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
감시활동
“역시 실장님의 예상대로군.”
“어차피 그들로서도 위기상황에 몰리니까 서로 간에 야합을 하겠다는 것이지.”
프리먼의 말에 최태만이 대답했다.
지금 두 사람은 강민이 지시한 감시활동을 진행 중에 있었다.
그 대상은 일본내 대형 건설사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점유율과 규모를 갖고 있는 미츠바 건설이었다.
지금까지 일본의 대형 건설사들은 일본정부의 국책사업을 비롯해서 경제호황. 그리고 국내외의 건설붐을 이용해 짭짭한 재미를 보고 있었다.
그러던중에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의 네바다 사막에서 진행된 야스오 박사팀의 면진설계와 공개테스트가 성공하면서 그 이슈는 일본사회를 뒤흔들었다.
특히 진도 9.5라는 메가톤급의 지진을 견디는 면진설계의 첨단기술은 일본을 지진의 공포로부터 해방시켜줄 신기술이다.
대다수의 일본 국민들은 이것에 대해 기뻐했지만 일본정부 그리고 일본내의 지진공학계, 결정적으로 일본내의 대형건설사들은 표정이 구겨졌다.
특히 대형건설사들은 자신들이 알지못하는 최신기술이 나왔기 때문에 경쟁에서 밀린다는 두려움이 팽배했다.
이 기술이 일본내에서 그것도 주류학계에서 개발된 것이라면 자신들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었다.
그것도 아주 싼값에.
그럴 것이 일본내의 10대 대형건설사들은 일본정부와 함께 일본내 지진공학계에 상당한 연구자금을 투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개발된 기술들을 대형건설사들이 채용했고 이제까지 일본 대형건설사들의 내진설계와 공법은 세계에서 Top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야스오 박사팀의 실험이 성공하면서 현재 최고의 내진설계 기술을 보유한 것은 <한성개발>인 것이다.
현재 <한성개발>은 종합건설사로 규모가 커졌다. 만약에 한성개발이 일본의 건설산업에 뛰어든다면 그 파장은 엄청날 수준이다.
지금까지는 <한성개발>이 일본의 건설산업에 들어간다는 뉴스는 나오지 않았다.
그것이 다행이기는 했지만 문제는 여전히 있었다.
일본은 이제까지 지진방지와 내진설계를 위해 모든 노력을 동원했다. 이것이 일본국민들의 요구였고 일본정부는 국민의 요구에 따라 행동할 의무가 있었다.
또한 일본의 대형 건설사들도 새로운 기술이 나왔다면 막대한 돈과 로열티를 주고라도 국민의 안전을 위해 도입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대형건설사들이 보유했던 내진설계 기술과 노하우는 모두 폐기되고 엄청난 부담이 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대형건설사들은 야스오 박사팀의 실험성공과 이슈를 어떡하든지 묻어버리고 자신들에게 피해가 오지 않게 하려고 발버둥쳤다.
그 방법 중에 하나가 일본내의 10대 대형 건설사들이 카르텔을 형성하면서 연합하는 것이다.
지금 이것을 주도하는 것이 10대 건설사들 중에 1위를 달리고 있던 미츠바 건설이다.
“본격적으로 추적을 해볼까?”
김태천이 차량에 시동을 걸었다.
프리먼과 김태천은 강민의 요청에 따라 일본으로 들어왔다.
박광석팀이 일본의 증권시장과 금융시장에 대한 작전에 능숙하지만 지금 같은 차량추적이나 감시활동은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이런 것은 두 사람이 담당하는 게 최선이다.
***
“미츠바 건설사장인 토리야마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군.”
두 사람의 눈빛이 예리하게 변한다.
목표를 감시하고 추적하는 기술에 있어서는 최고의 수준이다. 두 명이 더 뛰어난 것은 상대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강민은 두 사람에게 토리야마의 감시를 중점적으로 지시했다.
강민은 일본내의 대형 건설사들이 패배를 인정하거나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을 것을 예감했다.
지금까지 그들은 일본내에서 자신들이 최고라고 자부했으니 말이다.
또한 일본내의 10대 건설사들은 이전에도 자신들에게 불리한 상황이 발생할 때에는 비밀리에 단합과 카르텔을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이때문에 지금도 일본의 건설업계는 부패와 폐단이 많았다.
특히 일본정부의 예산을 이용해 실시하는 국책사업의 경우나 대형건설 프로젝트에서는 더 심했다.
강민은 이번에도 그들이 몰래 야합할 것을 예감했고 프로급의 능력을 지닌 두 명을 배치한 것이다.
미츠바건설의 본사에 있는 지하주차장에서 토리야마가 탑승한 차량이 나왔다.
그러자 감시하던 프리먼과 김태천이 차량을 출발시켰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미행했고 토리야마의 차량에는 만약을 위해 추적장치까지 붙여놓은 상태다. 따라서 거리가 떨어진 뒤쪽에서 느긋하게 따라가도 목표차량을 놓칠 가능성은 없었다.
“오늘이 비밀리에 만나는 날인가보군.”
“그렇다면 어떤 자들이 참석할까 궁금해 지는데.”
김태천이 냉소를 지었다.
***
도쿄시내를 벗어나서 요코하마시의 외곽으로 향하는 곳에는 시카데라는 지역이 있었다.
대도시인 도쿄에서 가깝고 자연경관도 괜찮기 때문에 여기로 휴양이나 관광을 위해 오는 사람들도 꽤 된다.
또한 시카데의 중앙에 있는 아오모리 호수의 주변으로는 하룻밤 술값만 해도 수천만을 가볍게 넘어갈 수준의 고급 요정들이 있었다. 여기에 있는 요정들은 대부분 역사도 오래 되었지만 일본에 있는 요정들에서도 상급에 속했다.
그중에서도 쇼쿠텐이라는 요정은 일본의 정치인들과 경제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곳이다.
프리먼과 김태천은 토리야마의 차에 붙여놓은 추적장치를 이용해 단번에 목적지를 파악했다. 그리고는 지름길을 이용해서 추월했고 모임장소인 쇼쿠텐-요정의 근처에 잠복한 채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두 사람은 망원렌즈가 장착된 카메라와 비디오 촬영장비를 꺼내었다. 이 정도쯤 거리가 떨어져 있으면 상대가 눈치챌 가능성은 낮았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오는 참석자들은 설마 자신들의 비밀모임이 대중에 알려질 거란 사실은 꿈에도 몰랐으니 말이다.
“드디어 오는군.”
“시작하자구.”
프리먼과 김태천의 호흡이 척척 맞았다.
먼저 오늘의 비밀모임에 있어 주최자의 역할을 하는 토리야마의 차량이 도착했다.
주차장에 멈추면서 고급 리무진에서 토리야마가 내리는 게 보인다. 그러자 요정 내부에서는 곱상하게 차려입은 중년여자가 마중을 나왔다.
쇼쿠텐 요정의 마담인 히미카다.
“어서오세요. 회장님.”
“장소는 준비되었지?”
“물론이에요.”
마담인 히미카가 교태스런 웃음을 내었다.
토리야마가 마담과 대화를 하던 중 다른 차량들도 하나둘씩 도착했다.
대부분 중대형의 고급차량들이고 수행비서의 도움을 받아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강민의 예상대로 일본내 10대 건설사들의 사장들이 차례로 모여드는 것이다.
토리야마는 도착하는 다른 건설사 사장들을 마중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이거야말로 엄청난 뉴스거리가 되겠는 걸.”
“지금 보니 10대 건설사의 사장들만 모이는 것도 아닌데. 저기봐!”
김태천이 가리켰다.
10대 건설사의 사장들이 대부분 도착하자 그 뒤에 오는 것은 일본정부의 고급관료들이다. 특히 일본내에서 건설과 관계된 공무원들의 모습이 차례로 보였다.
김태천은 비밀모임이 어떤 목적을 갖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단순히 10대 건설사들의 사장들만이 아니라 그들과 일본정부가 수작을 꾸미는 것이다.
“저들도 빠질 수는 없겠군.”
“그렇다면 일본내 10대 건설사. 그리고 일본정부. 마지막으로 일본내의 지진공학계 학자들이 야합을 벌이는 것이로군.”
“지금까지 저들은 서로 간에 공생관계였으니 말이지.”
“어차피 현재까지는 그걸로 꽤 이득을 봤겠지만 지금부터는 다르지.”
프리먼이 대답하며 촬영을 개시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은 일본에 있는 지진공학협회에 속해있는 협회장과 그곳의 상급간부들이다. 인원들이 갖추어지자 토리야마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토리야마 사장님께서 주최하는 모임인데 우리들이 빠질 수야 없지요.”
“알다시피 지금 우리들에게는 커다란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 있는 <한성개발>과 그곳에 있는 야스오 박사때문에 지금 일본이 커다란 혼란에 빠진 상태입니다. 야스오 그 놈이 설마 실험을 성공할 줄이야.”
협회장인 다카모리가 분노를 드러냈다.
자신들이 깔보던 야스오 박사가 엄청난 일을 해냈고 그것 때문에 자존심이 뭉개진 것이다.
토리야마가 협회장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그런 일이 생겼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위축될 필요는 없습니다. 여전히 일본의 건설분야는 우리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여기에 참석하신 국토교통성 장관님과 차관님도 우리와 뜻을 함께하고 계신 겁니다.”
“그 말을 들으니 정말로 안심이 되는군요.”
협회장과 나머지 건설기업의 사장들이 기세를 높였다. 처음에는 토리야마도 미국에서 전해진 뉴스때문에 당황했지만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미 커넥션을 통해 일본정부내의 관료들에 대해서도 상당부분 구워삶아 놓은 상태다. 그리고 현재 상황에서는 나머지 건설기업의 사장들도 자신의 계획에 찬성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연회장이 준비되었으니 우리 애들이 안내를 하겠습니다.”
마담인 히미카가 말했다.
그녀의 뒤쪽에는 요정에서 일하는 게이샤들이 반듯하게 인사를 하였다.
“역시 토리야마 사장님의 능력은 대단하시군요.”
“여러분! 오늘의 연회는 제가 준비한 것입니다. 마음껏 즐기십시요.”
토리야마가 말하며 앞장섰다.
그의 옆으로 젊은 게이샤가 부축하듯 붙었다. 나머지 손님들에 대해서도 게이샤들이 동행하며 안내를 시작했다.
프리먼과 김태천은 차량에 잠복한 채 이 모든 광경을 치밀하게 촬영하였다.
망원렌즈까지 장착된 고성능 카메라의 위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참석한 인원들을 단 한 명도 놓치지 않았다.
***
“이제 조금 후면 나오겠군요.”
박광석이 기대섞인 표정으로 TV를 켰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꾸었고 아사히TV의 뉴스채널을 선택했다.
아사히TV에서는 몇 시간전부터 긴급보도를 한다는 홍보를 하였다. 때문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상당히 집중된 상태다.
특종보도를 하기전에 사전에 밑밥을 상당히 뿌려놓은 것인데 나름대로 솜씨가 괜찮다.
“그런데 선배님. 이거야말로 진짜로 팝콘각인데. 뭐라도 먹으면서 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팝콘 있냐?”
“어제 먹다가 남은 거 있는데.”
“그럼 줘봐!”
박광석이 후배에게 팝콘을 받아들더니 소파에 앉았다. 나를 포함해서 박광석과 두 명의 후배들은 조금 후 아사히TV에서 나올 특종보도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저 특종보도의 정보를 우리 쪽에서 몰래 준 것이니까 말이다.
이틀 전에 나의 지시를받고 토리야마에 대한 감시활동을 펼쳤던 프리먼과 김태천은 제대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두 명이 찍어온 영상과 화면에는 비밀회담과 담합을 위해 모여든 인원들이 모두 있었다.
토리야마부터 시작해서 10대 건설사의 사장들이 몰래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뉴스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일본정부의 장관과 차관까지 참석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야스오 박사팀의 면진설계를 박대하며 자신들의 만의 성역을쌓고 기고만장했던 일본내 주류 지진공학계의 학자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인원들이 한꺼번에 모였다.
그것도 공개적인 장소가 아니라 은밀한 고급요정에서 만남을 가진 것이다.
지금부터 나올 아사히TV의 특종보도가 시청자와 일본사회에 얼마나 큰 충격을 줄지는 충분히 예상되었다.
“박광석씨 말대로 느긋하게 팝콘을 뜯어야할 시간이군요.”
“실장님도 드시겠습니까?”
박광석이 내민 팝콘을 받아서 입으로 넣었다.
지금까지 먹었던 팝콘들 중에 최고로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