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조 재벌-103화 (103/300)

# 103

남은 선택은 한가지다.

“이것으로 녀석들이 순순히 물러날 것인지 모르겠군요.”

“일단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크게 기대는 안하지만....”

말끝을 흐리며 김태천에게 대답했다.

그러자 김태천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전세계를 상대로 비지니스를 하고 특수한 일을 하는 데 있어 순진한 것은 죄악이다.

그런 감정은 자신을 파괴하는 것 만이아니라 같은 동료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다. 따라서 김태천은 내 말의 숨은뜻을 잘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중국의 첩보원들을 처리하는 일.

첫 번째로 한 것은 김태천을 비롯한 우수한 팀원들을 이용해서 그들에 대한 감시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현재까지 순조롭게 되었고 김태천 팀원들이 가져온 정보들은 쓸만했다.

이제까지 파악된 10명 정도의 인원들-

저마다 다양한 신분으로 위장했고 한국에서 은밀하게 활동 중에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들의 정체가 들키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만난 것이다.

다만 중국 스파이들을 상대하는 과정은 방법을 좀 달리했다.

한국이란 특성이 있었고 조용히 처리하는 게 뭣보다 중요했으니 말이다.

또한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기전에 적들이 스스로 물러나 준다면 싸우지 않고 이기는 방법이다.

그것을 위해 첫단계로 시작한 것이 언론에 정보를 흘리는 것이다. 지금 펼쳐놓은 노트북에는 외신기사들이 나오고 있었다. 일본의 아사히 신문과 미국의 CNN-국제뉴스에 나온 헤드라인이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중국의 스파이들]

이같은 헤드라인의 제목이다.

아래쪽에는 장문의 기사들이 나온다.

그것만이 아니다.

2~3명에 대해서는 얼굴까지도 기사내용에 나왔다.

이 정보들을 국내 언론사에 알리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외국 언론사를 통해 알리는 게 첫 번째 단계다. 그 뒤에 국내 언론사들이 따라하는 방법이 더 효과적이다.

한국의 언론사들은 외신뉴스를 가져와서 보도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얼마 후에는 국내 뉴스에도 중국의 스파이 활동에 대한 기사들이 나왔다.

“팀원들은 어떤 식으로 활동하고 있습니까?”

“이제까지 파악된 10명에 대해 지속적인 감시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사건을 통해 국내의 중국 스파이들이 어떻게 나올지를 지켜보는 것도 재밌을 거 같습니다.”

김태천이 대답했다.

언론을 통해 중국 스파이들에 대한 정보를 흘리고 경고를 보낸 것이 첫 번째 작전이다.

그리고 다른 대책도 세워놓은 것이다.

“지금쯤은 중국쪽도 이 뉴스기사를 봤을 테니, 상당히 혼란스런 상황일것은 분명합니다.”

이후의 상황은 중국쪽에서 어떻게 나올지에 달린 것이다. 순순히 물러난다면 중국쪽도 최소한 본전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끝까지 덤빈다면 결과는 그들의 책임이 될 것이다.

***

“긴급 상황이다!”

양패(陽覇)의 표정이 구겨졌다.

조금 전 방송에서 나오는 뉴스내용에 그는 당황했다. 양패는 한국에서 활동 중인 중국 스파이들을 관리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양패는 중화무력국에서 활동했던 요원이었고 지금은 상하이 보안공사라는 회사에 소속된 상태다.

하지만 상하이 보안공사라는 회사가 스파이 활동을 위해 만든 것이다.

그리고 상하이 보안공사에서 사용되는 자금들 중에 상당수가 중화무력국을 포함해 중국에 있는 기업들을 통해 나온다.

그중에서도 상하이 보안공사에 상당한 자금지원을 펼치고 있는 것이 중국내의 스마트폰 제조회사들과 배터리 기업 그리고 IT-관련 업체였다.

이처럼 상하이 보안공사는 중국기업들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으며 한국에서 산업스파이 활동을 벌이는 중이었다.

중국기업들의 더러운 짓거리를 대신해주는 것인데, 이런 비밀관계와 협정을 통해 상하이 보안공사는 상당한 이득을 챙겼다.

지금까지 상하이 보안공사의 요원들이 한국에서 유출해간 첨단기술과 정보만 해도 상당했다.

그리고 상하이 보안공사에 있는 양패들을 포함해서 중국쪽 요원들은 첩보국에서 키워낸 인원들이었다.

이처럼 중국정부는 몇 가지 위장된 수법을 통해 대대적으로 산업스파이 활동을 벌이며 한국에서 기술을 빼내는 작전을 펼치는 중이었다.

그리고 한국에서의 활동에서 큰성과를 거두었다. 미국이나 일본 그 외에 서구권의 국가들에 비해 한국기업들은 보안분야에 취약했다.

그런 약점들이 있기에 국내기업을 통해 첨단기술을 빼낼 방법이 다양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에서 활동 중인 부하들이 노출된 것이다. 그중에 2~3명은 뉴스에 얼굴까지 드러난 상태다.

“팀장님. 무슨 일입니까?”

“네녀석은 뉴스도 확인하지 못했나?”

양패가 분노하며 소리쳤다.

당황한 부하가 TV-화면을 보았고 표정이 굳어졌다.

뉴스화면에 나오는 얼굴은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멍청한 놈들. 어떻게 했길래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냐?”

“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긴급 소집이다. 현장에 있는 요원들을 전부 퇴각시켜!”

“알겠습니다.”

양패의 지시에 따라 부하가 연락을 시작했다.

***

회의실에는 여러 명의 인원들이 모여있었다.

양패를 포함해 상하이 보안공사에서 간부급의 지위를가진 인물들도 보였다.

한국에서 중국 스파이들의 신분노출 사건이 벌어진 뒤에 양패는 중국으로 소환되었다.

상하이 보안공사는 상하이의 중심인 동평지구(東平地區)에 본사 건물을 갖고 있었다. 외부로는 민간기업으로 위장하고 있었지만 내부는 전혀 달랐다.

이곳에 있는 인원들 중에 상당수가 중국정보국에서 활동했던 첩보원들이다. 그 외에 중국내에서 악명높은 공안국 출신들도 있다.

얼마 후 회의실의 문이 열리며 몇 명의 중년 사내들이 들어왔다.

상하이 보안공사의 사장과 함께 들어온 그들은 중국내에서 규모가 큰 IT-기업과 배터리 기업의 사장들이었다. 지금 들어오는 그들의 표정은 상당히 굳어있었다. 한국에서 보도된 뉴스가 타격을 준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번뉴스는 일본언론과 미국의 CNN에서 먼저 보도가 되었습니다. 다시말해 한국쪽에서 먼저 우리를 눈치챈것은 아닙니다. 대신에 다른 쪽에서 노출이 된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한국 내에서 활동 중인 CIA 나 또는 일본의 정보국에게 우리가 들켰다는 뜻인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긴 한국의 방첩활동과 능력은 상당히 떨어지니까.”

장간(張干)이 대답했다.

그는 상하이 보안공사 사장으로 이전에는 중화무력국에서 상당한 지위에 있었다.

그리고 현재는 중국정부의 특명을 받아 상하이 보안공사를 세운 뒤에 한국을 향해 스파이 활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지금 상황으로서는 한국에서 부하들의 신분이 몇 명 노출된 상태라 작전상 후퇴를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됩니다.”

양패가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회의에 참가한 배터리 회사의 사장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것은 상하이 보안공사 사장인 장간도 마찬가지다.

“자네들에게 부여한 임무인 한국의 KR-전지와 슈퍼배터리의 핵심기술을 빼내오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네. 여기에 참석한 중국 배터리 기업의 사장들도 느끼고 있지만 한국의 KR-전지가 슈퍼배터리를 출시하면서 중국의 기업들이 상당한 타격을 받았네. 그 피해는 액수로 환산하기 힘들정도란 것이지.”

“이미 중국내 중소형 배터리 회사들은 경영압박을 받아 몰락하기 직전일세.”

배터리회사 사장들이 성토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KR-전지의 슈퍼배터리가 중국 배터리 기업들과 시장에 영향을 주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엄청난 타격이 있는 건 아니다.

대신에 여기에모인 대형 배터리 회사들은 이것을 기회로 해서 중소형 배터리 회사들을 집어삼키며 몸집을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KR-전지가 보유한 슈퍼배터리의 핵심기술을 강탈하면 자신들이 최고의 위치에 올라서는 것이다.

돈에 대한 이익으로 눈이 멀어버린 그들이었다. 때문에 조금 전 양패가말한 작전상 후퇴란 조건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것입니까?”

“어쩌다 운이나빠서 양패의 부하들 중 2명 정도가 노출되었지만 나머지 인원들은 계속 스파이 활동을 하는데 크게 문제가 없을 거 같군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인원을 보강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필요하다면 우리 쪽에서 더 많은 자금지원을 하겠소.”

중국쪽 배터리기업의 사장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을 보며 장간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KR-전지나 한국의 스마트폰 대표기업인 삼진(Sam Jin)은 민간기업에 불과할 뿐이다.

고도의 특수훈련과 스파이 훈련을 받은 자신들에게는 상대가 안된다. 양패는 상관의 명령에 대해 거부할 입장은 못되었지만 내심 불안했다.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인원들을 보강해서 본격적으로 공략을 시작하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KR-전지와 슈퍼배터리 핵심기술을 빼내는 건 최우선 사항이네.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말고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네. 필요하다면 KR-전지의 정대현 사장을 포함해서 그곳의 기술자들을 협박하고 납치하는 것도 상관없네. 어차피 한국 기업들이가진 기술은 우리 중화제국이 전세계를 지배하는 패권국과 제국이 되는데 필요한 수단일 뿐이니까.”

양패를 향해 지시하던 장간이 음흉하게 웃었다. 그에게 한국은 대대로 중국의 속국이다.

그리고 한국기업들은 중국의 패권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

“중국 녀석들의 상황은 어때?”

“지난번 언론에서 기사가 난 뒤에는 썰물처럼 철수하더니 요즘은 조용하군.”

배기성이 오창석을 향해 대답했다.

근육으로 다져진 체격을 지닌 배기성은 한국군의 SEAL 부대에서 활약했고 여러 작전에도 참가했다. 지금은 오창석과 함께 김태천에게 스카웃된 인물들 중 한 명이다. 강민은 첫 번째로 중국 스파이들의 활동을 언론에흘려 혼란시키는 작전을 사용했다.

이것은 제대로 먹혔다.

그전까지 KR-전지와 삼진(Sam Jin)을 감시하며 기회를 노리던 중국 스파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강민은 김태천 팀에게 계속해서 감시활동을 시켰다.

적들의 다음 행동을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다. 그에 따라 배기성과 오창석이 포함된 감시팀은 24시간 교대로 중국쪽 스파이들의 아지트를 관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신분이 노출된 것에 당황하며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나 앞으로 상황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고성능의 망원경으로 지켜보던 배기성이 외쳤다.

“뭔가 움직임이 시작되었는데.”

“잠시만....”

배기성의 말에 오창석도 망원경을 들고 확인을 시작했다. 얼마 후 그들이 감시중인 중국 스파이들의 아지트로 여러 대의 차량들이 다가왔다.

차량에서 내린 인원들은 건장했고 눈빛이 매서웠다.

딱 봐도 보통의 민간인이 아니란 느낌이다.

“이걸 보니 처음에는 순순히 물러날줄 알았더니 더 공세적으로 나오는군.”

“인원이 더 늘었군.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KR-전지와 삼진(Sam Jin)을 향해 스파이 활동을 전개하겠다는 뜻이로군.”

“멍청한 놈들. 순순히 물러났으면 서로 간에 좋았을 걸 말이지.”

배기성이 고개를 내저었다.

상대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남은 선택은 하나뿐이다.

강민이 기회를 줬는데도 적들은 그것을 무시한 것이다. 오창석이 전화기를 꺼내었고 연락을 시작했다.

“전략실장님. 조금 전 오창석과 감시팀에게서 온 보고내용입니다.”

“중국쪽 스파이들이 포기하지 않았군요.”

“역시 짐작하고 계시군요.”

김태천이 말하며 웃었다.

이런 상황이 될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활동하던 중국 스파이들은 어떤 방해도 받지 않았고 마음껏 날뛰었다.

지금부터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KR-전지의 슈퍼배터리와 핵심기술은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삼진(Sam Jin)이 보유한 스마트폰 제조기술과 특허들도 중요했다. 지금 중국은 이것을 공짜로 먹겠다고 달려드는 것이다.

“지금부터 겁없이 스파이 활동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가르쳐줄 차례군요.”

“준비는 완료된 상태입니다.”

김태천이 대답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