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전국 노래 경연대회 (2)
계속되는 2차 예심.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은우에게로 쏠려 있었다.
김인숙 작가가 물었다.
“두 번째 개인기도 아기가 하나요? 여기 악기 소리내기라고 적혀 있네요.”
은우가 자신 있다는 표정으로 방긋 웃었다.
요즘 들어 은우는 자꾸만 바이올린을 켜는 전생의 모습을 꿈속에서 만나곤 했다.
꿈에서 깰 때마다 은우는 바이올린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는 것만 같았다.
눈을 감아도 바이올린의 소리가 들렸다.
은우는 눈을 감고 바이올린 소리를 떠올렸다.
“따따따따 띠띠띠띠띠 따따따따리리.”
은우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소리.
그리고 그 소리는 어쩌면 아기의 부정확한 발음 구조에 더 적합하기도 했다.
어차피 그것은 인간의 소리가 아니었으니까.
은우는 입으로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연주했다.
예심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중에는 최지은과 4인방, 그리고 방금 합류한 군인도 있었다.
“우리 은우 멋지다. 음악 신동 이은우!!”
정연욱 PD는 은우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저 어린 아기가 지니고 있는 다양한 소리에 대한 재능은 무엇이지?
아까 예심 1차에서 보여준 화음도 절대 아기의 것으로 보긴 힘든 것이었어.
천상의 목소리에 타고난 관찰력과 표현력이 더해지다니.
무서운 재능이야.’
정연욱 PD가 물었다.
“세 번째 개인기도 기대 하겠습니다. 동물 흉내라고 돼 있네요.”
은우가 준비되었다는 듯 관객과 심사위원을 바라보며 손동작을 했다.
“이팅!”
은우의 손동작에 모두가 웃었다.
너무나 귀여웠기 때문이다.
“사자입니다.”
“어흥.”
은우가 사자 흉내를 내느라 눈썹을 찌푸리고 입을 한껏 크게 벌리면서 두 손으로 잡아먹는 흉내를 내었다.
“악, 너무 귀여워.”
객석의 곳곳에서 나오는 반응들
김인숙 작가는 생각했다.
‘지금까지 한 것 중 유일하게 하나도 안 똑같아.
그런데, 너무 귀엽잖아. 안 똑같은데 너무 귀여워서 눈을 뗄 수가 없어.
이건 뭐지?
안 똑같아도 되니 귀여운 걸 더 보고 싶네.’
김인숙 작가가 물었다.
“다른 동물도 있나요?”
“고양이입니다.”
“미아옹.”
은우가 눈을 최대한 커다랗게 뜨고 손으로 꼬리를 흉내 내며 몸을 흔들었다.
김인숙 작가는 은우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것도 하나도 안 똑같잖아. 그런데 너무 귀여워. 어떡하지?’
최지은과 군인은 객석에서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휴가를 나왔다가 전국 노래 경연대회에 참가했던 김성훈 일병은 은우에게 푹 빠져서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중국집에 가기로 한 것도 미룬 상태였다.
“신청곡에 치카송이 있네요. 2차는 MR이 나와야 해서. 노래방 기계에 이 곡이 있으려나. 처음 해보는 건데. 오, 있네요!”
전국 노래 경연대회 30년의 역사 속에서 치카송은 처음이었다.
MR이 나오자 은우는 깜짝 놀랐다.
‘집에서 너투브를 찍을 때 틀었던 반주는 이렇게 크지 않았었는데.
MR 소리에 묻히지 않도록 목소리를 크게 내야겠어.’
은우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흘러나왔다.
“치카치카치카 아아아아아아아아 쓰쓰쓰쓰.”
정확한 음정과 풍부한 성량. 비록 가사를 다 발음하진 못했지만, 강당이 소리로 꽉 찰 정도의 무대였다.
게다가 귀여운 치카치카 동작.
은우가 포동포동한 팔로 리듬을 타면서 양치질을 하듯 손을 좌우로 움직였다.
[북유럽의 천둥의 신 토르의 천둥 레벨 1 – 256/1000]
강당의 모든 사람들이 은우에게 동화되었다.
은우가 마이크를 객석에 대면서 외쳤다.
“모두 하께 어마도, 아쁘아도!”
할머니도 고등학생도 심사위원 두 사람도 다 같이 치카치카를 외치고 있었다.
“치카치카치카 아아아아아아아아 쓰쓰쓰쓰.”
다 함께 부르는 치카송.
동요인 만큼 한 번만 들어도 쉽게 기억할 수 있었다.
강렬한 후렴구.
치카치카치카 치카치카치카.
게다가 양치질을 하는 그 손동작은 쉬우면서도 얼마나 흥이 나는지!
노란색 반짝이 의상에 검은 쫄바지.
쫄바지 속에 있는 기저귀가 은우의 엉덩이를 더 통통하게 보이게 했다.
은우는 신이 나서 엉덩이를 요리조리 움직이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별다른 동작 없이 리듬을 맞추며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는 것이었지만, 은우의 귀여운 엉덩이 때문에 객석의 사람들은 자지러졌다.
은우가 엉덩이를 흔들며 다시 한 번 외쳤다.
“모두 하께.”
모두 마법에 걸린 듯.
치카치카치카 치카치카치카.
은우와 관객들이 함께 하얗게 불태운 무대였다.
[북유럽의 천둥의 신 토르의 천둥 레벨 1 – 900/1000]
‘와,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있으니 함께 감정이 동화되는구나.
숫자가 올라가는 속도 역시 어마어마하네.’
은우는 숫자가 채워지는 속도에 놀랄 지경이었다.
‘무대에 한 번 서면 레벨업 한 번 하는 건 일도 아니겠어.’
정연욱 PD는 은우의 스타성에 놀랐다.
‘노래를 잘할 뿐 아니라 무대를 장악할 줄도 알아.
관객의 호응도 유도할 줄 알고
치명적인 귀여움까지.
누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비주얼을 지녔고.
연예계에서 아기들이 성공하는 예는 드물지만,
혹시 이 아기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정연욱 PD의 눈앞에 은우의 미래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두 번째 곡은 창현의 단독 곡.
열정의 트위스트.
전주가 나오자마자 은우가 일어나 춤을 추기 시작하였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두 개의 노란 반짝이 자켓.
“차차차 신이 나게 흔들어요. 차차차 우리 함께 흔들어요.”
창현의 노래 위에 더해지는 은우의 춤.
은우는 신이 나서 무대 곳곳을 누비며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다.
아장아장.
씰룩씰룩.
‘아, 더워.’
은우는 더워서 목에 메고 있는 별 모양 스카프도 벗어 던졌다.
“아, 저 아기 봐. 더운가 봐. 엉덩이 흔드는 거 너무 귀여워.”
“저 스카프 개인 소장 하고프다. 악. 내가 가질래.”
은우가 던진 스카프를 가지기 위해 무대 아래에서는 쟁탈전이 벌어졌다.
은우는 춤을 너무 열심히 추다가 무대에 쿵 엉덩이를 찧고 말았다.
아직 무게중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아유, 참.’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몸이 은우는 속상했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은우는 생각 속에서는 이미 모든 춤을 다 출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현생의 아기의 몸이 그것을 따라주지 못할 뿐.
발음도 춤도 다 은우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다.
‘별수 없지 뭐.’
은우는 씩씩하게 일어서서 손바닥을 탈탈 털고 다시 또 춤을 추었다.
“아고. 저 아기 좀 봐 울지도 않네. 아주 보통이 아니야.”
“신이 난다. 신이나.”
60대의 할머니가 은우의 엉덩이 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를 시작으로 관객들이 은우의 엉덩이춤을 추었다.
다 함께 씰룩씰룩.
다 함께 엉거주춤.
신이 난 은우가 외쳤다.
“모두 하께.”
모두가 엉덩이를 들썩들썩.
은우도 기저귀를 찬 엉덩이를 힘차게 흔들었다.
[북유럽의 천둥의 신 토르의 천둥 레벨 1 – 1000/1000]
‘드디어 레벨업이다.’
[북유럽의 천둥의 신 토르의 천둥 레벨 2 – 0/10000
결합하는 재능을 2배로 강화시킬 수 있다.]
마지막 곡은 아빠와 함께 하는 노래.
걸그룹 스위트 소녀가 부른 곡으로 제목은 '슬픈 날'.
원곡은 이별의 슬픔과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곡이지만, 창현이 재밌게 개사를 해서 은우와 함께 자주 부르던 곡이었다.
반주가 흘러나왔다.
서로를 바라보는 은우와 창현.
“나에게는 아빠가 아빠에게는 내가
우린 서로가 있어서 너무 좋은 날
함께 있어 행복한 날
햇살이 너무 아름다워.
바람도 너무 아름다워.
꽃들도 너무 아름다워.
하지만 제일 아름다운 건 바로 너(아빠)
우리 이렇게 지금처럼만.
더 바라지 않아도
지금 이렇게 서로를 사랑해요.”
[그리스 음악의 여신 칼리오페의 감동. 레벨 2 – 528/10000]
처음 보는 관객들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손에 손을 잡기 시작했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시작된 광경에 카메라 감독은 깜짝 놀랐다.
‘누가 시키기나 한 것처럼 아름다운 장면이네.
화면이 너무도 아름다워.
정말 감동적이야.’
은우도 생각했다.
‘손을 잡고 있으니 사람들 사이의 감정 교류가 강해지는지 숫자가 더 빨리 올라가고 있어.’
[그리스 음악의 여신 칼리오페의 감동. 레벨 2 – 1900 /10000]
이어지는 은우의 3단 고음
“아아아아~~~~~~ 아~~~~~~ 아~~~~~~~~”
막힘없이 쭈욱 쭉 올라가는 힘 있는 고음.
속이 확 뚫리는 것 같은 상쾌함에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하게 하는 마력까지 갖추었다.
은우의 음이 올라갈 때마다 객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입이 점점 더 벌어졌다.
김인숙 작가는 너무 경악했다.
‘세상에 이것이 과연 아기의 목소리라고?
현역 가수 중에서도 이 정도의 고음을 자유자재로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저 아기는 뭐지?
대체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한 거지?’
은우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자신의 전생이 떠올랐다.
La scia ch'io pian ga, la du ra sorte 라 시야 키오 피안 가 라 두 라 소르테
e che so spiri la liberta 에 케 소 스피리 라 리베르타
나를 울게 하소서.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3옥타브 반의 고음을 소화하는 전설의 카스트라토(여성의 음역을 가진 남성 가수).
그것이 은우의 전생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우레와 같이 터지는 박수.
그것은 사람들의 감동에 비례했다.
“브라보. 브라보.
앵콜. 앵콜.”
은우의 눈앞에 있는 60대 할머니와 여고생 위로 중세의 귀족들이 겹쳐 보였다.
전생에서 받았던 수많은 박수갈채의 기억.
과거의 박수 소리 위에 더해진 현장의 박수 소리에 은우의 심장이 마구 뛰었다.
***
은우와 창현은 당당히 본선 진출권을 따내 집으로 왔다.
집에서는 기쁜 소식에 삼겹살을 사다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거봐.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너무 잘 됐다. 아까 지은이가 카톡으로 보내줘서 예심 영상 봤어. 은우 춤추는 거 너무 귀엽더라.”
“나도 은우가 그렇게 잘 출 줄 몰랐어.”
“본선이 언제야? 그날은 떡볶이집도 하루 쉬자. 나도 은우랑 너랑 노래하는 거 보러 가야지. 그러고 보니까 우리 떡볶이집 문 연 후로 하루도 쉰 적이 없었구나.”
“토요일.”
“그래 이번엔 우승이다.”
“일단 오늘은 본선 진출을 축하하며 삼겹살에 소주?”
오랜만에 창현과 영탁은 술잔을 기울이고, 보리는 꼬리를 치며 삼겹살을 얻어먹었다.
은우는 아기용 젤리를 먹으며, 오늘 들었던 박수 소리를 떠올리고 있었다.
***
창현은 은우와 함께 상품으로 받은 순대를 싣고 미혼모 시설 천사들의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김마리아 수녀님이 은우와 창현을 맞아주었다.
“잘 먹을게요. 은우야, 본선에 나간다면서. 우리 은우 파이팅.”
“이팅.”
은우가 작은 주먹을 불끈 쥐며 수녀님을 향해 웃었다.
수녀님은 은우를 어린이집으로 데려가셨다.
어린이집 안에는 연아를 비롯해 새로운 친구들이 있었다.
천사들의 집은 주로 시설에 머무는 미혼모의 아기들이 오는 곳이었다.
“여나.”
은우가 연아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연아가 옆에 있는 다른 친구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헤이(혜린이), 시우(시우), 준쑤(준수), 지오(지호)”
“아뇨용.”
은우가 반갑게 인사했다. 은우는 친구가 많이 생겨서 너무 신났다.
그때 가장 나이가 많은 혜린이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공주님 놀이하자.”
“시쪄, 빠빵 노리.”
준수와 지호는 자동차 있는 곳에 가서 자동차 놀이를 시작했다.
은우도 가방 속에 든 자동차를 꺼내서 준수와 지호 옆으로 갔다.
연아도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은우와 함께 준수와 지호 옆으로 갔다.
준수와 지호가 하려는 놀이는 로보카 폴리 놀이.
좋아하는 캐릭터인 폴리를 가지고 매일 반복하는 놀이다.
준수의 손에는 폴리가, 지호의 손에는 로이가, 은우의 손에는 헬 리가, 연아의 손에는 엠버가 들려져 있었다.
“포리 뚜뚜뚜뚜 가아다.(폴리 뚜뚜뚜뚜 달려간다.)”
“악, 디지혀서. 따려주세요!(악 폴리가 뒤집혔어요. 구해주세요.)”
용감하게 출동하는 지호와 은우, 연아의 자동차.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비장하다.
“앙대. 기다려. 노이, 헤이, 에버 출동!!(안 돼. 기다려 구해줄게. 조금만 힘을 내. 로이, 헬리, 엠버 출동한다)”
여러 대의 자동차가 폴리 옆에 서면 다 같이 박수를 치며 소리친다.
“와!!! 포리 따아쪄!! (와, 우리가 폴리를 구했어!!!)”
갑자기 은우가 쪼르르 수녀님에게 달려가더니 로포카 폴리가 그려진 귀여운 파란색 캐릭터 밴드 하나를 들고 온다.
“포리, 아야해. 아프지 마. (폴리야, 다쳐서 아팠지? 아프지 말고 빨리 나아.)”
호오 입김을 불어주며 폴리에게 밴드를 붙여주는 은우.
어느새 혜린과 시우가 은우와 연아, 시우와 지호 옆에 서서 아이들의 자동차 놀이를 보고 있었다.
“자, 이제 공주 놀이하자.”
“그으래. 아라떠.”
시우와 지호는 익숙한 일인 듯, 혜린을 따라갔다.
혜린은 고집이 센 편이어서 꼭 하루에 한 번은 자신이 공주가 되는 공주 놀이를 해야 어린이집에 평화가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혜린은 자신이 좋아하는 왕관을 쓰고 종이로 접은 하트를 들고 있었다.
“왕자는 은우.”
은우는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가 왜?? 연아도 아니고 혜린이 누나가 공주인데 내가 왜 왕자를 해야 하지?’
은우는 결국 거절했다.
“시쪄.”
“내가 이 하트를 가슴에 붙이고 쓰러지면 나에게 뽀뽀해줘.”
은우는 혜린을 피해서 김 마리아 수녀님에게로 도망쳤다.
‘맙소사. 뽀뽀라고?
난 아직 아빠랑 김미자 할머니, 영탁이 삼촌, 보리 말고 다른 사람에게 뽀뽀해 준 적 없는데.
어쩔 수 없지 줄행랑이다.’
다행히 김 마리아 수녀님 옆에는 창현이 서 있었다.
“은우야, 이제 가게로 갈 시간이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은우였다.
‘휴우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