지지. 대신 아파주고 싶은 심정이니까.”
“호적이 없으면 아기가 병원에 가도 의료보험을 적용받을 수가 없대. 만약 은우가 실제로 아팠으면 병원 한 번만 가도 백만 원이 넘게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인 거야. 우리 은우 아프기 전에 호적 좀 만들어 주세요.”
‘내일도 사랑해’의 모든 시청자들이 은우의 아픔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
은우의 아픈 연기와 백수희의 눈물 연기로 호평을 받은 ‘내일도 사랑해’는 시청률 고공행진과 함께 연예 기사의 메인 뉴스를 장식하였다.
-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내일도 사랑해’ 주말극 시청률 1위 등극
- 은우의 재판을 앞두고 시청률 호재를 만난 ‘내일도 사랑해’, 과연 재판은 어떻게 될 것인가.
기사를 본 사람들이 국민청원 사이트로 접속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은우가 실제로도 미혼부의 아기였어?”
“드라마보다 현실이 더 슬프지 뭐. 그래도 드라마 속 준호는 호적이라도 있잖아. 그니까 어린이집도 다니고 응급실도 가고. 은우는 그것도 못 한대.”
“아이고 어쨌을까. 어서 빨리 가서 우리도 서명하자.”
서지연 기자가 은우 기사의 후속작으로 쓴 대한민국 미혼부의 현실이 경제신문 사이트에 업로드되었다.
- 현장 취재 24시, 사랑이법과 함께 알아본 대한민국 미혼부의 현실.
기사 안에는 지하철역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김종대 씨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김종대 씨 역시 미혼부였다.
“아기 엄마가 아기를 버리고 도망갔어요. 그래도 아기에게 호적을 주고 싶어서 절차를 밟고 있었는데, 세상에 찾아보니 애기 엄마가 재혼을 했더라구요. 법적인 아빠가 애기 엄마의 현재 남편이 돼 버려서 저희 아기는 호적을 만들 수가 없어요.”
기사를 본 많은 30-50대의 남자들이 국민청원 사이트로 접속하기 시작했다.
- 이거야말로 역차별이지 않습니까. 형님.
-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뭐 이런 법이 다 있나.
- 저렇게 열심히 키우려는 아빠를 응원해 줘야 합니다.
- 우리 힘으로 이 기회에 바꿔보자.
***
은우가 아침에 일어나 어제 팬으로부터 선물 받은 예쁜 바바리코트를 입으려는 순간이었다.
은우의 손이 바바리코트에 닿자 술의 신 디오니소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가진 술의 권능으로 너를 축복하노니
너는 나의 권능을 이어받아
모든 사람들을 웃게 할 수 있다.”
[그리스의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유머 레벨 1 – 0 /1000
자신의 하는 말의 유머가 강화된다.
사용하는 사람의 숙련도에 따라서 레벨이 올라갈 수 있다.]
은우는 디오니소스가 선물한 재능, 유머가 마음에 들었다.
‘유머는 중요하지.
있다가 드라마 촬영장에 가서 써 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