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
게임개발사 블리자드(Blizzard) (01)
“이번 신청곡은 다크벨벳의 빨간약(Red Pill)입니다. 요즘 이곡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당연하죠. 현재 가요계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신인 걸그룹 아닙니까? 그야말로 전국을 빨간약 신드롬으로 강타하는 중이니까요. 이전에 한번 실패했던 걸그룹이 이 정도로 재평가받고 단번에 스타덤에 오르는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뭣보다 이번에는 다크벨벳이 소속사를 잘 만났다는 말도 있던데요.”
“그것도 무시못할 겁니다. KW-엔터테이먼트가 업계에서 비교적 신생이기는 하지만 그곳 대표의 인지도가 상당한 인물이니까요. 거기다 부대표는 이호성씨로 지금까지 한국 가요계에서 다수의 신인들을 발굴해서 스타로 키운 실력자입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그럼 시청자분의 요청에 따라 다크벨벳의 빨간약을 방송하겠습니다. 강렬한 비트와 파워댄스로 무장한 걸그룹 다크벨벳의 빨간약입니다. 저희들은 잠시 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라디오 DJ-들의 멘트가 끝난 뒤에 다크벨벳의 대표곡 빨간약의 댄스음악이 카스테레오를 통해 흘러나왔다.
랜드로버 메탈리카에 설치된 사운드우퍼의 스피커는 최고급의 것이었고 출력도 상당하다.
라디오 음악채널에서 흘러나오는 다크벨벳의 빨간약을 들으면서 강남의 테헤란로를 향해 나아갔다.
KW-엔터테이먼트에서 스타프로젝트 1호로 내세운 다크벨벳의 데뷔와 신곡발표는 성공적이었다.
단번에 음원판매 10위권내로 진입하였고 이제는 곳곳에서 출연요청이 쇄도하는 중이다.
이 상태로 진행하면 얼마 후에는 5위권 진입도 문제없고 음원랭킹 1위도 노려볼 수 있었다.
또한 반가운 뉴스들도 있었다.
이번에 다크벨벳이 발표한 빨간약의 경우 해외에서의 반응도 상당히 괜찮다.
다크벨벳은 국내인기를 바탕으로 해외시장까지도 노리는 컨셉이었다.
뭣보다 국내시장보다 해외시장의 파이가 더 큰 법이고 수익면에서도 비교가 안된다.
또한 다크벨벳의 멤버들 중에 대만에서온 트위와 일본에서온 미나를 통해 벌써부터 대만과 중국, 그리고 일본에서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높아지는 중이다.
이제는 그 인지도가 태국이나 베트남같은 동남아 국가로도 확대되고 있었다.
특히 중국의 경우에는 K-Pop과 한류에 있어서 막대한 시장이다.
16억명의 인구중에서 문화생활을 즐길만큼 여유로운 중산층의 비율이 적은 건 사실이지만 그 적은 비율만으로도 몇 억명에 이른다.
그리고 중국의 경제성장이 꾸준히 되면서 점점 더 문화생활을 즐기는 계층도 늘어나고 있었다.
특히 중국의 젊은층에게는 K-Pop과 한류가 좋은 인식으로 자리잡으며 팬덤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였다.
다크벨벳의 데뷔가 성공적으로 되었기에 일단은 한시름 놓을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이제는 다른 문제중에 하나를 해결해야 할 차례다. 얼마 전에 유비콘의 최병관 사장으로부터 받은 업무보고의 내용.
그것이 좀 신경 쓰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유비콘(Ubicon) 본사가있는 곳으로 향하는 중이다.
***
“어서 오십시요. 실장님.”
정문에는 유비콘의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본 얼굴이다.
그동안 유비콘의 사세가 확장되면서 신규채용이 많아졌다. 그만큼 유비콘의 매출도 증가했던 것이다.
마이포토앱(My Photo App)의 경우에는 이제 세계적인 히트상품이 된 상황이다.
그리고 유비콘에서는 마이포토앱의 성공을 바탕으로 새로운 버전과 기능이 추가된 제품까지 내놓으면서 매출의 극대화를 노리고 있었다.
이부분은 잘 진행되는 중이다.
이미 영어버전을 내놓았고 그 뒤에는 일본어버전.
그리고 유럽권에도 진출해 각국에 맞는 현지어 버전과 로컬화까지 진행 중에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여기가 이번에 신설되어 운영 중인 게임개발부입니다.”
최병관 사장이 설명했다.
유비콘의 제품다각화와 전략을 위해 모바일 게임의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모바일 게임은 제대로 히트만치면 그 뒤에는 계속해서 돈을 벌어들이는 아이템이다.
유저들의 게임 중독성이란 부분을 제외하고도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게임이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개발된 모바일 게임의 종류와 숫자는 꽤 많았다.
다만 대부분의 모바일 게임들이 획기적인 도약없이 자가복제나 평범한 수준에 머무르다보니 메가히트의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유비콘에는 마이포토앱에 사용된 최신의 3D 랜더링 기술이 있었고 이것은 어떤 모바일게임도 흉내내기 힘든 수준이다.
그만큼 경쟁력이 강하기 때문에 제대로만 한다면 메가히트급 모바일 게임이 나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프로젝트와 게임개발이 제대로 성과를 못내고 있다는 건 근본 적인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이쪽은 게임개발부의 책임을 맡고 있는 손명진 부장입니다.”
“실장님에 대해서는 사장님을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손명진 부장이 인사했다.
최병관이 게임개발부의 부장으로 영입한 손명진은 한국 게임업계에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가 20대 초반에 만든 게임들은 한국의 게임유저들에게 꽤 인기 있었고 아이디어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단 지금까지 제작된 게임에 대해 잠깐 볼 수 있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게임개발부의 인원들도 같이 동참하도록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의요청에 손명진이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지만 반문하지 않았다.
***
넓은 회의실.
그곳에는 나를포함해 유비콘의 사장인 최병관. 그리고 게임개발부의 부장인 손명진을 시작으로 여러 명의 직원들이 모여 있었다.
“이것이 우리 쪽 게임개발부에서 제작한 전략형 환타지 게임인 문레젼드(Moon Legend)입니다.”
부장인 손명진이 말했고 컴퓨터를 여러 대 연결시킨 가운데 개발부의 직원이 시연을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지켜보았다.
먼저 그래픽이나 사실감은 괜찮은 편이다.
현재 유비콘이 보유하고 있는 최신의 3D 랜더링 기술이 도입된 상태니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부분에서는 딱 이거다....! 하면서 와닿는 부분이 없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게임의 진행 중에 버그나 프로그램 이상이 생겼는지 캐릭터들의 움직임이 딱딱 끊어지거나 부자연스럽게 진행된다.
또한 실제 유저들에 의해 통제되는 메인 캐릭터들외에 프로그램에 의해 따로 움직이는 NPC-들의 대응이나 상태도 문제가 좀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전략형 게임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데 각 종족이나 캐릭터들의 밸런스 차이가 많았다. 그 때문에 게임이 너무 단순하게 흘러가는 측면도 보였다.
이윽고 게임시연이 끝난 뒤에 참석한 개발부의 직원들을 보았다.
그들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에 자신들이 만든 게임에 대해 자부심을 가진다면 저런 표정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여러분들도 이번에 개발한 게임에 문제가 있다는 걸 느끼고 계시군요.”
“......”
나의 말에 아무도 반박을 못했다.
“저희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기는 했는데 뭔가 벽에 부딪친듯한 느낌입니다.”
“그 말은 즉 현재의 문제를 돌파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뜻이군요.”
“그렇기는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손명진이 대답했다.
나머지 인원들의 반응도 살폈다.
개발부의 직원들이 손명진 부장을 향해 보내는 신뢰감은 높았다.
이들의 도전정신은 높이 살만했다.
하지만 게임개발의 실패에는 어느 정도 필연적인 요인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극복될 수 있겠지만 마냥 기다리는 것이 좋은방법은 아니다.
독자적으로 안된다면 잠시 외부의 손을 빌리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테니까 말이다.
“여기계신 분들이 게임개발에 열정을 갖고 있고 실력도 뛰어난 것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이번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잠시 외부세력과 손을 잡는 것도 어떨까 생각이 드는데 말이지요.”
“실장님의 그 말씀은 현재 국내에서 잘 나가는 온라인 게임업체와 연합한다는 뜻입니까?”
“글쎄요. 저로서는 이미 여러분들의 실력은 국내에서 충분히 인정받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비슷한 수준의 국내업체와의 협력은 그다지 큰 효과를 보지못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
나의 말에 개발부 직원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차례 그들을 훑어본뒤에 말했다.
“지금 여러분들이 개발에 실패한 게임은 전략형 환타지 게임입니다. 그런데 외국에는 이런 전략형 게임을 잘 만들기로 정평이난 게임회사가 있다고 하던데.”
“블리자드입니다.”
“맞아. 블리자드가 그쪽 분야에서는 독보적이지.”
개발부 직원들이 저마다 목소리를 내었다.
이제 손명진 부장이 내뜻을 알아채고 놀랐다.
“그렇다면 지금 실장님이 생각 중인 것은 유비콘의 게임개발부가 블리자드쪽과 협력한다는 것입니까? 만약에 그것이 가능하다면 진짜로 엄청난 사건입니다.”
“제가 게임 전문가는 아니지만 블리자드가 이제까지 출시한 게임들을 좀 봤습니다. 뭣보다 유비콘이 보유한 3D 랜더링의 정교한 입체감과 그래픽 기술은 블리자드 쪽에서도 원하는 것입니다. 그 대가로 우리 쪽에서도 그들이 갖고 있는 노하우를 쓸 수도 있겠지요. 물론 서로 간에 협상이 100%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일단은 시도해보면 좋을 거 같군요.”
“와아. 블리자드라니.”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의 성공신화를 만든 게임회사잖아. 그런 엄청난 게임회사와 우리들이 같이 일할 수 있다면 진짜로 엄청난 발전이 될텐데.”
개발부 직원들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내가 게임매니아는 아니지만 그래도 블리자드가 전략게임에서 선두적인 위치에 있는 건 분명했다. 따라서 이것은 충분히 해볼만한 협상과 기회다.
***
“설마 블리자드에서 우리와의 협력을 긍정적으로 받아 들일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들로서도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렇군요.”
나의 대답에 최병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비콘을 방문해 게임개발부의 문제를 파악한 뒤 최병관에게 요청해 블리자드와의 접촉을 시도했다.
블리자드는 한국에서 판매한 스타크래프트와 워크래프트의 성공으로 한국에 지사를 두고 있었다.
그곳을 통해 먼저 접촉을 하였고 블리자드 본사와의 반응을 기다렸다.
유비콘이 한국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알려진 IT-기업으로 성장했기에 블리자드로서도 유비콘의 제안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전세계를 강타한 전략게임의 히트로 명성이 높았지만 최근 블리자드는 자사가 출시한 새로운 게임들이 연달아 실패하면서 주가가 엄청 떨어졌다.
따라서 그들로서도 획기적인 도약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 유비콘이 출시한 마이포토앱의 3D 랜더링 기술은 그래픽 기술의 최고봉이라 불릴정도로 가치가 높았다.
블리자드도 그것을 자신들이 개발하는 게임에 응용할 수 있다면 엄청난 효과가 있다는 걸 충분히 파악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서로 간에 사전협의가 되었고 지금은 블리자드 본사의 초청을 받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로 향하는 중이다.
이번 방문에서는 최병관 사장을 포함해 유비콘내 게임개발부의 인원들을 동행시켰다.
현 블리자드의 리더인 마이크 모하임 사장과의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면 게임개발부의 인원들 중에 일부를 블리자드 본사로 파견해 공동작업을 해야 할 경우도 생기니까 말이다.
따라서 이것은 사전탐방의 성격도 있었다.
얼마 후 우리들이 탑승한 차량들은 블리자드 본사가있는 오렌지 카운티의 어바인시로 향했다. 블리자드 본사는 어바인시에서 북쪽에 있는 노팅힐 지구에 있었다.
블리자드 본사로 향하면서 게임개발부의 직원들이 저마다 기대감을 나타냈다.
게임개발자로서 블리자드는 IT쪽 엔지니어가 구글본사를 방문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역시 블리자드네요.”
“진짜로 대단해. 입구부터 이전 히트게임의 캐릭터들로 조형물을 만들어 놓다니!”
게임개발부 직원들이 탄성을 자아냈다.
블리자드의 본사 건물도 독특했다.
게임개발로 명성을쌓은 회사답게 본사 건물은 통유리를 사용해서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구성된 형태였다.
그 외에 블리자드의 개발자들과 직원들에 대한 복지나 근무환경등도 상당한 자율성을 보장했는데, 이런 것들이 모여 블리자드의 명성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현재 유비콘의 근무환경도 구글의 자율적 업무시스템을 차용해 실시 중에 있었다.
때문에 유비콘의 직원들이 블리자드 본사에 파견되어서 일한다 해도 적응에는 큰 무리가 없을듯 보였다.
얼마 후 차량이 정지하고 인원들이 차례로 내렸다. 그리고 본사 정문에는 연락을 받은 블리자드 직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