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설마, 계산착오?
“아이고. 미친놈아!”
“이 노친네가 왜이래? 동네 쪽팔리게.”
“이놈아. 너죽고 나죽자.”
“이거놔. 젠장!”
아들의 우왁스런 힘에떠밀린 최순자가 바닥으로 넘어졌다. 하지만 주위에서 지켜보던 다른 사람들은 선뜻 나서지 못했다.
괜히 끼어들어봐야 나중에 좋은소리 못들은 건 뻔하니까.
그리고 아들녀석인 변상철은 동네에서 백수로 지내면서 건들거리는 놈이다.
성질머리 더럽기로 소문난 상태고.
또한 최순자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냉랭했다. 그녀가 지금까지 주변 이웃들에게 해온 짓거리가 엄청날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어딜가 이놈아!”
“씨끄러 할망구야. 그까짓것 어차피 내가 물려받을 건물이라서 내가 좀 처분했는데 뭐가 불만이야.”
변상철이 쏘아보며 외쳤다.
그러자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수근거린다.
“역시 그 애미에 그 아들이네.”
“지금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아냐.”
변상철이 노려보자 주변 이웃들이 움찔거렸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네.
하지만 좀 더 알아볼까?
근처에 차를 주차시킨 뒤에 내렸다.
“송씨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강민이구나. 주인집 아들이 엄청난 사고를 쳤나봐.”
“사고라....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니까.”
송민국이 나를 향해 설명을 시작했다.
동네백수에다가 건물주 아들이라고 놀고먹으며 뻗대던 변상철이 비트코인 한답시고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날려먹었다는 것.
그런데 이거는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최순자의 아들인 변상철에게 비트코인 미끼를 던진 것이 나니까.
현금성 자산을 모두 날려먹은 뒤에 남은 것은 시가 15억 원 상당의 건물.
하지만 이 건물은 재수 없는 건물주 최순자의 것으로 되어있었다. 나중에 저 여자가 죽은 뒤에는 아들에게 넘어갈 유산이지만 변상철이 그 때까지 기다릴 인내심은 당연히 없지. 비트코인에 중독된 변상철이 어떻게 할지는 뻔히 예상되었다.
다만 녀석이 사용한 방법이 스스로를 무덤에 던져넣었다. 비트코인에 꼬라박을 돈을 마련한답시고 녀석은 자기 엄마의 인감도장과 건물문서, 그리고 필요한 서류를 훔친뒤에 대출을 시도했던 것이다.
다만 일반 시중은행에서의 대출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녀석이 다급한 마음에 선택한 것이 바로 사채업자.
그런데 제법 지독한 놈한테 걸린 거 같다.
어차피 자업자득이라 그닥 동정심은 안생긴다.
스스로 벌인 실책이니 본인이 책임져야지.
“그런 일이 있었군요.”
“어차피 저 여자한테는 불쌍하다는 생각도 안들지만 이 건물이 사채업자한테 넘어가면 그것대로 골치아플거 같은데.”
송민국의 근심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최순자가 건물주로서 악독하게 행동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채업자 놈은 더 지독할 것이 뻔하기에.
그리고 변상철 저 멍청한 놈 때문에 내 계획에도 좀 차질이 생겼다.
아닌가?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겠네.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싼가격에 이 건물을 먹을 수 있으니까.
***
“그렇게 된 상황이군요.”
“예. 하지만 이 새끼들 진짜로 날강도 같은 놈들입니다. 시가 15억짜리 건물을 단돈 3억에 먹을려고 하니까요.”
“하지만 스스로 함정에 빠진 변상철이 멍청한 것이니.”
“그렇긴 합니다.”
김태천이 나를 보며 싱긋웃었다.
조사를 하면서도 변상철이 얼마나 등신인지를 발견하고 한숨까지 나왔을 거다.
사실은 나도 변상철에게 미끼를 던졌지만, 녀석이 이 정도까지 등신짓을 할 줄은 몰랐으니까.
이건 아무래도 계산 착오인가?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변상철에 대한 것은 이미 볼장 다봤고. 녀석에게는 더 이상 관심 없다.
문제는 다른 데 있으니까.
“변상철 스스로 하이에나를 불러들인 거군요.”
“아마도 평소에 비트코인 한다고 주위에 떠벌리고 다녔으니, 이런놈은 맛좋은 사냥감에 불과하죠.”
“그리고 시가 15억짜리 건물을 3억에 꿀꺽하기 위해서쓴 방법들은 역시나 놈들의 고전적인 수법들이군요.”
“그렇습니다. 매달 이자율이 높은 것은 물론이고. 지금 내놓은 건물들을 다른 사람들이 사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그리고 설령 운 좋게 누군가에게 팔렸다해도 대출금 받는 걸 거부하면서 시간을 질질 끌것입니다.”
“시간을 끌수록 원금에 이자는 더 불어날 것이고.”
“사채업자들이 다른 사람의 건물을 싼값에 먹기 위해 쓰는 수법들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여기에 끼어들 생각이십니까?”
“앞으로 몇 년 후에 몇 배로 가격이 올라갈 건물을 그냥 놔둘 수는 없지요.”
뭣보다 내가 노린 목표를 다른놈이 중간에서 채간다는 것도 용납이 안된다.
“사채업자란 것들이 겉으로는 그저 평범한 민간인 행세를 하지만. 속으로는 온갖 더러운 짓들을 다하고 다니는 놈들입니다. 뭣보다 녀석들은 그 더러운짓을 하는데에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고 자신들은 뒤로 쏙 빠지는 것이지요. 거기다 변상철은 멍청하게도 사채업자 녀석이 대출계약서에 독소조항까지 넣어 놓았는데, 그것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덥썩 사인하고 도장까지 찍은 거 같더군요.”
“독소조항이라면?”
“만약에 채무자가 제때에 이자를 내지못했을 때. 그리고 채무자가 원금을 갚을 능력이 안되었을 때. 채권자가 담보로받은 건물에 대한 처리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상호협의에 의해 원만히 처리한다는 것이더군요.”
“제법 머리를 썼군요. 변상철도 그것을 보고 좀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인데. 역시나 비트코인으로 대박을 치면 이자는 물론이고 대출받은 원금까지도 한방에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 생각 못했을지도.”
“바로 그겁니다. 일단은 당장 현금이 아쉬우니까. 그리고 자신이 비트코인 투자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서 그런 병신짓을 한 거지요. 이후에 비트코인에서 쫄딱 망하고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하는데, 담보로 잡혀있는 건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사채업자 녀석이 본격적으로 테클걸고 나오는 상황이니. 변상철 녀석도 몇 차례 담보로잡힌 건물을 팔아치운 뒤에 자신이 빌리돈을 갚아버리고 싶겠지만, 지금은 사채업자 녀석한테 완저히 코꿰인 상황이죠.”
김태천의 설명을 통해 상황파악이 완전히 되었다. 애초부터 변상철이 등신짓을 한 것이 원인이지만, 이것 때문에 내가 시가 15억 원짜리 건물을 손에 넣는데도 문제가 생긴 것이다.
사채업자는 변상철이 원금을 안갚아도 상관없으니 담보로잡은 건물만 꿀꺽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엄청 남는 장사니까 말이다.
“변상철이 구매자를 찾아서 사채업자에게 가봤자 그쪽에서는 분위기 험악하게 만들면서, 건물자체가 문제 있는 것처럼 해버릴 것이고.”
“그렇죠. 보통의 구매자라면 사채업자에게 코꿰인 건물을 그런 상황에서 손댈려고 하지도 않을 겁니다. 사채업자가 혼자 나오는 것도 아니고, 데리고 있는 어깨놈들도 몇 명 끌고 나올 텐데. 거기서 완전히 기선제압 당하는 것이죠.”
변상철 녀석.
동네에서는 제딴에 양아치처럼 하고 다니지만, 그 놈이 제대로 된 상대만나면 한순간에 깨갱이다.
“그런데 이번에 변상철을 낚은 놈이 박대종이란 놈인가요?”
“여기에 녀석에 대한 자료들이 있습니다.”
김태천이 서류를 내밀었다.
역시 조사능력이 뛰어나다.
그를 나의 조력자중에 한 명으로 넣은 것에 충분히 만족했다.
뭣보다 김태천은 현장에서 뛰면서 활약하는데 탁월한 인물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힘도 쓸 수 있고 배짱과 담력도 두둑하다.
필요하다면 보통사람은 겁내서 주저앉을 과감한 행동도 가능했다.
김태천의 이력도 독특했다.
나도 군대에서 특공연대라는 좀 빡시다는 부대에서 사병생활을 했지만 김태천은 진짜로 특수부대에서 날아다니던 인물이다.
군짬밥이라면 내가 그에게는 비교조차 안된다.
이런 그가 국가에게 버림을 받았다.
정확히는 국가를 위한답시고 떠드는 세력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의 숨겨진 사연을 알게 되고, 그의 행적을찾아 발견했을 때 직감으로 느꼈다.
제대로 쓸만한 인물이다.
처음에는 김태천을 나의 조력자로 얻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이런 인물은 다른 방법으로 거두어야 한다. 단순히 돈다발을 그의 눈앞에서 흔들어 댄다고 예, 주인님~ 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사용했고 그것은 제대로 먹혔다.
“인상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그래서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평범한 민간인의 탈을 쓰고 있다고요.”
김태천이 싱긋이 웃었다.
서류에서 확인된 박대종의 얼굴.
얼핏 봤을 때에는 꽤나 수더분하고 이웃집 아저씨같은 느낌이다.
나이는 대략 40대 후반쯤.
보통 사람이 봤을 때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거나 위협을 느끼지 않을 만큼의 얼굴인데 이런놈이 외판원을 하면서 말빨을 갖추면 세일즈왕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녀석의 눈빛에서 예리함을 감지했다. 먹이를 유인하면서 함정에 가두면,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악랄함이 있었다.
박대종의 사진을 뒤로하고 다른 것들도 살폈다. 그러던중 다른 사진이 보였다.
“박대종의 딸인가요?”
“지금 고등학교 1학년인데 박대종의 외동딸이고 녀석이 끔찍하게 아낀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솔직히 딸이라곤 하지만 저 얼굴은 도저히.”
“하하. 그렇군요.”
김태천의 생각에 나도 동의했다.
만약에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게 아니라면 30대 중후반의 아줌마가 저기에 찍혀있냐....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앞뒤 다빼고 정말로 못생겼다.
하지만 고슴도치도 자식은 끔찍히 위한다고, 박대종은 하나밖에 없는 딸을 향해 매일 우쭈쭈~ 해대는 거 같다.
“박대종이 사채업자라 해도 녀석이 평범하게 행동했다면 상관없는데. 이번에는 스스로 무덤을 팠군요.”
“뭔가 방법이 있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박대종에게 상대를 잘못고르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줘야 할 거 같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김태천이 미소를 지었다.
***
“여기가 해성고등학교. 강남의 8학군 고등학교중에 하나로군.”
정면으로 번듯하게 지어진 학교 건물들이 보였다. 강남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중에 하나였고 SKY-등의 명문대에 입학생을 많이 배출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강남의 8학군 고등학교에 그닥 관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여기에 온 것은 다른 목적 때문이다. 그나저나 풋풋한 여고생들을 보니 기분이 새롭네. 다만 여고생들이 주위로 지나가며 나를 보는 시선들이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저 오빠. 기럭지 봐.”
“모델인가봐.”
“얼굴도 가름하고 진짜로 조각같은 모습이야.”
“아이돌 연습생인가.”
주변으로 스쳐가는 여고생들의 반응을 보니, 이번작전은 충분히 성공할 거 같은 느낌이다.
현재 나의 키는 몸속에 있는 나노봇의 활성화를 통해 186cm까지 커졌다.
이전에 176cm의 키에서 10cm나 더 커진 것.
단순히 키만 커진 게 아니다.
꾸준히 아침마다 조깅을 하며 몸을 단련하다보니 비율도 엄청나게 좋아진 것이다.
그리고 나노봇의 더 놀라운 점.
얼굴이 연예인이나 아이돌급으로 잘생겨지고 있었다. 얼굴에서 빛이 난다는 표현이 적당하겠다.
내 몸속의 나노봇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전, 나의얼굴은 좀 평범했다. 얼굴윤곽이 나쁜 것은 아닌데 피부에 문제가 있었다.
그런데 나노머신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하자 얼굴윤곽이 더 가름해지고 뭣보다 피부가 좋아졌다.
남자의 얼굴에서 피부가 차지하는 비중도 엄청나다. 평범한 얼굴이라도 피부만 좋아져도 단번에 사람들이 좀 생겼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는 두 가지 모두 나노봇이 활성화를 하면서 주변여자들의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외모를가진 상황으로 변했다.
이렇게 되다보니 나이도 훨씬 더 어려보이는 동안으로 재탄생.
얼마 전에 서울 중심가를 걷다가 무슨 연예기획사에서 나온 매니저 놈한테 길거리 헌팅을 당했다. 자신의 기획사에서 아이돌 연습생 해보지 않겠냐고.
한국연예계에서 이름 좀 있는 10대 기획사중에 하나이긴 한데.
이것보셔! 내가 당신네 기획사에서 초짜생들하고 합숙하며 아이돌 연습생이나 할 짬밥으로 보이냐?
차라리 내가 연예기획사 차리거나 매수해서 애들 키우는 게 더 재밌겠다.
잠시 느긋한 마음으로 교문쪽에서 기다릴 때 스마트폰이 울린다.