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조 재벌-79화 (79/300)

# 79

승부는 결정났다

다크벨벳이 음악방송인 <뮤직타운>에 출연하는 시간은 기껏해야 5분에서 10분정도다.

<뮤직타운>은 기본적으로 인가가요의 순위를 메기는 프로그램이다.

때문에 <뮤직타운>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현재 활동 중이고 인기를 얻고 있는 스타들이다.

그런 스타들 중에는 솔로로 활동하는 가수도 있고 인기 아이돌 그룹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뮤직타운>은 매번 방송때마다 가능성 높은 신인들에 대한 소개를 한다.

이번에 <뮤직타운>에서 소개할 그룹은 2개인데 그중에 하나가 KW-엔터테이먼트의 다크벨벳인 것이다.

“그런데 부대표님. 오늘 뮤직타운에서 소개할 다른 신인들은 누구입니까?”

“그게.... TM-엔터테이먼트의 신인그룹인 걸유닛(Girl Unit)입니다.”

대답하던 이호성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가 오랜동안 몸담았던 TM-엔터테이먼트에서 배신당하고 나의 KW-엔터테이먼트에 부대표로 왔기에 씁쓸한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호성은 곧바로 표정을 바꾸었다.

과거는 과거이고 지금은 현재에 집중해야 하니까 말이다.

“이름에서 단번에 걸그룹이란 느낌이 드는군요.”

“예. 이번에 TM-엔터테이먼트에서 공들여 준비한 걸그룹입니다. 인원도 상당히 많은데 15명으로 구성된 상태입니다.”

“만약에 그들이 올라가면 무대가 꽉 차겠군요.”

이호성을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걸그룹의 멤버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견이 많았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데뷔한 걸그룹들 중에는 최소 3명부터 시작해서 많게는 20명 이상인 경우도 있었다.

인원이 적으면 그만큼 집중도가 높아지지만 대신에 각각의 멤버들이 저마다 특색이 강해야 했다.

그에 반해 인원이 많으면 산만해지는 단점이 있지만 그룹 멤버들 중에 몇 명이 아주 잘하면 그만큼 포커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도 쉬운 게 아니다.

저마다 장단점이 있다는 뜻이다.

“조금 후면 오늘 뮤직타운에 소개할 신인그룹에 대한 리허설이 진행될 예정이니 TM-엔터테이먼트에서 준비한 걸유닛을 보실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이호성 부대표께서는 미리 어느 정도 정보를 입수하셨을 거 같은데. 어떻습니까?”

“역시 대표님은 예리하시군요.”

이호성이 대답하며 테블릿-PC를 꺼내었고 화면을 띄웠다. 그러자 15명의 걸그룹 멤버들의 사진이 나왔다. 한곳에 모여있는 스냅샷의 사진인데 용케 이런 걸 구한 것이다.

“비주얼적으로는 나쁘지 않은데 자연스럽다기보다는 처음부터 개개인의 개성을 완전히 죽이면서 만들어진 느낌이 강하군요.”

“제대로 보셨습니다. 이애들은 TM-엔터테이먼트에서 자금을 대서 반강제로 성형시킨 멤버들입니다. 솔직히 제가 TM-엔터테이먼트 사장인 정태만에게 가장 큰 불만이 생긴 것중에 하나이기도 하고요.”

“성형수술이라. 기본적으로 스타지망생들, 그중에 걸그룹 멤버들이 예뻐지는 걸 희망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까?”

“그 부분은 저도 충분이 인정합니다. 본인이 원하는 것이라면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TM-엔터테이먼트는 연습생들과 데뷔 준비생들에게 압력을 넣어 무조건 하도록 만듭니다. 그리고 비용은 선불형식으로 연습생들과 지망생들에게 부담시키는 것입니다. 또한 성형을 하더라도 본인이 원하는 스타일이 아닌 오로지 소속사에서 원하는 스타일로 만듭니다. 만약에 그것을 거부하면 온갖 비열한 방법을 다써서 퇴출시키거나 스스로 나가게 만들지요. 지금 TM-엔터테이먼트의 정태만은 돈을 위해 소속사의 연예인들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호성이 대답하며 음성이 떨렸다.

그는 연습생들과 아이돌 그룹에 애정이 있었지만 정태만은 돈 벌이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TM-엔터테이먼트에서 준비한 걸유닛(Girl Unit) 멤버들의 얼굴과 스타일은 판에박힌 인형들처럼 비슷했다.

성형수술을 통해 얼굴 스타일을 대부분 통일시켰고 15명이 한 명의 얼굴처럼 비슷했다.

다크벨벳 멤버들의 얼굴이 저마다 개성이 넘치는 것에 비해 걸유닛 멤버들은 확실히 인조인간의 느낌이 난다.

공장에서 만들어진듯한.

“솔직히 걸유닛처럼 이 정도로 판에박힌 성형 멤버들을 찍어내는 것은 이후에 역풍이 생길 가능성도 많습니다. 앞으로 한국의 아이돌 팬들은 자연적이고 개성이 넘치는 그룹에 대해 더 많은 호응을 보낼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한류스타의 확장성을 위해서도 성형을 통해 똑같이 만들어낸 판에박힌 컨셉은 더 이상 통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확실히 부대표님의 말씀이 타당한 거 같군요.”

이호성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KW-엔터테이먼트의 부대표로 끌어온 것은 잘한 선택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한류의 한계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고 이것을 극복할 방법을 모색중에 있었던 것이다.

<뮤직타운>에 출연할 중견 아이돌과 가수들의 리허설이 끝난 뒤에 PD가 말했다.

“지금부터 신인그룹의 소개와 신곡발표 리허설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오늘 참가할 다크벨벳과 걸유닛은 준비해 주십시요.”

대기중이던 다크벨벳의 맴버들이 긴장했다.

운영부장인 이보영의 도움으로 그녀들은 메이크업과 의상준비까지 완료한 상태다.

리허설 준비장으로 TM-엔터테이먼트의 걸유닛 멤버들도 들어왔다.

걸유닛 멤버들과 함께있는 20대 후반의 사내를 보자 이호성의 표정이 굳어진다.

운영부장인 김보영이 주먹을쥐며 말했다.

“조명진 저 녀석. 결국은 왔네. 그러고 보니 이번에 TM-엔터테이먼트에서 기획한 걸유닛(Girl Unit)이 저 녀석의 작품이었지.”

걸유닛을 리허설 장소로 데려오던 조명진이 히죽거렸다.

“호성선배. 여기서 또 만나는군요. 보영누님도 잘 지내고 계신가요? 얼마 전 TM-엔터테이먼트에서 쫓겨날 때만 해도 호성선배가 이쪽 업계에서 완전히 매장될걸로 생각했는데 그래도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는 걸 보니 대단합니다. 뭐 그래봐야 어차피 시한부 인생일 뿐이겠지요. 내년에는 더 이상 방송국에서 볼일도 없겠지만요.”

“너 말야. 업계 선배한테 그따위 말을 내뱉어?”

“제가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닌데요.”

내 앞에서 히죽거리는 녀석.

이전에 운영부장인 김보영과 함께 이야기하다 들었던 조명진이다.

TM-엔터테이먼트에서 이호성이 키워준 신참인데 지금은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까지 한 녀석이다.

그런데 이호성이 KW-엔터테이먼트의 부대표인데 어린놈이 한참 선배앞에서 깝죽대는 걸 봐줄 수는 없었다.

“부대표님. 이 친구는 누구입니까?”

“이전에 제가 TM-엔터테이먼트에 있을 때에 잠시 가르쳤던 후배입니다.”

“그렇다면 이 친구가 현재 TM-엔터테이먼트의 부대표라도 됩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그렇군요. 오늘은 어차피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렇다치고 다음부터는 부대표님이 TM-엔터테이먼트에서 상대할 사람은 최소한 동급의 부대표나 대표쯤되야 격이 맞을 겁니다. 앞으로는 저런 말단직원의 도발쯤은 그냥 무시해 버리십시요.”

“알겠습니다.”

나의 말에 이호성이 대답했다.

그리고 조명진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말단이라고? 당신이 대체 누군데?”

조명진이 따질려는 찰나 예능국 PD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대표님. 예정보다 리허설 시간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오늘은 우리 소속사의 다크벨벳이 데뷔하고 신곡발표를 하는 날이니까 이 정도쯤은 각오해야지요.”

“저 사람이 대표?”

조명진이 멍한 표정이 되었다.

예능국 PD가 조명진을 향해 말했다.

“조명진씨. 이분이 KW-엔터테이먼트의 대표이신 거 모르세요? 연예계 돌아가는 뉴스는 빨리 파악하셔야죠. 안그래도 요즘 업계에서는 KW-엔터테이먼트의 등장으로 조만간에 대형기획사들의 4파전이 된다는 예측까지 있는데.”

“......”

당황한 조명진의 말문이 막혔다.

녀석이 표정을 지켜보던 나는 곧바로 개인스킬중에 하나를 발동시켰다.

이윽고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른다.

[스내쳐 프로그램 작동 Yes/No]

Yes를 선택한 뒤에 곧바로 조명진의 핸드폰에 대한 해킹모드를 실시했다.

녀석을 보니 뒤가 구리다는 느낌이 생겼다.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지만 일단은 감시대상으로 두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얼마 후 조명진은 분기를 참으면서 매니저와 걸유닛이 있는쪽으로 돌아갔다.

김보영이 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대표님. 안그래도 저 조명진이란 녀석 기분이 나빴는데 이번에 대표님이 제대로 한방 먹여 주셨네요.”

“아닙니다. 앞으로 제가 없을 때에는 여기계신 이호성 부대표님이 모든 것을 책임지고 하실 건데 저런 피래미들한테 흔들려서는 곤란하지요.”

“대표님의 말씀 명심하겠습니다.”

이호성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번 일을 통해 이호성도 자신감을 제대로 회복한 것이다.

그리고 저 TM-엔터테이먼트는 이호성의 말대로 내부에 이런저런 비리와 썩은 것이 많은게 틀림없다. 저런 회사와 녀석들은 업계의 건전성을 위해서도 일단은 도려내는 게 필요했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나중에 천천히 시간을 두고 해내면 되는 것이다.

또한 TM-엔터테이먼트를 상대하는 데 있어 단독으로 할 필요는 없었다.

이호성에게 지시해서 알아본 결과 현재 업계에서 Top-3 대형 기획사들은 TM-엔터테이먼트를 선두로 최군대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CMC-엔터테이먼트. 마지막으로 MBT-엔터테이먼트가 있었다.

하지만 TM-엔터테이먼트가 이전에 몇 차례 MBT-엔터테이먼트와 연합하면서 CMC-엔터테이먼트를 압박한 경우가 있었다.

그럼에도 CMC-엔터테이먼트가 잘 버틴것은 소속사의 운영방식과 콘텐츠가 좋았기 때문이다.

또한 CMC-엔터테이먼트의 최군대표도 과거 아이돌멤버 출신으로 소속사의 연예인들을 잘 챙겨주는 측면도 있었다.

이후에 TM-엔터테이먼트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역시나 CMC-엔터테이먼트와 연합이 필요할 거 같다. 이부분에 대해서는 이후 부대표인 이호성을 통해 물밑 접촉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썩어도 준치라고 TM-엔터테이먼트에서 기획한 걸유닛(Girl Unit)도 나름 하는군요.”

“대표님 말씀대로 일단 기본은 갈 정도입니다.”

이호성이 대답했다.

조금 전 리허설이 끝난 TM-엔터테이먼트를 보고 내린 결론이다.

일단 업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TM-엔터테이먼트였고 이제까지 해왔던 바탕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조금 전 리허설을 마친 걸유닛이 단기간에 폭망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느낌상으로 볼 때에 대박 칠 수준은 못된다.

15명으로 구성된 걸유닛은 귀여움을 바탕으로 한 로리콘 컨셉을 핵심으로 하였다.

의도적으로 속칭 오빠부대 또는 나이 많은 삼촌팬 클럽을 노린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저런 상황이라면 걸그룹의 한계인 같은 여성팬을 만들수는 없다.

그리고 이제까지 귀여운 컨셉으로 활동한 걸그룹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식상한 부분도 있다.

일정 수준의 팬층은 형성할 수 있지만 더 이상의 확장성은 없을게 분명한 일.

다크벨벳 멤버들이 먼저한 걸유닛의 리허설을 보고는 약간 주츰했다.

이럴 때에 김보영이 적절하게 나섰다.

“TM-엔터테이먼트의 걸유닛이 제법 하기는 했지만 이런 걸로 주눅들 필요는 없어. 그리고 곡에 있어서는 우리 쪽이 훨씬 더 좋아. 안무도 새롭고 말이지. 그러니까 용기를 내.”

“고마워요. 매니저 언니.”

김보영이 잘 다독였다.

이윽고 PD의 지시에 따라 다크벨벳이 리허설을 시작했다.

미국의 빌보드차트 히트제조기인 번스타인이 만든 곡이다. 초반의 음악이 꽤 강렬하고 이것으로 시선을 집중하는 특성이 있었다.

역시나 데뷔곡인 빨간약(Red Pill)의 강렬한 비트가 무대를 사로잡았다.

그러자 리허설을 위해 모여있던 다른 출연자들도 시선을 집중했다.

“지금 노래 엄청 좋은데.”

“다크벨벳의 빨간약이란 신곡이래.”

“맞아. 나도 기사에서 봤어. 미국의 유명 작곡가인 번스타인이 특별히 참가했다고 하던데 역시 다르네.”

반응이 한순간에 집중된다.

김동성이 만든 파워댄스의 안무를 통해 다크벨벳의 멤버들이 리허설을 시작했다. 좀 전에 걸유닛의 작고 소극적인 댄스와는 비교되는 동작.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와아~ 걸그룹이 저런 댄스를 소화해 내는 거야?”

“이거야말로 엄청난 하드 트레이닝의 결과인데.”

대기중인 출연자들과 음악프로 관계자들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리허설만으로도 이 정도의 반응이다.

실제 생방에 들어가면 더 폭발적일게 분명했다.

시선을 TM-엔터테이먼트의 조명진 쪽으로 향했다.

녀석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는 녀석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미 승부는 결정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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