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K-프로젝트
“K-타운 건설이라....”
“그렇습니다.”
오해성이 힘주어 대답했다.
예상보다 꽤 대담하고 야망이 넘치는 인물이다.
뭣보다 다른 사람들이 생각지 못한 발상의 전환도 뛰어났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싶군요”
“알겠습니다. 사실 이것은 예전부터 제가 구상해본 것인데 솔직히 실현 가능할 거란 기대까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뭣보다 K-타운 건설에 필요한 자금만도 대략 2~30억 달러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이자 놀란 것은 오해성이다.
2~30억 달러면 한화로 계산해도 2~3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이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재산이 100만 달러가 넘어가면 밀리언네어(Millionare)로서 부자에 속한다.
그리고 미국내에서 진행되는 사업프로젝트들 중에서는 4~5억 달러만 되어도 상당한 규모로 인정받는다.
“조금 전에 제가 말한 금액은 2~3억 달러가 아니라 10배인 2~30억 달러라고 했습니다.”
“정확하게 들었습니다.”
나의 대답에 오해성은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
아마도 속으로는 MCU-펀드가 얼마를 갖고 있길래 이러는가 싶을 거 같다.
오해성의 이런 반응을 보며 송재동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이 300억 달러 즉 30조라고 한다면 오해성은 뒤로 넘어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오해성에게 직접 말해줄 필요는 없는 것.
“당신이 뭣 때문에 K-타운 건설이란 프로젝트와 계획을 세웠는지 이유가 궁금하군요.”
“먼저 현재의 코리아타운은 역사에 있어서는 차이나타운이나 일본의 리틀도쿄에 비해 뒤지지 않지만 발전이 너무나도 늦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미 앞서나간 차이나타운이나 리틀도쿄와 격차는 상당한 편입니다. 이런 격차를 줄이고 추월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없었던 획기적인 방법만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K-타운의 건설이란 말이군요.”
“예. 알다시피 뉴욕과는 다르게 여기 LA에는 사람들의 관심과 흥미를 단번에 집중시키는 랜드마크가 없습니다. 물론 LA는 헐리우드 영화라는 큰 영화산업 그리고 디즈니랜드라는 유명한 장소도 있지만 뉴욕의 맨하튼에 비견될만한 마천루나 랜드마크가 없습니다.”
“확실히 뉴욕하면 여러장소들도 있지만, 이전부터 줄곧 상징이 되어왔던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지요.”
송재동이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산토리에어의 헬리콥터로 LA를 둘러볼 때 LA에는 뉴욕에서 본 것 같은 높은 빌딩들은 별로 없었다.
“만약에 오해성씨가 말한 K-타운 프로젝트를 실시한다면 어떤 규모를 예상합니까?”
“지금있는 코리아타운의 중앙에 지상 110층에 이르는 초고층건물 3개를 동시에 짓는 것입니다.”
오해성이 우리들 앞에 프로젝트를 설치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노트북을 연결하더니 건물에 대한 조감도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110층에 이르는 초고층빌딩 3개를 삼각형의 형식으로 구성한 것이다.
1층부터 60층까지는 3개의 건물이 하나의 형태로 구성되었고 나머지 60층부터 110층까지는 3개의 건물들이 삼각기둥처럼 나뉘어지는 모양이었다.
저렇게 만들면 3개의 초고층 건물들을 따로 만드는 것에 비해 견고함도 더 높아지고 안전성과 시설이용에서도 탁월했다.
“조금 전에 보여드린 저 건물이 K-타운의 핵심을 이루는 곳입니다. 현재 LA의 사람들에게 코리아타운은 단순히 한류영향을 받은 소수의 미국인들이 한국음식이나 체험하기 위해 오는 장소로 인식될 뿐입니다.”
오해성의 평가는 타당했다.
LA의 미국인들 사이에서 코리아타운을 간다고하면 한국음식인 불고기나 김치찌개, 비빔밥이나 먹으러가는 장소쯤으로 평가될 뿐이다.
그리고 미국영화 등에서 한국을 소개하는 장면등은 여전히 6-70년대의 허름한 시골분위기의 풍경을 나타내는 게 전부다.
그런데 이런 코리아타운에 110층짜리 초고층 건물이 들어서고 그것이 K-타운이라는 브랜드를 형성한다면?
그 파급력은 미국을 넘어 전세계를 강타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경제규모나 위상은 그것을 뒷받침 할만큼 충분했다.
단 몇 년만에 투자대비 몇십 배의 가치상승이 예상되는 것이다.
한류브랜드를 만드는데 더 이상 과거의 아리랑이나 재탕하는 건 구시대적 발상일 뿐이다.
그것보다는 한국이 선진국들과 맞먹는 자본과 기술력 그리고 쿨한 문화를 갖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승부수다.
“마음에 드는군요. 코리아타운을 향해 어설프게 돈과 자본을 찔끔찔끔 넣어봐야 표시도 않나고 밑 빠진 독에 물붓는 상황일 뿐이니.”
“그렇습니다.”
오해성이 대답했다.
처음에는 자신있는 음성이었지만 지금은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자신도 설마 2~30억 달러의 투자금을 동원할 만큼의 엄청난 괴물이 나타날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까 말이다.
현재 미국에만든 MCU-펀드가 단독으로 동원할 수 있는 자금만도 90억 달러.
즉 9조원에 이른다.
물론 나는 MCU-펀드를 이용해서 미국내에서 다른사업도 할 예정이기 때문에 코리아타운의 K-프로젝트에 모든 자금을 몰빵할 필요는 없었다.
오해성이 말한 대로 K-프로젝트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가 조금 전에 보여준 초고층 빌딩의 건설에만도 시간이 걸리니까 말이다.
“K-타운 건설과 K-브랜드의 개발이라. 실장님! 저로서는 마음에 드는데요.”
송재동이 말했다.
코리아타운에 돈이 묻혀있다는 나의 말을 이제야 실감한 듯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오해성씨 당신이말한 K-프로젝트를 위한 전문적인 회사를 설립하는 게 좋을 거 같군요. 물론 이 회사는 앞으로 진행될 K-프로젝트와 K-타운 건설에 대한 총괄적인 업무를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 코리아타운에 대한 개발과 관리에 대해서도 참가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정말입니까?”
“저는 사업기회가 왔을 때에는 주저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이 있는데.”
“무엇입니까?”
“K-프로젝트를 위해 설립할 회사의 책임을 오해성씨 당신이 맡아주었으면 좋겠군요. 물론 우리 쪽 MCU-펀드에서도 관리감독을 위해 보고를받고 할 테지만 일선에서 움직이는 데는 오해성씨가 필요하니까 말이지요.”
“하지만 제가 그런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본인이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군요.”
나의 말에 오해성이 대답했다.
K-프로젝트에는 오해성이 적임자였다. 코리아타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열정이 가득하다.
나의역할은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해성처럼 열정과 책임감이 두터운 인물은 그만큼의 보답을 해낼 수 있었다.
***
“여기가 제가 자주 가는 단골집입니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그리고 뭣보다 감자탕 맛이 끝내줍니다.”
오해성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발해컨설팅> 사무실에서 오해성이 창안한 K-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들은 뒤에 우리들은 밖으로 나갔다.
기왕 코리아타운에 왔으니 여기서 한국음식을 맛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미국에 온 뒤로 뉴욕과 LA를 왕복하며 월가에 대한 작전을 펼쳤다.
식사는 주로 레스토랑이나 펜트하우스등에서 룸서비스로 대신했다.
고급 스테이크부터 시작해서 햄버거 또는 이탈리안 파스타까지....
주로 서양식의 음식을 먹었기에 가끔씩 한국음식이 땡길 때가 있었던 것이다.
오해성이 우리를 안내한 곳은 소박한 크기를 지닌 한국식당이다.
간판에 쓰여진 <김포식당>이란 글귀가 왠지 정겹다. 오해성의 말대로 이곳의 자랑은 감자탕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감자탕을 큰걸로 시킨 뒤에 식탁에 둘러앉았다.
“여기 코리아타운에 있는 가게들은 대부분이 영세합니다. 한국인들의 부지런함이 묻어나는 세탁소부터 시작해서 식당, 채소가게, 그리고 영세상점들까지 다양한 편입니다.”
오해성의 말대로 코리아타운의 분위기는 한국에 있는 중소도시의 전경을 옮겨온 듯한 느낌이다.
이전부터 코리아타운에 자리를 잡은 한국인들 중 상당수가 저마다 푼돈으로 가져온 자본으로 뭔가를 해보려고 하다보니 이처럼 영세상인 위주로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위치상으로 LA의 코리아타운은 괜찮았다. LA-시내의 다운타운에서 가까운 곳이고 교통도 편리하다.
따라서 오해성이 구상한 K-프로젝트가 제대로만 성공한다면 LA와 서부를 대표하는 명소중에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얼마 후 주인 아주머니가 냄비에 한가득 감자탕을 준비해왔다.
양도 푸짐했고 국물이 끓으면서 구수한 냄새가 입맛을 돋구였다.
“실장님. 여기 감자탕은 한국에서 먹던 것과 똑같은 맛인데요.”
“맛을 제대로 살려냈군요.”
“정말입니까? 그렇게 칭찬을 해주시니 주인 아주머니도 기뻐할 거 같네요. 제가 한국을 자주 가보지는 못했지만 2년 전 한국을 갔을 때에 강릉에서 먹었던 감자탕 맛은 잊지못할 정도였습니다.”
오해성이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감자탕에 나와 송재동은 단번에 밥 한공기를 비웠다.
“그런데 오해성씨도 알다시피 K-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코리아타운에 있는 한인들의 협조가 무엇보다 필요할 것입니다.”
“사실 그 부분에 있어서 최근에 좀 문제가 생기긴 했습니다.”
“어떤 것입니까?”
“현재 LA 내부에서 코리아타운이 갖고 있는 지리적인 여건이 좋다보니 여기를 노리는 외부세력이나 자본들이 있습니다.”
대답하던 오해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다.
내가 코리아타운을 둘러본뒤에 여기에 돈이 묻혀있다고 생각한 것처럼 코리아타운이 미래에 상당한 투자대상이나 수익원이 될 것이라 생각한 이들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얼마 후 오해성이 설명을 시작했다.
“이전까지 코리아타운내의 한인들은 타국에서 생활한다는 것 때문에 서로 간에 믿고 의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중간에 가끔씩 불미스런 사건이 생기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인공동체를 구성해서 서로 도와가는 상황이었지요. 그러던 것이 작년부터 사태가 돌변했습니다. 리틀도쿄를 기반으로 하는 일본자본과 세력이 급격하게 여기로 진출하면서 코리아타운을 침식해가는 중입니다.”
“하지만 코리아타운의 한인들도 이것을 그냥 허용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물론입니다. 그전까지는 나름대로 방어를 했는데 지금 새로운 한인회장으로 있는 정삼택이라는 사람은 자신의 파벌을 이용해서 코리아타운을 일본에 팔아넘길려는 수작을 부리고 있습니다.”
대답을 하던 오해성이 주먹을 쥐었다.
조금 전 오해성이 말한 정삼택은 본래 코리아타운의 원주민은 아니었다.
이제까지 코리아타운의 한인회장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터전을 삼으면서 지내온 사람들이 선출되었다.
그에 반해 정삼택은 외부에서 느닷없이 뛰어들어온 경우다. 물론 외부인 한 명이 코리아타운 전체를 뒤흔들 정도는 못된다.
하지만 정삼택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상당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코리아타운내의 상가들을 사들였고 나중에는 단기간에 영향력있는 인물로 급성장한 것이다.
처음에는 코리아타운내의 한인들을 상대로 상당한 호의를 베풀었고 이것으로 단기간에 자신의 파벌을 만들었다.
뭣보다 그의 이런 모습에 대해 이전의 한인회장들도 환영하였다.
코리아타운내의 한인들은 이제까지 LA에서 한국인들을 대표할 인물이 없어서 그 위치가 상당히 낮았다.
그런데 막강한 자금력과 영향력을 가진 정삼택이 한국인들을 위해 활동하고 그 위상이 높아지자 모두들 기뻐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삼택은 그 기세를몰아 작년에는 단번에 코리아타운의 한인회장에 출마했고 당선까지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코리아타운의 한인들을 대표하는 직책에 오르자 자신의 파벌과 세력들을 이용해 반대파들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수법도 꽤나 비열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신임 한인회장으로 선출된 정삼택의 배후에 일본자본과 세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코리아타운의 한인들은 이제야 자신들이 속았다는 걸 깨달았지만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앞으로 1년 정도만 이 상태로 진행된다면 코리아타운은 완전히 일본자본과 세력에 지배받을 상황에 처한 것이다.
“제가 보기에 이것은 LA의 리틀도쿄가 코리아타운을 완전히 흡수해 자신들의 영역을 넓힐려는 계략인 것이 분명합니다. 현재 리틀도쿄가 LA와 캘리포니아에서 급부상하고 있지만 이민자들 숫자에서는 코리아타운의 한인들이 리틀도쿄보다 더 많습니다. 물론 코리아타운이 LA에서 차지하는 영역도 리틀도쿄보다 더 큽니다. 하지만 이후에 코리아타운이 일본의 리틀도쿄에 흡수된다면 미국에 있는 한인사회는 완전히 붕괴되고 말 것입니다.”
오해성의 말뜻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LA의 코리아타운은 미국에 있는 한인공동체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이곳이 박살나면 여기에 있는 수많은 한국인들은 더 이상 갈곳이 없거나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뒤에는 코리아타운을 정복한 일본인들에게 복종하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코리아타운을 개발하고 발전시켜서 막대한 수익과 가치창출을 하려는 나의 사업계획을 일본 녀석들이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리틀도쿄라. 아무래도 이번에 녀석들이 상대를 잘못 건드린 거 같습니다.”
“그들에게 비지니스의 전쟁이 실제 전쟁보다 더 무섭다는 걸 가르쳐 줘야겠군요.”
송재동을 향해 대답했다.
그리고 지켜보던 오해성의 표정에는 기대감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