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5인조 걸그룹 다크벨벳(Dark Velvet)
“여기 델리 햄버거 2개랑 콜라 2잔요.”
“예. 잠시만 기다리세요.”
손님에게 주문을 받은 은지가 바쁘게 움직였다. 롯데리아 햄버거 가게에서 일한지 벌써 3개월째.
처음에는 낯설고 적응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럭저럭 해내고 있었다.
다만 점심과 저녁때의 바쁜 시간에는 손이 열개라도 모자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하아....”
한차례 몰려든 손님과 주문을 마친 뒤에 은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한여름밤의 꿈. 또는 백일몽.
솔직히 그런 느낌이다.
1년 전 데뷔할 때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즐거웠다.
바쁜스케쥴에 힘들기도 했지만 그룹멤버들과 같이 울고웃으며 지냈던 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었다. 정확히는 데뷔때까지 일년 동안 합숙생활을 해왔으니 서로간의 우정은 더 두터웠던 것이다.
“동생들은 잘 지내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은지는 1년 전에 데뷔했던 걸그룹 다크벨벳(Dark Velvet)의 리더였다.
그나마 연습생에서 데뷔조차 못하고 끝나는 걸그룹 멤버들이 많은 것에 비해 자신들은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데뷔한 걸그룹의 생명은 데뷔초기 2~3개월안에 결판난다. 그 때에는 걸그룹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뭣보다 소속사의 역량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다크벨벳을 데뷔시킨 소속사는 규모도 작았고 걸그룹을 통해 단기간에 한탕 벌자는 생각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 때문에 제대로 된 지원도 없었고 수익도 그녀들에게 주지 않으면서 미루었다.
이쪽 업계에서는 실력도 없으면서 걸그룹 키워서 한탕 먹겠다는 소속사들이 수두룩했다. 그리고 다크벨벳처럼 그런 소속사를믿고 데뷔했던 걸그룹들의 운명은 하나 같이 비참했다.
애초부터 다크벨벳 멤버들이 일년간의 합숙생활을 할 때에도 소속사에서 제대로 지원된 것도 없었다.
결국 부푼꿈으로 데뷔했던 다크벨벳은 3개월만에 제대로 된 활약조차 못한 채 해체되었다.
그리고 다크벨벳의 소속사가 망하면서 그녀들은 완전히 공중분해된 상태다.
비록 소속사가 망해도 걸그룹으로 성과가 좋았던 경우라면 다른 중대형 소속사로 편입된 뒤에 새로운 도약을 노려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크벨벳에게는 그런 기회조차 없었다.
제대로 날지도 못한 채 해체된 걸그룹 멤버들에게 남겨진 상황은 비참했다.
그리고 이제는 각자의 삶을 위해 나아갈수밖에 없었다. 스타와 아이돌이 되겠다는 꿈을 접고.
그럼에도 리더인 은지는 아쉬움이 남았다.
멤버들의 실력은 뛰어났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준비하였다.
하지만 연예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실력외에 운도 중요했다.
흔히 연예계에서 성공할려면 운칠기삼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잠시 과거의 상념에 젖어있던 그 때.
스마트폰이 울린다.
확인해보니 그룹멤버중에 한 명인 예진이다. 자신이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것처럼 다른 멤버들도 저마다 알바를 하며 겨우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예진이니? 요즘 어떻게 지내?”
“그것보다 언니! 대박 굿뉴스야.”
“그게 무슨 뜻이야?”
“언니. 우리 다시 무대에서 노래부르며 활동할 수 있게 되었어.”
“정말이야? 하지만 어떻게?”
“그게말이야. 우리에게 새로운 소속사가 나타났어. 언니 이호성씨 알지? 그분이 내가 일하는 곳에 찾아왔어. 그리고 엄청 잘생긴 오빠도 왔는데. 그분이 소속사 대표래. 진짜로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믿겨지지 않아.”
나중에는 예전이가 전화기 반대편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 그동안 받았던 설움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그룹에서 막내였기에 더 그랬다.
이제 은지도 이게 더 이상 꿈이 아니란 사실을 확신했다.
다시 활동할 수 있다니?
팀이 해체된 뒤에 그녀도 며칠동안 이불속에서 울었다. 그 뒤에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믿기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정말로 잘 되었구나.”
은지의 눈에 이슬이 맺혔다.
***
“여기가 지금부터 너희들이 지내게 될 소속사야.”
“진짜예요?”
“언니. 연예계 3대 기획사들보다 더 엄청날 수준이야.”
김보영의 설명에 멤버들이 놀라고 있었다.
새로운 소속사가 생겼다는 말에 그녀들은 기뻤다.
한편으로 불안감도 생겼다.
이번에도 데뷔때처럼 이상한 소속사에 걸리면 절망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은지는 나름대로 고민이 많았다.
흩어졌던 멤버들을 다시 모으는 건 리더인 은지가 담당했다.
다크벨벳은 5인조 걸그룹이다.
그중에 3명은 한국인이고 나머지 2명은 외국인이다.
대만에서온 트위와 일본에서온 미나까지 포함된 다국적 걸그룹의 컨셉이다. 트위와 미나는 한국에 어학연수로 와서 생활하다가 캐스팅된 경우다.
때문에 한국어도 잘했고 1년 동안 합숙생활을 하는중에도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쌓았다.
데뷔후 활동이 부진해서 해체가 되었지만 트위와 미나는 일본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둘 다 한국을 좋아해서 왔고 한국에서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던 것이다.
운영부장겸 매니저인 김보영과 함께 그녀들은 KW-엔터테이먼트에 도착했다.
서울강남에 자리잡은 KW-엔터테이먼트 빌딩은 최신식이었고 그것을 본순간 멤버들은 놀랐다.
이전에 그들이 지냈던 소속사는 정말로 볼품없었다.
소속사도 허름한 빌딩에 사무실을 한두 개 임대한 수준에 불과했고 합숙훈련을 위해 준비해준 숙소는 최악이었다.
냉난방도 안되는 다세대 주택의 좁은 집에서 5명이 함께지내는 생활을 해야 했다.
그 외에 식비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스타의 꿈과 방송데뷔라는 희망을 갖고 버텼던 것이다.
이런 그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소속사였던 <한동 프로덕션>은 다크벨벳의 활동이 부진하자 그녀들을 내버린 것이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열심히 활동하는 것만 생각해. 나머지는 우리 쪽에서 지원하고 준비해줄 테니까.”
“매니저 언니. 정말로 고마워요.”
은지가 김보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얼마 후 그녀들은 김보영과 함께 KW-엔터테이먼트의 내부로 들어갔다. 빌딩내부의 모습은 더 화려했다.
은지는 과거에 업계 Top-3에 들어가는 CMC-엔터테이먼트를 가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의 소속사는 그것보다 더 큰 규모와 시설이었다.
“언니. 여기 대표님이 엄청난 분이래.”
“정말로 그런 거 같네.”
동생들에 비해 은지는 연예계 짬밥이 좀 있었다. KW-엔터테이먼트는 들어본 적 없는 신생 기획사이다. 그런데 신생의 연예기획사가 이 정도 규모를 갖고 있다면 엄청난 자본과 배경이 튼튼하다는 뜻이다.
“일단 여기에 왔으니 먼저 대표님과 부대표님부터 만나서 인사를 드려야겠지? 여기 예진이는 전에 두분을 본 적이 있지만 나머지는 오늘이 처음이니까.”
“대체 어떤 분일까 기대가되요.”
트위와 미나의 양볼이 수줍게 달아올랐다.
***
“와아~ 연예인이다.”
“진짜로 비주얼 대박!”
“저렇게 잘생긴 오빠는 처음이야.”
다크벨벳 멤버들의 입에서 탄성이 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저런 반응이라니 왠지 머쓱하네.
하지만 요즘 소녀들은 감정을 있는그대로 표현하는 솔직함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KW-엔터테이먼트의 스타 프로젝트 1호는 다크벨벳으로 선택되었다.
부대표인 이호성이 다크벨벳의 스타성과 재능이 뛰어나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알 거 같았다.
비록 데뷔하고 3개월도 못되어 활동부진과 소속사의 폭망으로 해체된 상태였지만 다크벨벳의 뮤직비디오와 여러 가지 자료들을 볼 수 있었다.
‘제가 다크벨벳을 주목한 것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뭣보다 멤버들의 개성이 저마다 독특하다는 것입니다. 비주얼 적으로도 이미 상급에 속하는 건 물론이고 다양한 컨셉을 잡을 수 있다는 부분이 큰 장점입니다.’
이호성의 말대로였다.
실제로 만나본 다크벨벳 멤버들은 저마다 개성이 넘쳤다.
리더인 은지는 청순하면서 성숙한 이미지가 있었다.
둘째이자 서브리더인 채영은 도도하면서 고집이 센듯한 이미지.
대만과 일본에서온 트위와 미나도 저마다 독특한 개성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막내인 예진이는 귀여움과 함께 발랄함이 느껴졌다. 이런 다양한 이미지를 지닌 여성 멤버들을 한곳에 모으는 건 운이 좋아야했다.
다크벨벳의 전 소속사였던 <한동 프로덕션>의 실력은 허접했지만 그룹멤버의 구성은 어쩌다 운 좋게 최상으로 해놓은 것이다.
***
“여기는 녹음실이야. 여기계신 대표님의 요청으로 유럽에서 최신식의 장비를 도입한 상태고 앞으로 너희들도 여기를 많이 이용하게 될 거야.”
“정말로 근사해요.”
김보영의 말에 은지가 감탄했다.
멤버들은 녹음실 내부로 들어가서 다양한 장비들을 확인하며 좋아했다.
하긴 저 애들의 경우, 전에 있던 소속사에서는 제대로 된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불러본 적도 거의 없을 것이다.
기껏해야 한두 차례 다른회사의 녹음실을 빌려서 시간에 쫓기듯 사용했을 테니까 말이다.
이처럼 전용 스튜디오를 갖고 있는 기획사와 그렇지못한 소속사와의 차이는 상당할 정도다.
또한 스타 유망주들의 재능을 키우고 발전시키는 데에도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기획한 KW-엔터테이먼트는 초반부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는 전략이다.
원래 연예기획사쪽과 이쪽 업계에서는 후발주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기선제압을 할 필요가 있었다.
그것을 위해 나는 JSE-(K)에서 KW-엔터테이먼트의 지원과 투자를 위한 자금으로 2000억까지 배정해놓은 상태다.
단기간에 국내 연예계와 엔터테이먼트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Top-3에 들어가는 연예기획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투자금은 필요한 것이다.
또한 처음부터 소규모 자본을 투입해봐야 특별히 큰 이슈도 만들지 못하고 나중에는 그냥 묻힐 뿐이다.
간단한 인사가 끝난 뒤에 김보영이 KW-엔터테이먼트의 건물내부를 멤버들에게 안내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로서도 KW-엔터테이먼트의 대표라는 신분이었고 다크벨벳이 스타 프로젝트 1호라는 상징성도 있기에 같이 참가했다.
이후에 KW-엔터테이먼트의 경영과 여러 가지 업무에 대해서는 부대표인 이호성과 운영부장인 김보영이 담당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KW-엔터테이먼트의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이따금씩 참가할 뿐이고, 그것이 나의 원칙이다.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하는 건 원칙에 맞지도 않고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다.
뭣보다 연예기획사의 업무에는 부대표인 이호성이 탁월한 실력을 갖고 있다.
녹음실을 둘러본뒤에는 식당과 카페테리아, 그리고 안무실도 견학을 하였다.
현재 KW-엔터테이먼트 빌딩은 올인원(All in One)방식으로 건물내부에 필요한 시설들을 대부분 갖추어놓은 것이다.
그리고 소속 연예인들이 지내게 될 숙소는 KW-엔터테이먼트 빌딩에서 좀 떨어진 오피스텔 빌딩을 통째로 임대해서 그곳에 숙소를 마련했다.
주상복합형의 오피스텔 빌딩이고 내부에는 주거생활에 필요한 편의시설들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다.
또한 숙소크기도 30~40평대로 넉넉한 규모이기에 다크벨벳 이후에 다른 스타 지망생들을 키우고 준비시키는 데는 충분했다.
숙소까지 둘러본뒤에 다크벨벳의 멤버들이 감격한 모습이었다.
“KW-엔터테이먼트가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서 좀 불편한 것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여기 부대표인 이호성씨와 운영부장겸 매니저인 김보영씨에게 요청하면 충분히 해결될 겁니다. 그리고 나로서는 여러분들이 우리 KW-엔터테이먼트를 빛내줄 세계적인 아이돌그룹이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정말로 감사해요. 대표님. 열심히 할게요.”
리더인 은지가 대답하며 수줍게 웃었다.
애들이 순수하고 귀엽다.
그리고 열정도 느껴지고.
뭣보다 한번 실패해서 좌절했기에 각오가 남다른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