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2억 5천만 달러
표정이 꽤 진지하다.
얼마 전까지 펜트하우스의 풀장과 자쿠지. 그리고 고급 스테이크를 먹으며 희희낙락하던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3시간의 휴식이 끝난 뒤 우리는 회의실에 모였다. 펜트하우스는 보통 비니지스 업무도 겸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그래서 내부에는 회의실도 있었다.
“법률자문님. 이곳의 소독상태는?”
“완벽합니다. 안그래도 오늘 한 번 더 그쪽 계통의 친구들을 불러서 점검을 했습니다.”
“그렇군요.”
송재동의 대답을 듣자 안심이 되었다.
펜트하우스에 도청장치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은 극히 드물었다. 만약 그런사태가 벌어진다면 명성높은 이곳 호텔에는 치명타다.
대신에 요즘은 다양한 도청방법들이 등장했다.
그중에 하나가 레이저를 창문쪽으로 투사시켜서 도청하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간단한 방법으로도 대응이 가능했다.
도청이 될만한 창문에 커텐을 치면 유리창의 진동주파수 자체가 변형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창문쪽에 소형 스피커를 설치한 뒤에 적당한 음량으로 틀어주면 되는 것이다.
내부의 인원들이 회의를 하는 데는 전혀 방해가 안되지만 외부에서 누군가가 레이저를 발사해서 도청하는 것 자체는 불가능 해진다.
나의 JSE-(K)의 자금을 투자해서 미국에 MCU라는 헤지펀드를 세운것은 극비사항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이것을 미리알고 도청할 가능성은 없었다.
대신 뉴욕에는 곳곳에서 정보를 수집하려는 스니퍼(Sniffer)들이 존재한다.
이놈들은 무작위로 대상을 정하고 일단 정보를 수집한다.
그 뒤에 정보가 나름 돈이 된다싶으면 관련자들에게 비싼값에 파는 것이다.
이런 스니퍼(Sniffer)들을 잘만 이용하면 내 쪽에도 이롭다. 하지만 반대의 상황이라면 골치아프게 된다.
“일단 여기서 비밀이 새어나갈 위험성은 거의 없으니 안심이군요.”
“한국에서는 보통 낮말은 새가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하는데. 여기 미국에서는 벽에도 귀가 있다는 것이 비슷한 속담이지요.”
박광석이 대답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의 말대로 모든 작전에서 중요한 것은 보안이다. 여기서부터 실패하면 아무리 좋은 작전을 세워도 소용없다.
“그런데 법률자문님.”
“말씀하십시요.”
“우리 쪽의 MCU가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월가쪽에 자금을 유통시키기 위해서는 일종의 프런트(Front)를 세워야 하는데. 그것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부분이 쉽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준비를 하기는 했습니다.”
송재동이 대답하더니 두툼한 서류철을 가져왔다. 회의실에 모인 인원들에게 배포를 하였고 하나씩 검토를 해보았다.
역시나 송재동의 솜씨는 탁월하다.
이것은 송재동 혼자만의 능력으로 된 것은 아니다.
얼마 전 송재동은 미국으로 떠났다.
그것은 나의 JSE-(K)투자가 소유하고 있는 원천기술과 특허에 대한 처리를 위해 방문한 것이다.
그 때에 송재동은 미국에서 솜씨 좋은 특허변호사를 소개받았고 모든 부분을 깔끔하게 해놓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송재동은 그 외에도 다른 업무를 통해 미국에서 지내면서 나름대로 인맥을 쌓아놓았던 것이다. 그중에는 투자관계의 업무를 위해 자금조달과 송금, 보관등에 대한 처리와 그것을 대리할 회사나 인원들에 대해서도 준비를 해둔것이다.
“이방법을 사용하면 MCU가 금융시장의 전면에 나서지 않더라도 충분히 활동할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보다시피 여기 서류에는 미국내에 있는 중소규모의 투자은행과 펀드들을 섭외해놓은 상태입니다. 그 숫자는 대략 30개. 이들이 우리 쪽 MCU를 대신해서 프런트(Front)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입니다.”
“확실히 프런트(Front)로 활용하기 위해서 미국내의 소형 투자은행이나 펀드들을 선택한 것은 좋은데. 과연 30개나 필요할지 모르겠군요. 도대체 어느 정도의 자금을 움직일 생각이기에 그런 겁니까? 기본적으로 이런 프런트(Front)-들을 내세우면 그만큼 수수료를 포함해서 비용이 상당부분 발생하는 것도 사실이고요.”
박광석이 질문을 하였다.
그도 프런트(Front)의 중요성은 충분히 깨닫고 있었다.
헤지펀드인 MCU가 전면에 나서서 단독으로 행동하면 그만큼 시선을끌게 분명하니까 말이다. 이런 경우에도 보통은 4-5개 정도의 프런트를 활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에 우리가 움직일 자금은 대략 2억5천만 달러의 수준입니다.”
“그것이 정말입니까?”
“예상은 했지만 엄청나군요.”
나의 대답을 듣고 박광석과 두 명의 후배들이 경악하고 있었다.
2억5천만 달러.
한화로 따지면 2600억에 이르는 막대한 자금이다.
“아무래도 이것은 JSE-(K)의 운명을 건 도박인 건 같군요.”
“만약에 실패했을 때 JSE-(K)가 공중분해 될 상태까지는 아니지만 엄청난 타격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2600억의 자금이라. 그 정도면 확실히 최소 30개 이상의 프런트(Front)를 사용해야 할 수준이군요. 그렇다 해도 한개의 프런트-당 8~90억의 자금을 돌리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최대한 조용히 움직이는 게 필요하니까요.”
“그야말로 닌자펀드(Ninja Fund)로군요.”
“적절한 비유인 거 같습니다.”
조금 전 박광석의 말은 핵심을 포함하고 있었다.
말그대로 닌자펀드(Ninja Fund)처럼 초기에는 조용히 움직여야 하는 것이다.
이후에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는 숨어있던 상태에서 목표를 공격하고는 은밀하게 빠져 나오는 것이다.
“이번작전의 목표와 개요에 대해 설명을 하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내 쪽으로 집중되었다.
그들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고 두 명의 후배들은 침까지 삼켰다.
2600억이란 막대한 자금이 동원되는 작전.
그들로서도 평생에 한번뿐인 기회다.
“먼저 JSE-(K)가 이번작전을 계획하게 된 가장 큰 부분은 KR-전지와 관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슈퍼배터리가 진짜로 완성된 것입니까?”
“현재 시제품이 완성된 상태이고 다방면의 테스트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테스트 과정도 순조로운 편입니다.”
“만약에 전략실장님이 말씀하신 KR-전지의 슈퍼배터리가 완성된 상태라면 이것은 전세계 배터리 시장을 한순간에 뒤흔드는 사건이 될 겁니다.”
“그것이 단순히 배터리 시장에만 한정되는 부분은 아니지요. 현재 배터리를 생산중인 10대 메이저 기업들은 대부분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기업들에 속합니다. 슈퍼배터리가 이들 10대 메이저 업체들에게 줄 충격도 상당할 겁니다. 물론 주가에도 영향을 줄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역시......!”
나의 대답을 듣자 박광석이 곧바로 이해했다.
KR-전지가 개발한 슈퍼배터리의 등장.
그것은 이전까지 전세계에서 활동하는 10대 배터리 메이커들에게 막대한 충격을 줄 것이다.
주가가 단기간에 떨어질 것은 분명한 상황.
그렇다면 이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과 수익은 막대한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부분은 공매도를 통해 10대 배터리 메이커들의 주식이 떨어졌을 때에 시세차익을 얻은 것입니다. 다만 슈퍼배터리의 등장이 10대 배터리 메이커들에게 충격을줘서 주가를 떨어뜨린다해도 저의 예측은 최대 3-40% 안팎이라고 예상됩니다.”
“그 부분은 저도 동의합니다.”
박광석의 분석에 고개를 끄덕였다.
슈퍼배터리가 시장을 강타하면서 일으키는 충격력은 그 정도로 예측된다.
이후에 KR-전지가 엄청나게 성장하면서 전세계의 배터리 시장 점유율을 급격하게 늘려가면 10대 배터리 메이커들의 주가는 더 폭락할 것이다. 다만 이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상황이다.
“10대 배터리 메이커들의 주가가 초기에 급락하는 부분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거기에서 제대로 대박을 치려고 한다면, 역시 선물쪽과 옵션이겠군요. 특히 옵션부분은 정말로 위험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10대 배터리 메이커들의 주가변동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상황이라서 제대로 해볼만 합니다.”
“그렇다면 자금의 투자비율을 옵션쪽에 70%, 선물쪽에 20%, 나머지 10%는 공매도쪽으로 진행시켜 주십시요. 다만 하나의 목표나 회사에 집중시키는 건 주변에서 눈치챌 가능성도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2000억 이상의 자금이 특정회사의 주식과 옵션에 집중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10대 배터리 메이커들의 주식과 옵션을 상대로 적당히 분산시키는 것이 좋겠군요.”
“그리고 우리가 준비한 30개의 프런트(Front)를 이용해 후방에서 조정한다면 상대가 눈치챌 시간도 없이 자금이 스며들수 있을 겁니다.”
“이거야말로 우리들이 월가(Wall Street)를 마음껏 농락하는 수준이군요.”
“어쩌면 여러분들의 생애에서 단 한번밖에 없는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위험부담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는 한국과는 다른 곳이니, 하지만 성공했을 때의 이득은 JSE(K)를 포함해서 여러분들에게도 상당할 것입니다.”
“이미 전투준비 완료입니다.”
“까짓것 해보자구.”
모두의 눈빛이 야수처럼 변했다.
바로 이거다.
내가 원하는 모습이다.
***
작전시간은 앞으로 한달.
30일안에 승부를 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30일의 작전기간에는 KR-전지(株)가 슈퍼배터리를 공식적으로 출시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KR-전지쪽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한차례의 흔들림이 있기는 했지만 정대현 사장이 잘 극복했습니다.”
“아무래도 기술적인 부분과 개발에서 벌어진 상황같군요.”
“슈퍼배터리의 개발이 100% 순조롭게 될 거라는 낙관은 없었지만 그래도 정대현 사장이 초기에 발견했기에 다행이지요.”
송재동을 향해 대답했다.
슈퍼배터리의 개발.
이것은 현재까지 개발된 리튬-이온 배터리를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소재와 재료가 리튬-이온 배터리에 사용되는 것과 비슷할 뿐 제작공정과 개발은 완전히 틀렸다.
정대현 사장이 처음에 내가 제공한 슈퍼배터리의 원천기술과 설계부분에 대해 당황한 것도 이런 이유때문이다.
전세계의 배터리 공학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동되는 의견. 그것은 현재의 리튬-이온 배터리의 축전용량과 효율은 한계에 도달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결정적인 헛점이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개발된 리튬-이온 배터리의 대부분이 축전지에 전기를 충전하고 보관하는 방식을 1차원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KR-전지에서 개발한 슈퍼배터리의 경우에는 다층구조를 통해 전기를 충전하고 보관하는 방식이다.
그야말로 배터리 기술의 혁명적인 개념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재까지의 인류가 경험하지 못했던 신기술이었고.
뛰어난 공학자였던 정대현 사장마저도 개념을 이해하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개발과정에서 벌어진 크고작은 사고와 실패들.
얼마 전 내가 KR-전지(株)를 방문했을 때. 연구실에서 날밤을샜던 정대현 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피곤에잠겨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후줄근한 모습.
하지만 눈빛만은 제대로 살아있었다.
그가 입고 있던 실험복의 일부분이 탄 흔적도 보였다.
이틀 전에 슈퍼배터리의 개발을 위해 실험하던 중, 배터리에 급격한 화재가 발생해서 그의 실험복에 옴겨붙은 것이다.
그 외에도 정대현 사장이 슈퍼배터리를 위해 쏟아부은 정성은 상당할 수준이었다.
진정한 공학도의 자세와 모습.
정대현 사장의 숨겨진 내면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각고의 노력끝에 완성된 슈퍼배터리.
하지만 중요한 부분이 남았고 끝난 건 아니다.
슈퍼배터리가 단기간에 개발된 것에 대해 나뿐만 아니라 하시(AI)-녀석도 감탄했다.
[휴먼 엔지니어(Human Engineer) 치고는 제법이네]
완성된 슈퍼배터리를 향해 하시(하이퍼 시스템)녀석이 툭 내뱉은 말이다.
무미건조하고 간결한 문장에 불과하지만 저것은 상당한 칭찬의 수준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엔지니어를 구석기 시대의 원시인쯤으로 치부하는 녀석이다.
때문에 정대현 사장의 경우에는 하시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받은 셈이다.
정대현 사장이 혼신의 열정으로 슈퍼배터리를 개발했으니 이제는 내 쪽에서 보답해줄 차례다.
그것은 앞으로 전세계의 배터리시장과 전기산업을 휘어잡을 KR-전지(株)의 화려한 오프닝 이벤트를 치뤄주는 것이다.
그것도 전세계 경제의 중심이라는 미국에서.
그리고 전세계 금융의 중심이라는 뉴욕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