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살부터 재능흡수-7화 (7/257)

7화. 소문난 분식집 (2)

루카스는 하루 종일 티비를 보면서 새로운 정보를 얻었다.

‘내가 있는 이 나라는 대한민국이고, 이 나라엔 아직도 보신탕이라는 미개한 문화가 남아있군. 그래도 다행인 것은 주인에게 사랑받는 개들은 사람만큼 호화롭게 살 수도 있군.

뭐야? 저 강아지는 재롱을 부리니 주인이 맛있는 것을 주잖아.

나도 저런 것 좀 먹고 싶다.

사료는 너무 밍밍하고, 매일 먹으니 죽겠어.

어떻게 저런 강아지들은 저런 걸 먹고살지.

가만있어 봐. 쟤는 어떤 재롱을 부리는 거야. 대체.’

창현과 은우, 영탁이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 피곤하다.”

루카스는 마루로 마중을 나가서 두 발로 걸었다.

간식을 위해 준비한 필살기였다.

“오, 맙소사. 두 발로 걷네?”

창현이 신기한 듯 말했다.

은우도 신기한 듯 루카스를 보며 말했다.

“멍므이, 멍므이.”

그래도 창현과 영탁이 간식을 주지 않자, 루카스는 다음 개인기로 넘어갔다.

그것은 바로 필살의 빵야.

배를 뒤집어서 발라당을 한 다음 죽은 척하기.

루카스가 배를 뒤집고 눈을 감은 뒤 죽은 척을 하자, 놀라서 울음을 터트리는 은우.

“어 멍므이, 멍므이.”

은우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른다.

‘어떻게 해. 내 사랑하는 멍뭉이가 죽어가고 있어. 이젠 다시 볼 수 없어. 잘해주지도 못했는데. 맛있는 것 많이 줄걸.’

은우의 음성이 이상해지자, 루카스는 얼른 눈을 뜨고 일어났다.

‘나 안 죽었어. 죽은 줄 알고 울면 어떻게 해.’

루카스는 일어나서 은우의 볼을 핥았다.

은우도 루카스에게 뽀뽀를 했다.

“생각보다 똑똑하네. 지금 개인기 한 건가?”

“그러게 우리 시고르자브종이 영재였나 봐. 근데 생각해 보니 우리 아직 이름을 안 지었다. 은우가 항상 멍므이라고 해서 우리도 그렇게만 불렀으니.”

“이름은 뭐로 할까.”

“음, 털 색깔이 보리차 색이니까 보리 어때? 보리.”

“오, 어울린다. 예쁜 이름 같아. 보리. 은우가 부르기에 어려운 발음도 아니고.”

그렇게 해서 그날부터 루카스는 보리가 되었다.

“자, 보리 여기 간식.”

창현이 보리에게 간식을 주었다.

“내가, 내가. 멍므이. 멍므이.”

“그래, 은우야. 그럼 니가 조심해서 해봐.”

은우는 창현에게 넘겨받은 간식을 보리에게 주었다.

“헤헤, 가안지러.”

은우는 보리가 간식을 먹을 때마다 손바닥에 와 닿는 보리의 혓바닥 때문에 자꾸 웃었다.

***

창현과 영탁은 은우의 너투브 촬영에 돌입했다.

추가될 영상은 악어 가족이었다.

“아따아거 아아아 어마아거 아아아. (아빠 악어는 사냥꾼 엄마 악어는 요리사)”

은우는 박자와 음정은 정확했지만, 아직 말을 빨리할 수 없어 아아아로 부르는 노래가 많았다. 하지만 동작 표현은 잘하는 편이었다.

사냥꾼 할 때는 총을 쏘는 동작, 요리사 할 때는 손을 돌리며 요리를 하는 것 같은 율동도 함께.

“무슨 애기가 노래를 저렇게 잘해. 발음은 애기인데 목소리가 너무 고와.”

노래를 듣던 영탁이 감탄했다.

창현도 은우의 목소리에 감탄했다.

‘은우의 목소리는 풀잎에 굴러가는 아침이슬 같아.

듣고 있으면 마음이 맑아지고 밝아져.

마치 주변의 공기를 밝히는 빛 같아.’

영탁이 감탄하며 말했다.

“와, 촬영이 한 번에 끝났네. 어른도 이렇게 하기가 힘들 텐데.”

“은우가 노래 부르는 걸 너무 좋아해서 그런가 봐.”

창현이 거들었다.

은우는 노래를 부르면서 자꾸 다른 노래가 떠올랐다.

‘이건 뭐지? 내가 모르는 말들 같은데 자꾸만 반복해서 떠올라. 이건 대체 언제적 기억일까.’

귓가에서 계속해서 맴도는 노랫소리.

‘La scia ch'io pian ga, la du ra sorte 라 시야 키오 피안 가 라 두 라 소르테

e che so spiri la liberta 에 케 소 스피리 라 리베르타

나를 울게 하소서.

비참한 나의 운명 나에게 자유를 주소서.‘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한 아픔.

은우는 악어 가족 영상을 찍고 자리에 앉았다.

’아, 천천히 심호흡을 해야 해. 여기서 쓰러지면 안 돼. 그런데 이상하게 예전에도 노래를 부르다가 쓰러졌던 것만 같아. 노래를 부를 때 너무 행복한데, 이상하게 노래를 점점 부를수록 다른 사람의 기억이 밀려오는 것만 같아.‘

창현이 은우의 변화를 눈치채고 부축하며 말했다.

“은우야, 숨 차?”

창현은 악어 가족 노래를 부르는 은우를 보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창현은 은우를 기르면서 종종 고민이 되었다.

’왜 많은 동요와 동화책에서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까?

엄마가 없는 아이.

아빠만 있는 아이에 대한 배려는 없을까?

은우가 좀 더 커서 엄마는 어디에 있냐고 물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우가 자라는 모습을 바라보는 건 행복하지만, 가끔은 고민이 돼.

은우가 더 자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창현과 영탁은 너투브에 은우의 계정을 만들어 두 개의 영상을 업로드하였다.

영탁이 자려고 샤워를 마치고 나왔는데, 창현이 혼자 마루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안 피곤해? 뭐해?”

창현은 더 보이즈의 성수대교를 개사하고 있었다.

김해 물김치 이 맛에 담긴 아름다운 비밀이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밥을 퍼서 반찬 있냐고

나는 지금 김해 물김치 김해 물김치

영탁이 보자마자 웃었다.

“대체 이거 뭐야?”

“아, 이거 원래 내 취민데. 삶이 힘들고 울적할 때마다 노래 가사 웃기게 바꿔서 부르던 거.

우리 분식집에서 틀어주면 어떨까 하고. 손님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좋은 생각이다. 요즘은 재밌는 걸 좋아하잖아.”

***

다음 날 아침, 창현과 영탁은 은우의 너투브 조회 수에 깜짝 놀랐다.

아기엄마들의 폭발적인 반응으로 하룻밤 사이에 구독자가 2천 명이 늘어난 것이다.

- 만들어 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덕분에 지난밤에 잘 버텼어요.

- 자장가 버전도 만들어 주시면 안 될까요. 진짜 애기 잠재우는 게 너무 곤욕이에요. 등에 센서를 달았는지, 잠들었다고 생각해서 누이면 또 바로 깨요.

- 자장가 원츄요. 진짜 울 때랑 잠 못 자서 짜증 낼 때. 이 두 개만 사라져도 아기 보기가 훨씬 수월할 텐데.

- 실시간 방송 좀 해주세요. 은우 더 보고 싶네요. 우리 아기가 은우 노래만 들으면 자다가도 방긋방긋 웃어요.

창현과 영탁은 부푼 가슴을 안고 가게로 나갔다.

“하룻밤 사이에 가게가 더 근사해진 것 같아.”

창현이 청소를 하며 말했다.

곧이어 시작된 영업 준비.

“오늘은 150인분을 준비했어. 다 팔리면 좋겠다.”

파이팅을 외치는 창현과 영탁이었다.

은우도 마음속으로 외쳤다.

‘손님들의 만족도가 어떨지 기대가 돼.’

맹현수의 부서는 열정 떡볶이로 점심을 먹으러 오고 있었다.

맹현수가 어제 회사 근처에서 맛집을 발견했다고 한 것이 화근이었다.

맹현수는 자신과 상극인 부장님까지 같이 가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점심은 늘 부서원들끼리만 함께 했었는데, 오늘따라 갑자기 맛집 이야기에 솔깃해진 부장님이 함께 하겠다고 한 것이다.

‘부장님과 함께 밥을 먹다니.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체하지 않을까. 괜히 맛집을 찾았다고 나불대서는. 다 내 죄다. 내 죄야.’

맹현수와 부장, 부서원 4명이 함께 열정 떡볶이로 들어섰다.

창현은 깜짝 놀랐다.

‘까만색 정장을 입은 넥타이 부대가 잔뜩 들어오네. 근처에 회사도 많이 있었나.’

은우는 맹현수가 데려온 새로운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저 아저씨의 만족도가 15였던 걸 생각하면 아마도 맛있다고 소문내서 같이 온 것 같은데. 다른 아저씨들도 맛있다고 생각해야 할 텐데.

그런데 옆에 저 아저씨는 지난번 온 아저씨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데 표정이 우울해 보여.’

은우가 유심히 본 것은 맹현수 부서의 박 부장이었다.

맹현수 부서의 사람들은 전골 부대 떡볶이 6인분과 튀김 3인분, 상추 튀김 2인분을 시키고 나서 서로 멀뚱멀뚱 얼굴만 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얘기를 해. 우리끼리만 있을 땐 부장님 뒷담화라도 깠지. 이젠 부장님이 앞에 있으니 할 말이 없네. 왜 끼겠다고 해서는. 없는 게 훨씬 편한데 말이지.’

그들의 침묵 사이로 들려오는 노래.

창현이 어젯밤 녹음한 곡이었다.

“김해 물김치 이 맛에 담긴 아름다운 비밀이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밥을 퍼서 반찬 있냐고

나는 지금 김해 물김치 김해 물김치

떡볶이 떡볶이 떡볶이 떡볶이 떡볶이

오늘은 우리 같이 먹어요 이 양념을

라면사리 소시지 밥까지 볶아서”

맹현수의 부장이 먼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푸훕.”

그 노래는 부장의 아재 개그 취향을 완벽하게 저격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평상시에도 부장은 아재 개그를 잘 시도하고는 했다.

맹현수도 듣다 보니 노래 가사가 점점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중독성이 있네.

뭐지? 이 병맛 가사는?’

노래를 듣다 보니 드디어 나온 떡볶이.

‘가뜩이나 배도 고픈데 이 맛있는 냄새. 침샘이 아플 정도군. 빨리 먹고 싶다.’

6명의 남자들은 다 같이 앞접시에 떡볶이를 덜어서 먹기 시작했다.

맹현수의 부장인 박 부장은 생각했다.

‘솔직히 떡볶이는 애들 음식이지.

그래도 부대 떡볶이라고 하니, 부대찌개랑 비슷한 맛이려나.

하도 혼자서 먹는 밥이 지겨워서 오긴 했는데.

부하들도 부담스러워하는 눈치고. 괜히 왔나.

하지만 국밥집이랑 회사식당도 하루 이틀이지.

하필 오늘은 회사식당 메뉴가 내가 싫어하는 생선이란 말이지.

생선은 정말 싫어. 바르기도 귀찮고.’

박 부장이 떡볶이를 먹었다.

‘뭐지, 이 맛은?’

박 부장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학교 앞에서 먹었던 잔치국수가 떠올랐다.

박 부장이 고등학교 2학년이던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올라오는 길에 아버지가 박 부장에게 물었다.

“명진아, 이 근처에 아빠가 졸업한 고등학교가 있는데, 그 고등학교 앞에서 파는 잔치국수가 진짜 맛있었어. 온 김에 한 그릇 먹고 가고 싶은데 같이 갈래?”

아버지를 따라간 고등학교 앞의 허름한 분식집.

잔치국수, 비빔국수. 메뉴는 딱 두 개.

박 부장과 아버지는 잔치 국수를 두 그릇 시켰다.

냉면 사발 그릇에 넘치도록 담겨서 나온 잔치 국수.

시원한 멸치 육수에 참기름과 부순 김 가루가 그득하게 뿌려져 있었다.

서비스로 나온 달걀을 먼저 하나 먹은 뒤, 한 입 베어 물었던 뜨끈한 잔치국수의 맛.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처럼 이제는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그 잔치국수집이 박 부장은 너무도 그리웠다.

박 부장은 그날의 잔치국수를 떠올리며 떡볶이를 싹싹 다 먹었다.

은우는 박부장의 머리 위로 떠오른 숫자를 보았다.

‘12. 지난번 아저씨만큼은 아니지만, 맛있게 드셨나 보다.

얼굴 표정도 많이 밝아지셨어. 웃는 얼굴에 복이 온다고 늘 웃고 다니세요, 아저씨.’

맹현수 테이블은 볶음밥 4인분까지 추가해서 싹싹 다 비웠다.

확실히 남자들이다 보니 먹는 양이 많았다.

영탁은 서비스로 콜라를 가져다주었다.

은우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떠오르는 숫자를 보았다.

‘1, 1, 2, 1, 2, 2. 손님들이 많이 오니 만족도를 채우는 것도 매우 빠르구나.

벌써 520이나 채웠어.’

박부장이 대표로 밥값을 계산했다.

“정말 맛있네요. 오늘 건 내가 계산하지.”

맹현수를 비롯한 부서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니, 맹 부장님이 계산을 하시다니. 저 소문난 짠돌이가.

오천 원이 넘는 식사는 사드시지도 않는 분인데.’

청계천 구경을 왔던 아주머니들이 가게로 들어섰다.

구제시장에서 그릇을 주로 사 가던 아주머니와 그 친구들이었다.

“전골 떡볶이 3인분이요.”

점심시간이 되자 어느새 가게는 발 디딜 틈이 없어졌다.

운 좋게 비어있는 마지막 자리 하나를 차지한 인물은 만화가 김영만이었다.

중절모에 베이지색 점퍼를 입은 김영만은 은우의 눈길을 끌었다.

‘예술가처럼 생긴 할아버지네. 뭔가 분위기 있는데.’

은우는 김영만을 눈여겨보았다.

김영만은 은퇴 후 음식 만화의 인기를 빌어 자신의 만화 제목을 딴 골목의 제왕이라는 맛집 프로를 운영 중이었다.

“전골 떡볶이 1인분, 부대 전골 떡볶이 1인분, 상추 튀김 1인분, 야채와 오징어 튀김도 1인분씩 주시고요.”

“너무 많지 않으시겠어요? 혼자서 드시기에 상당한 양인데. 원하시면 반반씩 해 드릴 수도 있는데요.”

창현이 영만을 걱정하며 물었다.

“혼자 와서 적게 시키기가 미안해서 그러죠. 그럼 좀 부탁합니다. 젊은 양반이 센스가 있으시군요. 고마워요.”

창현은 전골 떡볶이 0.5인분, 부대 전골 떡볶이 0.5인분. 튀김을 모듬으로 해서 1인분을 만들어서 서빙을 했다.

순간, 은우는 영만의 머리 위에 뜬 숫자 2를 보았다.

‘저 할아버지는 음식을 먹기도 전에 이미 만족도 숫자가 2나 떴어.

역시 음식 못지않게 서비스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야.’

영만은 창현의 배려에 용기를 내어 주문을 추가했다.

“저기 미안한데 순대도 추가할 수 있을까요? 맛 좀 보고 싶어서.”

창현이 순대를 추가로 가져다주었다.

영만은 천천히 젓가락을 들었다.

평소에도 음식을 좋아하는 영만은 새로운 식당의 음식을 맛보기 전, 이 순간이 가장 설레었다.

‘아니, 이 맛은?’

떡볶이는 영만의 오랜 기억 속 하나의 기억을 끄집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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