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시고르자브종
보스턴의 한 아파트에서 세계적인 수학자 루카스가 숨을 거두었다.
그는 10년 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거의 밖에 나가지 않았고 친구도 없었기에,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가 없었다. 그의 통장에 있던 5만 달러는 나라로 귀속되었다.
***
그의 죽음을 두고 신들이 모였다.
그리스의 사랑의 신 에로스가 말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삶이라니 무미건조해. 저런 인생이 의미가 있을까?”
예수 그리스도가 말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연민을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라니. 어떻게 불쌍한 사람을 그냥 지나칠 수 있는가?”
이집트의 신 지혜와 학문의 신 토트가 원숭이의 얼굴로 말했다.
“그래도 그에겐 학문의 업적이 있네.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했다는 사실이지. 350년 동안이나 어떤 인간도 풀지 못했던 거라네.”
북유럽의 천둥의 신 토르가 말했다.
“그렇다고 그의 인생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 만약 내 옆에 저런 사람이 있었다면 재수 없다고 생각했을 텐데, 안 그런가?”
신들이 웃으며 동의했다.
머리에 월계관을 쓴 아름다운 그리스의 예술의 신 아폴론이 말했다.
“게다가 저 사람은 어떤 소리도 싫어했다네. 아이들의 웃음소리, 새들의 노랫소리, 음악마저도 말이지.”
인간에게 불과 문명을 전해준 그리스의 프로메테우스가 말했다.
“너무나 불평이 많았던 사람이었어. 내가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벌로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독수리에게 간을 물어뜯길 때보다 더 많은 불평을 늘어놓으며 살았군.”
신들은 만장일치로 루카스가 사람으로는 태어날 수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때 한복을 입은 인자한 웃음의 할머니가 말했다.
“제가 저 사람을 데려가죠. 강아지로 말입니다.”
천둥의 신 토르가 손뼉을 치며 동의했다,
“좋은 생각이야.”
많은 신들의 동의로 결국 루카스의 다음 생은 강아지로 결정이 되었다,
삼신할미가 떠나려고 할 때, 루카스를 불쌍히 여긴 이집트의 지혜와 학문의 신 토트가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내가 그를 위해 아주 작은 선물을 주리라.”
그리하여 루카스는 토트의 작은 선물과 함께 강아지로 환생하였다.
***
루카스는 할머니의 박스에 담겨 동묘 구제시장에 있었다.
‘너무 무서워. 이제 난 곧 죽게 될 거야.’
루카스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이놈들을 팔아서 오랜만에 돈 좀 벌어봐야지.’
루카스의 주인인 할머니는 황병승의 옆자리에 상자를 놓고 앉았다. 상자 앞에는 강아지 2만 원이라고 써 붙여 놓았다.
병승과 할머니는 10년이나 알고 지낸 사이였기에, 병승은 할머니에게 안부를 전했다.
“할머님, 요새는 채소 농사는 안 지으세요?”
“짓지, 왜 안 지어. 이제 또 팔러 나올 거야.”
지나가던 사람들이 강아지를 구경하다가 사 갔다. 루카스는 공포에 질려있었다.
‘다른 형제들도 다 팔려나가고 나만 남았어. 이 나라를 강아지를 사서 잡아먹는다고 하던데.’
루카스는 한국말을 몰랐기 때문에 더욱 불안했다.
지나가던 부부가 할머니의 강아지 상자 앞에서 강아지를 구경하고 있었다.
“할머니, 이 강아지 저희가 살게요.”
할머니가 루카스에게 손을 넣어 안으려는 그때, 루카스는 살기 위해 할머니의 손을 콱하고 물었다.
“아얏.”
할머니의 손에서 피가 났다.
“죄송해요. 다음에요.”
손님들은 할머니 손에서 나는 피를 보자 경악을 하더니, 루카스를 사지 않고 지나갔다.
“이노무 똥강아지가.”
할머니는 화가 나서 루카스를 바닥에 던져 버렸다. 루카스는 너무 아파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깨깽.”
창현의 아기 띠에 안겨있던 은우가 그 소리를 들었다.
‘저러다 죽을지도 몰라. 도와줘야 해.’
은우가 창현에게 손짓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창현이 달려왔다.
“할머니 무슨 일이세요?”
“아니, 이 개새끼가 내가 상자에서 꺼냈더니 나를 물잖아.”
할머니의 손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
은우가 할머니를 보았다.
[부처님의 염화미소 400 / 1000]
‘이상하다. 숫자에 변화가 없어. 할머니 얼굴이나 표정을 보면 분명 스트레스가 많으신 분 같은데. 전혀 변화가 없어. 마음을 열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
은우는 안타까운 마음에 고개를 떨구었다.
‘며칠 사이 김미자 할머니, 황병승 아저씨, 구제 시장 상인들로부터 많이 숫자를 쌓아놔서 문제가 없긴 하지만, 강아지가 안 됐네. 염화미소가 통했으면 구해줄 수 있었을 텐데.’
창현은 강아지가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가 화가 많이 나셔서 이대로 두었다가는 강아지에게 나쁜 일이 생길지도 몰라.’
창현이 지갑을 열면서 말했다.
“할머니, 저 강아지 제가 살게요. 얼마 드리면 돼요?”
“이만 원.”
할머니는 금방 기분이 풀렸는지 웃었다.
“자, 이만 오천 원 드릴 테니까, 근처 약국에 가서 약 사서 바르세요.”
그렇게 해서 루카스는 창현의 집에 새로운 식구가 되었다.
창현은 루카스를 상자에 든 채로 돗자리 근처에 놓았다.
‘장사가 끝나면 집으로 데려가야지.’
은우는 루카스에게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은 것이 너무도 기뻤다.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표정이 너무 시무룩하잖아. 하긴 바닥에 내팽개쳐지고 죽을 뻔하고. 슬펐을 거야. 내가 웃게 해줘야지.’
[부처님의 염화미소 420 / 1000]
루카스는 은우와 눈이 마주치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 나쁜 일은 다 지나갔고, 좋은 일만 생길 거야.
저 아기의 밝은 미소처럼 말이지.
아기의 아빠도 좋은 사람인 것 같으니 난 괜찮을 거야.’
은우는 루카스의 표정이 조금 밝아지는 것을 보았다.
‘걱정하지 마. 우린 앞으로도 감정을 교류하면서 더 즐거워질 수 있을 테니까. 숫자도 쌓아가고.’
반면, 영탁은 화가 났다.
‘아니, 불쌍한 걸 누가 모르나. 불쌍하지만 당장 내 코가 석 자인데 강아지까지 데려와서 어쩌자는 거지? 개가 저절로 자라는 줄 아나? 은우에, 강아지에.
장사가 잘되고 있긴 하지만, 어떻게 감당을 하려는 건지.’
창현과 영탁의 자리는 오늘도 많은 손님들로 붐비었다.
“오빠, 남자 양복 없어요?”
“오늘 가져온 게 다 나갔는데.”
“아깝다. 백수희 언니가 별스타에 여기서 사 간 양복이 예쁘다고 올려서. 요새 그게 유행이거든요. 남자 양복 입는 거. 아기 진짜 귀엽다. 사진 찍어도 돼요?”
창현은 손님과 같이 사진을 찍었다. 창현은 늘 아기 띠를 메고 일해야 했기 때문에 은우를 찍으려면 창현도 함께 사진을 찍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귀여운 아기는 처음 봐요. 밥 안 먹어도 배부르시겠어요. 근데 오빠도 잘생겼네요. 다음에 또 양복 사러 올게요.”
창현은 처음으로 자신에 대한 칭찬을 들어 기분이 좋았다. 사실 창현도 잘생긴 얼굴이었으나, 너무나 귀여운 은우와 함께 있어 주목을 받기가 힘들 뿐이었다.
영탁이 창현에게 말했다.
“백수희 씨 다녀가고 나서 양복 찾는 손님이 늘었어. 그치만 양복은 구하기가 어려워서 걱정이다. 찾는 사람은 있는데, 구할 곳이 없으니. 가져오기만 하면 더 팔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버리는 물품을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니까 구하기가 힘들어.”
가져온 물품을 다 판매하고 저녁 7시쯤 장사를 마쳤다.
창현과 영탁은 김미자의 순대국밥집으로 갔다.
은우는 신이 났다.
‘오늘도 김미자 할머니한테서 숫자를 잔뜩 얻을 수 있으려나. 그런데 김미자 할머니 속마음은 참 따뜻한 분이셔. 그리고 김미자 할머니가 베푸시는 것들이 아빠와 삼촌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줘서 숫자가 마구마구 늘어나니까.’
김미자가 은우를 받아서 안았다.
“오늘도 다 팔았어? 총각들이 수완이 참 좋아. 내가 여기서 장사 20년 했지만, 총각들처럼 장사 잘하는 사람 처음이야.”
“운이 좋았죠.”
창현이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김미자는 창현와 영탁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말썽인 내 가게에 저 청년들이 적임자 같아. 몫이 안 좋은 것도 아닌데 들어가는 족족 망하니. 들어오는 가게 주인들 성격도 이상해서 월세를 받기도 힘들고, 이번에 들어온 임차인은 파산한 걸 숨기고 들어와서 아예 땡전 한 푼 못 받게 생겼군. 3년 동안 월세로 시달리다 보니 백 년쯤 늙은 기분이야. 그 가게만 해결돼도 날아갈 것 같겠어. 진짜 고사라도 하든지 해야지.’
김미자는 자신이 운영하는 순대국밥집 말고도 다른 곳에 월세를 주는 점포 3곳이 더 있었는데, 그중 한 곳이 말썽이었다.
‘저렇게 싹싹하고 장사 잘하는 청년들이 들어간다면 몫도 살아나고 월세도 따박따박 받을 수 있을 텐데.’
김미자는 창현과 영탁이 그 문제를 해결할 정도의 능력을 지닌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웬 강아지야?”
영탁이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듯 말했다.
“오지랖 넓은 은우 아빠가 오늘 또 사건을 저질렀어요. 애는 진짜 너무 착해서 탈이에요.”
“착해서 복을 많이 받는 거야. 장사도 잘되고. 근데 가만 보자 똥개네.”
“헉 똥개예요. 얼마나 자랄까요? 너무 많이 자라면 안 되는데. 너 쟤 진짜 원룸에서 어떻게 키우려고 하냐?”
창현이 입을 열었다.
“똥개가 아니고 시고르자브종. 참, 우리 이사 가는 거 어떨까? 너랑 나랑 월세 따로 나가는 것도 비싸고. 어차피 같이 일하려면 같이 사는 게 편하잖아.”
“너랑 나랑 월세만 합쳐도 한 달에 80만 원이니까, 그거라도 줄이면 좋겠다. 근데 개 키울 수 있는 집은 비싸지 않을까?”
“걱정마. 인연이 닿는 좋은 집이 있겠지.”
“내가 잘 아는 복덕방 주인이 있는데 소개해 줄게.”
김미자는 은우를 보는 것이 하루의 낙처럼 느껴져서 은우와 관계된 일이라면 언제든지 돕고 싶어졌다.
은우는 동시에 세 사람의 머리 위에 떠오른 숫자에 흥분하고 있었다.
‘김미자 할머니 머리 위에 10, 아빠 머리 위에 5. 영탁이 삼촌은 2.’
오랜만에 느껴보는 아기의 보드라운 살과 사랑스러운 냄새가 김미자의 삶에 활기를 주었다.
“하아미. 하미.”
은우는 그사이에 할머니라는 단어를 배워서 비슷하게 발음하기 시작했다.
‘아고 이뻐라. 이래서 손주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고 하는구나. 은우를 매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손자가 없던 김미자는 은우가 그 말을 할 때마다 가슴이 사르르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김미자는 은우와 한동네에 살고 싶은 욕심에 창현에게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공인중개사를 소개시켜 주려는 것이었다.
***
영탁과 창현은 창현의 원룸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당근나라나 재활용마켓에서 괜찮은 양복이 있는지 찾아보자.”
“백수희 씨 별스타에서도 봤는데, 요새 유행하는 스타일을 프린트해서 같이 걸어두면 사는 사람 입장에서도 어떤 옷을 사면 자신에게 어울릴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그것도 같이 준비하는 게 좋겠어.”
“생각보다 수입이 괜찮다. 배달일 할 때랑 비슷한 소득이 나와서 놀랐어.”
“노력하면 더 많이 팔 수 있어.”
“그래, 파이팅!”
영탁과 창현이 미래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는 동안 은우는 루카스와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멍므이.”
은우는 그래도 루카스가 함께 살기 시작한 후부터 전보다 밝아진 것에 크게 감사하고 있었다.
“아붑.(예쁘다)”
은우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루카스의 머리 위에 숫자 1이 떴다.
‘너도 나와 함께 있어서 행복하구나. 나도 그래.’
은우는 루카스가 좋았다.
루카스도 기분이 좋은 듯 꼬리를 치며 은우의 볼을 핥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