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조 재벌-69화 (69/300)

# 69

바이칼의 과학자들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이면서 유럽최대의 도시중에 하나다.

이곳에는 성바실리 성당을 포함해서 붉은광장 그리고 크레믈린 궁전까지 다양한 명소들이 있었다.

다만 우리들이 모스크바에 온 것은 단순한 관광목적은 아니다. 그럼에도 모스크바 밤거리의 풍경은 꽤나 인상적이다.

“과거 냉전시대의 모스크바에 비해 많은 것이 변했군요.”

“그렇습니다. 고르바쵸프의 개혁정책 이후에 러시아는 수많은 사건들을 겪어왔으니 말이지요.”

김태천이 대답했다.

한때 러시아, 과거에는 구소련이라고 불렸던 러시아는 미국의 라이벌이었다.

냉전시대의 한축을 형성하며 미국과 패권경쟁을 벌였지만 경제상황의 악화 그리고 정치적인 혼란을 겪으면서 더 이상 과거의 위치가 아니었다.

러시아의 세력이 약화된 이후에 지금은 중국이 미국의 라이벌로 떠오르는 중이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갖고 있는 국제무대에서의 위치, 국력은 아직도 막강한 수준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러시아는 많은 것이 바뀌었다.

지금 우리들이 걷고 있는 아바트 거리만 해도 냉전시대에는 한산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많은 행인들이 지나가고 곳곳에 클럽과 유흥업소들이 있었다.

러시아가 자본주의를 도입했지만 그만큼 여러 가지 문제들도 많았다.

현재 러시아의 정치는 푸틴이라는 강력한 권력자를 바탕으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가 국내에 있는 자원들을 개발하고 수출하면서 그것으로 벌어들이는 이득도 막대했다.

하지만 자원수출로 얻는 혜택이 국민 모두에게 다양하게 돌아가는 건 아니었다.

지금도 러시아의 경제성장률은 정체되기 시작했고 여러 곳에서 폐단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러시아의 과학자들도 생존을 위해 독특한 사업방식을 개발해 냈군요.”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과거에 구소련 시절 때는 정부에서 지원금도 나오고 생활에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소련이 해체되고 혼란기를 겪으면서 수많은 소련과학자들이 궁지에 몰렸으니 말이지요. 그들로서도 이대로 있으면 모두 전멸한다고 생각했으니 나름대로 살려고 발버둥친 것이 지금 같은 사업방식입니다.”

프리먼의 설명을 들으며 이해가 되었다.

내가 두 명과 함께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에 온 것은 한 가지 이유다.

지금 진행 중인 글로벌 스캐닝(Global Scanning)이란 엄청난 프로젝트.

그것을 실행시키기 위해서는 러시아 과학자들과의 협력이 무엇보다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스캐닝은 AI인 하시가 고안하고 설계한 인공위성을 통해 지구를 대상으로 광대한 자원탐사를 하는 것이다.

지구 대기권에서 글로벌 스캐닝을 실시할 인공위성체를 제작하는 건 특별히 큰 문제가 아니었다. 이것은 미국에서도 제작이 가능했고 그것을 위해 몇 개의 팀들이 위성체 조립을 진행 중에 있었다.

위성체중에서 핵심이 되는 건 하시가 고안해낸 오메가파(Omega Wave) 발생기이다.

이것은 통상적인 자원탐사 위성에서 사용되는 스펙트럼 분광기와 같은 탐색장비와 유사하다. 다만 내부에 들어가는 프로그램과 분광장치만이 조금 다를뿐이다.

또한 오메가파 발생기의 부품들은 몇 개의 회사를 통해 따로 제작했기에 겉으로 보기에도 특별히 다른 부분은 없었다.

즉 위성체에 들어가는 부품제작과 조립을 각각 다른 회사에 맡기는 시스템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글로벌 스캐닝을 하게 될 위성체의 조립과 제작은 순조롭게 되는 중인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그럴 것이 인공위성이란 건 로켓에 탑재한 뒤에 대기권으로 쏘아올려야 제대로 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미국에는 로켓을 발사하는 NASA(미항공 우주국)이 있지만 NASA에서 발사하는 로켓이나 프로그램은 대부분이 미국정부로부터 지정된 사업을 하는 것이다.

개인이나 사기업이 따로 인공위성을 발사하거나 이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자본주의 국가이고 돈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이것은 쉽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의 항공우주기술은 아직도 많이 부족해서 자체적으로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수준은 못된다. 물론 한국정부의 관계자와 협의를 하는 과정도 쉬운 게 아니다.

그러던중 한 가지 방법이 나왔다.

그것은 냉전시대에 미국과 대등한 우주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비밀보장과 편법이 가능한 러시아였다. 그중에서도 바이칼이라 불리는 조직은 상당한 극비에 속한다.

***

“저곳이 접선장소인 탐보프입니다.”

프리먼이 정면에 있는 장소를 가리켰다. 우리들의 앞으로 제법 큰 규모의 클럽이 보인다. 네온사인이 광채를 내었고 내부에서는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자본주의 물결이 들어오면서 서구식으로 변해버린 모스크바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일단은 상황이 순조롭게 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합니다. 뭣보다 바이칼 조직은 외부에 드러나지 않은채 활동하는 세력이니까 말이지요.”

“하지만 듣기로 바이칼 조직의 핵심들은 대부분 구소련의 우주관련 과학자들인데 그런 식의 운영을 한다는 것이 놀랍군요.”

“그들도 자신들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지금은 러시아내의 마피아 조직들 중 하나인 카잔과 연계해서 활동 중에 있습니다. 즉 바이칼과 협력하는 카잔이 바이칼의 과학자들을 보호하고 거래자들을 알선해주는 역할. 그 대가로 카잔은 바이칼의 비밀 우주사업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나눠먹는 것이지요.”

김태천의 설명을 통해 과학자들로 구성된 바이칼과 러시아 마피아 조직인 카잔과의 공생관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러시아 마피아의 경우에는 비밀우주 사업의 의뢰자를 알선해 주는 것이 핵심적인 역할이다. 그 외에 나머지 부분은 전적으로 바이칼에서 담당하는 것이다.

얼마 후 일행들과 함께 내부로 들어갔다.

화려한 조명이 내부에서 반짝거렸고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클럽 탐보프는 바이칼과 연결된 마피아 조직이 갖고 있는 가게였다.

***

“손님. 여기는 출입금지 구역입니다.”

떡대좋은 사내가 우리를 막아섰다.

좋은 말로 할 때 꺼지라는 듯 양손을 깍지끼며 뚜둑-하는 뼛소리까지 내었다.

대부분의 경우 이 정도로 위세를 부리면 기가 죽어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

클럽 탐보프가 카잔조직의 소유이고 접선장소로 선택된 곳이지만 내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손님들이다. 따라서 먼저 해야 할 것은 카잔 조직원들을 찾는 일이다.

그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런 클럽이나 술집에는 항상 일반인들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구역이 있었다.

그 구역들에는 보통 2-3명의 경비원들이 배치된 상태다.

그들이 하는 역할은 길을 잘못 들어서 온 일반 손님들을 내쫓는 역할.

험악한 이상과 덩치 그리고 어깨로 위협해서 보내는 것이다. 입구에 버티고선 2명은 우리를 그런 상대쯤으로 생각하며 반응한 것이다.

“여기가 카잔조직의 상급간부 중에 한 명인 이바노프와 만날 수 있는 장소라고 하던데.”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돌아가는 게 좋을 거요.”

두 명의 애써 표정을 유지하며 대답했다.

하지만 좀 전에 당황한 것을 보며 제대로 찾아왔음을 확신했다.

“당신들과 실랑이하며 시간을 보낼 여유는 없는데. 우리들이 원하는 건 이바노프라서 말이지.”

“이 자식이! 말귀를 못 알아 듣는 건가?”

두 명이 발끈하더니 달려든다.

내 쪽으로 주먹이 날아왔고 가볍게 상체를 젖히면서 피했다. 그리고 좌우에 있던 김태천과 프리먼이 비호처럼 돌진한다.

이런 일에는 두 명의 솜씨가 뛰어난 편이니까.

“말단이라서 그런지 상대가 누구인지 파악을 못하네.”

“일단은 기선제압이 첫 번째지!”

김태천과 프리먼의 호흡이 척척 맞으며 두 명의 떡대들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퍽! 퍼퍽! 둔탁한 굉음이 몇 차례 터진다.

기세좋던 두 명은 바닥에 쓰러졌고 완전히 기절해버린 상태다.

예상대로 내부에서 반응이 나타났다.

덜컹! 비밀문이 열리면서 안쪽에서 5-6명이 뛰쳐나왔고 김태천과 프리먼이 신속하게 권총을 뽑으면서 대응했다.

“겨우 이 정도의 일 때문에 서로 간에 피를 흘리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

뛰쳐나왔던 인원들도 섣불리 행동하지 못했다. 문앞을 지키던 말단에 비해 경험이 좀 있었던 것이다. 뭣보다 김태천과 프리먼의 기세는 상대를 압도할 수준이니까 말이다.

“당신말대로 이런 일에 큰 소동을 부릴 필요는 없겠지요. 그리고 실력이 뛰어난 수행원들을 데리고 있군요.”

“......”

안쪽에서 들려온 음성.

그것을 들으며 우리들은 좀 놀랐다.

그럴 것이 이번에 접선하려는 카잔의 상급간부인 이바노프가 험악한 인상의 마피아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나타난 건 잘빠진 몸매의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잔의 상급간부답게 다가오는 동작은 민첩했고 빈틈도 없었다. 김태천과 프리먼이 신속하게 그녀를 파악하며 말했다.

“전직 KGB, 또는 FSB에서 활동했던 여자 같군요.”

“러시아는 재밌는 곳이군요.”

이바노프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

유리 이바노프-

전직 KGB 출신으로 첩보전에서 잔뼈가 굵은 여자다.

현재 나이는 30대 중반쯤.

그러나 20대 후반으로 생각될 만큼 젊었고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이런 것에 속으면 완전히 당한다.

그럴 것이 그녀는 러시아 특수부대인 스페츠나츠에서 각종 암살훈련과 폭파공작 등의 훈련을 받은 정예였기 때문이다.

탄탄한 몸매와 빈틈없는 자세는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사내들 4~5명은 단번에 죽일 만큼의 살인병기라는 걸 증명하고 있었다.

김태천과 프리먼도 이바노프를 만난 뒤에 만만치 않은 상대란 걸 짐작한 듯 보였다.

“여기까지 찾아온걸보니 당신들도 보통은 아닌 거 같군요. 먼저 우리가 러시아 마피아라는 사실은 알고 있나요?”

“물론입니다. 여기로 오기전에 카잔조직에 대해 조사를 좀 해봤지요. 하지만 당신들은 보통의 러시아 마피아들과는 틀리더군요. 일단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바노프를 향해 대답했다.

카잔조직이 러시아 마피아에 속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러시아 마피아 조직들 중에 상당수가 시민들을 상대로 마약밀매와 매춘등의 지저분한 범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잔조직은 좀 달랐다.

자신들이 갖고 있는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마피아 조직들이 할 수 없는 독특한 분야를 개척한 것이다.

“나로서는 카잔에서도 실력자로 꼽히는 유리 이바노프가 여성이라는 사실에 좀 놀랍기는 하지만 당신을 보니 이유를 충분히 알 거 같군요.”

“일부러 밝힐 필요는 없는 것이니까요.”

이바노프의 말에 충분히 동의했다.

자신을 최대한 감추면서 상대를 파악하는 것.

그것이 첩보전의 기본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마피아인 카잔조직에서도 자신이 경험하고 배운 부분을 써먹고 있었다.

이바노프가 내 쪽으로 바라보았다.

눈빛이 예리하게 변한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또한 그녀의 능력은 출중했다. 원래 카잔조직에는 보스인 빅토르 비소츠키가 있지만 조직의 일은 대부분 그녀가 도맡아서 하는 중이다. 즉 카잔조직의 실질적인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들이 여기에 온 목적은 당신과 카잔조직을 통해 바이칼의 과학자들과 만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역시 비밀 우주사업에 대한 것이군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지만.”

“듣기로 바이칼의 과학자들은 외부로 신분이 드러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도 하더군요. 오로지 당신들 카잔조직과 연결되어 있을 뿐이고 말이지요.”

“그것은 사실입니다.”

이바노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쪽에서 이 정도까지 파악하고 온 것이니 여기서 숨겨봐야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대신 그녀는 다른 질문을 하였다.

“그렇다면 바이칼을 통해 당신이 하려는 일에 대해 어느 정도의 규모와 비용을 생각하고 계신가요?”

“첫 번째로 우리 쪽에서 제작한 인공위성을 비밀리에 쏘아 올리는 것.”

“글세요. 위성발사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 부분은 충분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통상적인 위성발사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2배를 지불할 계획이니까 말이지요.”

“......”

나의 대답을 듣자 이바노프의 눈빛이 흔들렸다.

소형의 인공위성이라도 그것을 발사하는 데는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상업용 소형이라도 최소 500억 이상이고 인공위성의 크기와 발사하는 로켓의 종류에 따라 1000억도 가볍게 넘어간다.

그러나 나의 제안은 시작일 뿐이다.

“만약에 당신과 카잔조직이 우리를 도와서 바이칼에서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것이 순조롭게 된다면, 이후에도 계속해서 인공위성을 발사할 예정입니다. 지금 설정된 프로젝트의 계획으로는 모두 5번입니다.”

“한번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고 5번이라니?”

이바노프가 당황하고 있었다.

전진 KGB 출신으로 웬만해서는 냉정함을 잃지 않는 그녀다. 하지만 내가 제시한 조건은 엄청난 수준이다.

“뭔가 엄청난 일을 꾸미고 있군요.”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대해볼만 하겠군요.”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벽쪽으로 다가갔다.

숨겨진 장치를 열었고 그 안에는 암호용 통신기가 나왔다.

비밀번호를 누른뒤에 통신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와의 대화에서는 영어를 능숙하게 썼지만 지금은 누군가와 러시아어로 대화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상대가 누구인지 짐작된다.

이제부터 글로벌 스캐닝(Global Scanning)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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