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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살부터 재능흡수-2화 (2/257)

2화. 재능흡수 (2)

동묘 구제시장.

창현과 영탁은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내린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영탁은 이동식 행거를 조립하고 옷걸이에 옷들을 걸어서 진열하고 있었다.

“아침인데도 사람이 너무 많다.”

“지하철 앞이라 그런 거 같아. 그리고 여기가 요새 티비에 많이 나왔대. 우리한텐 잘된 거지 뭐.”

“지나가는 사람이 많으니 손님도 많겠지. 근데 여기 자릿세 안 내도 되는 거 맞지?”

“며칠 전에 와서 물어봤을 땐 그랬으니 그러길 빌어야지.”

황병승은 자신의 자리 근처에 창현과 영탁이 자리를 펴는 것을 보고 후다닥 달려오며 생각했다.

‘아침부터 설사가 나서 변기통 잡고 있느라고 늦었더니만 생전 처음 보는 초짜가 내 자리 근처에 자리를 펴 놨네. 감히 어딜? 내가 도깨비 시장에서만 이십 년, 잔뼈가 굵은 황병승이란 말이야. 싸움닭 황병승을 물로 보고 말이야.’

병승은 도착하자마자 소리를 높였다.

“누구 허락을 받고 자리를 펴?”

영탁과 창현은 생각지 못한 사태에 난감해하고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창현의 아기 띠 안에 안겨있던 은우가 병승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부부부.”

[부처님의 염화미소 - 15 / 1000]

병승은 끓어오르는 분노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저 아기의 웃음을 본 순간 분노가 사라졌어. 뭐지? 이 평화로운 기분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병승은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았다.

양보없이 살아왔던 시간들이었다. 상대가 나를 무시할까 봐 목소리를 높였고, 차별당할까 봐 먼저 주먹을 날렸다. 그랬던 감정들이 모두 다 눈 녹듯이 사라졌다.

병승이 조용히 말했다.

“오늘만 봐줄게. 바로 옆이 내 자리라 다른 사람이 자리를 펴면 내가 물건을 진열할 수 있는 자리가 줄어들어서 말이지.”

은우는 병승의 머리 위에 떠 있는 10이라는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와, 아빠랑 영탁이 삼촌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 숫자야.

스트레스가 아주아주 많으셨나 보다. 잘해드려야겠어.’

창현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몰랐어요.”

“시장은 너무 시끄러워서 아기한테 안 좋아.”

“제 아들인데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요.”

돌봐줄 사람이 없다는 말에 병승의 맘이 무거워졌다.

“아직 젊은데 잘될 거야. 여기서 장사한 지 20년인데, 비싼 물건 파는 건 아니지만 입에 풀칠은 하고 사니.”

병승은 자신에게 놀랐다.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늘 말이 거칠고 차갑다고 사람들이 날 싫어했었는데.’

창현과 영탁은 물건을 진열해 놓았지만, 지나가는 손님 중 누구도 물건을 보는 사람이 없었다.

창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마음속으로 생각만 했다.

‘장사를 처음 해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가서 외쳐야 하나. 아, 어떻게 하지?’

은우는 구제 골목의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병승이 아저씨처럼 스트레스 지수가 많은 사람을 만나면 더 빨리 1000을 채울 수 있을 텐데.

염화미소를 쓰기 전에는 그 사람의 스트레스 지수를 알기가 어렵구나.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은우는 사람들 머리 위로 떠오르는 숫자를 생각하며 웃었다.

‘그치만 아빠의 아기 띠 안에 안겨있으니, 혼자서 무언가 할 수도 없고.

아빠랑 삼촌은 왜 가만히만 있을까?‘

10시쯤 되니 구제 골목이 사람으로 가득 찼다. 물건을 구경하는 사람, 흥정하는 사람, 지나가려는 사람들로 골목이 가득 차서 사람들에 의해 밀려다니는 수준이 되었다.

오래된 장사꾼이라면 물건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을 끌어서 가격흥정도 하고 말을 붙여보기라도 하련만, 창현과 영탁은 둘 다 석상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은우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음을 느꼈다.

‘내가 나서야겠군.’

은우는 방긋방긋 웃었다.

“아부~ 아부부~”

시끄러운 시장이었지만, 은우의 돌고래 같은 하이톤의 목소리는 바람을 타고 시장 곳곳으로 퍼졌다.

“어머, 아기 좀 봐. 너무 이쁘다.”

티비를 보고 구제시장에 옷 쇼핑을 나왔던 고등학교 여학생들이 그 소리를 가장 먼저 알아챘다.

은우는 이때다 싶어 고등학교 여학생들을 바라보며 방긋방긋 웃었다.

‘누나들한테서도 숫자를 모아야지.’

[부처님의 염화미소 - 15 / 1000]

은우는 당황했다.

‘숫자가 달라지지 않네. 머리 위에 숫자가 뜨지도 않고.

대체 왜 그러지?’

은우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여학생들은 돌고래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악, 깨물어 주고 싶은 볼이야.”

“이 팔 좀 봐. 포동포동해.”

여학생들은 창현을 둘러싸고 은우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사진 한 장만 찍어도 돼요?”

“네. 대신 저희 가게 홍보 좀 해주세요.”

창현은 은우 덕분에 여고생들 사이에 둘러싸여 사진을 찍었다.

“어머, 이 가방 좋다. 마크 제이쿱스 거네. 이거 얼마예요?”

창현은 어제 미리 생각해 두었던 가격을 말했다.

“오천 원이요.”

“오천 원이요? 여긴 싸다고 해서 왔는데.”

여학생이 고민을 하자 옆에 있던 영탁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사천 원만 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눈치 빠른 영탁의 판단으로 첫 번째 판매가 완료되었다.

은우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누나들은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러나. 염화미소가 전달되지도 않고, 덕분에 숫자가 하나도 늘지 않았어. 필요 없는 사람에겐 전해지지 않는가 봐.’

한 번 사람이 몰려들자, 그 후론 사람이 사람을 불러와서 장사가 잘되었다.

“와, 저기 사람이 많네. 저 집이 유명한 집인가 봐.”

“이 집 물건은 다른 집보다 깨끗해. 구제지만 새것 같아.”

“이 집 물건이 다른 집 물건보다 예쁘다.”

계속해서 붐비는 영탁과 창현의 좌판.

“여기 티셔츠 3장이요.”

“3장이나 샀는데, 깎아드릴까요?”

“아니요. 이 정도 가격이면 적당한 것 같아요. 옷도 이쁘고 감사합니다.”

“그럼, 서비스로 인형 하나 드릴게요.”

“와, 감사합니다. 아기 너무 귀여워요.”

여고생은 90도로 인사를 했다.

영탁은 생각했다.

‘이런 작은 가게일수록 입소문이 중요해. 10대 여자들이 sns를 가장 활발하게 하고 유행에 민감한 세대이니, 좋은 후기를 적어주면 우리에게 큰 자산이 될 거야.’

창현과 영탁은 바빠서 맞은편 토스트 가게에서 파는 1500원짜리 토스트로 끼니를 때웠다.

“풍성한 야채에 계란과 햄까지 들어있는데 1500원이라니.”

“이 시장이 물가가 싸긴 싸.”

“저기, 옆자리 아저씨 것도 사다 드리자.”

눈치 빠른 영탁이 베지밀과 토스트를 추가로 사서 옆자리의 병승에게 내밀었다.

‘우리한테 자리도 양보해 주셨는데 장사가 너무 안되셔서 마음이 안 좋으실 거야.’

그렇지 않아도 조금 울적해져 있던 병승은 영탁이 내민 토스트와 베지밀을 받고 조금 기분이 풀렸다.

은우는 병승의 머리 위에 떠오른 숫자를 발견했다.

‘이번에는 염화미소를 쓰지도 않았는데 5라는 숫자가 떠올랐어.

병승이 아저씨가 행복함을 느끼면 지속적으로 숫자가 떠오르나 보다.

이 말은 한 번 마음이 열리면 그 뒤에도 행복을 전달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은우는 순간 배고픔을 느꼈다.

‘바빠서 밥 먹을 시간을 놓쳤나 봐. 배가 고프다. 아마 아빠도 바빠서 잊어버리신 거겠지.’

은우는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서 빨았다.

‘배고프니 이거라도 우선.’

창현이 은우가 손가락 빠는 것을 발견했다.

“은우야, 미안해.”

창현이 빠르게 가져온 포트를 이용하여 은우에게 분유를 타 주었다.

“아부. 아부부. 아부부부.”

창현은 이렇게 시끄럽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잘 먹어주는 은우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손님들이 은우를 보며 말했다.

“어머, 아기 좀 봐. 너무 귀엽다.”

“젖병 든 천사다.”

“내 마음이 다 편안해진 거 같아. 우리 애들도 저렇게 어릴 때는 이뻤는데. 요새 사춘기라고 얼마나 말을 안 듣는지. 내가 스트레스받은 걸 생각하면.”

은우는 젖병을 든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염화미소를 지었다.

[부처님의 염화미소 - 35 / 1000]

‘와, 저 아주머니들에게 스트레스가 많았었나 봐. 금방 15가 더 늘었어.

숫자도 숫자인데, 마음이 편안해지셨겠지.’

은우는 처음엔 숫자 모으기에 집중했지만, 이젠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에도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아기를 참 좋아하는구나. 아프리카엔 아기가 많아서 아기라는 이유로 이렇게 관심받는 일은 없었는데. 게다가 눈처럼 하얀 내 피부와 커다란 눈 좀 봐.’

은우는 자신의 외모도 마음에 들고, 한국이라는 나라도 마음에 들었다.

창현은 키 큰 여자 하나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확실히 첫날이라 힘들구나. 은우를 잠깐 안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하루 종일 안고 있으니 어깨와 다리가 끊어질 것만 같아. 그런데 저 여자는 누구지?’

여자를 보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저기, 저 여자 백수희 아니야?”

“아, 그 사랑의 불도저의 백수희?”

영탁은 그 말을 듣자마자 백수희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물건을 찾으세요?”

그 순간 백수희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다.

‘아무리 모자를 깊게 눌러 써도 알아보는구나. 조용히 둘러보다 나가고 싶었는데.’

창현은 그 눈빛을 읽었다.

‘연예인이라면 지금 받고 있는 관심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혼자 조용히 구경을 하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

창현은 조용히 영탁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눈짓했다.

‘다른 쪽으로 옮겨갈까. 사람들의 관심이 조금 누그러진 것 같기도 하고. 오, 이 줄무늬 양복 괜찮네.’

백수희가 계산을 하려고 영탁에게 다가갔다.

“만오천 원입니다. 남자친구 주시려고요?”

영탁의 질문에 백수희의 눈이 찌푸려졌다.

‘연예인에게 남자친구를 묻다니. 사람이 많아서 화를 낼 수도 없고.’

창현이 백수희의 표정을 읽었다.

“요즘 오버핏이 유행이죠.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창현이 돈을 받으며 말했다. 백수희가 감동하여 빙긋 웃었다.

‘따로 설명할 필요 없이 이 상황을 해결해 주다니. 센스쟁이.’

백수희는 창현을 보다가 아기 띠에 매달려 있던 은우를 보았다.

[부처님의 염화미소 - 65 / 1000]

백수희와 은우의 눈이 마주쳤다.

‘사람들은 늘 나를 최고라고 했지만, 나는 늘 외로웠어.

나보다 더 젊고 예쁜 여배우가 나올까 봐 두려웠고, 스캔들에 휘말릴까 봐 두려웠어.

잠깐 외출을 해도 팬들이 나를 알아보고 파파라치가 나에게 따라붙는걸.

연예인이 되기 전엔 사람도 좋아하고 외출도 좋아했는데, 이젠 집 밖에 나가기가 무서워.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제대로 푹 자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

은우는 백수희의 머리 위에 뜬 숫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30이라고? 와, 이건 진짜 역대급이다.

병승이 아저씨보다 더 스트레스에 쩔어있었구나.

저 누나 얼굴은 예쁜데, 삶이 힘들었나 보다.’

백수희는 갑자기 하품이 나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왜 자꾸 하품이 나지. 이러다 사진 찍히면 큰일 나는데.’

백수희는 시선을 돌리기 위해 창현에게 말을 시켰다.

“사진 한 번만 찍어도 될까요? 아기가 너무 귀여워서요.”

창현은 백수희의 어깨 위에 매너손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감사합니다.”

백수희는 휴대폰을 받아서 사진을 확인했다. 사진 속 은우는 역시 귀엽다.

“나중에 또 올게요. 아기 정말 예뻐요. 그런데 너무 졸리네요.”

백수희는 하품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

8시가 되자 어두워졌고, 구제시장에서도 하나둘씩 정리하는 집들이 생겨났다.

창현과 영탁은 가져온 물건이 거의 다 동이 나서 슬슬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 가져온 거 다 팔았어? 첫 장사에 다 팔고 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옆자리의 병승이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우습게 봤는데, 20년 넘게 장사한 나보다 훨씬 잘 팔았잖아.’

창현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도와주신 덕분이에요.”

“아기 잘 키우라고 하늘이 도와주시는가 봐. 그 애가 복덩이야.”

병승은 자신도 모르게 덕담을 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좋은 말을 하다니. 한 번은 그런가보다 했는데 두 번이나. 오늘 하루 종일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창현과 영탁은 주린 배를 채우러 맞은편 순대국밥집으로 향했다.

순대국밥집 사장인 김미자는 올해 65세로 구제시장에서 소문난 구두쇠였다.

김미자의 순대국밥집에 사람이 많은 이유는 단 하나, 가성비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보기 힘든 가격 단돈 사천 원에 순대국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순대국밥 두 그릇?”

김미자가 창현과 영탁에게 물을 가져다주며 물었다.

“아들이야? 딸이야?”

“아들이요.”

“이쁘네. 근데 어려 보이는데 아빠가 대체 몇 살이야? 부인은 어디 가고?”

창현은 고민이 되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사실대로 말하기엔 대답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적당히 둘러대야지.’

창현이 말했다.

“26살요. 별거 중이에요.”

영탁은 금세 표정이 찌푸려졌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꼬치꼬치 별 걸 다 물어보네.

확, 그냥 한마디 해버려.’

창현이 영탁의 표정 변화를 눈치채고 괜찮다는 뜻으로 손짓을 했다.

김미자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대국밥 두 그릇을 창현과 영탁에게 주었다.

“아기 이리 줘 봐. 밥 먹는 동안 봐줄게.”

김미자는 오랜만에 보는 아기가 반가웠다.

‘구제시장에서 갓난아기를 보다니. 이게 웬일이야?’

아기를 안으려던 그때, 김미자는 은우와 눈이 마주쳤다.

[부처님의 염화미소 110 / 1000]

어디선가 들리는 목탁 소리.

청아한 나무 냄새.

김미자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

‘참 독하게도 버텼지. 돈 10원 아끼려고 버스로 세 정거장인 거리를 물건을 이고 지고 다니며 팔았으니까. 의지할 곳이 없어서 더 열심히 살았어.

하지만 늘 남에게 뺏기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니 마음 놓을 수가 없었어. 내 주변에 정말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은우는 김미자의 머리 위에 뜬 숫자를 보고 김미자의 삶을 짐작했다.

‘45라니. 아까 그 누나보다도 많구나. 이 나라 사람들도 먹을 건 많지만, 보이는 것만큼 행복하진 않은가 봐. 할머니는 왜 삶이 힘드셨을까. 천천히 알아가면 좋겠다.’

은우는 김미자에게 친절히 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미자는 오랜만에 아기를 봐서 신이 난 까닭인지, 은우를 어르는 중이었다.

“오로로로로로, 까꿍.”

그때마다 신이 난 은우는 꺄르르 웃었다.

갑자기 미자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삶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다.

‘세상에서 아기 웃음소리만큼 듣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소리가 있을까. 아무리 돈이 많아도 혼자 다 쓸 수도 없는걸. 이제 좀 베풀고 살아도 될 것 같아.’

미자는 냉장고에서 반찬과 과일을 꺼내서 비닐봉지에 담기 시작했다.

창현과 영탁이 식사를 마치고 돈을 건넸다.

“덕분에 정말 잘 먹었어요. 아기도 봐주셔서 편하게 먹었어요.”

“다음에도 또 밥 먹으러 와. 내가 아기 봐줄게. 이거, 내가 아기한테 주는 선물이니까 가서 챙겨 먹고. 보아하니 총각들끼리 있으면 밥도 잘 챙겨 먹지 않을 거 같은데.”

은우는 반찬 봉지를 건네는 김미자의 머리 위에 떠 있는 숫자에 놀랐다.

‘30이라니. 병승이 아저씨처럼 한 번 마음을 열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숫자가 늘어나나 보다.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거구나. 머리 위의 숫자를 보니.‘

은우는 반찬 봉지를 든 창현과 영탁의 머리 위에서도 숫자가 떠오른 것을 보았다.

‘아빠는 20, 영탁이 삼촌은 10.

아빠가 더 큰 감사를 느끼고 있는 거구나.

사람의 감정을 숫자로 읽을 수 있다니. 신기하다.’

은우는 어느새 숫자가 175로 늘어난 것에 뿌듯함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창현은 김미자로부터 받은 반찬을 정리하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나한테 반찬을 싸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학교 다닐 때도 집에서 엄마가 싸준 형형색색의 도시락을 볼 때마다 엄마의 빈자리가 느껴져서 얼마나 슬펐던지.’

은우가 창현에게로 기어왔다.

“아붑. 아부부~”

창현은 다시 한 번 은우를 보며 열심히 살아갈 삶의 의지를 다졌다.

‘이쁜 내 아기. 너에게 꼭 좋은 아빠가 되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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