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조 재벌-61화 (61/300)

# 61

적을 제거하는 방법 (01)

부우웅! 방탄개조한 랜드로버 메탈리카(Metalica)의 엔진음이 조용히 흘러나왔다.

지금 우리들이 향하는 LA의 베트남타운은 중심가에서 북서쪽으로 떨어진 장소다.

베트남타운의 근처에는 흑인과 라티노들이 모여사는 지역들이 있었다. 이들 3곳은 통틀어서 LA-내의 우범지대에 속한다.

그리고 베트남타운과 그곳에서 생활하는 베트남인들의 형편이 좋은 것은 아니다. 주변에 있는 흑인 및 라티노 빈민가의 영향도 있지만 미국에 정착한 베트남인들의 경우. 경제적으로 열악했기 때문에 소득과 교육 치안등에서 상당히 부족했다.

그나마 코리아타운의 한국인들은 영세하지만 본인들의 가게를 유지하고 자식들에 대한 교육열도 높은 편이다. 때문에 백인이 주도하는 미국사회에서도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한편으로 차이나타운은 이전부터 발판을굳힌 화교세력이 큰 영향을 끼쳤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리틀도쿄의 경우에는 과거 일본이 경제호황기 때 막대한 자본과 기술이 리틀도쿄로 유입되면서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하지만 베트남타운의 경우에는 본국에서 지원받을 형편도 못되었고 미국내의 발판도 약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응우옌짜빈 같은 특출한 리더가 나타나서 그런대로 LA의 베트남인들을 한데 뭉치고 발전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뒤에는 모든 것이 무너졌던 것이다.

“베트남타운의 환경은 우리들이 전에 방문했던 뉴욕의 레드힐과 비슷한 수준이군요.”

“레드힐처럼 갱단들의 전쟁이 매일 벌어지는 곳은 아니지만 주변환경을 포함해서 구역내의 상황은 확실히 대도시의 빈민가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래도 한때는 발전의 희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보다 더 악회된 상태이니.”

송재동이 고개를 저었다.

베트남타운으로 들어오자 LA의 도심에서 보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주변의 건물들도 낡았고 거리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버린 어린 애들과 노인들이 부랑자처럼 앉아있는 모습도 보였다.

우리들이 배트남타운으로 온 목적은 한 가지다.

코리아타운의 개발과 K-프로젝트의 진행에 방해물인 정삼택과 요시다.

이 두녀석을 처리하는데 통상적인 방법은 쓸 수 없었다. 그렇다고 두녀석을 상대로 우리 쪽에서 직접적으로 손을 쓰는 것도 상황이 좋은 편도 아니었다.

아예 못하는 건 아니지만 깨끗하고 깔끔한 처리를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쓰는 게 적당했다.

그것이 정삼택과 요시다에 대해 직접적인 원한을 갖고 있는 베트남인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물론 LA의 베트남인들은 4년 전에 벌어진 테트사건과 학살의 주범이 정삼택과 요시다란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만약에 알았다면 자신들의 정신 적인 지도자였던 응우옌짜빈의 죽음에 대해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저기군요.”

조수석에 타고 있던 프리먼이 손을 들어 가리켰다.

정면으로 베트남 식당이 보였다.

간판에는 라는 이름이 보였다.

근처에 차를 주차시킨 뒤에 식당으로 향했다. 내부에 두세군데의 테이블에 손님들이 있었다. 베트남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요즘은 한국에서도 베트남 쌀국수등이 인기가 있는데 여기는 전통 베트남식이군요. 향신료 냄새도 더 진하고.”

“베트남식 커피도 괜찮습니다. 다만 달달한 연유를 많이넣어서 원두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별로이지만.”

김태천이 웃으며 말했다.

창문쪽에 테이블을 잡자 종업원이 다가왔다.

20대 초반으로 보였고 낯선 외국인들의 모습에 당황하더니 서툰 영어로 말했다.

“어떤 것을 주문 하시겠습니까?”

“여기오면 쩐흥티오를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왔는데.”

“쩐흥티오라는 메뉴는 없는데요.”

“여기 식당 주인이라고 들었는데. 물론 지배인은 다른 사람이지만.”

“글쎄요.”

종업원이 대답하며 어딘가로 눈짓을 보냈다.

정문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두 명이 신속하게 일어나더니 식당문을 닫았다.

일단은 제대로 찾아온 거 같다.

***

타다닥!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주방에서 몇 명이 튀어나온다. 각자의 손에는 길이가 4~50cm에 이르는 도검을 들었고 눈에서도 살기가 넘쳤다. 이런 상황에서도 프리먼과 김태천의 표정은 여유롭다.

“네놈들 간덩이가 부었군. 여기가 어딘줄 알고.”

“아까도 말했듯이 쩐흥티오를 만나고 싶어서 온건데.”

나의 대답에 선두에 있던 사내가 신호했다.

그러자 좌측에 있던 한 명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든다.

하지만.

쾅! 퍼억! 육중한 펀치가 돌진해오던 베트남 청년의 얼굴을 강타했다.

프리먼의 덩치도 180cm는 가볍게 넘을 수준이고 각종 격투기와 사격술까지 갖추고 있었다.

단 일격에 뻗어버린 상대는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이 새끼들이?”

“죽여!”

나머지 녀석들이 고함을 지르면서 달려들 때.

단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멈칫했다.

김태천과 프리먼이 찰나간에 피스톨을 꺼내었고 정확하게 조준했기 때문이다.

권총을 뽑는 속도나 조준.

모든 것이 단번에 벌어졌고 나머지 녀석들은 제대로 반항조차 못했다.

그리고 나는 선두의 사내 쪽으로 다가가며 입고 있는 슈트의 상의를 한쪽으로 제꼈다.

나의 허리춤에 끼워져 있는 글록(Glock)-자동권총을 슬쩍 보여준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나까지 권총을 뽑을 필요는 없지만 일단 상대에 대한 기선제압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이다.

“네놈들 여기에 온 목적이 뭐야?”

“아까도 말했듯이 쩐흥티오-씨를 만나기 위한 겁니다. 그리고 당신들이 꽤나 용맹하다는 건 알지만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당신들이 갖고 있는 무기등으로 상대할 수준이 아닙니다. 뭣보다 이런 곳에서 서로 간에 피를 흘리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닐 테니까.”

“......”

나의 대답에 선두사내가 꿈틀거렸다.

지금 우리를 향해 덤빈다고 나온 무리들 중에서 가장 나이와 경험도 많아보였다.

얼마 후 식당 2층쪽에서 40대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나타났다.

“저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뭣 때문에 왔는지 모르지만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쩐흥티오님.”

예상대로 저 인물이군.

명성높았던 응우옌짜빈이 죽은 뒤에 세력이 박살나버린 베트남계 조직을 이끌고 있는 리더다.

다만 응우옌짜빈의 죽음이 워낙에 큰 사건이고 타격이 컸기 때문에 쩐흥티오가 나름대로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LA의 베트남타운은 과거의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

“이런 비밀 아지트까지 있다니 결코 보통조직은 아니군요.”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쩐흥티오가 대답했다.

그의 눈매가 매섭지만 동족에 대한 봉사정신과 열정이 가득했다. 현재 쩐흥티오는 LAPD(로스엔젤레스 경찰국)의 자료에 의하면 베트남계 갱단의 보스로 구분되어 있다.

다만 이것은 LAPD에서 편의상 만들어놓은 정보일 뿐이고 좀 더 내막을 들어가면 틀리다.

그럴 것이 4년 전 피살당한 베트남타운의 지도자인 응우옌짜빈에 대해서도 LAPD는 그를 베트남계 갱단의 두목이라고 해놓은 상태다.

그래서 4년 전 벌어졌던 테트사건의 경우에는 LAPD를 포함해서 언론에서도 갱단간에 벌어진 유혈극으로 치부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베트남타운에 있는 베트남계 조직을 단순한 갱단쯤으로 딱지를 붙이기는 힘들다.

갱단보다는 일종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자경단 조직으로 봐야할 것이다.

때문에 쩐흥티오가 지휘하는 조직은 오히려 이곳의 베트남인들에게 상당한 지지를받는 입장이다.

일반적인 3류갱단이라면 먼저 같은 동포를 향해 만행을 저지르고 약탈하는 게 기본이다. 그러나 쩐흥티오의 조직은 베트남타운을 포함해서 LA의 베트남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많이 했다.

이 조직을 처음 만든 것이 4년 전에 피살된 응우옌짜빈이고 그의 정신이 2대인 쩐흥티오를 통해서도 꾸준히 지속되는 중이다.

식당 2층에 나타난 쩐흥티오를 따라 우리들은 비밀아지트로 안내를 받았다.

베트남 식당인 의 지하로 내려갔고 그곳에서 30분정도 미로같은 통로를 나아갔다.

과거 베트남전쟁때 미군과 싸웠던 베트남인들의 특기중에 하나가 복잡하고 미로같은 땅굴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그들의 탁월한 기술이 LA-내의 베트남 타운에서도 발휘된 것이다.

만약에 어떤 조직이나 적들이 베트남타운으로 습격해 온다면 지하통로와 땅굴을 이용해서 반격하는 베트남 조직원들에 의해 차례차례 소멸될 수준이다.

이전에 차이나타운의 중국계 갱단중에 하나인 <흑방:黑房>조직이 여기로 쳐들어 왔다가 막대한 피해만 당한 채 후퇴했는데 이제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30분정도 이동한 뒤에 우리들이 도착한 곳이 여기다.

이곳도 쩐흥티오의 조직이 갖고 있는 지하의 여러 공간들 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곳에는 쩐흥티오 외에도 베트남 조직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간부들이 모여있었다.

“당신들도 대단하군요. 우리들이 무슨짓을 할지도 모르는데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만약에 우리를 공격하거나 죽일 속셈이었다면 조금 전 베트남 식당에서도 충분히 가능했지 않습니까?”

“......”

나의 대답에 쩐흥티오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쪽이 성능 좋은 자동권총이나 장비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이곳은 베트남타운이다. 쩐흥티오가 마음만 먹었다면 긴급신호를 통해 단번에 수십, 수백 명의 조직원들이 모여들수 있었다.

“그렇다면 여기온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하군요. 2명의 프로급 총잡이들을 데리고 있는 걸보니 당신도 결코 보통은 아닌 거 같고, 그리고 같이온 민간인처럼 보이는 인물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침착한 걸 보니 처음부터 승산을 판단하고 온 것이 분명하군요.”

쩐흥티오의 판단은 제법 예리했다.

2명의 프로급 건맨은 당연히 김태천과 프리먼이다.

그리고 같이온 송재동도 겉으론 평범하지만 이전에 뉴욕최고의 갱단구역인 레드힐까지도 경험했던 상황이다.

“먼저 이것을 확인해 보시고 그다음에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야 할 거 같군요.”

내가 신호했고 송재동이 슈트케이스를 열어서 서류철을 꺼내었다. 그것을 찐흥티오에게 전했고 옆에 있던 조직의 간부들이 집중했다.

서류를 넘기던 찐흥티오와 간부들의 눈빛이 떨리고 있었다.

그것도 당연하다.

서류철의 처음에 나온 사진이 4년 전 테트사건으로 피살된 응우옌짜빈의 것이니까 말이다.

“이건 무슨 뜻이요?”

“먼저 우리 쪽에서 4년 전 여기 베트남타운에서 벌어졌던 테트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그 사건의 범인들은 파악되지 않았고 모든 것이 미결로 끝난 상황입니다. 하지만 테트사건은 처음부터 계략을 통해 기획된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는 당신도 느끼고 있겠지만 말이지요.”

대답을 하며 두 번째의 서류철을 건네었다.

그곳에는 요시다와 정삼택의 사진이 들어있었다.

“이놈들이 범인이란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쩐흥티오님. 저기 있는 놈은 요시다입니다. 얼마 전 리틀도쿄에서 세력을 급격하게 넓혀가던 놈인데. 듣기로는 일본에 있는 야쿠자 조직인 시와자키파의 3인방들 중에 하나입니다.”

“그럼 나머지 한 명은 누구입니까?”

“정삼택이라고 한국인입니다. 지금은 코리아타운의 한인회장을 하고 있는 녀석인데, 4년 전 테트사건이 벌어질 즈음에서는 여기 베트남 타운에서 지냈던 적이 있을 겁니다. 아마도 피살당한 응우옌짜빈은 정삼택과 알고 있던 상황이라 추측됩니다. 물론 정삼택은 상대의 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접근했고 그리고 테트사건이 벌어지던 야간에 정삼택과 요시다가 보낸 습격부대가 응우옌짜빈과 일가족을 몰살시킨 겁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입니까?”

“의심된다면 확인을 해보셔도 좋을 겁니다. 뭣보다 정삼택은 4년 전에 이곳에서 지냈으니 그 때 정삼택을 본 여기의 베트남인들도 있을 것이고 말이지요”

“자네들은 지금 당장 빈롱을 데려오게.”

“알겠습니다.”

쩐흥티오가 간부에게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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