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조 재벌-60화 (60/300)

# 60

너의 비밀을 알고있다

어두운 방안.

에어컨을 최대로 틀어놓았지만 정삼택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고 있었다.

테이블위에는 위스키병이 2개나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이미 비어버린 상태다.

남은 한 병의 위스키를 딴 뒤에 잔에 부어서 들이켰다.

하지만 정삼택은 술이 취하지 않았고 양손이 부들거리며 떨리는 중이다.

얼마 후 성이 차지 않는 듯 정삼택이 위스키를 병째로 벌컥거렸다.

“크으! 개 같은 놈.”

누군가를 향해 욕설과 저주를 퍼부었다.

그의 뇌리에는 얼마 전 비버리힐스의 고급저택인 골든하우스. 그곳에서 만난 20대 초반 청년의 얼굴이 떠나지 않았다.

185cm가 넘어가는 훤칠한 키.

단단한 육체.

그리고 연예인처럼 잘생긴 얼굴이다.

물론 정삼택은 그것을 기생오래비 얼굴이라고 표현했지만.

그러나 뭣보다 잊을 수 없는 건 그 놈의 눈빛이다.

그 눈빛이 싸늘했고 자신의 내부를 완전히 후벼 파고 있었다. 특히 그 청년이 자신을 향해 뱉은 말이 귓가에 맴돈다.

‘과거에 좀 더러운 짓을 하셨더군요.’

계속해서 정삼택의 뇌리에서 반복되고 있었다.

“그 놈이 어떻게 해서 알고 있는 거야?”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완전히 비밀일 수는 없었다.

그것에 관련된 것은 자신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리아타운에서 그런 자신의 비밀은 누구도 모른다.

심지어는 정삼택이 한인회장이 되면서 부하로 만든 패거리들까지도.

한동안 고민하던 찰나.

정삼택의 스마트폰이 울린다.

송신자를 확인했다.

그리고는 미간을 찌푸린다.

“제길. 이런 때에 전화를 걸다니?”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어쩌면 잘 되었다.

안그래도 신경 쓰이는데 확인해볼 기회니까.

“요시다 씨. 오랜만이군요.”

“요즘 당신의 전화가 뜸한 거 같아서 확인 차 걸었습니다. 그것보다 코리아타운쪽의 일은 잘되고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하하. 그래요? 얼마 전에 방해자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있던데.”

“......”

요시다의 말을 듣자 정삼택의 표정이 굳어진다.

자신 몰래 다른 쪽에도 첩자를 숨겨둔 것이다.

개 같은 새끼.

한바탕 욕설이 튀어나오려고 했지만 참았다.

“방해자라면 내 쪽에서 충분히 처리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코리아타운의 한인들은 내 손에 있고 한인회장인 나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으니 말이요.”

“물론 정삼택 씨 당신을 충분히 믿고 있기는 한데 그래도 만약에 반항하는 놈들이 있다면 우리 쪽에서 손을 써줄 수도 있습니다. 당신도 우리 쪽 애들의 실력을 잘 알지 않소.”

“물론이요. 일단 지금은 대부분이 고분고분 말을 잘듣는 편이니 처음부터 크게 문제를 일으킬 생각은 없소. 하지만 그래도 주제를 모르고 덤비는 놈들이 있다면 요시다 씨 당신의 힘이 필요하겠지요.”

“이번 일만 잘되면 당신도 크게 한몫 챙기는 것이요. 그 돈이면 평생을 놀고 먹을 수도 있으니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는데.”

“어떤 거요?”

“나로서는 요시다 씨와 당신이 데리고 있는 부하들을 철통같이 믿고 있소. 그런데 아무래도 당신의 부하들 중에 테트사건에 대해 함부로 입을 놀린 놈이 있는 거 같습니다.”

“그건 무슨 말이요? 나의 부하들이 설마 그 사건을 누군가에게 말했다는 뜻이요? 절대 그런 일은 없으니 안심하시요.”

“확실한 겁니까?”

“물론이요.”

요시다가 딱잘라 대답했다.

그러자 정삼택은 더 이상 따지지 못했다.

상대방에서 이렇게 부인하는데 방법이 없다. 그리고 요시다를 더 이상 자극하는 것도 위험했다. 뭣보다 요시다는 보통의 일본인이 아니니까 말이다.

“아무튼 정삼택 씨 당신은 쓸데없는 걱정말고 코리아타운을 우리손에 넣는 것에 더 집중해 주시요. 이미 당신에게 퍼부은 돈만 해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요. 만약에 딴 생각품고 우리를 배신한다면 그 뒤에는 어떻게 될지 알고 있을 거요.”

“걱정 마시요. 이미 코리아타운의 한국놈들은 내 손안에 있으니.”

정삼택이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불안감은 더욱 가중되었다.

제길! 정삼택이 욕지거리를 뱉으며 테이블위의 술병을 던졌다.

***

삐비빗!

테블릿-PC에서 경고음이 흘러나왔다.

손을뻗어 메인화면에 있는 메뉴중에서 보안(Security)부분을 클릭했다.

그러자 카메라 영상들이 나온다.

이 카메라 영상들은 비버리힐스의 위쪽에 자리잡은 골든하우스.

그리고 골든하우스의 주변과 정문으로 연결된 도로들에 설치된 CCTV-카메라의 영상들이다.

골든하우스를 장기임대로 바꾼뒤에 보안장비와 감시카메라 그리고 시큐리티 시스템을 최신형으로 바꾸었다.

이 작업을 하는데에 몇십만 달러 이상의 자금이 들어갔지만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특히 골든하우스 주변과 정문으로 연결된 도로에 설치한 동작감시 카메라와 시큐리티 시스템들.

그것은 주변으로 접근하는 모든 물체와 방문자들을 실시간으로 탐지한다.

테블릿-PC의 카메라 영상을 보니 정문으로 오는 차량은 낯익은 것이다.

독일의 호이트펜(Hoitfen)사에 방탄개조를 시킨 랜드로버 메탈리카(Metalica)였다.

그리고 저 차에 타고 있는 두 명은 김태천과 프리먼이다.

“김태천과 프리먼이군요. 벌써 오다니 생각보다 빠르군요.”

“두 사람의 실력은 확실하니까 말이지요.”

송재동을 향해 대답했다.

얼마 후 골든하우스의 정문이 자동으로 열리면서 두 사람이 탄 차량이 내부로 들어왔다.

어떤 정보를 가져왔을지 기대가된다.

***

“실장님의 예측이 적중한 거 같습니다.”

“그 말은 곧 굿뉴스란 뜻이군요.”

“그렇습니다.”

프리먼이 테이블에 앉았다.

웨이터가 커피를 가져오자 허리뒤에서 쇠로 된 플래스크(휴대용술병)을 꺼내었다. 잠깐동안 커피향을 음미하더니 플래스크를 열고 위스키를 부었다.

프리먼은 커피를 마실때에 위스키를 조금씩 부어서 아이리쉬 커피를 만들어먹는 습관이 있었다.

프리먼이 이처럼 위스키를 자주 마시지만 한번에 엄청 마시는 알콜 중독자는 아니다. 뭣보다 그는 술이들어간 아이리쉬 커피의 애호가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하다.

요즘은 김태천도 프리먼과 함께 활동하다보니 프리먼을 따라서 이따금씩 아이리쉬 커피를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내가 그들 두 명에게 준 단서는 2가지 뿐이었다.

요시다라는 일본인의 이름과 테트사건.

얼마 전부터 스내처 프로그램으로 정삼택의 스마트폰에 해킹 및 도청장치를 깔아놓고 감시하였다.

스내처 프로그램을 활성화 시키는 건 순식간이고 정삼택은 자신의 스마트폰이 나에게 24시간동안 감시당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나로서는 녀석을 동요시키기 위해 슬쩍 미끼를 던졌다.

정삼택처럼 뒤가 구린녀석은 반드시 과거에 뭔짓을했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쓸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녀석에 대한 도청을 통해 요시다란 놈과 과거에 더러운 짓을 했다는 게 드러났다.

다만 그것이 뭔지는 구체적으로 몰랐다.

드러난 단서는 테트사건.

처음에는 테트라는 단어조차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조사해보니 이것은 영어가 아닌 베트남 단어다.

즉 베트남어로 구정, 설날을 나타내는 것이다.

좀 더 조사해보니 과거 베트남전때 테트 대공세라는 베트남전에서 중요한 사건과 전투가 있었다.

베트남전때 전통적인 설날(구정)때 베트콩 게릴라들이 기습공격을 한 것인데.

이것과 정삼택과는 그다지 연결점이 없어보였다.

정삼택이 과거에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 범위를 LA-나 캘리포니아쪽으로 좁혀보았다.

얼마 후 두 사람이 찾아낸 것은 테트사건이 LA에 있는 베트남인들 사이에서는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비극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테트사건은 4년 전 LA에 있는 베트남 타운에서 벌어진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사실 테트사건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그 살인사건이 벌어진 날이 베트남인들이 명절로 생각하는 설날, 즉 구정때에 벌어진 것이라서 그렇더군요.”

“하지만 베트남 타운에서도 틈틈이 살인사건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테트사건이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일반적인 살인사건이 아니라 응우옌 짜빈과 그 가족들이 몰살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김태천이 대답하며 서류를 내밀었다.

그곳에는 신문기사의 스크렙과 사진등이 있었다.

응우옌짜빈.

LA에 있는 베트남인들 중에 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LA를 포함해서 미국 서부지역.

더 나아가 미국내에 있는 수많은 베트남인들에게 신망받는 인물이었다.

베트남전에서 활약했던 영웅이고 한편으로 수많은 베트남인들을 가르치고 이끌었던 지도자다.

일설로는 그가 베트남의 국부로 칭송받는 호치민의 가족 중에 한 명이란 말도 있었다.

아무튼 베트남전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뒤에 응우옌짜빈은 미국으로 건너왔다.

미국 서부의 LA에 정착했고 이곳에서 LA의 베트남 공동체와 베트남 타운을 세우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런 그가 4년 전 베트남 명절을 지내던 날에 자신의 가족들. 그리고 경호원들까지도 모조리 몰살을 당했다.

밤에 벌어진 일이었고 아직까지도 범인들은 잡히지 않았다. 뭣보다 그 테트사건은 결코 단독범은 아니었다.

응우옌짜빈이 베트남인들에게 명성높은 인물이기에 그의 집에는 여러 명의 경호원들도 있었다.

또한 그도 노인이 되었지만 전쟁을 참가한 베테랑이기에 결코 만만치 않았다.

습격자들은 다수였고 야간의 헛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해서 한순간에 몰살시킨 것이다.

그리고 응우옌짜빈이 죽은 뒤에 LA의 베트남 공동체는 붕괴상태에 이르렀다. 뛰어난 지도자이자 구심점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이 조사한 것에 따르면 정삼택이 응우옌짜빈의 죽음에 관련되었다는 뜻이군요.”

“관련정도가 아니라 사실은 정삼택 녀석이 요시다의 부하들이 응우옌짜빈과 가족들을 습격하는데 인도했던 거 같습니다.”

“조사해보니 정삼택이 여기 코리아타운으로 오기전에 녀석은 베트남타운과 그 주변지역에서 생활했고 또한 일부러 응우옌짜빈에게 접근한 것도 분명합니다. 다만 녀석이 그렇게 한 것은 요시다와의 비밀 협상을 통해 상대의 약점과 헛점을 알아내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당시 응우옌짜빈은 요시다가 속해있는 야쿠자조직을 상대로 대항하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고난 뒤에 베트남타운과 그곳의 공동체는 상당부분 박살났습니다.”

“그리고 응우옌짜빈도 접근한 상대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이란 사실에 어쩌면 방심했을 수도 있겠군요.”

“그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될 것입니다.”

프리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으로 녀석이 과거에 어떤 더러운짓을 했는지 파악되었다.

그리고 요시다가 상대를 해치우기 위해서 정삼택을 이용한 것.

이번에는 코리아타운을 손에 넣기 위해 같은 한국인들 사이에 정삼택을 밀어넣은 것이다.

“요시다와 정삼택. 두놈을 그냥 놔두면 상당히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김태천의 말에 충분히 동의한다.

이미 정삼택은 요시다와의 전화를 통해 자신에게 반기를드는 한인들이 있으면 그들에 대해서도 손을 쓸려고 시도 중이다.

정삼택과 갈등이 있었던 한인들 중에 야밤에 구타와 폭행을 당해 병원신세를진 사람들도 몇 차례 나왔다.

이번에는 그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다.

녀석도 위기의식을 느꼈고 더 강력하고 잔인한 수법으로 나올게 분명하니까 말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테트사건이나 요시다, 그리고 정삼택에 대한 문제등을 LAPD(로스엔젤레스 경찰국)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다면 시간도 상당히 걸리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요시다는 여차하면 정삼택을 꼬리짜르고 도망칠 수도 있습니다. 또한 LA-쪽에 파고든 일본계 야쿠자 조직들에 대해서는 LAPD-등에서도 선뜻 나서기 힘들겁니다.”

“뭣보다 우리 쪽도 거기에 말려들면 여러 가지로 골치 아프겠군요.”

“......”

프리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적인 해결방법에는 미국 경찰의 도움이 필요하지만 이번 것은 그 단계를 넘어섰다.

그리고 미국경찰이 나선다해도 그것이 해결될 때까지 몇 년이 필요할지 모른다.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고.

미국에서는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그것을 위해 김태천과 프리먼을 현장요원(Field Agent)로 끌어들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니 정삼택과 요시다. 두녀석들이 스스로 무덤을판거 같군요.”

나의 대답을 듣자 프리먼과 김태천이 냉소를 지었다. 두 명은 단번에 나의 결정을 이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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