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5시간동안 놀아주기
“전략실장입니다.”
“전략실장님. 김태천입니다. 학교 뒷골목에 그렌져를 주차시키고 있던 똘마니 2명은 처리했습니다. 마취총 2발로 깨끗하게 잠재운 상태라 한동안은 차안에서 골아떨어져 있을 겁니다.”
“역시 솜씨가 탁월하시군요.”
“저야 예전에 하던 솜씨를 발휘한 거 뿐인데, 전략실장님은 여고생하고 몇 시간은 놀아줘야 하는데 잘 해내실수 있겠습니까? 다만 귀여운 여고생이라면 오히려 즐거운 시간이겠지만, 상대가 좀.... 하하!”
“일단은 이것도 일이니까 할 수 없지요. 그런데 몇 시간 정도면 될 거 같습니까?”
“최소 5시간.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맛난 거 좀 사주고, 커피 같이 마시고, 영화관도 같이가고 그러면 여자애도 심심하지는 않겠지요.”
“제가 보기엔 그 여고생은 전략실장님하고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시간가는 줄 모를 거 같군요.”
“설마 그 정도까지?”
“제가 장담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박대종이 이후에 자기딸에게 연락하려고 할 겁니다. 그 때 여자애가 전화를 받을 수 없게 해주십시요. 전략실장님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실 거 같고. 그럼 좋은 시간 되십시요.”
“대놓고 악담하시는군요.”
“하지만 이쪽은 박대종과 똘마니들을 상대해야 하니까요. 나름 익숙한 일이라 놈들을 다루는 건 충분히 가능합니다.”
“아무튼 그 부분은 조심해 주십시요. 만약에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으면 곧바로 비상호출을 하십시요. 그 때는 제가 직접 나설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김태천이 전화를 끊었다.
지금쯤 학교 뒷골목에서 차를대놓고 박대종의 딸 박선아를 기다리는 똘마니 두 명은 완전히 뻗어버린 상태.
방해물은 완전히 사라진 상태다.
얼마 후 수업을 마치고 교문쪽으로 오는 한 명의 여고생이 보였다.
사진으로 본 것보다 더 그렇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5시간이라, 과연 버틸 수 있을까?”
잠시 심호흡을 한 뒤에 표정을 샤방샤방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평소와 다르게, 옷도 요즘 여고생들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복장이다.
이 정도면 준비는 완벽하지.
***
“대종형님. 이번에는 제대로 한 건 챙기겠습니다.”
“병규, 네가 물어온 정보가 이렇게 유용할 줄이야.”
“나중에 잘되면 저한테도 좀 챙겨주십시요.”
“당연하지. 병규 너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한테도 두둑히 넣어주마.”
“감사합니다.”
박대종의 부하들이 고개를 숙였다.
지금까지 애들데리고 푼돈이나 챙겨 먹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껀수가 걸린 것이다.
그 때 맞은 편에 있던 신입이 멋모르고 주절거렸다.
“그런데 형님. 따님을 강남 8학군 고등학교에 보낸 건 실수 아닙니까?”
“뭣 때문에.”
“그게 사실은 얼마 전 호석이와 승준이한테 들었는데, 선아가 학교에서 은근히 다른 애들한테 따 당한다고.”
“그게 정말이야? 대체 어떤 놈년들이 그래?”
“솔직히 따님이 공부를 잘한 것도 아니고, 그리고 뭣보다 얼굴이....”
“크엑! 형님 용서를.”
재털이로 정수리를 얻어맞은 신입이 나가 떨어졌다. 박대종이 일어나더니 식식거렸다.
“너 이 새끼. 야구빠따로 작살나볼래?”
“죄송합니다. 형님. 앞으로는 절대로 따님에 대해서는 말을 꺼내지 않겠습니다.”
부하가 빌어대자 식식대던 박대종이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부하의 말이 아니라 해도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딸 선아가 들어간 학교.
해성고등학교는 강남에서도 명문에 속했다. 본래는 자신의 딸이 들어갈만한 실력이 안되었지만 억지로 넣었다.
이런저런 뇌물도 좀 쓰고 해서.
하지만 부작용은 쾌 컸다.
딸의 성격이 외향적인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거기다 아무리 딸이라 해도 좀 봐주기힘든 그 외모는 다른 동급생들에게 따돌림을 받기에 충분했다.
뭣보다 해성고등학교는 강남 8학군에서도 허영심과 자부심이 강한 곳이다. 때문에 그곳 여고생들 대부분이 왕따 대상이 나타나면 가차없다.
“그래서 일부러 두녀석을 시켜서, 선아가 학교수업 끝나자마자 차태워서 데려오도록 시킨 거잖아.”
“형님. 지금 고민하실 거 없습니다. 어차피 고등학교 3년 후딱 지나가는 것이고. 선아도 명문고등학교 나왔다는 타이틀도 붙으면 더 좋죠. 그리고 거기서 명문대 들어가는 애들도 많고. 대종형님이 선아를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 걸 나중에는 그애도 알게 될 겁니다.”
“당연하지.”
안병규의 말에 박대종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녀석은 자신의 마음을 잘 읽는 부하다.
얼마 전에는 귀중한 정보도 물어오고.
이번에 변상철을 낚아서 손에넣은 시가 15억짜리 건물을 확실하게 처리만 한다면 상당한 거금이 생기는 것이다.
현재는 시가가 15억이지만 앞으로 몇 년 지나면 몇 배로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은 충분했다.
그런데 변상철 녀석은 그런 것도 모르고 덥석 미끼를 물었다.
단돈 3억이란 급전이 필요해서.
하지만 비트코인에 중독된 변상철은 사람들이 저점이라고 막 질러댈때 그냥 손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떡하든 돈을 마련해야 했고 자기 엄마가 갖고 있던 건물을 담보로 잡아서 박대종에게 돈을빌렸다.
서류처리를 비롯해 인감도장을 빼내오는 것, 그 외에 여러 가지등을 박대종은 변상철에게 코치해준 것이다. 그리고 대출계약서에 독소조항을 넣는 것까지.
“멍청한 놈. 일단 내 손에 걸리면 끝장이지.”
히죽거리던 박대종이 위스키를 잔에 부었다.
***
“그런데 정말로 되는 겁니까?”
“어머니는 저희만 믿으시면 됩니다.”
“엄마. 이사람이 박대종을 상대할 수 있다고요?”
“씨끄러. 이 병신 같은 놈아. 잘못하면 네놈 때문에 길거리로 쫓겨나게 생겼잖아.”
최순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자신이 낳고 키운 아들이지만 때려죽이고 싶은 기분이었다.
어쩜 이렇게 멍청하고 등신 같은지.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대로 가면 건물도 사채업자에게 뺐기고 자신과 아들은 완전히 쫓겨날 상황.
그러던중 구세주가 나타났다.
JSE-(K)라는 회사에서 온 사람인데.
일단 덩치부터가 위압적이다.
190cm에 이를 정도로 육중한 체구에 눈빛도 날카로웠다.
그리고 JSE-(K)에서 제안한 내용.
처음에는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어머니.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우리 JSE-(K)가 자선사업가는 아닙니다. 당신 아들 변상철이 사채업자인 박대종에게 빌린 원금과 이자 3억5천만 원을 갚아드리고, 거기에 3억 원을 더해서 현재 박대종에게 담보로 잡혀있는 건물의 소유권을 우리 쪽 JSE-(K)가 가지는 것입니다.”
“그것만이라도 해주시면 정말로 감사하겠습니다.”
최순자가 김태천을 향해 연신 고개를 숙였다.
멍청한 아들 때문에 건물은 통째로 빼았기고 길거리로 쫓겨나게 생겼는데 최소 3억이라도 건지게 생긴 것이다. 여기에 대해 변상철은 불만어린 표정이다.
“당신이 뭔데 그런 결정을 마음대로 해?”
“이것봐. 변상철.”
“뭐. 뭐야?”
김태천의 살기어린 눈빛을 대하자 변상철이 움찔거렸다.
“나를 여기에 보내신 분의 요청만 아니었다면, 넌 내 손에 피떡이 되도록 박살났을 거야. 못할 거 같아?”
김태천이 주먹을 들어보였다.
군데군데 굳은살이 박혀있는 강인한 주먹.
변상철은 저 주먹에 맞으면 이빨이 다 털리고 개박살 날 것이란 사실을 직감했다.
등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얼마 후 변상철이 완전히 꼬리를 내렸다.
“알겠습니다. 형님.”
“아무튼 이번 기회를 통해 인생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여기 있는 어머니 모시고 똑바로 살아. 이번 일 통해서 3억이라도 챙기면 지방에 내려가서 집얻고 다른 일 하면서 평범하게 사는 것은 가능하니까.”
김태천의 말에 변상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자신이 얼마나 등신짓을 해왔는지 뼛속으로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깨달음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미지수이지만.
“그런데 저기가 맞나?”
“그렇습니다.”
변상철이 김태천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행들의 앞에 주택이 보였다.
주위가 담벼락으로 둘러처졌고 위에는 침입방지를 위해 송곳들이 촘촘하게 박혀진 상태였다.
사채업자인 박대종의 집이다.
김태천이 신호를 보내었다.
그러자 변상철이 단독으로 나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흐르고 얼마 후 반대편에서 음성이 흘러나왔다.
“누구야?”
“변상철입니다.”
“너 이 새끼 왜 또 왔어? 뒈져볼래?”
“오늘은 대종형님에게 중요하게 할말이 있어서요.”
“뭔데?”
“직접 뵙고 말씀 드려야 합니다. 울 엄마가 지금 건물 대출받은 거 알고 난리치고 있습니다. 잘못하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고.”
“씨발 새끼가. 지 엄마하나 간수못하고. 알았어! 기다려봐.”
잠시 후 대문이 열렸다.
그러자 김태천이 신속하게 움직이며 열려진 대문사이로 들어갔다.
“변상철. 너는 어머니와 함께 밖에서 기다려. 어차피 네놈이 끼어들어봐야 방해만 될테니까.”
“알겠습니다.”
변상철이 대답하며 뒤로 물러났다.
동네 양아치에 불과한 변상철은 박대종이나 그 부하들을 마주대하는 것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
“이 새끼 뭐야?”
“까불지마라.”
“끄악. 내 손이...”
기세좋게 주먹을 뻗어낸 녀석이 비명을 토했다. 김태천은 상대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막은 뒤에 완전히 비틀어버린 것이다.
엄청난 악력과 힘. 190cm의 거구.
특수훈련으로 단련된 육체에서 뻗어내는 파워는 엄청났다. 동료가 한순간에 비틀거리며 바닥으로 엎어지자 나머지 놈들이 당황했다.
“여기 박대종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이거 손님대접이 형편없군.”
“네놈이 뭣 때문에 대종형님을 찾는 거야?”
“그건 변상철이 우리회사에 건물을 팔기로 했거든. 그런데 박대종이 중간에서 수작을부려 일이 꼬이게 만들었다고 하더군. 그래서 바로 잡으러 온 거지. 물론 박대종도 크게 손해볼일은 없을 거야. 다만 녀석이 순순히 말을 듣지 않는다면 꽤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만.”
“변상철 그 새끼가 감히 수작을부려?”
“시간낭비 하지 말고 박대종을 데려와. 일단 그거부터 하자구.”
“헛소리마라.”
한 명이 달려들었다.
김태천의 입가에 냉소가 스쳐갔다.
어차피 이런 놈들은 뜨거운 맛을봐야.
그리고 실력을 보여줘야 깨닫는다.
머리로는 깨닫지 못하고 몸으로 실감해야 느낌이 오는 놈들이니까.
퍽! 퍼퍼퍽! 묵직한 주먹이 달려들던 놈의 면상을 갈겼다. 코뼈가 내려앉고 얼굴이 피투성이로 변해버린 녀석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때 현관에서 벌어진 소음을 듣고 박대종이 나타났다.
“무슨 일이야?”
“형님. 저놈이.”
“변상철 녀석이 우리를 향해 배신했습니다.”
“배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박대종은은 상황파악이 안되서 멍해졌다.
하지만 지금 난입한 상대가 결코 보통이 아님은 증명되었다.
부하중에 한 명의 얼굴은 떡이되어 널브러졌고 다른한 명은 손목을 움켜쥐고 버둥거렸다. 그리고 김태천은 더 살벌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콰직- 바닥에 널브러진 녀석의 목줄기에 구둣발을 올리고 지긋이 눌렀다.
“끄억. 케케켁!”
“인간의 목이란 건 말이야. 꽤 약하거든. 이렇게 급소가 딱걸린 상태라면 단 일격으로 목뼈를 부러뜨리는 것도 가능하지.”
“......”
김태천의 싸늘한 냉소를 대하자 박대종의 등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지금은 단지 주먹으로 부하들을 박살냈지만 허리쪽으로 묵직하게 차고 있는 게 보였다.
최소 30cm길이의 사시미가 틀림없다.
만약에 상대가 수틀린다고 생각하고 저것을 꺼내든다면?
여기에 자신을 포함해서 4명이 있다 해도 모두 시체가 될 것이다.
그리고 2명은 이미 제압당한 상태.
“좋아. 네놈의 요구가 무엇인지부터 들어보지.”
“그렇다면 대화가 수월해 지겠군.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우리회사에서 변상철, 아니 변상철의 부모인 최순자로부터 지금 당신이 대출담보로 잡고 있는 건물을 인수하기로 하였다. 우리 컴퍼니의 높으신 분들이 결정한 사항이고 절대로 실패는 없다. 만약에 방해하는 놈이 있다면 모든 수단을 다 써라는 명령이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것인가? 그딴식으로 뒷배가 있다고 한다면 내가 쫄을 거 같아?”
“글쎄. 내가 만약에 너의 입장이라면 우리회사를 향해 절대 반항하지 않을 거 같은데. 뭣보다 그냥 보통회사가 아니거든. 어줍잖은 양복쟁이들이 넥타이매고 다니는 곳이 아냐.”
“......”
김태천의 그 말을 듣자 박대종은 공포를 느꼈다.
조폭들이 겉으로 합법적인 사업을 위해 회사를 차리는 경우도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박대종도 몇단계거쳐 소문을 들었다.
만약에 상대가 그런 경우라면 저놈이 말하는 회사가 어떤 것인지 짐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