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첫 방송 출연 (1)
김태우 PD와 정우리 작가가 열정 떡볶이에 방문하였다.
촬영 전, 간단히 가게를 보고 촬영 계획을 잡기 위한 방문이었다.
정우리 작가는 김영만의 극찬이 떠올랐다.
“마흔 살, 오십 살, 육십 살도 좋아할 수 있는 떡볶이라니까. 내가 태어나서 먹어본 떡볶이 중에 가장 맛있는 떡볶이였어. 깊은 맛이 났다니까.”
정우리가 알고 있는 김영만은 쉽사리 그런 극찬을 할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
김태우 PD는 가게보다 은우가 더 눈에 들어왔다.
‘예쁜 아기는 많이 봐 왔지만, 저렇게 빛이 나는 아기는 처음이야.
눈을 뗄 수가 없잖아.
귀여우면서도 성스러운 저 분위기.
카리스마마저 느껴지는 저 아기.
설마 저 어린 아기에게서 아우라가 느껴지는 건가.
대체 저 아기는 뭐지?’
그때 은우가 늘 흥얼거리던 노래를 흥얼거렸다.
“기해무기치 기해무기치.”
힙시트에 안겨있는 작은 아기가 부르는 노래가 음정이 너무도 정확했다.
가사는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긴 노래를 완벽히 외워서 부르고 있었다.
“천재인가.”
김태우 PD는 계속해서 은우를 바라보았다.
‘완벽한 노래와 비주얼.
저 아기라면 누구든지 한눈에 사로잡을 수 있을 거야.’
김태우 PD는 무릎에 은우를 앉혀 놓고 계속 은우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우리는 김태우 PD의 행동이 짜증이 났다.
‘맛집 프로그램에 아기라니.
평상시엔 비혼주의자라고 하면서 아기에겐 관심도 없었으면서. 정작 중요한 순간에 저게 뭐야?’
김태우 PD는 스마트폰으로 은우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있었다.
‘이 아기 너무 귀여워. 하지만 맛집 프로그램에서 아기의 얼굴을 오래 비춘다면 그건 이상한 일일 테지.
뭐 좋은 방법 없을까?
가만 보자. 이 아기 목소리가 너무 이쁘잖아. 국보급 보이스인데.
아기가 부를 수 있으면서도 맛집 프로그램에 어울리는 노래가 있을까.
동요와 음식을 결합하면 어떨까.
오이송이나 밀크송 같이 쉬운 노래라면?
가사를 조금 바꿔서 BGM으로 틀어 볼까.’
김태우 PD가 스마트폰으로 밀크송을 틀었다.
은우는 김태우 PD가 매우 재미있었다.
‘처음에 날 보자마자 10이 떴어. 아기를 매우 좋아하나 보다. 이 삼촌.’
은우는 신이나는 듯 김태우 PD의 품에 안겨 몸을 들썩들썩했다.
‘악 너무 귀엽잖아.’
김태우 PD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난 원래 아기를 싫어했었는데, 갑자기 아기가 귀여워지다니. 늙은 걸까.’
만감이 교차하는 김태우 PD였다.
신기하게도 은우는 밀크송을 한 번 듣더니 그대로 따라 했다.
“아아 시뗘 시뗘 시뗘 아아 시뗘 시뗘 시뗘
아아아 아아 오노 아아아 아아 오노”
가사가 어려운지 아아아로 바뀌는 부분도 있었지만, 음정은 정확했다.
게다가 시쪄를 할 때 진짜 싫은 듯 눈을 찌푸리고 오노 할 때는 입술을 옴짝달싹하면서 싫은 표정을 지었다.
김태우 PD는 은우를 보면서 생각했다.
‘맙소사. 이 아기 왜 이렇게 귀여운 거야.
그치만 이 귀여운 영상이 풀로 잡힐 수는 없는 거지.
맛집 프로그램이니까.
아, 맛집 프로 대신 육아 프로 하고 싶다.’
은우는 김태우 PD가 재미있었다.
‘이 삼촌 재미있네. 처음엔 10, 아까 웃어주니까 5, 노래 부르니까 다시 10이 나왔어.
짧은 시간에 이렇게 숫자가 빨리 올라가다니.’
정우리 작가가 창현과 영탁의 인터뷰를 토대로 프로그램 구상을 마치고 홀로 돌아왔을 때, 김태우 PD는 열심히 오이송의 가사를 고치고 있었다.
“PD님 뭐 하시는 거예요?”
“나, 지금 오이송 가사 고치고 있어. 순대송으로.”
“순대송이요? 갑자기 웬 노래예요?”
“순대송이 맛집 프로그램에 왜 필요한데요?”
“이번 회차에 꼭 넣을 거야.”
“맛집 프로그램에서 배경음악은 말 그대로 배경음악일 뿐이잖아요. 노래가 음식보다 튀면 누가 그 음식을 사 먹겠어요? 잘 아시는 분이 왜 그러세요?”
“이 노래는 다를 거야. 진짜 들으면 모두 좋아하게 될 거라니까 그러네.”
“게다가 우리 프로는 주로 중장년층이 보잖아요. 동요라니 좀 이상해요. 안 좋은 생각 같아요.”
“나만 믿어보라니까 그러네.”
정우리는 평소와 다른 김태우 PD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왜 저러는 거야. 지금 우리 프로그램 시청률이 얼마나 안정적인데.
게다가 처음에 나에게 기획 의도를 설명하던 때랑은 너무 달라졌잖아.
같은 사람 맞아?’
정우리는 골목의 제왕 프로그램 기획 의도를 설명하던 김태우 PD를 떠올렸다.
“맛집 프로는 많습니다. 하지만 자극적인 편집, 맛집 블로거 수준의 성의 없는 소개, 개인적인 친분으로 식당 매출이나 올려주려고 하는 프로는 많습니다. 우리 프로는 친구와 함께 퇴근길에 들를 수 있는 식당, 휴일에 가족들끼리 마음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식당을 소개할 겁니다. 중장년층이 마음 편하게 추억 여행하듯 들를 수 있는 그런 식당이요.”
그렇게 열변을 토했던 김태우 PD가 갑자기 달라진 듯싶어 정우리의 마음이 심란했다.
김태우 PD는 은우의 재롱에 넋이 나가 있었다.
“나 쪼아하니? 나 싸라하니? 아아아아아아아”
김태우 PD는 은우가 쪼아하니 싸라하니 할 때마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맙소사,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의 좋아한다는 말에 설레다니.
세상에 너무 귀엽잖아.
헉 숨을 못 쉬겠어.’
은우는 김태우 PD가 재미있었다.
‘노래 부르는 동안 숫자가 20이나 올라갔어.
오늘 이 삼촌한테서만 숫자가 55나 늘었네.
덕분에 조금만 더 채우면 1000이 되겠는데.’
김태우 PD는 정우리 작가의 스마트폰을 뺏어 은우의 영상을 촬영했다.
‘이건 내가 혼자 두고 집에서 봐야지.
이건 꼭꼭 개인 소장 해야겠어.’
그런 김태우 PD를 정우리는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기가 이쁘긴 하지만, 우린 육아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이번 회 시청률 내리꽂겠고만. 난 모르겠다.’
촬영은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진행하기 위해 다음 날 저녁 시간으로 잡혔다.
***
창현과 영탁은 전날 밤 설레어서 잠을 설쳤다.
“방송 출연이라니 꿈만 같다.”
“창현아, 나 그때 너랑 같이 구제시장 갔던 첫날, 솔직히 후회했었어. 자신도 없었고. 근데 그 뒤로 마치 인생이 꿈만 같다. 하루하루 인생이 설레어 보긴 처음이야. 배달일이 돈이 되긴 했지만, 즐거웠던 적은 없었거든. 그냥 통장에 들어오는 돈. 그거 보고 하루하루 버텼던 거 같아. 근데 너랑 같이 장사하면서 사람들이 우릴 호응해주고, 갑자기 좋은 기회들이 찾아와서 이렇게 방송도 나가고. 설거지를 많이 해서 손목이 시큰거리는 데도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어.”
“고마워, 영탁아. 니가 아니었으면 나 혼자서는 절대 못 했을 거야. 은우도 혼자서는 볼 수 없었을 텐데. 니가 일을 같이 해주니까 내가 기저귀도 갈고 분유도 먹일 수 있고. 나도 몸은 힘든데 매일매일 은우도 예쁘게 크고, 또 하는 일도 계속 잘되고 하니까 너무 행복해. 통장에 조금씩 돈도 쌓이고.”
“그래, 우리에게 꼭 좋은 미래가 있을 거야. 더 열심히 해야겠어.”
은우와 보리의 쌕쌕거리는 평화로운 숨소리를 뒤로하고 창현과 영탁도 잠이 들었다.
***
아침부터 영탁은 평소와 다르게 비비크림을 바르고 있었다.
“자, 어서 너도 발라 창현아.”
영탁이 창현의 얼굴에도 비비크림을 발라주었다.
“난 괜찮아.”
“너 사람 일이라는 게 어떻게 될 줄 모르는 거다. 티비도 나오게 되는데 말이지. 자, 은우는 오늘 이거 입자.”
귀여운 노란색 꿀벌 옷이었다.
“와, 예쁘다. 너무 튀는 거 아닐까?”
“무슨 소리. 이런 날은 무조건 튀어야 한다고. 우리 은우가 얼마나 이쁜데. 첫 카메라 출연인데 예쁘게 보여야지. 예쁜 디자인 찾느라 얼마나 헤맸다고.”
세 사람 모두 꽃단장을 마친 채 출근을 하였다.
점심시간이 되자 직장인들이 몰려들었다.
맹현수 회사의 입소문이 근처 회사까지 퍼져서, 이미 열정 떡볶이는 인근 직장인들 사이의 맛집이 돼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나자 청계천에 놀러 온 아주머니 손님들이 식당을 메웠다.
그리고 4시 고등학교가 끝나는 시간, 근처 복성고등학교의 학생들로 떡볶이집이 가득 찼다.
“아, 김해 물김치 형이네.”
처음 보는 남학생이 창현을 보면서 인사했다.
“어. 어서 와.”
창현의 노래는 이미 얼굴 사이트를 타고 복성고 학생들 사이에서 큰 유행을 타고 있었다.
은우도 처음 보는 남학생을 보며 웃었다.
‘내가 웃자마자 숫자 8이 올라갔네. 역시 고등학생 형, 누나들이 마음이 후해.
이로써 1000 달성!‘
[그리스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우라. 레벨 1 – 1000/1000]
‘완성했으니 곧 있으면 새로운 재능이 나타날 거야.’
기대해보는 은우였다.
“은우야.”
최지은이 친구들과 함께 떡볶이집으로 들어섰다.
“넌 여기 출근 도장 찍니?”
영탁이 웃으며 물었다.
“떡볶이집 출근 도장이 아니라 은우 보러오는 출근 도장입니다. 물론 떡볶이도 맛있긴 하지만요. 하루라도 은우를 안 보면 입안에 가시가 돋쳐. 으으. 은우야 선물 사 왔다.”
최지은이 쇼핑백에서 꺼낸 것은 슬라임이었다.
“이거 내가 좋아하는 건데, 아기용도 있다고 해서. 은우야, 이거 정말 재밌다.”
최지은이 뚜껑을 열어서 슬라임에 은우의 손가락을 닿게 했다.
‘뭐지? 이 축축하고 시원한 느낌은. 말캉말캉하네.’
그 순간 은우의 눈앞에 새로운 신이 나타났다.
눈부신 순백의 여신은 하프를 들고 나타나, 하프를 켜며 노래했다.
여신의 목소리는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도 고왔다.
“신들의 가호를 받는 아이야.
내가 너를 축복하노니, 너는 나의 권능을 이어받아
노래로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할지니.
너의 노래를 들은 자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고
너의 노래를 들은 자 기쁨을 전하지 않는 자가 없고
너의 노래를 들은 자 춤추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다.”
[그리스 음악의 여신 칼리오페의 감동. 레벨 1 - 0/1000
당신의 노래를 들은 사람들은 당신의 감정에 매료됩니다.]
‘맙소사, 맙소사. 음악의 여신의 재능이라니.
가수가 꿈인 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재능이잖아.’
은우는 고대하던 재능에 날아갈 듯한 기분이었다.
“참, 은우 너투브 구독자 오만 명 넘었던데. 수익 신청은 하셨어요?”
“수익 신청은 했는데, 요새 바빠서 새 영상을 올리지 못했네.”
“헉, 오빠 너투브 세계도 치열해요. 은우니까 버티는 거지. 이렇게 하면 너투브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요. 어서 새 영상을 올리셔야죠.”
“미안, 요새 가게도 너무 잘되고, 방송 출연까지 잡혀서 정신이 없었어.”
그때, 열정 떡볶이로 촬영팀이 들어섰다.
촬영팀은 촬영이 예정된 좌석 근처와 가게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했다.
만화가 김영만과 소설가 진문열은 골목 어귀에서 만나 소곤소곤 담소를 나누며 열정 떡볶이로 오고 있었다.
“문열 님, 80년대에 신당동 떡볶이 기억하십니까?”
“아, 그럼요 기억하죠. 그때는 왜, 떡볶이집에서 신청곡도 받고 노래도 틀어주고 했잖아요. 그때 그 DJ들이 인기가 있었죠. 지금은 그런 게 다 사라졌어. 그때 그 낭만이 없어요.”
“지금 가시는 떡볶이집에 특별한 게 있어요. 그 시절 감성은 아닌데, 낭만이 있는 곳입니다. 주인장 마음이 매우 따뜻해요. 제가 혼자 간 날 저를 위해서 메뉴판에도 없는 반반 메뉴를 만들어줬거든요.”
“요즘은 없지 그런 집이. 참 기대가 되네요.”
“저도 이런 집을 소개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친구와의 수다처럼 소소한 이야기를 따라가는 카메라.
영만과 문열이 열정 떡볶이 안으로 들어선다.
교복 입은 학생들로 가득 찬 홀을 보며 놀라는 영만과 문열.
준비된 자리로 앉자 창현이 메뉴판을 내민다.
“아, 여기 새로운 메뉴판에는 추가가 돼 있네요. 반반 메뉴.”
“그때 말씀하시길래 다른 손님들도 원하실 것 같아서 추가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