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14화 (14/257)

14화. 전국 노래 경연대회 (1)

전국 노래 경연대회의 정연욱 PD는 테이블에 앉아 1차 예심을 진행하고 있었다.

‘예심 1차 참가자가 800명이 넘어서 기대하면서 들어왔는데, 종로구에서는 생각보다 재밌는 그림이 안 나올 거 같군. 벌써 심사가 막바지로 치달아가는데 말야.

티비에서 화면을 만들려면 끼가 있든지, 재미있는 사연이 있든지. 것도 아니면 노래를 가수처럼 잘하든지 해야 하는데 인재가 없어.’

전국 노래 경연대회는 30년이 넘는 전통을 자랑해 온 가장 오래된 가요프로였다.

자신의 PD 인생 20년을 모두 이 프로에 바친 정연욱 PD는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다. 그리고 그만큼 자신의 프로의 장점과 시청자들이 원하는 방향을 잘 알았다.

정연욱 PD는 다음 참가자를 예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흔한 반짝이 자켓이네. 저 자켓 역시 전국 노래 경연대회 심사를 보다 보면 많이 보게 되는 옷이지. 다들 튀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으니까.

어? 그런데 똑같은 노란 반짝이 자켓을 입은 아기랑 손을 잡고 있네.

아기라니?’

은우를 보는 정연욱 PD의 눈이 커졌다.

‘아기라면 이야깃거리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근데 저 어린 아기가 대체 무슨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거지?

아빠 응원하러 나왔나?

뒤에서 춤만 추나?’

궁금해하던 찰나.

마이크를 타고 나오는 고운 아기의 목소리.

“뚜뚜뚜뚜뚜뚜뚜.”

순간 정연욱 PD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직 걷지도 못할 것 같은 아기가 화음을 넣고 있잖아.

목소리가 너무 곱고 깨끗해.

천상의 소리 같아.’

그 위에 더해지는 창현의 목소리

“너를 처음 만나던 그날의 설렘을 기억해. 너로 인해 빛나던 나의 세상. between us. 우리 사이 연결된 하나의 줄.”

정연욱 PD는 무릎을 쳤다.

‘전국 노래 경연대회 참가자들에게서는 찾기 어려운 자연스러움.

아빠와 아기가 만들어내는 장면이 너무 뭉클해.

그래, 이거야. 내가 찾아 헤매던 그림.’

은우는 아빠와 함께 노래 부르는 순간이 너무도 행복했다.

‘가사가 너무 좋아요.

마치 우리 얘기 같아요, 아빠.

나는 아빠에게, 아빠는 나에게 힘든 세상을 이겨나가게 해주는 비타민 같은 존재잖아요.

아빠와 함께 있으면 아무리 세찬 비가 오더라도 이겨낼 수 있어요.’

이어지는 창현의 노래.

“우린 함께 햇살이 아름답게 비치는 봄날을 걷고 있죠.”

‘차력을 하는 사람.

단체 티를 맞춰 입고 아이돌 노래에 맞춰 군무를 추는 여고생.

군복을 입고 트로트를 맛깔나게 뽑아내는 군인들까지.

무대 아래서 이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원래 부르려고 가져왔던 어머니와 자장면의 개사곡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어.

그런데 그때 내 앞에서 웃고 있는 은우가 눈에 들어왔어.

가사가 꼭 은우를 향한 내 맘 같아서 함께 자주 들었던 곡.

나의 행복.

내 삶의 의미.

나의 은우.’

그렇게 해서 선곡하게 된 곡이 바로 이 ‘설렘’이라는 곡이었다.

곧이어 다가오는 클라이막스.

“너와 함께 걸을 때 귓가를 간질이는 바람

너와 함께 웃을 때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나를 늘 웃게 하는 너

너와 함께 있으면 온 세상이 봄”

은우가 곱게 화음을 넣었다.

원곡에는 사탕, 아이스크림, 꼬마곰젤리 등의 가사가 있었지만,

은우가 발음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단어들이기에 화음으로 대체되었다.

가사를 넣진 못했지만, 은우는 마음속으로 가사를 되뇌었다.

‘사탕, 아이스크림, 꼬마곰젤리.

아, 맛있겠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

은우의 마음속에서 축포가 터지고 하얀 눈이 내렸다.

은우는 기도했다.

‘제 노래를 듣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랑과 행복이 가득하게 해주세요.’

[그리스 음악의 여신 칼리오페의 감동. 레벨 2 - 0/10000

당신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북유럽의 천둥의 신 토르의 천둥 레벨 1 – 7/1000]

노래를 듣고 있던 정연욱 PD는 자신이 무대가 아니라 다른 곳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받았다.

20년 전 그의 아내가 첫아들을 낳았던 날.

그날도 정연욱 PD는 아내의 옆에 있어 주지 못했다.

신입PD라서 바쁘기도 했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전국 노래 경연대회의 특성상 원하는 날짜에 쉬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내는 혼자 아이를 낳고도 힘든 내색을 안 했다.

PD의 아내로서의 삶이 익숙해진 듯.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면서도 별말이 없었다.

두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정연욱 PD는 지나간 삶이 후회스러웠다.

‘뒤돌아보니 아들이 자랄 때까지 함께 놀이공원을 간 기억도, 영화관에 간 기억도 없네.

아이들은 자라서 이젠 아빠를 귀찮아하고 친구들과만 놀고 싶어 하고, 아내도 취미 생활과 친구들과 모임하느라 바쁜 것 같고.

나는 참 별 볼 일 없는 애비에 남편이었구나.’

정연욱 PD는 은우와 창현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꾸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김인숙 작가는 정연욱 PD가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우는 장면을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김인숙 작가는 평소에 이학기의 팬이어서 이 곡을 잘 알고 좋아했다.

이 곡은 중년 가수 이학기가 자신의 딸과 함께 불러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곡이었다.

이학기 특유의 미성과 이학기를 똑 닮은 아름다운 딸의 목소리.

부녀 관계에서 주는 묘한 감동이 곡 전체에 남아있는 곡이었다.

김인숙 작가는 은우와 창현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이 노래를 원곡자보다 더 잘 살리기가 쉽지 않은데.

원곡보다 더 아름답잖아.

아빠와 아들이 만들어내는 화음이 아빠와 딸이 만들어내는 화음보다 아름답다니.

아기의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어디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그런 소리야.

내가 지금 전국 노래 경연대회에 앉아있는 게 맞아? 콘서트장이 아니고?

전국 노래 경연대회 예심 1차에서는 발라드로 통과한 사람은 10년 만에 처음인데.

프로그램 자체가 노래를 잘하는 사람보단 재밌거나 이야기가 있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그런데 끼도 없고 흥도 없지만, 감동을 주는 무대라니.

무반주가 오히려 음색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무대라니.

가왕의 밤이나 불멸의 명곡에 나갔어야 하는 거 아닐까.’

보통 1차 예심은 1절도 다 듣지 않고 30초 만에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은우와 창현은 전곡을 다 불렀다.

은우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뜬 숫자를 흥미롭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심사위원석에 앉은 남자분은 15와 5, 여자분은 12와 3, 관객석에서는 너무 많은 숫자들이 보여서 정신이 없을 정도네.’

마지막 무대였기 때문에 오전과 같이 많은 참가자가 남아있진 않았지만, 꽤 빠른 속도로 숫자를 채울 수가 있었다.

[그리스 음악의 여신 칼리오페의 감동. 레벨 2 - 528/10000]

[북유럽의 천둥의 신 토르의 천둥 레벨 1 – 256/1000]

노래가 끝나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앵콜앵콜”

예심에서 앵콜이라니 전에는 없던 광경이었다.

“아빠와 아들 너무 멋져요.”

“은우야. 누나 왔다아!!!!!”

떡볶이집에 들렸다가 은우와 창현의 전국 노래 경연대회 참여 소식을 들은 최지은이 스마트폰에 글자를 띄워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옆에는 지은의 친구들 4인방도 서 있었다.

스마트폰에는 다음과 같은 글자들이 빛나고 있었다,

- 우유 빛깔 은우

- 종로구 최연소 슈퍼스타

- 순대송의 인기 이어가자

- 전국 노래 경연대회 우승

은우는 신이 나서 최지은을 보면서 외쳤다.

“눈나 사라하니(누나 고마워. 사랑해요.).”

정연욱 PD가 눈물을 훔치며 창현에게 2차 예심 신청서를 주었다.

“2차 예심도 꼭 통과하길 바라요. 은우 노래를 더 듣고 싶네요.”

김인숙 작가는 정연욱 PD의 말을 들으며 깜짝 놀랐다.

‘평소 감정 표현 없고 객관적이기로 소문난 분이 저렇게 사심 섞인 발언을 하다니.

놀라운데?’

사회자가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방금 1차 예심이 끝났습니다. 총 65팀이 2차 예심으로 진출했습니다.

2차 예심에서는 본선인 방송에 진출할 15팀을 뽑게 됩니다.

이어지는 무대는 트로트 가수 박상진 씨의 축하 무대.

‘경자야’ 이어집니다.”

트로트 가수 박상진이 무대에 올랐다.

“경자야. 경자야. 너는 모르지.

나의 사랑을.”

은우는 최지은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은우야. 어른들 틈에 있어도 니가 노래를 제일 잘한다니까.”

“나는 멀리서도 은우 목소리를 딱 알아봤다니까. 우리가 막 여기 들어서는 순간 은우 목소리부터 들렸지.”

“이름 난 트로트 가수 아저씨 노래도 귀에 안 들어와.”

최지은과 친구들은 떡볶이집에서 다시 구청으로 오느라 창현과 은우의 무대 시작과 함께 구청 안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보나마나 2차도 통과할 거고 본선 때 오면 되겠다. 본선 때는 아예 카드를 크게 만들자. 열정 떡볶이의 음악 신동. 이은우. 이렇게 해서 어때?”

“좋은 생각이야. 은우 사진도 넣어서!!!”

“눈나, 이팅!!!”

은우가 작은 손을 앙증맞게 들어 올리며 외쳤다.

“악, 은우야 너 방금 뭐한 거야. 맙소사. 내 심장.”

최지은이 은우의 손짓에 심쿵하며 말했다.

“그런데 이 반짝이 의상. 맙소사. 어쩜 너는 이것도 귀여워. 세상에 반짝이라니. 우리 은우는 그냥 있어도 빛이 나는데. 참, 내 정신 좀 봐. 은우야 나 오늘 이거 사 왔다.”

최지은이 가방에서 아기용 젤리를 꺼냈다.

은우는 전에 수제 젤리를 선물로 받아서 먹어본 기억이 있기 때문에, 젤리를 보자마자 손뼉을 쳤다.

“마므아. 마므아. 쪼아하니.”

지은이 젤리를 하나 꺼내 은우의 손에 쥐여주었다.

***

창현은 2차 예심 신청서를 보며 고심 중이었다.

‘노래방 반주에 부르고 싶은 곡을 3곡 적으라는데 뭘 적지?

개인기와 방송 출연 경험 여부도 적으라는데. 그런데 노래가 아니라 개인기를 적으라고 하는 거 보면 역시 전국 노래 경연대회는 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 같긴 하다.

아, 둘 다 어렵다. 뭘 적어야 할까.’

2차 예심 신청서를 적던 창현이 은우와 눈이 마주쳤다.

‘그래. 나는 개사 말고는 별 재주가 없으니까, 은우 개인기를 적어봐야겠어.

둘이 같이 참가하는 거니까 꼭 내가 개인기를 하라는 법은 없지.’

은우는 하루 종일 가게에 있어서인지 말이 빨리 늘었다. 그리고 티비를 보고는 곧잘 흉내도 냈다.

창현은 신이 나서 개인기란에 은우의 특기를 적어넣었다.

그리고 신청곡 중 한 곡은 은우의 노래를 적어넣었다.

‘치카송.’

***

드디어 시작된 2차 예심.

정연욱 PD와 김인숙 작가는 다리가 무겁고 눈꺼풀이 내려오는 중이었다.

“심사를 너무 오래 봤더니 피곤하다.”

“샷 추가한 아메리카노예요. 드세요.”

김인숙 작가가 정연욱 PD에게 커피를 건넸다.

“그래도 예심 2차는 중요하니까 집중해야죠.”

“그럼. 본선 진출자가 결정되니까. 본선 진출자들이 시청률을 결정하기도 하고.”

“전국 노래 경연대회는 시청률을 우리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출연자들이 만들어내니까, 그게 참 어려워요.”

“그치. 그치만 그게 시청자 참여방송의 묘미이기도 하고. 근데 아까 그 아기 말야. 진짜 물건 같지 않아?”

“그쵸? PD님 생각도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빠의 손을 꼬옥 잡은 은우가 무대로 올라왔다.

정연욱 PD가 물었다.

“개인기가 강아지 소리 흉내 내기인가요? 한 번 해보시겠어요.”

은우는 평소에 보리를 너무 좋아했다.

또래 친구가 없는 은우에게 보리는 친구이자 강아지였다.

둘은 대부분의 시간을 같이 보냈고, 은우는 눈만 뜨면 보리를 찾았다.

그러다 보니 보리가 내는 다양한 소리들도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이었다.

“끼이이이이이이잉”

“이건 아침에 배고플 때 내는 소리입니다.”

은우가 낸 소리에 창현이 설명을 더했다.

“머어엉멍 머어어엉멍!(낮은 톤으로 길게)”

“이건 택배가 오거나 모르는 사람이 왔을 때 짖는 소리입니다.”

“하오오옹 아오오옹.”

“이건 동족을 부를 때 하울링 하는 소리입니다.”

김인숙 작가는 깜짝 놀랐다.

‘저 어린 아기가 동물 소리를 똑같이 내다니.

눈만 가리고 들으면 강아지인지 아기인지 알기가 힘들 정도잖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