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새로운 목표
“지금까지의 업무보고를 잘 들었습니다. 유비콘이 점점 더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라서 저와 JSE-(K)투자에서도 기뻐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최병관이 고개를 숙였다.
사적이 자리에서는 최병관이 나보다 나이도많고 해서 격식없는 사이다.
하지만 회의에서 나는 유비콘 최대 지분소유자의 대리인으로 온 것이다.
여기에모인 임원들 중에 핵심은 이전 유비콘이 벤처동아리로 활동할 때에 팀원으로 있었던 인재들이다.
지금은 유비콘의 임원으로 승진했고 그들도 현재 막대한 부를 손에쥔 상태다.
그 외에 유비콘이 테헤란로에 자리를 잡으면서 새로 충원된 임원들도 있었다.
이것은 나름대로 좋은 현상이다.
그럴 것이 사장인 최병관부터 시작해서 핵심 임원들이 모두 프로그래머 출신이다.
그래서 경영의 전문성이 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새로 충원된 임원들이 보완하고 있었다.
한편 유비콘은 아직도 기술개발을 통해 더욱더 커져야하기 때문에 기술자와 프로그래머들이 회사의 중심을 맡아야했다.
벌써부터 매너리즘에 빠진 전문경영인 체제는 오히려 회사의 발전동력 자체를 갉아먹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유비콘은 마이포토-앱의 성공신화를 바탕으로 엄청난 성장을 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마이포토-앱은 이후로도 유비콘에 있어서 상당한 수입원이 될 것이고, 유비콘-하면 마이포토-앱이 연상될 정도의 위치를 구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전세계의 IT-업계에서는 이것을 반짝신화나 반짝스타쯤으로 평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흐음!”
나의 말에 최병관이 깊은 신음을 삼켰다.
그자신도 유비콘에 대한 외신기사들을 틈틈이 챙겨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유비콘에 대한 기사내용은 외신기사와 국내기사들이 좀 틀렸다.
국내언론사들은 시청자와 구독자들에게 국뽕감성을 최대한으로 자극하려고 했기에 유비콘의 성공이 전세계의 IT-업계와 판도를 바꾼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유비콘의 성공이 대단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지 모바일앱의 분야에서 대박히트를 한 것이고, 전세계에서는 메이저급의 거물들이 여전히 존재했다.
국내언론사들의 기사와는 다르게 외신 기사들에서는 유비콘의 성공에 대해 나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한번의 성공.
하지만 앞으로 좀 더 두고봐야 한다.
유비콘의 성공을 일정 부분 과소평가하는 내용이긴 하지만 이 부분이 입에 쓴 약이다.
“확실히 한국이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저평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개발된 많은 프로그램들이 주로 국내용인 경우가 많았기에.”
“국산 프로그램들이 과거에는 무단복제와 불법카피 때문에 망하고 그 뒤에는 컨텐츠 부족으로 제대로 힘조차 쓰지못한 상태였으니 말이지요.”
두 명의 임원들이 대답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프로그래머 출신이라 이제까지 한국의 소프트웨어 산업이 얼마나 많은 고충을 겪었는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번에 개발된 마이포토-앱의 경우에는 보안수준이 엄청나기 때문에 외국의 모바일앱 개발자들도 감탄하고 있더군요.”
“솔직히 프로그램의 보안수준은 중국놈들이 깰수 있으냐, 없느냐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었지.”
“중국의 해커놈들. 그야말로 소프트웨어 산업을 좀먹는 기생충같은 놈들이지.”
“듣기로는 중국정부에서 일부러 해커들을 육성해서 소프트웨어를 복제시킨다는 소문도 있을 정도니까.”
임원들이 저마다 의견을 내놓았다.
중국이 전세계 소프트웨어 산업을 망치는 주범인 것은 사실이다.
미국정부 마저도 이런 중국정부의 행태에 불만을 표시하고 제제를 가하려고 하지만 제대로 못하는 수준이다.
“유비콘은 이후로도 중국시장쪽은 제외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득보다는 실이 더 많고, 현재 중국의 소프트웨어 복제와 카피판의 난립은 유비콘의 수익에도 치명타를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시장가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인데.”
“그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인들 중에 상당수는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은 공짜로 얻는 거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또한 중국내의 네티즌 인구가 많다고 해도 상당수는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을 제값주고 구입할 수요층이 적다는 것도 이유입니다.”
“전략실장님의 말도 충분히 납득됩니다. 16억 인구의 수요시장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이 그냥 공짜로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을 얻을려고 눈이 벌개져 있는 상황이니. 실질적인 수요에 있어서는 한국보다 적고 오히려 동남아시아쪽보다 더 열악한 상황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대답에 임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리해서 중국시장에 진출해서 손해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특히 소프트웨어와 프로그램은 중국인들의 공짜 습성상 치명타를 당할 수도 있었다.
일단 이것으로 유비콘의 시장개척에서 중국은 제외하기로 합의가 되었다.
“일단 첫 번째로 제가 여기에 참석한 이유 중에 하나는 해결 되었군요. 유비콘의 해외시장 개척에서 중국은 일단 제외시킨다는 것.”
“다른 것이 있습니까?”
임원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들고왔던 검은색 슈트케이스에서 서류를 꺼내었다. 임원회의에 참가한 직원이 그것을 차례로 배분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앞으로 유비콘이 해야 할 새로운 도전 목표입니다. 알다시피 유비콘 같이 이름조차 없던 벤처에서 대박히트를 친뒤에 불과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업계에서 사라지는 IT-기업들은 상당히 많습니다. 하지만 유비콘이 그런 반짝스타의 IT-기업이 되는 것을 원치는 않습니다. 지금 나눠드린 서류들에는 현재 유비콘이 갖고 있는 기술과 능력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분야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예전에 마이포토-앱을 개발하던 것에 비해 좀 더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인원들의 도움도 받아야 합니다.”
“모바일 게임이라. 이게 가능합니까? 현재 모바일게임 분야는 상당부분 포화상태인데.”
임원중에 새로 들어온 김종진이 말했다.
그는 유비콘이 대박 친뒤에 새로 들어온 임원이었고 전문경영인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내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SKY-명문의 경영학과 졸업생이고 미국에서도 관련분야를 전공했다.
김종진의 말이 틀린 건 아니다.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그리고 모바일앱이 보편화되면서 가장 많은 콘텐츠와 개발이 이루어진 분야가 모바일게임 쪽이다.
이 분야는 모바일앱 중에서도 단기간에 레드오션(Red Ocean)이 되어버린 상태다.
이전 헝그리버드의 대성공이후.
그리고 헝그리버드가 제대로 된 후속타없이 기울어 지면서 지금은 수많은 모바일게임들이 빅히트작 없이 고만고만한 수준으로 난립하고 있었다.
따라서 김종진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김종진의 경우에는 혁신적인 기술발전이 레드오션을 단번에 블루오션으로 만들수 있다는 개념까지는 몰랐다.
그는 처음부터 기술전문이 아니니까.
그에 반해 혁신적인 기술과 프로그래밍 소스를 경험했던 다른 임원들은 나의 말에 흥미를 나타냈다.
일순간 그들의 얼굴에서 열정이 솟아올랐고, 눈빛이 달라진다. 역시 유비콘은 아직까지 젊고 활기찬 상태다.
“조금 전 모바일게임에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과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마이포토-앱에 사용된 3D 랜더링 기술을 적용한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물론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겁니다. 모바일게임에 적용시키기 위해서는 개량과 변경이 필요하니까요. 또한 유비콘의 경우에는 모바일게임을 만들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제안도 해놓았습니다.”
임원들이 서류를 검토했다.
“시나리오팀과 디자인팀. 그리고 게임 프로그램 개발팀을 따로 구성한다는 부분. 이것은 독특하군요. 모바일게임을 빨리 개발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게임개발사를 인수합병하는 방법도 있는데 말이지요.”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는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존의 게임개발회사는 매너리즘에 빠졌고 신기술을 이용한 게임개발에는 맞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예전의 관습을 그대로 따라할 뿐 혁신적인 게임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에 반해 게임개발에 필요한 인재들을 따로따로 구성하고 그들에게 독립적인 재량권을 맡기면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혁신적인 모바일게임들이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 뭣보다 유비콘이 보유한 모바일용 3D 랜더링 기술은 그들에게 날개를 달아줄 테니까 말이지요.”
나의 말에 최병관 사장을 포함해 임원들의 표정이 상기되었다. 3D 랜더링을 이용한 모바일게임은 혁신적인 사건이 될 것이다.
이미 마이포토-앱을 통해 구현된 3D 랜더링은 그 사실감과 입체감으로 엄청난 찬사를 받았다.
그것이 이제 모바일게임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이제까지 수많은 모바일게임은 기껏해야 2차원 평면이다.
스마트폰의 화면은 점점 더 커지는 추세이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을 즐기는 사용자들의 숫자는 급격하게 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만족시키는 모바일게임은 좀처럼 없었다.
이미 수요는 막대할 수준이다.
그리고 모바일게임은 지속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부분이다. 그것도 전세계적인 히트를 친다면 유비콘으로 엄청난 수익이 매달 들어오는 것이다.
이것은 유비콘이 전세계적인 기업이 되는데에 필요한 귀중한 캐쉬카우(Cash Cow)의 역할을 할 것이다.
***
활주로를 힘차게 이륙한 뒤에 공중으로 솟아오르는 국제선의 모습이 보인다.
하루에도 수백대의 여객기들이 인천공항으로 이륙과 착륙을 반복한다. 그런데 공항물가 비싸다는 말이 헛소문은 아니다.
“젠장. 서울 종로쪽의 먹자골목에가면 이런 한식세트 6-7000원에 먹을 수 있는데. 여기는 대체 얼마를 받는 건지.”
“하하. 돈 있는 분이 이거 얼마 한다고 째째하게.”
“그러는 전략실장님도 조금 전에 비싸다고 투덜거린 거 같은데요.”
박광석의 말에 나도 모르게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내수중에 돈이 넘쳐날 정도로 남아돌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천공항에 있는 한식당의 메뉴가격이 엄청난 바가지인 건 사실이다.
아침일찍 오느라 배고파서 먹는 것일 뿐.
맛도 그다지 별로다. 그럼에도 설렁탕 한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박광석이 시계를 확인했다.
“그나저나 이 두놈은 왜 이렇게 늦는 건지. 해외여행이 처음도 아니면서 말이야.”
“그래도 그 두 사람이 자주간 것은 아니죠.”
“그렇긴 합니다만.”
“앞으로는 자주 다닐거니까 나중에 되면 익숙해 질겁니다.”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도 해외를 뻔질나게 다닌건 아니다. 돈이 넘쳐나는데도 이제 겨우 시간을 내어 미국으로 가보는 거다.
그렇다고 완전히 놀러가는 것도 아니다.
정확히는 일하는 거 반, 휴양하는 거 반, 정도의 상황이지만.
“그런데 전략실장님이 말한 미국의 월가를 한바탕 흔들어 본다는 건 무슨 뜻입니까?”
“솔직히 흔들어 본다는 건 좀 과장된 것이고 그것보다는 조용히 돈이나 먹고 나왔으면 하는 게 더 큰 바램이지만 말이지요.”
“뭔가 재밌는 상황인데요. 혹시 KR-전지와 관계가 있는 겁니까?”
“어느 정도 연관있기는 합니다.”
나의 대답에 박광석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얼마 전 KR-전지의 지분과 주식을 매수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탁월한 솜씨를 발휘했다.
이제는 무대를 다른 곳으로 옮긴다.
미국의 월가(Wall Street)-
세계 최대의 금융과 증권시장의 메카.
한국의 증권시장은 월가에 비한다면 마이너리그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월가에는 전세계의 유명한 기업들의 주식이 모두 거래된다. 심지어는 미국과 반목하는 중국회사의 주식들까지도 거래될 수준이다.
정치적으로는 미국정부와 중국정부가 서로 대립하고 패권을 겨루는 사이지만 경제와 금융에서는 그런 것이 없다.
수익과 이득이 생긴다면 중국회사의 주식과 지분이라도 얼마든지 미국의 금융시장에서 거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얼마 후 약속장소로 박광석과 같이 활동하는 2명이 도착했다.
숨까지 헐떡이는 모습을 보니 전날에 미국간다고 제대로 잠조차 못잔거 같다.
하긴 나도 좀 설레긴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