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소문난 분식집 (3)
영만은 어린 시절을 산골에서 보냈다.
마을 하나에 집이 다섯 채밖에 없는 깊은 산골.
그곳이 영만의 집이었다.
영만의 어머니는 영만이 5살 때 돌아가셨다.
영만이 7살 되던 해 겨울, 영만은 고열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이 든 할머니가 위태로이 숨 쉬는 영만의 머리 위에 찬 수건을 얹어주실 뿐이었다.
“많이 아픈가 보다, 야가.”
할머니가 걱정스레 영만을 보며 영만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영만의 집은 깊은 산골.
약국에 가거나 병원을 가려면 밤새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영만의 열이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가 아픈 영만을 들쳐업었다.
할머니가 영만이 춥지 않도록 겉옷을 두세 겹씩 싸주었다.
영만의 아버지는 눈 속을 달렸다.
어린 자식을 살리기 위해 옷이 젖고 발이 어는 것도 모른 채 달렸다.
영만의 열과 자신의 땀으로 아버지의 옷이 젖었다가 추운 날씨 탓에 다시 얼어붙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식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옷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꼬박 5시간의 산길을 달려서 도착한 읍내의 병원.
영만은 아버지의 등 뒤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았다.
“열이 너무 높아서 조금만 늦었으면 위험했어요.”
의사가 영만과 영만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영만은 읍내의 병원에서 꼬박 이틀을 누워있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할머니가 내민 흰 미음 한 그릇.
“아이고, 내 강아지 다 나았구먼. 이거 좀 먹어봐라.”
영만은 그 미음을 먹으며 생각했다.
‘아, 이제 살았구나.’
영만은 떡볶이를 먹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
‘아버지 너무 보고 싶습니다.
제게 주셨던 큰 사랑을 그때는 다 깨닫지 못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왜 하필 떡볶이를 먹으면서 이 생각이 났을까.
이 떡볶이, 이상하게 할머니의 미음을 닮았어.
게다가 이 가게는 이상하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튀김도 깔끔하고 순대도 신선하고.
손님의 취향에 신경 써주는 자상하고 친절한 사장님까지.’
은우는 영만의 머리 위에 뜬 숫자 20을 보았다.
‘단순히 맛있다고 느낀 게 아니라 감동한 거 같아.
그게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숫자지.
저렇게 감동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남보다 풍부하다는 것.
저 할아버지는 분명히 예술가일 거야.’
영만이 진행하는 프로는 자극적이지 않고 옛맛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맛집을 소개해 주는 프로로 중장년층에게서 인기가 높았다.
주로 중장년층이 보는 프로였기 때문에 분식집은 나온 적이 없고, 주로 전집이나 백반집 등이 나왔다.
떡볶이 맛에 반한 영만이 결심했다.
‘피디와 작가에게 한 번 섭외하자고 해야겠는데.’
영만은 계산을 하고 나오며 열정 분식집의 간판을 카메라로 찍었다.
***
“와, 얘가 은우구나. 너무 이쁘다.”
“그치, 이쁘지? 이렇게 이쁜 애기 못 봤지.”
“어머나 이 팔뚝 좀 봐. 세상에. 우리 집 갈래? 우리 집 가야겠다. 너무 이뻐서.”
아줌마들의 수다 사이로, 구제시장 주방 단골이던 임현희가 창현에게 쇼핑백을 내밀었다.
“이거. 이사도 축하하고, 또 우리 은우 맛있는 거 한 번을 못 사줘가지고. 가게에서 심심할 때 먹으라고 아기용 간식을 샀어. 그리고 내가 만든 아기용 젤리도 있는데, 잘 만든 건 아니어서 은우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어. 암튼 사업 번창하고 내가 친구들 데리고 또 올게요.”
“감사합니다.”
창현이 진심으로 마음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수제 간식이라니. 확실히 여자들은 신경 쓰는 게 다르구나.
난 가게 일도 바쁘고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이런 걸 만들어 줄 생각조차 못 했는데.
왠지 은우에게 미안해지네.’
창현은 쇼핑백에서 임현희가 만든 젤리를 꺼내 은우에게 주었다.
‘은우가 맛있게 먹어주는 게 가장 좋은 인사가 될 거야.
이거 만드느라 수고하셨을 텐데. 은우가 꼭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다.’
은우가 작은 손으로 젤리를 쥐었다.
별 모양 젤리는 분홍색, 오렌지 색, 보라색.
딸기를 갈아 넣은 것, 귤을 갈아 넣은 것, 블루베리를 갈아 넣은 것.
모두 한천이 베이스로 들어가 있었다.
은우는 처음 보는 아름다운 모양과 색깔에 넋을 놓았다.
“아브아, 맘마.”
은우는 빨리 달라는 의미로 손을 흔들었다.
창현이 은우의 입에 젤리를 하나 넣어주자, 은우의 입에서는 처음 맛보는 상큼함이 터졌다.
‘맛있기도 한데, 조금 시어.’
자신도 모르게 은우는 얼굴을 찌푸리고 눈을 움찍움찍했다. 입도 시어서 오물오물 자동적으로 움직여졌다. 바르르 떨리는 볼살.
“아이, 귀여워. 신가 본데. 오, 저 표정 봐. 어쩜 신맛 표현을 저리 잘해. 광고 모델 해도 되겠다.”
은우의 머릿속에서는 별이 반짝했다.
‘오, 그런데 신맛 뒤에 찾아오는 이 말랑말랑함. 그리고 단맛.
오, 이건 뭐지. 세상에 이런 맛이 있다니.
이런 음식은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는데.’
“맘마!!”
은우는 더 달라는 표시로 손뼉을 쳤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다니.
탱글탱글하고 말랑말랑한 이 맛.
두 번째는 더 괜찮은데.
신맛 뒤에 단맛. 그리고 말랑말랑함.
다양한 맛이 파도치듯 몰려오잖아.
뭐지? 이렇게 재밌는 음식은. 너무 신난다.’
은우는 신이나서 박수를 막 쳤다.
그 모습을 본 임현희는 너무도 뿌듯했다.
“나는 처음 만든 거라 안 좋아할까 봐 걱정했는데. 이렇게 잘 먹어주니 너무 고마워.”
“다음엔 나도 만들어줘야겠는데. 너무 잘 먹는다.”
임현희의 친구들도 다들 한마디씩 하였다.
임현희와 친구들은 떡볶이를 주문했고, 맛에 만족했다.
은우는 임현희와 친구들의 머리 위에 뜬 숫자를 보며 미션창이 완성되는 것을 보았다.
[두 번째 미션 - 완성된 떡볶이로 손님들의 만족도를 채워보세요. 1000/1000]
‘드디어 두 번째 미션이 완성됐어. 세 번째 미션은 뭘까?’
[세 번째 미션 - 완성된 떡볶이로 손님들의 만족도를 채워보세요. 0/10000]
‘와, 이번엔 10000이네. 숫자가 많이 커졌어. 하지만 손님들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으니 채울 수 있을 거야.’
은우의 기대대로 손님은 더 늘어났다.
점심시간이 되자, 열정 분식집 앞에 대기 인원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영탁은 김미자의 가게로 갔다.
“대기 손님이 생겨서 급하게 의자 좀 빌려 갈게요.”
김미자는 대기 손님이 생겼다는 말에 놀라면서도 흐뭇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영탁은 급하게 다녀오느라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여기 의자에 앉으세요. 많이 기다리셨죠?”
그리고 대기표를 나눠주었다.
대기표를 받은 손님들이 수군거렸다.
“대기표에 쓰인 문구 읽었어?”
“응, 20분 이상 대기 시 테이블 당 순대 1접시를 무료로 준대. 기다린 보람이 있는데?”
“이거 찍어서 별스타에 공유해도 되나요?”
“물론이죠. 저희 식당은 음식 사진도 인테리어도 전부 다 촬영하셔도 돼요.”
긍정적인 손님들의 반응에 창현과 영탁은 바빴지만, 날아갈 듯 기뻤다.
오후 다섯 시가 되자, 근처의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몰려왔다.
“은우야, 내가 다른 친구를 또 데려왔어.”
구제시장 시절부터 단골이던 최지은이 8명이나 되는 학생을 데리고 분식집으로 들어왔다.
8명 좌석은 없어서 2개의 테이블을 연결해서 붙였다.
“여기 떡볶이가 완전 맛있다니까. 학교 앞 맛집이라고.”
최지은이 데리고 온 학생들에게 열변을 토했다.
“아, 나 저 애기 너투브에서 봤는데 노래를 너무 잘해. 저렇게 노래 잘하는 아기는 처음 봤다니까.”
최지은의 친구가 은우를 알아보았다.
은우가 최지은에게 인사했다.
“눈나.”
“아, 맙소사. 말하니까 더 귀여워. 눈나라니. 너투브에서 봤던 거보다 훨씬 귀엽다. 계집애 부럽다. 너 아는 체하는 것 좀 봐.”
“그럼, 나랑 은우 사이는 찐이야. 찐. 근데 오빠 은우 노래도 해요?”
최지은이 깜짝 놀라서 창현에게 물었다.
“아, 그게 올린 지 며칠 안 됐는데. 구독하시는 엄마들이 은우 노래에 아기들이 잠을 잘 잔다고 해서 올리기 시작했어.”
창현이 휴대폰으로 은우의 채널을 켜서 보여주었다.
“와, 미쳤다. 지금 구독자가 5천 명이 된 거예요? 영상 올린 지 일주일밖에 안 됐는데. 맙소사. 이게 가능해? 근데 잠깐만. 와, 이것 봐. 구독자도 구독자인데 조회 수가 어마어마하네요. 영상이 2개뿐인데 영상당 조회 수가 5만. 헉. 맙소사.”
옆에 있던 최지은의 친구, 미주가 말했다.
“이거 알짜 채널이네. 반복 재생이 왜 이렇게 많아? 이러니까 너투브 알고리즘이 자꾸 다른 구독자들에게 추천을 하나 보다. 이 알고리즘 진짜 무섭거든. 인공지능이라.”
다시 최지은과 창현의 대화가 이어졌다.
“오빠 수익 신청하셨어요? 이미 수익 창출 기준이 넘은 거 같은데.”
“수익 창출이 뭐야?”
“너투브는 광고가 붙어서요. 일정 기준을 넘으면 광고를 돈으로 바꿔서 채널 주인에게 돈을 줘요. 어서 신청하세요. 이미 수익이 나왔을 거예요. 근데 진짜 미주 니 말대로 노래 너무 잘한다. 근데 넌 이걸 어디서 봤어?”
“음, 울 아빠 엄마가 늦둥이 낳았잖아. 걔가 울어서 공부할 때마다 시끄러워서 집중이 안 됐는데, 은우 영상 시청한 뒤론 집이 조용해져서 내가 공부하기가 수월해졌어.”
“오, 그래서 봤구만. 너도 홍보 좀 해. 나도 오늘부터 은우 노래 들어야지. 참, 그런데 오빠 이 웃기는 노래 뭐예요? 김해 물김치. 완전 병맛 가사네. 오빠 혹시 이거 제가 가져가서 얼굴 사이트에 올려도 괜찮아요? 대신 열정 떡볶이 주인이 만든 가사라고 꼭 써놓을게요.”
“많은 사람들이 듣고 즐거워한다면 나야 좋지.”
최지은의 친구들을 끝으로 준비해온 150인분의 재료가 모두 동이 났다.
은우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 떠오르는 숫자를 체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늘 하루에만 455이란 숫자를 모았으니, 10000을 채우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재밌는 건 사람이 많아질수록 평가도 후해진다는 거야.
아무래도 분위기라는 걸 무시할 수 없는 건가.
아빠가 틀어준 그 노래도 묘하게 사람들의 만족도를 올리고 있는 거 같아.’
은우는 미션 성공과 더불어 열정 떡볶이가 사람들에게 행복을 나눠주고 있는 것 같아 행복해졌다.
영탁은 기다리는 손님들께 서비스표를 나눠드렸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일 이 표를 들고 오시면 제가 순대를 공짜로 서비스해 드릴게요.”
“아쉽다. 바로 내 앞에서 끊기다니. 내일 꼭 많이 주셔야 해요.”
가게 앞에는 준비해 온 재료가 모두 동이 나서 영업을 일찍 마칩니다. 라는 팻말이 붙었다.
“150인분을 이렇게 빨리 팔 줄은 생각도 못 했어.”
“내일은 200인분 도전이다.”
***
보리는 집에서 혼자 티비를 보며 열심히 한국말 공부 중이었다.
‘단어도 단어인데 높임말이라는 게 상당히 복잡하구나. 앞보다는 뒤의 말이 더 중요한 언어네.’
보리는 전생에는 언어에 대한 관심이 없었지만, 그것은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수학에 비해 언어는 덜 재미있었고, 영어만 알면 불편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리가 된 지금은 언어만큼 절실한 것이 없었다.
‘아, 어렵다. 너무 어려워. 차라리 영어가 쉬운 것 같아. 그래도 포기하면 안 돼. 말도 못 알아들으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난 이대로 강아지로서만 살 수는 없어.’
보리는 어린이 프로를 시작으로 해서 어느덧 드라마를 보면 절반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끼이익.”
보리는 대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랐다.
‘어서 티비를 꺼야 해.’
보리는 앞발로 리모컨을 누른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꼬리를 흔들며 마루로 나갔다.
“멍무이.”
은우가 보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보리가 배를 뒤집었다.
“발라당.”
보고 있던 창현이 외쳤다.
기다렸다는 듯 은우가 보리의 배에 배방구를 불었다.
“뿌우~~~”
은우는 창현이 자신에게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배워서 보리에게 하는 것이었다.
“저게 가족이지.”
영탁이 스마트폰을 꺼내 영상 촬영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그래.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친구이기도 하고. 우리 둘처럼.”
창현도 영탁의 말에 맞장구쳤다.
“헤헤헤헤.”
배방구가 끝나고 어느새 보리가 은우의 볼을 핥고 있었다.
“이게 사람 사는 집이지.”
“열심히 일하고 하루 일과가 끝나면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말이야.”
“오늘도 정말 행복하다.”
“몇 달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상이야.”
“그래, 그러니까 앞으로도 열심히 해야지.”
“200인분의 재료도 준비해야 하고.”
“아 맞다. 아까 최지은이 말한 너투브 수익 신청.”
창현은 최지은의 말을 생각해내고 너투브 수익 신청을 했다.
두 사람은 너투브에 올릴 영상에 대해 이야기 했다.
“오늘은 은우 자장가 영상을 찍어보자.”
“보리가 개인기가 늘었으니까 보리도 같이 보여주면 어떨까. 게다가 둘이 케미도 좋잖아.”
이번 영상은 은우가 보리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것으로 찍기로 했다.
은우가 작은 고사리 같은 손으로 보리를 만지며 노래를 불렀다.
“아아아 내 아기 내 기여우 아기(잘 자라 내 아기 내 귀여운 아기)”
은우와 보리의 귀여운 눈 맞춤.
보리가 리듬에 몸을 맞추고 꼬리를 살랑살랑 움직인다.
은우의 맑고 고운 목소리.
온 세상에 퍼지는 평화.
보리는 자신도 모르게 눈이 스르르 감겼다.
“아아아 내 아기 바새 아아아아(잘 자라 내 아기 밤새 편히 쉬고)”
작게 들리는 보리의 코 고는 소리.
창현과 영탁도 졸음이 밀려왔다.
“이 영상은 완벽히 성공인 거 같아.”
녹화를 마치고 황급히 잠자리에 드는 세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