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조 재벌-65화 (65/300)

# 65

복수는 당연한 권리다

“이야~ 어제는 진짜로 끝내준 거 같습니다.”

“역시 몸매는 백마들이 확실합니다.”

“끄윽! 회장님. 아직도 술이 덜깨서 죽겠네요.”

입에서 트림까지하며 헤죽거리는 중년 사내들.

코리아타운 한인회 사무실에 모여든 그들은 어젯밤의 유흥을 회상하며 떠들썩했다.

이들은 한인회장인 정삼택에게 아부해서 간부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얼마 전 정삼택과 간부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한인회비를 3배나 올려버렸다. 회원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정삼택은 코리아타운 발전을 위해 쓴다는 그럴듯한 이유를댔다.

하지만 대부분은 착복한 상태다.

그리고 3배나 올린 한인회비를 이용해 자기들끼리 놀고먹는데 쓰는중이다.

여기에 대해 소수의 회원들이 불만을 표시했지만 소용없었다.

정삼택의 임기는 아직도 2년이나 더 남았고 이제는 한인회 회칙을 개정해서 연임이 가능한 상태까지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회장님. 요즘 코리아타운 주민들이 우리들에 대해 불만이 많은 거 같은데 이런상태로 가다가는 다음번 선거에서 지는 거 아닙니까?”

“상관없어. 그전에 여기 코리아타운의 놈들은 박살날 테니까.”

“하긴 그렇네요.”

간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정삼택은 다음번 한인회장을 하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자신의 배후에는 리틀도쿄가 있었고 요시다 패거리도 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한몫챙기고 뜨면 그만이다.

여기 있는 간부들도 이런 정삼택의 계획에 동조하면서 코리아타운 한인회를 개판으로 만들고 있었다.

‘어차피 1년도 못가서 여기는 리틀도쿄의 수중에 들어가는데 한인회장 따위가 무슨 필요가 있겠어?’

정삼택이 피식거렸다.

그 때 밖으로 나갔던 간부 중에 하나가 헐레벌떡 들어온다.

“회장님. 큰일 났습니다.”

“뭔데 그래?”

“뉴스를 보십시요. 지금 속보로 나오고 있습니다.”

간부의 말에 정삼택이 사무실에 있는 TV를 켰다. 그러자 NBC 뉴스를 통해 영상이 나왔다. 수많은 경찰들과 패트롤카들.

그리고 구경꾼들이 모여있는 상황이고 리포터가 카메라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시청자 여러분. NBC 뉴스의 리포터 니콜슨입니다. 저는 지금 LA의 리틀도쿄에 와 있습니다. 저기보이는 덴시빌딩에서 어젯밤에 맹렬한 총격전이 벌어졌고 수십명에 이르는 일본인들이 사망했다고 합니다. 경찰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총격으로 살해된 시체들 중에 상당수가 몸에 문신을 한 상태입니다. 이를 통해 저 건물이 현재 리틀도쿄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던 일본계 야쿠자조직의 거점이었던 것으로 파악됩니다. 잠시만요. 시청자 여러분. 지금 건물에서 시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리포터와 카메라맨들이 달려갔다.

출동한 경찰들이 기자들과 카메라맨들을 막아섰고 그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모여든 취재진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경찰들도 막을 수는 없었다.

속보영상을 통해 보이는 광경.

그것을 본 정삼택과 한인회 간부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회장님. 리틀도쿄에 있는 덴시빌딩이란 곳. 혹시 요시다와 그 부하들이 있던곳 아닙니까?”

“씨끄러! 누가 들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정삼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요시다와의 관계는 철저하게 자신들만의 비밀이다.

만약에 이 사실이 코리아타운 교민들에게 알려진다면 엄청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정삼택의 양손이 부들거리며 떨리고 있었다. 얼마 후 뉴스는 계속해서 나왔다.

[조금 전 들어온 소식에 따르면 저 덴시빌딩에서 수십명의 시체들이 쓰러진 장소와 복도벽에는 베트남어로 응우옌짜빈의 죽음에 대한 복수다라는 글자가 붉은색 스프레이로 적혀있다고 합니다. NYPD의 경찰에서는 이번사건을 일본계 갱단과 배트남계 갱단에 사이에 벌어진 구역전쟁으로 보고 있습니다. 건물 복도벽에 쓰여진 응우옌짜빈이란 베트남인은 4년 전에 살해당한 인물로 NYPD에서는 베트남계 갱단조직을 지휘했던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사건은 그 때 당했던 베트남계 갱단이 일본계 갱단을 향해 복수를 한 것으로 파악됩니다.]

TV의 리포터가 말하는 설명.

그것을 들은 정삼팩 패거리는 당황했다.

“요시다가 베트남계 갱단한테 당하다니!”

“어차피 그 놈 야쿠자인데. 조폭놈이 다른 조폭한테 죽은 거지.”

“하지만 요시다는 지금까지 우리들의 뒷배를 봐주던 놈이었는데, 저렇게 죽어버리면 이제까지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 거 아냐?”

“듣고 보니 그것도 골치아프네.”

한인회 간부들이 투덜거렸다.

하지만 정삼택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맺히고 있었다. 간부들은 요시다가 배후에서 지원해주고 있지만 야쿠자라는 사실때문에 조금은 꺼려하고 있었다.

돈만 아니라면 저런 녀석들과 엮이기 싫다는 심정. 그에 반해 정삼택이 받는 충격은 상당했다. 베트남계 갱단이 응우옌짜빈의 복수를 위해 요시다와 부하들을 공격한 것이다.

과거 4년 전에 벌어졌던 테트사건.

하지만 베트남인들은 그 사건의 범인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만약에 그랬다면 자신은 쥐도새도 모르게 죽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제는 정확하게 알고서 복수했다.

어딘가에서 정보가 새어나간 것이다.

도대체 어떤놈이?

여기 있는 부하들은 아니다.

애초부터 이 녀석들은 그런 걸 모르고 있으니까.

그 때 한인회 사무실에 있는 전화벨이 울린다.

“여보세요. 코리아타운 한인회입니다.”

간부 중에 한 명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표정이 구겨졌다.

“무슨 소리야? 좀 알아듣게 말해! 영어를 써! 베트남어? 그런 거 몰라! 이 새끼야!”

한바탕 욕설을 퍼붓던 간부가 전화를 끊었다.

그러자 정삼택이 당황하며 질문했다.

“조금 전 그거 무슨 전화야?”

“잘못 걸려온 겁니다. 어떤 이상한 베트남 새끼가 뭐라 뭐라 중얼거리는데 무슨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한바탕 욕해주고 끊었습니다.”

간부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것을 본 정삼택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성질 같아서는 아구통을 날려버리고 싶었다.

베트남인이 한인회 사무실을 향해 전화를 걸었다는 사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분명했다.

응우옌짜빈을 죽인 4년 전의 테트사건.

베트남 조직이 자신을 공범으로 확정하고 복수를 위해 준비 중이란 것이다.

수십명의 무장한 부하들을 거느린 요시다도 하룻밤 사이에 시체가 되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진짜로 처참하게 죽는다.’

등뒤로 식은땀이 흘러갔다.

베트남 조직의 잔인함은 정삼택도 익히알고 있었다.

4년 전에 응우옌짜빈에게 접근하기 위해 베트남타운에서 지내면서 충분히 목격했기 때문이다.

만약에 자신이 그들에게 잡힌다면 산채로 가죽을 벗기는 고문을 당하는 건 기본이다.

경찰에게 달려갈까도 생각했지만 고개를 내저었다.

만약에 그렇게 되면 4년 전에 벌어졌던 사건에 대해 재판을 받게 되고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미국은 감옥안에도 암살자를 보내서 죽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제기랄, 여기까지와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다니.’

갈등하던 정삼택이 선택한 방법.

그것은 모든 걸 포기하고 도망치는 것이다.

한몫 제대로 잡겠다고 여기서 버티다가는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모른다.

“그런데 회장님. 이번 주 금요일에 계획 중인 데모 말인데요. 기왕이면 더 크게 벌이기 위해 ABC 나 CNN 방송국의 기자들까지 모조리 부르는 게 어떻습니까? 아주 크게 한바탕 해버리는 겁니다.”

간부의 말에 정삼택이 주저했다.

지금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게 생겼는데, 코리아타운의 시위나 집회따위 알바가 아니다. 하지만 내심을 모두 드러낼 수는 없었다.

“그건 좀 더 생각해보고 말이야. 그것보다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에 볼일이 좀 생겨서 서둘러 갔다와야 될 거 같은데.”

“거기는 왜 갑자기 가십니까?”

“그런 거까지 자네들한테 말해줘야 하나?”

“......”

정삼택이 간부들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무튼 자네들은 계획대로 준비하고 있어. 마이애미에서 볼일을 마친 뒤에 목요일에는 돌아올 거니까.”

“회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요.”

간부들이 대답했다.

오해성의 <한성개발>을 물먹이기 위한 대규모 집회를 앞둔 시점에서 한인회장이 갑자기 멀리 떠난다는 것이 좀 꺼림찍 했다.

하지만 그래도 하루전날 돌아온다고 하니까 일단은 믿어야했다.

부하들에게 몇 가지 필요한 지시를 한 뒤에 정삼택은 서둘러 한인회 사무실을 떠났다. 집으로 향하면서도 뒷덜미가 서늘했다.

언제 어디서 자신을 향해 죽음의 그림자가 덮쳐올지 몰랐다.

***

“부하들에게는 플로리다의 마이애미로 간다고 거짓말을 한 뒤에 남쪽의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도망갈 속셈이었군.”

태블릿-PC의 화면에서 흰색점이 반짝이고 있었다.

김태천이 얼마 전 정삼택의 차량에다가 몰래 부착한 위치추적장치. 그것에서 발신된 시그널이 실시간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한인회 사무실에서 속보뉴스를 본뒤에 정삼택은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정삼택은 금고 안에 숨겨둔 돈과 금괴, 보석들을 챙긴뒤에 도망치기 시작했다. 요시다와 내통해서 제법 재산을 모았고 지금까지 모은 돈만 해도 2~3백만 달러는 가볍게 넘길정도다.

앞으로 1년 동안 요시다와 협력해서 코리아타운을 박살내 놓으면 그보다 몇 배나 더 많은 돈이 들어올 것이다.

집에서 돈되는 것을 모두 챙긴뒤에 정삼택은 LA-시내를 빠져나온 뒤에 남쪽으로 향했다. 녀석도 자신이 미국내에 있으면 언젠가는 베트남 조직원들에게 당할 것이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녀석이 살 수 있는 방법은 남쪽의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튀는 것.

멕시코는 돈만있으면 어디든지 숨어지낼 수 있고 여차하면 더 아래쪽인 남미로도 내려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정삼택이 도망갈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미 그물에 걸린 물고기 신세다.

김태천이 내 옆으로 다가왔다.

“정삼택이 죽기살기로 도망치고 있군요.”

“마지막 발악인 거 같습니다.”

“조금 전 쩐흥티오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떤 겁니까?”

“정삼택을 자신들의 손으로 처리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당연한 권리라고 봅니다. 지금 정삼택이 있는 위치를 베트남 조직에게 전해주십시요.”

“알겠습니다.”

김태천이 대답하며 연락을 시작했다.

***

“헉헉헉!”

거친 숨소리가 정삼택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입고 있는 옷은 흙먼지로 가득했고 머리카락도 흐트러진 상태다.

남쪽의 멕시코 국경을 향해 전력으로 차를몰고 가던중 정삼택은 베트남 조직원들에게 추격을 받았다.

그것도 사막과 황무지가 가득한 지역이었고 정삼택은 결국 차를 버리고 도주했다.

하지만 정삼택이 탈출할 기회는 어디에도 없었다.

뒤 쪽에서 하나둘씩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베트남 조직원들이었고 선두에는 쩐흥티오가 있었다.

“살려줘!”

“지금 당장 죽이지는 않겠다. 네놈에게는 응우옌짜빈님이 느낀 고통과 원한을 차례로 갚아줘야 하니까.”

“이 개 같은 놈이!”

퍽! 퍼퍽! 쇠파이프가 정삼택의 허벅지를 강타했다. 정삼택의 입에서 고통의 비명이 흐르며 쓰러졌다.

그리고 쩐흥티오가 신호하자 부하들이 커다란 자루를 가져와서 정삼택을 그 안에 담았다. 얼마 후 몇대의 차량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왔고 자루에담긴 정삼택을 트렁크에 넣었다.

***

어두운 통로를 따라 나아갔다.

몇 번이나 이곳에 왔지만 베트남타운의 지하통로는 여전히 미로처럼 복잡하다.

여기는 베트남 조직원의 안내가 없다면 동서남북을 구별하는 것도 힘들었다.

“베트남타운이 천혜의 방어요새인 건 분명하군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를 통해 베트남조직과 보스인 쩐흥티오와 좋은 관계를 맺게 되었으니 앞으로도 도움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김태천이 대답했다.

쩐흥티오를 포함한 베트남 조직은 이후에라도 필요할 때에 든든한 조력자가 될 수도 있었다. 뭣보다 지금 내가 K-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코리아타운과 베트남타운은 특별히 대립하는 관계도 아니다. 그것보다는 서로 공생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상황이다.

얼마 후 우리를 안내하던 조직원이 문을 열었다.

철컹! 금속문이 열리면서 내부에는 한 명의 중년 사내가 보인다.

얼마 전 남쪽의 멕시코 국경으로 도망칠려다가 잡혀온 정삼택이다.

정삼택의 두눈에 핏발이서며 괴성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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