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다음번 투자대상은...?
좋은 느낌이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햇살.
여의도에 자리잡은 럭셔리급 힐튼호텔의 시설은 만족할만한 수준이었다.
여기를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가 수영장인데.
서울에 있는 힐튼호텔의 수영장은 규모나 시설에서 상위권이다.
한국은 한여름의 혹서기라고 난리다.
푹푹 찌는 더위에 한낮의 기온도 꽤 높게 올라가지만 수영장이 있는 이곳은 오히려 시원하다.
그리고 한강변에서 불어오는 강바람 때문에 상쾌한 기분이다. 1000만 인구가 모여살고 수많은 차량들과 건물이 밀집된 서울에 이런 쾌적한 공간이 있다는 게 딴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힐튼호텔을 벗어나 대로변만 나가도 서울의 교통지옥과 한여름의 더위를 제대로 맛보게 될테지만 말이다.
“오빠. 이 주스 정말로 맛있어.”
“그렇다면 한잔 더 시켜.”
“하지만 조금있다가 저녁을 먹을 거라서 안돼. 그리고 다이어트도 해야되는데.”
달달한 망고주스를 마시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며 지애가 아쉬움을 표시했다.
그런데 다이어트?
딱 봐도 체중이 50kg도 안될 거 같은데 다이어트 할 데가 어디에 있다고.
하지만 요즘 여고생들은 저 나이 때부터 몸매관리와 미용에도 신경 쓴다.
지애의 경우에는 학교성적이 전교 10등안에는 가볍게 들어갈 수준의 상위권이고 우등생에 속했다. 그렇다고 공부만파고 다른 것에 관심조차 없는 건 아니다.
힐튼호텔에서 프리미엄 스위트룸을 잡고 지낸지 4일째다.
첫날에는 어머니와 지애도 호텔생활이 처음이라 낯설고 머쓱했지만 이제는 나름 익숙해진 모습이다.
그리고 일반 스탠다드룸이나 디럭스룸에 투숙한 손님들하고 우리처럼 하룻밤 숙박비만 120만 원이 넘어가는 프리미엄 스위트룸에 지내는 투숙객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대우가 달랐다.
뭣보다 프리미엄 스위트룸에는 담당직원이 배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 담당직원을 통해 여러 가지 도움을 즉각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수영복이 잘 어울리네.”
“정말로? 왠지 촌스럽게 보여서 이상한데.”
지애가 수줍게 대답했다.
얌전한 성격에 여고생이다보니 대담하게 비키니를 입거나 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하늘색 원피스 수영복인데 지애의 모습과 잘 어울린다.
그러고 보니 저 애도 어느새 여고생이 되어버렸다.
앞으로 몇 년 후에는 대학생이 되겠지?
과거에는 오빠인 나로서도 여동생인 지애의 미래를 위해 해줄 것이 없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저 애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해줄 수 있다.
현재 지애의 성적은 한국의 명문대인 SKY들 중에 하나는 충분히 들어갈 수준이다.
지애도 지금은 이들 대학 중에 하나를 목표로 공부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후에 미국이나 다른 국가에 유학가기를 원한다면 그 부분도 지원해줄 생각이다.
지애에게 들은 바로는 외국의 명문대학에서 유학하고 박사과정까지 마친 뒤에 대학교의 강단에 서고 싶다는 게 꿈이다.
“그런데 오빠는 마시고 싶은 거 없어?”
“조금 전에 네가 망고주스를 이야기 하니까, 그걸 먹고 싶네.”
“못됐어 정말. 불쌍한 여동생이 다이어트 때문에 못먹으니까 똑같은 걸 시켜서 약 올리고 말이야.”
“너도 다이어트 같은 거 신경 쓰지말고 마음껏 먹어. 실컷 먹고 저기 수영장에서 몇 바퀴 돌면 금방 원상태로 회복돼.”
“진짜로?”
“당연하지. 칼로리 소비에는 수영만큼 더 좋은게 없으니까.”
나의 말에 지애도 조금 안심하는 눈치다.
내 말은 결코 거짓이 아니다.
같은 시간을 운동하는 것에서 수영이 시간당 칼로리 소비가 가장 많은 편이다.
그런데 수영하는 데도 배나온 사람은?
그거야 제대로 안한 거고.
얼마 후 지애가 내 것까지 포함해 망고주스를 주문하러 쪼르르 달려갔다.
느긋하게 선배드에 누워서 창공을 올려다 보았다. 강렬한 태양빛이 양볼을 간지럽히는 느낌이지만 상쾌하다.
그리고 오랜만의 휴식이다.
하지만 나 같은 비지니스맨에게 있어 휴식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한 충전이다. 그리고 휴식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놔버릴 수는 없었다.
띠리링-
스마트폰의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실장님. 잘 지내고 계십니까?”
수화기 반대편의 음성은 박광석이다.
박광석은 팀원들을 이끌고 일본으로 간 상태다. 일본의 증권시장을 목표로 진행할 작전. 그것을 위해 선발대로 간 것이다.
“TV를 통해 실장님이 워렌버핏과 함께 한국으로 복귀하신걸 봤습니다. 이걸로 KR-전지에 대해 부정적인 헛소문을 내면서 주가를 폭락시키려고 했던 놈들의 수작도 완전히 실패했군요.”
“지금 KR-전지의 위치는 과거와는 완전히 틀려졌으니 말이지요. 이전에는 기껏해야 한국에서도 알려지지 않은 중견기업의 수준이지만, 지금은 코스닥내의 핵심 기업 중에 하나로 떠올랐고 세계적인 집중을 받는 상태니 말이지요.”
“앞으로 적이 많아질 거란 뜻이군요.”
“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요.”
박광석을 향해 대답했다.
기업이란 존재감이 없을 때에는 적이 별로 안생긴다. 하지만 유명해지고 덩치가 커지고 발전할 수록 주위에는 적들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KR-전지에서 슈퍼배터리를 오프닝 하면서 손해를본 기업들의 숫자도 꽤 되는 편이다.
하지만 기업들간의 세계는 적자생존이다.
물론 100% 적자생존의 법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자신이 이득을 챙기면 동종업계의 다른 기업은 손해가 생기는 건 필연적이다. 그것을 두려워 한다면 애초부터 기업을 세우고 경영하면 안되는 것이다.
이번에 KR-전지의 주가가 슈퍼배터리의 출시이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다가 한동안 주츰하면서 하락한 것에는 이런 내막이 있었다.
처음에는 KR-전지가 개발해낸 슈퍼배터리의 오프닝과 출시에 당황해서 정신이 없다가 이제는 전열을 가다듬고 본격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중에 첫 번째는 증권가에 여론조작을 일으켜서 KR-전지의 주가를 떨어뜨린 것이다.
이것은 잠깐 동안만 통했던 것이고 내가 워렌버핏이라는 엄청난 거물을 한국으로 데려오면서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실장님. 제가보기에 한국의 증권가에서 여론조작으로 KR-전지의 주가를 하강시킨 녀석들은 단순히 국내세력만은 아닐 거 같습니다.”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는데 박광석씨의 분석이 맞군요.”
박광석의 실력은 탁월했다.
일본에서 팀을 꾸리면서도 한국 내 증권가의 상황과 흐름을 제대로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일본내의 상황과 준비는 어떻습니까?”
“일단 도쿄와 하코네에 거점을 마련해놓은 상태입니다.”
“도쿄는 이해를 하겠는데 하코네는 무슨 뜻입니까?”
박광석을 향해 질문하였다.
도쿄에 작전을 위한 거점을 마련하는 건 충분히 이해되었다.
그러나 하코네는 처음듣는 지명이다.
내가 일본통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본내의 웬만한 대도시쯤은 대충 알고 있었다.
얼마 후 박광석이 머뭇하더니 대답했다.
“실장님. 하코네는 도쿄에서 외곽으로 좀 떨어진 온천마을 입니다.”
“특이하군요.”
“원래 이건 저의 생각은 아닌데, 두녀석들이 하는말이 기왕 일본에 왔으니 온천마을과 일본의 전통숙소인 료칸도 좀 즐기자고 해서 말이죠. 하하!”
박광석이 저렇게 대답하고 있지만 그도 후배들처럼 원하고 있었던 거 같았다.
여기에 대해 특별히 뭐라할 생각은 없다.
내가 팀원들에게 원하는 건 한 가지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휴양을 마음껏 즐겨도 좋다는 것.
대신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가서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기왕 일본에 간김에 일본의 온천문화를 체험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일본의 온천문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니까 말이다.
그것을 통해 일본이 벌어들이는 돈만도 상당할 수준이다. 한국에서도 때마다 일본으로 온천여행을 가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을 정도다.
“박광석씨와 팀원들이 온천마을인 하코네에 가셨으니 이후에 그곳에서도 투자대상이 될만한 부분이 있는지 사전탐색을 해주셨으면 좋겠군요.”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온천마을의 내부를 느긋하게 탐방하면서 나중에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박광석이 호쾌하게 웃었다.
얼마 후 박광석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과정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이번 작전에는 50억 달러.
한화로 5조라는 자금을 일본의 금융시장에 투입한다. 물론 이만큼의 거금이 한꺼번에, 그리고 한곳의 통로로 들어가면 당연히 일본내에서도 긴장하게 마련이다.
때문에 선발대로간 박광석팀은 일본내에 다양한 루트를 통해 직간접적인 투자처를 만들고 있었다.
50억 달러의 자금들 중에 40% 정도는 일본내에 있는 대형 투자은행들에 분산시키며 유입할 작정이다.
그리고 나머지 60%는 중소형 금융기관을 이용하거나 간접투자의 방식으로 들어간다. 이것을 위한 작업에 최소 1~2달 정도가 걸리는 셈이다.
어차피 본격적인 작전은 LA와 네바다 사막의 아론빌에서 준비 중인 면진설계의 테스트와 연계되어 진행될 것이다.
그것을 위해 일본에서도 사전에 밑밥을 깔아둬야할 필요는 있었다.
***
“기왕 한국에 왔으니 그리고 JSE-(K)투자의 자금중에 일부를 활용할 기회를 만드는 것도 좋을 거 같은데.”
미국의 MCU-펀드에서 한국에 있는 나의 JSE-(K)로 보낸 자금만 해도 25억 달러다.
한화로 2조 5천억의 수준이었고 그중에 일부는 KR-전지의 지분을 더 확보하는 것과 이전에 내가 대박으로 키워낸 유비콘(Ubicon)의 투자금으로 사용했다.
그럼에도 JSE-(K)가 보유하고 있는 자금은 막대한 편이다. 아직도 2조 이상의 보유자금이 있었고 이것을 한국에서 활용할 필요도 있었다.
그리고 사업의 다각화를 위해 또한 현재 LA에서 진행 중인 K-타운 건설과 K-프로젝트와의 연관성과 시너지효과도 염두에둘 필요가 있었다.
그것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에 지애가 내 앞으로 얼굴을 쑥 내민다.
뭐야? 깜짝 놀라게 말이야.
“오빠. 뭘 그렇게 골똘히 생각해? 여동생이 왔는데 알아채지도 못하고.”
“그냥 회사일을 좀 정리한다고 말이야.”
“역시 오빠는 어쩔 수 없네. 여기에 호텔휴양을 와서도 반쪽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그래도 난 오빠의 그런 모습이 정말로 보기 좋아. 뭐랄까, 멋지잖아.”
지애가 방긋 미소를 지으며 망고주스를 내밀었다. 망고주스의 달달한 맛이 혀끝을 감싸면서 기분이 상쾌해진다.
그 때 지애가 뭔가를 발견한 듯 내팔을 잡아 당겼다.
“오빠. 저기봐. AOR이야.”
“AOR이라고? 그게 누군데?”
“요즘 한창 뜨고 있는 걸그룹이야. 뮤직차트에서도 연속해서 상위권으로 히트치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인기많은 한류스타야.”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지?”
“화보나 뮤직비디오 촬영인가봐.”
지애가 말했고 시선을 향했다.
매니저 및 경호원들과 함께 힐튼호텔로 들어오는 여성그룹이 보였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TV에서 우연히 몇 번 정도 본 것도 같았다. 걸그룹답게 출중한 미모를 자랑했고 주위로 수많은 구경꾼들이 몰려다녔다.
요즘 인기아이돌은 움직이는 중소기업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만큼 한국의 연예 및 엔터테이먼트 산업의 규모가 커졌고 이들은 한국에서 인기를 얻은 뒤에 한류스타라는 이름으로 외국에도 진출한다.
지애의 말대로 인기 걸그룹인 AOR은 촬영을 위해 힐튼호텔로 온 것이다.
힐튼호텔에는 럭셔리 수영장이 유명했고 내부에는 잘 가꾸어진 정원을 포함해 카메라에 담을만한 장소들이 많았다.
지애는 자신이 좋아하는 인기 걸그룹인 AOR을 가까이서 본다는 것에 너무나 좋아하고 있었다. 다만 나로서는 이전 LA에서 헐리우드의 탑스타들도 만났기에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데 저기 있는 사람은 매니저 같고. 한참 뒤쪽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대충 보니 카메라 스텝도 아니고 촬영감독도 아닌 거 같고.”
“오빠. 저 사람 몰라? 그 유명한 최군이잖아.”
“최군?”
“응. CMC 엔터테이먼트 대표. 과거에 한국 1세대 아이돌 그룹의 맴버로 인기많았고, 그 후에는 CMC 엔터테이먼트를 세운 뒤에 연예기획사 대표로 활동 중이야. 우리또래의 애들한테는 최군이라고 알려져 있어. 다만 지금은 나이가 좀 있으니 최군대표님이랄까.”
지애가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평소에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이런쪽도 제법 잘 알고 있네.
하긴 지애또래의 여고생들은 한국의 연예계에 대해 성인들보다 더 잘알고 있는 거 같았다.
AOR이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이 나의관심은 다른 쪽으로 향했다.
현재 미국의 LA에서 진행 중인 K-타운 건설과 프로젝트. 그리고 한국에 있는 JSE-(K)의 자금을 활용해서 사업 다각화와 새로운 비지니스를 위해 투자할 부분이 결정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