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세상의 모든 은우를 위해 (1)
김마리아 수녀님은 아기들에게 매일같이 찬송가를 불러주었다.
오늘은 은우와 함께 찬송가를 불러볼 생각이었다.
‘전국 노래 경연대회 최우수상 출신이니 찬송가도 분명 잘 부를 거야, 은우는.
하필이면 지독한 음치로 태어나서, 내가 부르는 찬송가는 전혀 아름답지가 않다니까.’
김마리아 수녀님은 찬송가를 부를 때 즐거웠지만, 아기들은 찬송가를 좋아하지 않았다.
“은우야, 우리 이 노래 같이 불러볼까?”
수녀님은 은우를 무릎에 앉히고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천사들의 희생과 사랑을 찬양합니다.
구원의 길 구원의 길
당신이 우리에게만 허락하신 평화.”
그때 준수의 눈이 은우와 마주쳤다.
준수가 말했다.
“노래 듣기 시러. 수녀님 노래 못해요.”
준수는 자신이 말하고도 놀랐다는 듯 자신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치만 김마리아 수녀님의 노래는 정말 이상해. 고음 불가에. 어쩜 저럴 수 있지?’
은우는 점점 노래를 듣는 것이 고통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잠에 취한 시우와 준호의 고개가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연아도 졸린 눈을 하고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아, 너무 졸리다. 노래가 너무 밋밋해.’
그런데 수녀님이 1절을 부르고 2절을 부르기 시작했을 때, 갑자기 은우가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가사를 외우지는 못했지만, 음정은 정확했다.
무엇보다도 은우의 목소리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은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준수와 지호가 일어나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연아도, 혜린이도, 시우도. 모두가 반짝이는 눈으로 집중해서 노래를 듣고 있었다.
김 마리아 수녀는 은우의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난 늘 찬송가는 가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거기에 하느님을 찬양하는 뜻이 담겨 있으니까.
곡보다는 가사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었지.
그런데 은우의 노래를 듣고 있으니 찬송가에서 가사보다 곡이 더 중요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은우는 찬송가를 부르면서 파리넬리였던 전생의 기억이 자꾸만 떠올랐다.
‘전생에서 나에게 큰 명성을 안겨준 ‘울게 하소서’ 역시 찬송가였지.
아빠와 함께 불렀던 가요와 동요도 좋지만, 찬송가의 가사들은 마치 내 영혼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아.’
은우는 가사를 발음할 수 없었지만, 완벽히 이해했다.
그리고 신의 선물을 받고 있는 현재.
은우가 신에 대해 생각하는 느낌은 또 달라져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은우에게 찬송가는 특별했다.
어느새 어린이집의 다른 아기들도 수녀님의 피아노 옆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기어 다니기 시작하는 어린 아기가 기어서 피아노 근처로 온 후에 손을 뻗으며 소리를 질렀다.
“아아아아아아.(한 곡 더!!!)”
“다시 한 번.”
혜린이가 정중하게 앵콜을 요청하였다.
“아아아아아.”
은우가 홀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가사는 없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찬송가였다.
마침 이태석 신부가 어린이집 복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태석 신부는 어린이집 안에서 들려오는 찬송가 소리에 발길을 멈추었다.
‘이 노래는 뭐지? 가사도 없이 아아아로만 계속되는데.
그런데도 너무나 아름다워.
피아노 소리를 압도하는 맑고 고운 소리.
순수함과 성스러움이 느껴지는 목소리야.’
[그리스 음악의 여신 칼리오페의 감동. 레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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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 신부는 방금 자살을 기도했으나 실패한 미혼모를 만나고 오는 길이었다.
‘제 삶엔 늘 고통뿐이었다고요.
남편은 저를 이유도 없이 계속 때렸어요. 살고 싶어서, 살아야겠어서 임신한 채로 도망쳤지만. 자꾸 제 삶은 도돌이표만 반복하는 것 같아요.
제 아이에게 제 인생을 고스란히 물려주게 될까 봐 너무나도 두려워요.’
미혼모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자신의 말이 형식적인 것은 아닌가 끊임없이 고민하던 그였다.
‘어느 순간, 나도 내 말에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어.
결혼도, 가족도, 돈도, 인간적인 희로애락도 모두 버리고 택한 신부의 길이었었는데.
신부가 되어 당면한 세상의 모든 슬픔이 가끔은 혼자 견디기 너무 힘들다는 생각을 해.
나는 자꾸만 지쳐가고 있어.’
은우의 찬송가를 문 밖에서 듣는 이태석 신부의 눈에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
이태석 신부는 은우의 대부가 되면서, 은우의 출생신고 문제를 해결해줄 국선 변호사 김민석을 소개해주었다.
“우리나라 가족관계등록법은 혼인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가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요. 그래서 사랑이법 이전에는 은우와 같은 아기들은 출생신고가 불가능했죠. 지금은 사랑이법이 생겨서 은우와 같은 아기들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어요. 법원에 혼인외 출생자 신고를 위한 확인 신청을 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창현은 마음을 짓누르던 돌덩이 하나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 뾰족한 방법을 알지 못해 걱정만 했었는데.
주민센터에 문의를 하거나 무료 상담을 해보아도 부정적인 말들만 나오고.
은우를 보육원에 보낸 뒤 다시 입양을 하라는 사람도 있었어. 하지만 난 법적으로도 은우가 내 아들이라는 걸 인정받고 싶었어.’
창현의 표정을 읽은 김민석 변호사가 덧붙였다.
“아직 너무 좋아하시긴 일러요. 엄마의 성명, 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가정법원의 신고를 받아야 하는데, 가정법원의 판결이 엇갈려요.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알고 있으면 사랑이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혹시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알고 계신 게 있나요?”
“네.”
창현은 현경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알고 있었다.
‘현경의 이름을 어떻게 잊어버려.
은우를 낳으러 함께 병원까지 갔었는데.’
창현은 생각했다.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모르는 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사랑이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는 아기들이 더 많지 않을까?’
민석이 말을 이었다.
“만약 가정법원이 은우를 사랑이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린 다시 소송을 해야 할 거예요. 사랑이법의 적용 대상이 맞다는 주장을 펴야 하겠죠.”
변호사 김민석 자신도 이런 말을 하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법은 늘 약자의 편에 서리라 생각했었지. 그래서 변호사가 되고 싶었는데. 변호사가 돼서 마주친 현실은 그렇지 못했어.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았고, 그 판결은 오로지 법을 해석하는 판사의 성향에 달려있는지도 모르니.
냉정하게 본다면, 은우 케이스는 혹시라도 가정법원의 판결이 우호적이지 않을 경우 소송을 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야.’
나중에 너무 실망할까 봐 민석은 창현에게 좋은 소리만을 할 수가 없었다.
“잘 되겠죠. 그래도 전문가를 만나니 마음이 좀 놓여요.”
창현도 마음이 심란했지만, 애써 웃어 보였다.
‘힘들수록 긍정적인 생각을 해야만 해.
그것이 인생을 살면서 내가 터득한 방법이니까.’
***
어린이집은 오늘도 아기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2명.”
혜린이와 시우, 준수와 지호, 연아와 은우가 손을 꼭 쥐고 한 팀이 되어있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3명.”
김 마리아 수녀님이 3명을 외치자, 아기들은 당황해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혜린이와 시우가 먼저 연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연아가 고민하다가 혜린이와 시우에게로 갔다.
은우도 준수와 지호에게로 갔다.
아기들이 신나게 놀고 있을 그때,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이 쳤다.
“우르르 쾅.”
“아이, 무서어.(아이 무서워)”
아기들은 천둥소리가 무서워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보리도 무서워서 바닥에 몸을 납작 엎드린 채, 앞발로 두 눈을 가리고 있었다.
혜린이가 수녀님께 물었다.
“수녀님, 저 소리는 왜 나요?”
“먹구름이 싸우다가 쾅 부딪혀서 나는 소리란다.”
은우가 대답했다.
“그러문 어떠케! 모두하께 지내. (그러면 어떻게 모두 사이좋게 지내야지.)”
아기들이 은우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어린이집 문 밖에서 거친 발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왔다. 남자의 손에는 술병이 들려있었다.
“혜린아, 집에 가자.”
남자를 본 혜린의 얼굴이 굳어졌다. 혜린이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끅. 끅.”
김마리아 수녀님은 이태석 신부에게 전화를 걸고 남자에게 다가갔다.
“아기들 있는 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조용히 있던 보리가 온몸의 털을 곤두세우고 짖기 시작했다.
“왈왈왈왈!!!”
“내 딸 내가 보겠다는데 누가 말려. 판사? 법원? 웃기지 말라 그래.”
술병을 들고 찾아온 남자는 혜린의 아버지였다. 혜린의 아버지는 가정법원에서 혜린이와 혜린의 엄마에게 접근 금지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사유는 가정 폭력.
혜린이는 아빠를 보자마자 공포가 되살아났다.
“어서 가자.”
남자가 어린이집 안으로 다가와서 혜린이의 손을 잡았다.
혜린이의 딸꾹질 소리가 더욱 커졌다.
이태석 신부가 분노가 담긴 고함을 외쳤다.
“뭐 하시는 짓입니까?”
김 마리아 수녀는 이태석 신부를 보자 구세주를 만난 듯한 표정이었다.
“어서 가자.”
남자가 혜린의 손을 놓지 않자, 결국 화가 난 이태석 신부가 남자의 손목을 강하게 잡았다.
강한 힘 때문에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너 따위가 뭔데? 내가 혜린이 아빠라고. 내가 없었으면 혜린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줄 알아? 혜린이는 내 거야.”
술에 취한 남자는 안하무인이었다.
그때 은우가 혜린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문 어떠케! 모두하께 지내.(그러면 어떻게 모두 사이좋게 지내야지.)”
술에 취한 남자는 은우에게도 소리를 질렀다.
“이 꼬맹이가. 니가 뭐라고 날 막아서는 거야? 응?”
[그리스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화술. 레벨 1
– 1000/1000]
[북유럽의 천둥의 신 토르의 천둥 레벨 2 -
920/10000]
남자의 눈이 은우와 마주쳤다.
순간, 남자의 머릿속에 잊혀져 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나는 술만 마시면 혜린의 엄마를 때리곤 했었지.
왜 그랬을까.
작고 나약한 여자에게.
혜린의 엄마는 잘못도 없으면서 잘못을 빌었어.
난 그게 마치 세상이 나를 향해 비는 소리 같았어.
내 인생은 지독히도 운이 없었고, 잘해 보려고 하기만 하면 다시 꼬이곤 했어.
이상하게도 혜린의 엄마를 때리고 나면 마음이 좀 후련해지더라고.
물론 다음 날 아침 눈을 뜨면 똑같은 세상 속에 놓여 있었지만.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혜린이가 달라지기 시작했지.
아빠라고 부르지도 않고, 안기려 들지도 않았지.
대신 나를 마치 무서운 벌레 보듯이 쳐다봤어.
다른 모든 세상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니가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어.
너는 내 딸인데.’
복잡한 감정이 혜린을 향한 남자의 마음속에 있었다.
남자가 은우와 혜린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남자는 혜린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혜린아, 나를 좀, 나를 좀 사랑해 주겠니?”
남자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딸에게서 외면받고 있다는 그 사실을 남자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혜린은 그제야 딸꾹질을 멈추었다. 하지만 남자에게 다가가지는 않았다.
마침 문을 열고 경찰관이 들어 왔다.
“뭐 하시는 겁니까?”
경찰관이 남자를 데리고 어린이집 밖으로 나갔다.
김 마리아 수녀님은 혜린을 안고 달래기 시작했다.
이태석 신부가 은우에게 다가와 말했다.
“은우가 참 용감하구나.”
은우는 그때까지도 작은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여자와 어린아이를 위협하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어. 치사해. 당당하지가 못해.’
이태석 신부는 극적인 순간에 혜린의 아빠가 은우를 보고 마음이 바뀐 것이 신기했다.
‘경찰관이 오지 않았더라면 나라도 혜린의 아빠를 막아설 수 없었을 거야.
술에 취한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힘을 내기도 하니까.
삐뚤어진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는 건 정말 힘든 건데.
열심히 준비한 설교도 신도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기 힘드니까.
혹시 이 아기는 남과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아닐까.’
은우의 노래를 듣고 감정이 변화하는 경험을 한 신부였기에 은우가 더욱 남달라 보였다.
***
열정 떡볶이에서 바쁘게 주문을 받고 있던 창현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골목의 제왕의 작가 정우리였다.
“안녕하세요, 창현 씨. 좋은 소식이 있어서 전화했어요. 은우가 꼭 출현했으면 하는 드라마가 있는데.”
창현은 생각지도 못한 소식에 가슴이 설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