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00조 재벌-35화 (35/300)
  • # 35

    일타쌍피

    ‘씨팔, 진짜로 잘못 걸린 건가?’

    박대종이 눈알을 굴렸다.

    김태천은 박대종의 표정을 통해 제대로 먹혀들고 있다고 확신했다.

    “가져와라. 변상철하고 작성한 대출계약서하고 서류를 포함해서 전부. 제한시간은 15분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여기 변상철이 너에게빌린 돈과 이자까지 합쳐서 3억5천만 원이다. 5만 원짜리 빳빳한 지폐로 채워넣었지.”

    김태천이 들고온 슈트케이스를 열었다.

    그것을 보자 박대종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얼마만에 건진 대어인데.

    저걸받아도 손해는 아니다.

    원금이 3억이고 빌려준돈의 이자로 단기간에 5천만 원이나 챙기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면 10억, 아니 20억 이상이 눈앞에서 사라진다.

    “이 정도로 통할 거 같냐? 너 내가 누군지 알아? 사채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박대종이야. 주먹 좀 쓴다고 설치는 거 같은데. 이런 협박에 쫄릴거 같았으면 오래전에 이바닥 떠났어.”

    박대종이 받아쳤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김태천이 피식 냉소를 지었다.

    “제법 반항하는데 언제까지 가능할까? 그러고 보니 너의 딸년이 강남의 해성고등학교 다니지? 지금 1학년이고. 보니까 네가 데리고 있는 애들보내서 학교수업 마치면 곧장 데려오던데. 오늘도 그럴까?”

    “이 새끼 무슨 수작이야?”

    “의심되면 네가 학교에보낸 똘마니들한테 확인해봐.”

    “이 새끼들아. 뭐야? 당장 두놈에게 전화걸어봐.”

    박대종의 외침에 최병규가 서둘러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음만 갈뿐 상대편에서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형님. 애들이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너의 똘마니들이 왜 전화를 안받을까? 뭔일이 생겼나 본데. 그렇다면 너의 딸은 어떨까?”

    김태천의 말에 박대종의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서둘러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어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지만 반대편에서 받지를 않는다.

    지금은 수업이 끝난 시간.

    전화를 못받을 이유가 없었다.

    절망한 박대종이 다시 전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사람이 말하면 좀 믿어야지.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해봐. 대신 너무 자주하면 그쪽에 있는 애들이 성질나서 너의 딸에게 무슨짓을 할지도 몰라. 괜히 애들 성질 돋궈서 좋을 거 없으니까.”

    박대종의 손에서 휴대폰이 떨어졌다.

    이제 자신이 누구에게 걸렸는지 제대로 깨달은 것이다.

    상대는 자신의 힘으로 대적할 레벨이 아니었다. 여기서 더 이상 반항하면 자신의 딸이 무슨꼴을 당할지는 뻔했다.

    지금까지 박대종이 사채업계에서 살아남은 건 한 가지 교훈을 잘 지켜서였다.

    상대를 봐가면서 덤벼라.

    손안에까지 들어왔던 10억, 20억의 돈이 한순간에 날아가는 기분이지만, 딸의 목숨, 그리고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중한 건 아니다.

    이렇게 된이상 재수 없게 똥밟았다고 생각해야 한다.

    더 이상 미련을 가질 수 없었다.

    그 때 김태천이 박대종을 향해 못을 박듯이 말했다.

    “이제 5분 남았다. 서두르는 게 좋을 걸.”

    “알겠으니 기다려라. 그리고 제발 내딸만은 건드리지마라.”

    “그거야 당신 하기에 달렸지.”

    김태천이 냉소했다.

    ***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정말로 꿈만 같아.”

    박선아의 양볼이 수줍게 변하면서 몸까지 배배꼬았다.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고 조금 전의 5시간이 꿈같이 느껴졌다.

    너무나도 잘생긴, 연예인보다 더 멋지고 잘생긴 오빠와 같이보낸 5시간의 데이트.

    자신이 그런 오빠와 인연이되어 데이트를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사진이라도 찍어둘걸.”

    이제와서 급 후회가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저기 다니고 이것저것 사먹고, 그리고 시간을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빠가 내볼에 뽀뽀해 주었어. 아앙~ 상현오빠. 따랑해~”

    그녀의 눈빛이 몽롱하게 변했다.

    그래도 해성 고등학교 근처에 산다고 했으니 언젠가 다시 만날 희망은 있었다.

    하지만.

    ‘저 애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앞으로 해성고등학교 근처는 가지 말아야겠다.’

    정확히 5시간.

    박대종의 딸인 박선아와 5시간동안의 데이트를 해줬다. 애비인 박종대는 파렴치한 놈인데 그딸인 박선아는 꽤 순진했다.

    거기다 자신이 지금 다니는 학교에서 따돌림 당하고 있다는 하소연도 털어놓았다.

    그래서 간단하게 몇 가지를 충고해줬다.

    만약 학급에서 누군가가 시비 걸면 쓸 수 있는 대응방법과 욕도 가르쳐 주었다.

    보통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한쪽이 진짜 막가파 수준으로 나가버리면 나머지는 깨갱한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여자일진이 되란 것은 아니고.

    아무튼 그래도 자신감을 좀 찾은 듯한 모습이니 앞으로는 잘해 나갈 거 같다.

    잠시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중.

    선아가 스마트폰 전원을 켰다.

    데이트에 방해된다고 내가 스마트폰 끄라고 했더니 그 말도 순순히 받아들일 정도로 완전히 푹 빠져 있었던 상태다.

    “어머~ 아빠한테 전화가 이렇게 많이왔네.”

    박대종 녀석. 자기딸이 진짜로 납치된 줄 알고 엄청 전화를 해댄거 같다.

    “아빠. 무슨 일인데 전화를 10통이나 한 거야?”

    “내딸 선아야. 무사한 거야?”

    “당연하지.”

    “진짜야?”

    “정말이야. 그런데 아빠 왜 울고 난리야?”

    “그러니까, 그게 아무일도 아니야. 그냥 내딸 목소리 듣고 싶어서.”

    박대종이 울먹이고 있었다.

    지금쯤은 세상에 엄청 무서운 존재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최소한 상대를 봐가면서 덤비겠지. 박대종이 사채업자를 그만두고 새사람이 된다는가 하는 건 애초부터 바라지도 않는다. 최소한 나에게 방해만 되지 않으면 상관없으니까.

    그나저나 박대종과 앞으로 더 마주칠일은 별로 없을 거 같으니 녀석과의 악연도 이것으로 끝이네.

    박선아가 떠나는 걸 멀리서 지켜보던중 스마트폰에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태천으로부터 온 거다.

    내용은.

    [임무완료]

    역시 이런 일에는 적격인 인물이다.

    ***

    “고기 많으니까 천천히들 드세요.”

    “이거 아주머니 덕분에 우리들이 다 호강하고 있습니다.”

    “이사람아. 이제부터는 건물 관리인님.”

    “하하. 그런가.”

    사람들의 웃음소리.

    떠들썩한 모습을 보며 어머니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에게 엄청난 것을 해드리고 싶지만 본래 소박하신 분이라 이 정도가 적당한 거 같다.

    건물에 세들어있던 입주자들은 드디어 공포감에서 해방되었다.

    최순자의 건물이 사채업자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에 세입자들은 전전긍긍했던 것이다.

    최순자가 악덕 건물주인 건 사실이지만 사채업자에 비할바는 못되니까 말이다.

    그녀가 세입자들에게 악녀처럼 비쳐진 것은 건물주의 권리를넘어 엄청난 갑질을 해왔기 때문이다.

    월세를 꼬박꼬박 내는 세입자들을 상대로도 온갖 시비를 걸었고 자기마음에 안들면 밤에도 난리친적도 있었다.

    그녀로서는 어차피 자업자득의 상황이다.

    최순자의 아들인 변상철이 등신짓해서 사채업자에게 넘어갈 뻔했던 건물.

    그것을 나의 JSE-(K)투자는 총 6억5천만 원의 비용으로 매입했다.

    시가 15억짜리니까 거의 반가격이다.

    그러고 보니 반값 건물인가?

    이제 세입자들은 건물주인이 사채업자에서 JSE-(K)투자라는 회사로 바뀌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어차피 JSE-(K)투자가 내 꺼라서 이건물은 내 것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그런 걸로 뻐기는 건 허접들이나 하는짓이다.

    대신 내가 선택한 것은 나의 어머니를 JSE-(K)투자에서 지정한 건물 관리인으로 내세운 것이다.

    처음에 이 제안을 했을 때 어머니는 잠시 망설였지만 흔쾌히 수락했다. 뭣보다 어머니는 건물내의 세입자들과 사이가 좋다.

    그리고 어머니가 건물관리인이라는 사실에 세입자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건물을 JSE-(K)투자에 넘긴 최순자와 그의 아들인 변상철은 그래도 빈털터리가 아닌 3억이라도 챙겨서 지방으로 내려갔다.

    그 정도 돈이면 앞으로 그럭저럭 살아가겠지.

    더 이상은 마주칠 일이 없을 거 같겠지만.

    나로서는 이 건물을 통해 월세수입을 얻겠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앞으로 몇 년 후면 시가 15억짜리가 몇 배로 상승할 것은 분명한 일.

    푼돈인 월세를 더 받자고 세입자들 쪼아봐야 시간낭비일 뿐이다.

    그리고 건물관리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맡길 예정이다.

    세입자들과 친한 어머니가 좋아하는 소일거리니까.

    세입자들과 사이 좋은 어머니라 그런지, 오늘은 꽤 통크게 쏘시네.

    건물관리인 된 기념으로 세입자들을 모아놓고 제대로 고기파티 중이시다.

    여동생인 지애도 오늘은 어머니를 돕는다고 이래저래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다.

    그리고 세입자 가족들 중에 남편을둔 아주머니들이 오늘 회식에 필요한 여러 가지도 준비했다.

    “여기. 오빠를 위해 내가 고기구워 왔어.”

    지애가 내 앞으로 오더니 은박지로 된 쟁반을 내밀었다.

    “오빠를 위해 구워왔다고 하는데, 이거 완전히 다 탄거아냐?”

    “지금 여동생이 정성스럽게 구워온 고기를 향해 반항하는 거지?”

    이런. 저 애의 미간이 꿈틀거리는 순간이면 좀 위험한데.

    “반항하긴? 와아. 안그래도 고기가 땡기던 상황이었는데, 잘 먹겠습니다. 여동생님.”

    “역시 말 잘듣는 오빠가 있어서 너무 햄복해~”

    지애가 귀엽게 웃더니 식당으로 달려갔다.

    [강민 유저의 여동생이 가져온 고기를 보니 여기저기 타버렸고 암유발 가능성이 높은 물질이 가득하군요.]

    “그렇다고 안먹으면 여동생한테 응징당할 수도 있어.”

    [육체적조건, 파워, 스피드, 순발력, 모든 부분에서 당신이 여동생보다 앞서고 있습니다. 격투대결을 펼치면 당신의 승리 100%. 그런데 왜 겁을 내고 있습니까?]

    이 그지 같은 AI(인공지능)놈-

    니 눈에는 내가 여동생보다 싸움을 못해서 응징을 당하니~뭐니 이딴소리 하는 걸로 보이냐?

    이놈에게 오빠와 여동생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해주지?

    에휴, 포기다.

    “그런데 하시야. 암유발 물질이 몸속에 들어와도 그거 나노봇으로 소독 가능한 거냐?”

    [단기간에는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충분히 중화시킬 수 있습니다. 나노봇의 위력을 물로 보시는군요]

    “그렇다면 까짓것 먹어야지. 암유발 물질? 나노봇으로 중화시키면 돼니까. 그런데 고기가 좀 타기는 했지만 맛은 좋네.”

    [여동생에 대한 해석...... 불가!]

    당연히 안되지.

    네가 평생가도 못할 거다.

    원래 여동생이란 환상종이거든.

    그런데 이거 일본 오타쿠 놈들이 한말아냐?

    ***

    “세연이 때문인가? 나도 모르게 에스프레소 중독이 되어가네.”

    벌써 몇잔째지?

    처음에는 에스프레소의 한약처럼 쓴맛이 별로라서 입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에 몇 번 먹다보니 왜 커피 매니아들이 에스프레소를 좋아하는지 알 거 같다.

    요즘은 강의시간 중간에 시간이 빌 때에, 그리고 학교에서 시간이 날 때에는 카페에 와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이것저것 필요한 일들을 하는 게 많아졌다.

    펼쳐놓은 노트북으로 들어가서 외신기사들을 검색했다.

    외신기사들 중에서도 주로 IT-관련이나 전자제품에 대한 기사들과 뉴스들을 검토했는데 역시나 예상대로다.

    사전 노이즈 마케팅은 제대로 성공하고 있었다.

    뭣보다 속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생각과 보통 일반 IT-유저들의 견해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었다.

    전문가들의 주장은 슈퍼배터리는 불가능.

    현재의 기술로서 절대로 나오기 힘든 것.

    그에 반해 일반 IT-유저들은 슈퍼배터리는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또는 좃문가들이 뭘 알아? 꺼져! 이런 반응들이 상당했다.

    솔직히 IT-유저들의 입장에서는 평소에도 배터리 용량이 후달리고 사용시간이 부족해서 애먹는 경우도 많았으니 말이다.

    따라서 슈퍼배터리가 나온다면 그야말로 혁명이다.

    현재까지 나온 최신형 노트북의 배터리도 사용시간이 많아 봐야 10시간도 안된다.

    그것도 동영상 돌리고 이것저것 프로그램 돌리면 더 줄어드는 상태.

    그런데 이전보다 5배나 사용시간이 연장된다면 대략 50시간이다.

    노트북 사용자나 스마트폰 사용들에게는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지.

    어쨌든 슈퍼배터리 열풍을 일으킨 것은 나름 성공한 것 같고.

    그렇게 기사들과 뉴스를 보던중.

    한 가지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속칭 IT-전문가들이 슈퍼배터리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라면?

    이거 잘하면 엄청난 대박이 될 수 있겠는데.

    그야말로 일석이조.

    일타쌍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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