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오빠를 좋아해요! 하지만...
“원. 투. 쓰리. 포!”
“미나야. 그 부분에서는 팔을 좀 더 크게 벌려야해. 이렇게.”
“와아~ 은지언니 대단해.”
나머지 멤버들의 칭찬에 리더인 은지가 머쓱하게 웃었다.
그리고 은지의 뒤를 따라서 서브리더(Sub Leader)인 채영이가 시범을 보였고 나머지 멤버들이 차례로 반복했다.
지금은 안무선생인 김동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들끼리 동작을 맞추어서 연습하고 있었다. 부대표인 이호성이 제대로 발굴해낸 건 분명했다.
멤버들의 춤연습은 30분동안 쉴새없이 진행되었고 리더인 은지의 역할이 중대했다.
다크벨벳에서 가장 연장자인 그녀가 중심을 잡으면서 나머지 동생들을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니 나름 기특하다.
얼마 후 연습이 끝나고 멤버들이 거친숨을 내쉬었다. 그중에 한 명인 트위가 안무실의 밖에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외쳤다.
“은지언니! 연예인 오빠 왔어.”
“트위야. 저분은 대표님이야.”
“난 그것보다 연예인 오빠라 부르는 게 더 좋은데.”
트위가 은지를 향해 혀를 살짝내밀며 장난쳤다.
그리고 내가 안무실의 내부로 들어가자 멤버들이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지금이 밤 12시인데도 늦은 시간까지 연습하고 있었네.”
“그게 내일이 저희들 신곡발표 및 데뷔날이라서요.”
“아! 그렇구나.”
한편으론 미안한 기분도 들었다.
그래도 내가 KW-엔터테이먼트 대표이고 저 애들은 회사의 스타프로젝트 1호의 유망주들이다. 그런데 내일이 신곡발표날이란 사실도 잊어버리고 있었다.
하긴 저 애들에게 내일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날이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내일 신곡발표하는 음악방송이 뮤직타운(Music Town)이었지?”
“예. 음악방송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인지도 높은 프로그램이라 더 긴장되요. 그리고 뮤직타운은 모든 걸 생방송으로 진행하거든요. 만약에 실수라도 하는 경우에는....”
은지의 음성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뮤직타운은 다른 음악방송들이 녹화방송으로 편성하는 것에 비해 100% 생방을 원칙으로 하였다.
때문에 다크벨벳처럼 신인급 걸그룹에게는 그야말로 살떨리는 무대다.
하긴 뮤직타운의 생방에는 경험이 많은 중견 아이돌 그룹들도 긴장해서 무대 올라가기 전에 우황청심환을 먹어야 한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다.
이처럼 긴장되는 무대이긴 하지만 국내 음악방송들 중에서 최고의 인지도 높은 프로그램 이다보니 신인들은 뮤직타운에서 데뷔하기를 꿈에도 소망한다.
뮤직타운에서 데뷔한다면 전국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을 어필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또한 뮤직타운은 한국을 대표하는 KAS 방송의 간판 음악방송이라 전세계 120여개국에 송출되기도 하였다.
요즘 전세계에서 K-Pop 영향력이 커지고 있었다. 이런 K-Pop 저변확대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 KAS 방송의 뮤직타운(Music Town)이었다.
이윽고 대화를 끝내고 안무실 밖으로 나오려는데 은지가 나를 불렀다.
“저기 대표님.”
“응? 무슨 일이지?”
“잠시 상담 좀 하고 싶은데.”
그러면서 은지가 고개를 반쯤 숙였다.
여기서 거절하는 것도 뭐하고 일단은 들어보는 것도 좋을 거 같았다.
“어떤 고민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지.”
“감사해요.”
나의 대답을 듣자 은지의 표정이 밝아졌다.
얼마 후 은지와 함께 같은 층에 있는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지금은 밤시간이라 가게는 닫았고 직원들은 없었지만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무슨 일이지?”
“사실은 내일이 저희들의 신곡발표와 데뷔날이고 해서 너무나도 기뻐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떨리기도 해요. 제가 리더이고 이럴 때에는 동생들을 더 격려하고 중심을 잡아야 하는 데 자꾸만 불안해져서.”
은지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항상 웃고 밝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원래 걸그룹이란 게 그만큼 고민과 스트레스도 많은 법이다.
그리고 걸그룹에서 리더가 받는 책임감과 압박은 다른 멤버들에 비해 몇 배나 더 큰 법이다.
이런 걸그룹의 스트레스 관리와 멘탈관리도 소속사에서 해야 할 일중에 하나다.
물론 이호성과 운영부장인 김보영도 이것을 알기에 평소에도 시간이날 때 다크벨벳 멤버들을 잘 다독여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대표인 내가 리더인 은지를 향해 격려해 주는 것이 가장 큰 부분일 것이다.
“아무래도 은지 네가 두려워하는 건 내일 신곡발표에서 반응이 좋지 않거나 실수를 할까봐 그러는 거구나. 하지만 조금 전에 열심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큰 실수는 나오지 않을 거 같고 가장 큰 걱정은 역시나 반응이 좋지 않을까봐 그러는 거 같네.”
“솔직히 그런 걱정이 더 많아요.”
은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한번 데뷔했다가 실패했다.
그것도 실력은 좋았지만 전 소속사가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서 실패한 것이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기껏 방송에 1~2번 나온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오히려 실력과 곡이 평범해도 노출도와 인지도가 큰 경우에 히트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은지를 향해 웃으며 대답했다.
“내가 다크벨벳을 신곡발표도 하기전에 예능프로에 먼저 출연시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물론 너희들이 예능프로에서 너무나도 잘해줘서 지금은 전국의 수많은 시청자들이 다크벨벳을 알고 있지. 이미 인지도 면에서는 중견아이돌 만큼의 인기를 쌓은 상태야.”
“그게 정말이에요?”
은지가 놀라고 있었다.
아직도 자신들은 새파란 신인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호성과 김보영이 평가한 바에 따르면 다크벨벳의 인지도와 관심도는 상당부분 올라간 상태다.
“그러니까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될 거야. 그리고 너희들 다크벨벳의 신곡발표와 활동은 단순히 내일 출연할 뮤직타운(Music Town)만으로 끝나는 건 아니야. 사실은 시작일 뿐이지. 이미 너희들의 실력은 충분히 입증된 상태이고 남은 것은 계속해서 방송에 노출을 시키며 시청자와 팬들에게 다가가는 것이야. 뭣보다 너희들이 소속된 KW-엔테이먼트는 그럴 만큼의 능력이 충분하거든.”
나의 대답을 듣자 은지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고 있었다. 조금 전 내 말은 다크벨벳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말로 고마워요, 대표님. 그런데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여기서 말해도 되요?”
“어떤건데?”
“사실 대표님, 아니 강민 오빠에게 뽀뽀를 받고 싶어요.”
“뽀뽀라니?”
좀 당황했다.
평소에는 얌전한 소녀인데 이렇게 대담한 발언을 할 줄이야.
“사실 강민 오빠를 처음봤을 때 너무 좋았어요. 아니 우리 다크벨벳 멤버들도 모두 오빠를 좋아해요. 하지만 오빠는 여기 KW-엔터테이먼트의 대표님이시고 우리는 팬들의 인기를 바탕으로 활동하는 걸그룹이니까 안좋은 스캔들이나 문제가 생기는 건 처음부터 막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구나.”
뭔가 짠하면서도 이해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볼 때에 다크벨벳 멤버들은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귀엽다.
내가 KW-엔터테이먼트의 대표가 아니라면 사귀어 볼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파생되는 결과가 안좋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조금 전 나한테 뽀뽀를 해달라는 말을 하는 건 더 위험하지.”
“당연하죠. 대신 여기에 대표님이 행운의 뽀뽀를 해주세요. 그러면 힘이 날 것도 같아요.”
은지가 수줍게 웃으며 자신의 이마를 가리켰다.
공개된 장소라면 당연히 안되지만 여기는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어쩔 수 없네. 대신 이번 한번만이야.”
“정말로 감사해요.”
은지가 활짝 웃었다.
이런 걸로 저 애가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이 정도 쯤이야 충분히 해줄 수 있지.
***
KAS-방송국 앞쪽에는 수많은 팬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특히 KAS-방송국의 간판 음악방송인 뮤직타운(Music Town)의 생방송이 열리는 날에는 엄청난 숫자의 아이돌 팬클럽이 모여든다.
또한 뮤직타운(Music Town)에는 독특한 시스템과 관례가 있다.
그것은 방송에 출연하는 아이돌 그룹과 뮤지션들이 팬들의 앞으로 직접 통과해서 방송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을 보통 <뮤직타운 출근길>이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다른 방송국의 음악프로인 경우에는 방송에 참가하는 아이돌과 스타들이 후문을 통해 몰래 들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뮤직타운은 팬서비스를 위해서 이런 방식을 취하였다. 그리고 요즘은 다른 방송국에서도 <뮤직타운 출근길>이라는 팬서비스 컨셉을 따라하는 경우도 많이생겼다.
“언니. 저기봐. 엄청난 숫자야.”
“사실은 나도 처음 한국에 어학연수 왔을 때에 저기 있는 팬들사이에 끼어서 EXA-그룹 오빠들 지나가는 걸 볼려고 몇 시간 기다린적도 있었는데.”
미나가 수줍게 웃었다.
보통 연예계 지망생들 중 상당수가 아이돌이나 연예인 팬으로 시작한다.
개중에 운 좋게 실력과 재능을 인정받은 경우에 자신들이 바라던 스타로 발돋움 하면서 또다시 수많은 팬들앞에 서는 것이다.
주차장에 BMW-대형밴을 세운 뒤에 다크벨벳이 내렸다.
“대표님. 정말로 고마워요. 오늘은 저 애들도 큰 힘이 날거에요.”
“아무리 다른 일로 바빠도 스타프로젝트 1호인 다크벨벳의 신곡발표와 데뷔일이니 제가 빠질 수는 없지요.”
운영부장인 김보영을 향해 대답했다.
나로서는 KW-엔터테이먼트의 업무외에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하지만 저 애들의 데뷔날이니 내가 빠질 수도 없었다. 그리고 신곡발표날에 대표인 내가 같이 동행해주면 그만큼 뽀대가 나는 것이다.
운집해있는 수많은 팬들의 앞으로 다가갔다.
중앙에 통로를 만들어 놓았고 방송국에서 나온 직원과 경비원들이 인원통제를 진행 중에 있었다.
“꺄아~ 방탄무사단 오빠들이다.”
“너무 멋져!”
“오빠 사랑해요.”
요즘 한류의 대표 그룹 중에 하나로 활동 중인 방탄무사단이 등장하자 곳곳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방탄무사단의 인기는 탑급에 속했고 해외에서의 활동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는 중이다.
한국에서 아이돌 팬클럽의 열기를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 될 줄은 몰랐다.
문화사업과 엔터테이먼트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방탄무사단이 받은 엄청난 환대와 열기 때문일까?
다크벨벳 멤버들의 표정이 긴장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지금 들어오는 건 다크벨벳 이잖아!”
“TBC-예능프로인 해피하우스의 간판스타 들이야.”
“이렇게 보이까 진짜로 귀엽고 예쁘다.”
“오늘이 다크벨벳의 신곡발표와 데뷔날이라고 하던데.”
모여있는 팬들이 수근거렸고 관심의 집중을 받았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다크벨벳의 플랭카드를든 팬들이 힘찬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예능프로에 얼굴을 알린 것만으로도 이 정도의 팬층이 형성된 것이다.
또한 다크벨벳의 멤버들 중에는 대만에서 온 트위와 일본에서온 미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의 예능프로들은 한류의 영향을 받아 외국에서도 실시간으로 소개될 정도다.
특히 다크벨벳이 출연한 TBC-방송국의 <해피하우스>는 해외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 때문에 모여든 팬클럽들 중에는 대만과 일본에서온 팬들도 꽤 있었다.
그들이 트위와 미나를 향해 응원을 보내었다.
“은지언니. 믿을 수 없어.”
“벌써 이렇게나 많은 팬들이 오다니?”
“이제야 너희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겠지? 오늘 <뮤직타운>에서의 신곡발표만 실수없이 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인지도를 올릴거야.”
매니저인 김보영이 멤버들을 격려했다.
“느낌이 좋은데요.”
“그렇습니다. 대표님.”
이호성이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운집한 팬들의 주변에는 연예부 기자들과 취재진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크벨벳이 팬클럽들의 환호를 받으며 지나가는 장면을 촬영했다.
이 정도면 반응은 좋은 편이다.
그리고 오늘 내가 다크벨벳과 함께 방송국에 온 이유는 또 있다.
저 애들의 인지도와 성공적인 데뷔를 위해서는 기자들을 상대로 적당한 Give & Take의 소스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
예상대로 연예부 기자들이 나와 이호성을 알아보았고 곧바로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일간스포츠의 박경범 기자입니다. 오늘 다크벨벳의 소속사 대표님이 직접 여기까지 오시다니. 이것도 상당히 큰 뉴스거리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크벨벳은 국내뿐 아니라 이후에는 해외활동도 계획에두고 본격적인 진행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데뷔곡인 빨간약(Red Pill)외에도 후속곡에 대해서도 빌보드차트의 히트곡 제조기인 번스타인에게 곡을 받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다크벨벳은 해외활동을 통해 미국등의 뛰어난 아티스트들과 합동공연과 프로젝트도 기획하고 있습니다. 우리 KW-엔터테이먼트의 다크벨벳에 더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모여든 연예부 기자들을 향해 적당한 수준으로 멘트를 하였다. 물론 그들이 원하는 뉴스거리도 함께 넣어서.
이 정도면 내일신문의 연예면에서는 다크벨벳에 대해 호의적인 기사들이 나갈것은 분명한 일이다.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마친 뒤에 방송국으로 향했다. 다크벨벳을 인도하며 나아가는 부대표인 이호성과 운영부장인 김보영의 발걸음이 가볍다. 그들도 이제는 성공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